적천수 — 기세와 중화의 형이상학

고전 분석 (허유) · 공개 고전 해설 · 번역·감수 허유

나는 《적천수(滴天髓)》를 명리학에서 가장 추상적이고 종합적인 고전이라고 본다. 자평진전이 월령에서 격국용신을 길어 올리는 '형식의 정밀화'로 한 정점을 이뤘다면, 적천수는 그 형식을 한 단계 더 추상화한다. 사주 전체의 기운이 어떻게 일어나 흐르고(원류), 치우침과 온전함으로 어떻게 길흉을 정하며(통천론), 끝내 중화로 돌아가는가(중화론) — 적천수는 바로 이것을 묻는다. 이 글에서는 적천수의 핵심 장(통천론·천간론·지지론·형상·방국·격국·중화론·월령론·세운론·원류론)을 면밀히 짚고, 그것이 사주를 입체적으로 읽는 데 어떤 깊이를 더하는지 풀어 본다. 더큼만세력으로 사주를 뽑아 놓고 이 글을 옆에 두면, 여덟 글자를 '기세와 균형'의 눈으로 다시 보는 훈련이 될 것이다.

적천수의 위상 — 형식을 넘어선 기세의 명리 형이상학

명리학 고전은 크게 두 흐름으로 갈린다고 나는 정리한다. 하나는 격국(格局) 이라는 형식 틀로 사주를 유형화하는 흐름이고(자평진전이 그 완성이다), 다른 하나는 그 형식을 관통하는 기(氣)의 흐름과 균형 으로 사주를 통째로 읽는 흐름이다. 적천수는 후자의 정점이다.

적천수의 위상은 격국론의 한 문장이 압축한다 — "형상·방국 외에는 격이 가장 중요하다(自形象方局之外而格為最)." 곧 적천수에게 격국은 여러 판독 도구 중 하나일 뿐이며, 그 위에 형상(形象)·방국(方局)이 있고, 격조차 취할 수 없으면 "다만 그 대세를 가볍게 보아 궁통(窮通)을 판단한다(輕輕泛泛, 看其大勢)"고 한다. 자평진전이 "팔자의 용신은 오로지 월령에서 구한다(八字用神, 專求月令)"고 단언해 월령이라는 한 점에 판단을 수렴시킨 것과 정반대 방향이다. 적천수는 월령 한 점이 아니라 여덟 글자 전체가 빚어내는 기세와 균형으로 시선을 넓힌다.

그래서 적천수의 명제들은 개별 글자의 길흉 규칙이 아니라 전체를 보는 형이상학적 원리의 외양을 띤다. "치우침과 온전함이 길흉을 정한다(五氣偏全定吉凶)", "순하면 길하고 거스르면 흉하다(順則吉兮悖則凶)", "중화의 바른 이치를 알면 오행의 묘함에 온전한 능력이 있다(能識中和之正理, 而於五行之妙, 有全能焉)" — 이 명제들은 어느 한 격에도 매이지 않는, 명리 전체를 떠받치는 대들보다. 이 점에서 나는 적천수를 명리서이자 동시에 명리의 형이상학으로 읽는다.

통천론 — 삼원(三元)과 천·지·인, "戴天履地人爲貴"

통천론은 적천수 전체의 총론이자 형이상학적 선언이다. 시작 명제는 삼원(三元) 이다.

欲識三元萬物宗,先觀帝載與神功。 — 만물의 근본인 삼원을 알려면, 먼저 제재(帝載, 음양)와 신공(神功, 오행)을 보라.

원주는 이를 천·지·인으로 못박는다 — "일간이 천원(天元)이요, 지지가 지원(地元)이며, 지지 속에 갈무리된 것이 인원(人元)이다(日干為天元, 地支為地元, 支中所為人元)." 곧 사주의 세 층위(천간·지지·지장간)가 곧 천·지·인 삼재(三才)의 명리적 구현이다. 이어 곤원(坤元, 땅)이 덕을 합해 오기(五氣)의 치우침과 온전함이 길흉을 정한다(五氣偏全定吉凶)고 한다. 나는 이것을 적천수 길흉론의 제1원리로 본다 — 길흉은 어느 한 글자가 아니라 다섯 기운의 편전(偏全, 치우침과 온전함) 이라는 전체 균형에서 나온다.

통천론의 인간관은 이 한 구절에 응축된다.

戴天履地人爲貴,順則吉兮悖則凶。 — 하늘을 이고 땅을 밟는 것 가운데 사람이 귀하니, 순하면 길하고 거스르면 흉하다.

원주는 "만물이 모두 오행을 얻으나, 오직 사람만이 오행의 온전함을 얻었으므로 귀하다(惟人得五行之全, 故為貴)"고 푼다. 나는 이를 단순한 인간 찬가가 아니라 명리학의 존재론적 전제로 읽는다 — 사람만이 오행을 온전히 갖추므로, 사람의 사주만이 오행의 순(順)·패(悖)로 길흉을 논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명을 모르는 자를 귀머거리·장님(聾瞶)에 비유하며, 명을 안다는 것은 곧 "순패(順悖)의 기틀을 이해하는 것"이라 한다.

통천론의 마지막 두 명제는 천간론의 강령으로 이어진다.

五陽從氣不從勢,五陰從勢無情義。 — 다섯 양간은 기를 따르고 세를 따르지 않으며, 다섯 음간은 세를 따르니 정의가 없다.

양간(갑병무경임)은 양의 기를 얻어 양강(陽剛)하므로 재성·칠살의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음간(을정기신계)은 음순(陰順)하여 목이 성하면 목을 따르고 화가 성하면 화를 따른다(從). 이 '종(從)'의 원리가 뒤의 종화론(從化論)으로 전개된다. 다만 원주는 "따름이 그 바름을 얻으면 또한 반드시 정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若從得其正, 亦未必於無情義也)"라는 단서를 단다. 나는 이 단서를 종(從)을 무조건 비하하지 않는, 기세 중심 사고의 유연함으로 읽는다.

천간론 — 십간의 물상과 희기, 기세론의 미시(微視) 버전

나는 천간론을 명리 고전 천간론의 백미로 꼽는다. 각 천간을 여덟 구의 가결(歌訣)로 압축하되, 그 논법이 일관되게 기세론적이다. 글자 하나하나를 고정된 성격표로 보지 않고, 어떤 환경(계절·지지)에서 그 기가 어떻게 살고 죽는가 로 본다.

甲木參天,脱胎要火,春不容金,秋不容土,火熾乘龍,水蕩騎虎,地潤天和,植立千古。 — 갑목은 하늘을 찌르니 탈태에 화가 필요하고, 봄엔 금을 용납하지 않고 가을엔 토를 용납하지 않으며, 불길이 거세면 용(辰)을 타고 물이 넘치면 호랑이(寅)를 탄다.

여기서 '봄의 갑목'과 '가을의 갑목'이 각기 다르게 처신한다는 발상은 글자의 절대 성질이 아니라 계절(월령)이라는 무대 위에서의 기의 상태를 읽는 것이다. 병화의 "土眾成慈, 水猖顯節"(토가 많으면 자애를 이루고 수가 날뛰면 절개를 드러낸다), 계수의 "癸水至弱, 達於天津, 龍德而運"(계수는 지극히 약하나 천진에 다다르고 용의 덕으로 운행한다) 등도 모두 글자를 관계와 세력 속의 동적 존재로 그린다. 천간론은 통천론의 거시적 기세론을 십간 각각에 적용한 미시 버전이라고 나는 본다. 더큼만세력에서 자기 일간을 확인했다면, 그 글자를 정해진 성격표가 아니라 '계절과 지지 속에서 살고 죽는 기운'으로 다시 읽어 보길 권한다.

지지론 — 충(沖)·천복지재(天覆地載), 짜임새의 역학

지지론은 충(沖)을 지지 작용의 핵심으로 본다.

旺者沖衰衰者拔,衰者沖旺旺神發。 — 왕한 것이 쇠한 것을 충하면 쇠한 것은 뽑히고, 쇠한 것이 왕한 것을 충하면 왕한 신이 발한다.

충을 일률적 파괴가 아니라 왕쇠(旺衰)의 함수로 보는 이 명제가 적천수 기세론의 지지 버전이다. 같은 자오(子午) 충도 자가 왕하고 오가 쇠하면 오가 뽑히지만, 자가 쇠하고 오가 왕하면 오히려 오의 복이 발한다 — 충의 결과는 글자가 아니라 세력의 경중이 정한다. 또 양생음사(陽生陰死)의 도식에 집착하지 말라("陽生陰死, 其論勿執")며, 생사를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말고 "간지 경중의 기틀과 모자가 서로 의지하는 형세, 음양 소식의 이치(干支輕重之機, 母子相依之勢, 陰陽消息之理)"를 살피라 한다.

지지론 후반의 천복지재(天覆地載) 는 적천수가 사주를 '짜임새(structure)'로 보는 관점을 응축한다.

天全一氣,不可使地道莫之載。地全三物,不可使天道莫之覆。 — 천간이 일기로 온전해도 지지가 싣지 못하게 해선 안 되고, 지지가 세 가지로 온전해도 천간이 덮지 못하게 해선 안 된다.

천간(하늘)이 덮고 지지(땅)가 싣는 상하 호응, 그리고 "위아래는 정이 화협함을 귀하게 여기고(上下貴乎情協), 좌우는 뜻이 같음을 귀하게 여긴다(左右貴乎志同)"는 좌우 호응이 사주의 짜임새를 결정한다. 끝 명제 "始其所始, 終其所終, 富貴福壽, 永乎無窮"(시작할 곳에서 시작하고 끝맺을 곳에서 끝맺으면 부귀복수가 무궁하다)는 사주를 연월(시작)에서 일시(끝)로 흐르는 하나의 서사적 흐름으로 읽는다. 이는 뒤의 원류론과 직결된다.

형상·방국·격국 — 판독 도구의 위계

적천수는 사주 판독을 형상 → 방국 → 격국의 위계로 본다. 격국을 최상위에 두는 자평진전과 결정적으로 갈리는 지점이다.

형상론은 사주의 짜임새를 상(象)과 형(形)으로 본다. "두 기가 합하여 상을 이루면 그 상을 깨뜨려선 안 되고(兩氣合而成象, 像不可破也)", "다섯 기가 모여 형을 이루면 그 형을 해쳐선 안 된다(五氣聚而成形, 形不可害也)." 일기(一氣)로 된 독상(獨象, 곡직·염상 같은 종격류)은 화신(化神)이 창성한 화지(化地)로 행함을 기뻐한다 — 즉 기세가 한쪽으로 쏠린 사주는 그 쏠림을 거스르지 말고 따라줘야 한다는, 통천론 '종(從)' 원리의 형상론적 적용이다.

방국론은 방(方, 인묘진 같은 방위 묶음)과 국(局, 해묘미 같은 삼합 국)을 엄격히 구별한다. "방은 방이고 국은 국이니, 방을 얻으려면 국과 섞지 마라(方是方兮局是局, 方要得方莫混局)." 방과 국이 섞이면 태과(太過)하여 순수함에 흠이 생긴다. 나는 이것을 기세가 순수해야 한다는 원리로 읽는다.

격국론에 이르러 비로소 격이 논해지는데, 그 정의는 자평진전과 같다 — "격의 참된 것은 월지의 신이 천간에 투출한 것이다(格之真者, 月支之神, 透於天干也)." 그러나 위치가 다르다. 격은 형상·방국 다음의 도구이고, "격을 취할 수 없으면 다만 용신을 취하고(只取用神), 용신도 없으면 대세를 가볍게 본다"고 하여 격국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후반부는 관살혼잡(官煞相混)의 가부와 상관견관(傷官見官)의 가견·불가견을 조건별로 정밀하게 분별하는데, 이 대목은 자평진전 격국론과 직접 맞닿는다.

중화론 — 적천수 형이상학의 도달점

중화론은 적천수 형이상학의 도달점이다.

能識中和之正理,而於五行之妙,有全能焉。 — 중화의 바른 이치를 알 수 있으면, 오행의 묘함에 온전한 능력이 있는 것이다.

원주는 "중하고도 화한 것이 자평의 요법이다(中而且和, 子平之要法)"라 선언한다. "병이 있어야 귀하다(有病方為貴)"는 설조차 결국 "격 중에서 병을 제거하면 재록이 따른다(格中如去病, 財祿兩相隨)"는 것이니, 병을 제거함은 곧 다시 중화로 돌아가는 것(則又中和矣) 이다. 나는 통천론의 '오기편전(五氣偏全)'과 중화론의 '중화'를 동전의 양면으로 본다 — 치우침(偏)을 덜고 온전함(全)·균형으로 돌아가는 것이 길의 원리다.

다만 중화론은 교조적이지 않다. 신약한데 재관이 왕해도 부귀를 취하고, 용신이 강해도, 기운이 치우치고 괴이(偏氣古怪)해도 부귀를 취하니, "반드시 중하고 화한 데 있는 것은 아니다(不必於中且和也)"라는 예외를 함께 둔다. 그 이유로 "천하의 재관은 수가 한정되어 있는데 천하의 인재는 가장 교묘하기(天下之人才, 最邪巧也)" 때문이라 한다. 나는 원리를 세우되 예외를 인정하는 이 태도를 적천수 기세론의 성숙함으로 본다.

월령론·원류론·세운론 — 기의 출발·흐름·운행

월령론은 월령을 사람의 집(宅)에, 인원용사(人元用事)의 신을 집의 방향(向)에 비유한다.

月令提綱,譬之宅也,人元用事之神,宅之向也,不可以不卜。

인월(寅月)이라면 입춘 후 무토(7일)·병화(8~14일)·갑목(15일 이후)이 차례로 용사하니, 절입 일수로 어느 지장간이 용사하는지 분별해야 격과 용을 취할 수 있다. 적천수도 월령을 중시하되, 그것을 격국의 유일 기준으로 절대화하지 않고 형상·방국·기세와 나란히 둔다는 점이 자평진전과의 차이다. 더큼만세력이 절입 일수와 지장간을 정확히 계산해 주는 이유가 여기 있다 — 같은 인월생이라도 절입 후 며칠째냐에 따라 용사하는 지장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원류론은 적천수 기세론의 정수다. "어디에서 근원이 일어나, 어느 곳으로 흘러가 머무는가(何處起根源, 流向可方住)." 당령 여부와 무관하게 가장 왕하여 온 국의 조종이 되는 것을 원두(源頭) 로 삼고, 그 흐름이 희신에서 머무는지·중간에 막히는지로 길흉을 본다. 사주를 정적인 글자판이 아니라 기운이 발원하여 흘러가는 강줄기로 보는 이 시선이야말로 '기세(氣勢)'라는 말의 본의이며, 지지론의 "始其所始, 終其所終"과 한 짝이다.

세운론은 대운과 세운을 보는 법을 다룬다. "대운은 지나가는 땅에 비유되므로 지지를 중시하고, 태세는 만나는 사람에 비유되므로 천간을 중시한다(大運譬如所歷之地, 故重地支; 太歲譬如所遇之人, 故重天干)." 운과 세가 만날 때의 네 관계 — 전(戰, 극)·충(衝)·화(和, 합화)·호(好, 같은 기운) — 를 정의하고, "어느 쪽이 항복하는가(孰降)", "어느 쪽이 절실한가(孰切)"로 길흉을 가린다. 이 또한 글자의 길흉표가 아니라 세력 간 역학으로 운을 읽는 기세론의 운세 버전이다. 더큼만세력으로 대운·세운을 펼쳐 놓고 보면, 운을 단순한 '좋은 해·나쁜 해'의 표가 아니라 천간과 지지가 만나 벌이는 역학으로 다시 읽을 수 있다.

적천수가 명리학사에서 차지하는 자리

적천수는 사주를 형식 규칙의 집합이 아니라 기운의 균형과 흐름으로 보는 흐름의 정점이다. 나는 적천수가 앞선 성취들을 흡수하면서 형이상학의 정점으로 종합한 고전이라고 본다.

연해자평이 체계화한 오행 생극·간지 음양을 통천론 삼원·오기편전의 토대로 받아들이고, 자평진전이 세운 '월령에서 격·용을 구함'을 월령론으로 수용하되 격국을 절대화하지 않으며, 격국의 형식 틀을 형상·방국 아래의 한 도구로 위치를 조정하고, 궁통보감의 조후(調候)를 한난론(寒暖論) 등으로 기세에 통합한다. 곧 적천수는 연해자평의 생극·격국과 자평진전의 월령·용신재료로 받아들이되, 그 위에 통천론(천인)·형상·방국·원류(기세)·중화라는 형이상학적 상부구조를 세운다.

자평진전(격국)과 적천수(기세)의 분기

같은 신법명리 안에서 자평진전과 적천수는 사주를 보는 시선이 갈린다. 나는 이 분기를 명리학사의 핵심 분수령으로 본다.

자평진전 (형식의 정점)적천수 (기세의 정점)
판단의 수렴점월령 한 점 — "八字用神, 專求月令"사주 전체 — 오기편전·원류·중화
격국의 위상최상위·필수 ("格局分焉")형상·방국 다음의 한 도구 ("格為最"이되 차상위)
핵심 개념용신·상신·격국의 성패기세·중화·순패·원류·천복지재
사주관월령이 정한 배역(시공 좌표)기운이 발원·유행·균형하는 흐름
비유월령=집/향도 (정적 좌표)원두→유행 (동적 강줄기)

자평진전이 "이 사주는 어느 격이고 용신·상신이 무엇이며 성격(成格)했는가"를 묻는다면, 적천수는 "이 사주의 기운은 어디서 일어나 어디로 흐르며 균형을 이뤘는가"를 묻는다. 전자는 분석적·형식적이고, 후자는 종합적·형이상학적이다. 나는 두 고전이 쌍벽을 이루되 서로 대체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임철초 적천수천미 — '명리의 원류는 주역'

적천수의 형이상학적 성격은 청대 임철초(任鐵樵)의 증주 《적천수천미(滴天髓闡微)》에서 명시적 사상으로 천명된다. 임철초는 통천론의 "欲識三元萬物宗, 先觀帝載與神功"을 풀이하며 명리의 원류가 주역(周易) 임을 못박는다 — 복희 선천팔괘의 건곤(乾坤), 문왕 후천팔괘의 감리(坎離)가 사계절·사방위로 운행하며, 삼원(천원·지원·인원=천간·지지·지장간)이 곧 음양(帝載)과 오행(神功)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적천수 원경(原經)이 제시한 천인·삼원의 형이상학을, 천미가 주역 우주론으로 소급해 정초한 셈이다.

학술적 뒷받침 — 통천론·월령론·천도관

내가 적천수를 '계보의 종착이자 형이상학의 정점'으로 평가하는 것은 직관이 아니라 선행 연구로도 뒷받침된다.

신정원은 자평진전 명식을 주역 육효 구조와 나란히 놓아 명리의 시공인식이 주역에 연원함을 논증하면서, 그 천지인식의 핵심 권위 인용으로 적천수천미를 든다. 임철초를 인용해 "명리의 원류가 周易임을 못박는다 — '三元(天元·地元·人元=천간·지지·지장간)을 알려면 먼저 帝載(음양)와 神功(오행)을 알아야 한다'"고 정리하는 것이다. 이는 내가 위에서 분석한 통천론의 삼원론과 정확히 같은 구절이며, 이를 "명리=주역 연원론의 직접 근거"로 삼는다. 곧 적천수의 통천론은 단순한 명리 총론이 아니라 명리를 주역 형이상학에 접속시키는 결절점이라는 것이다.

김만태는 사계 18일설이 명리로 수용되며 월령이 사주의 관건이 되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그 고전 근거의 하나로 적천수의 천도(통천론)·월령론을 든다. "《적천수》〈천도〉는 사계에 토를 배정하며 음양·삼원·사시·오행의 명리학적 의미를 함축하고, 《적천수》〈월령〉·《적천수천미》는 월령을 '집(家宅)'에, 인원을 '집의 향도(向道)를 정하는 지휘관'에 비유한다"고 평한다. 다만 나는 여기서 한 가지를 덧붙인다 — 적천수의 월령은 자평진전의 "專求月令"과 나란히 인용되되, 적천수 자신은 월령을 형상·방국·기세와 병치한다는 점이 두 고전의 분기다.

김계성의 왕충 명정론 연구는 적천수를 직접 인용하지는 않으나, 통천론의 천도관(天道觀) 이 선 사상사적 좌표를 제공한다고 나는 본다. 통천론의 "戴天履地人爲貴, 順則吉兮悖則凶"은 천·지·인의 위계 위에서 인간을 자리매김하는데, 이 천인 구도는 동중서의 천인감응(天人感應)과 왕충의 천도무위자연(天道無爲自然)이라는 한대 두 천도관의 종합 위에 서 있다. 적천수가 "사람만이 오행의 온전함을 얻어 귀하다"며 인간을 오행 질서의 중심에 두는 것은, 왕충식 자연명정론(用氣爲性, 性成命定)이 깔아둔 '기(氣)로 명이 정해진다'는 토대 위에서 그 명을 다시 천·지·인의 형이상학적 질서로 끌어올린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곧 적천수 통천론은 한대 천도관의 명리적 결정(結晶)이다.

적천수를 사주 해석에 어떻게 쓰는가

적천수는 보조로 곁에 두는 고전이지만, 사주를 입체적으로 읽는 데 형이상학적 깊이를 더해 준다. 나는 더큼만세력으로 사주를 뽑은 뒤 다음 세 가지 시선으로 적천수를 활용한다.

첫째, 일간을 '천원(天元)'으로, 월지를 '지원(地元)'으로 본다. 나는 일간을 고정된 성격표가 아니라 '나의 심리(기-질-형)', 곧 생각에서 연결을 거쳐 행동으로 이어지는 동적 과정으로 본다. 이것은 적천수가 일간을 '머물지 않고 유행하는 기'인 천원으로 본 것과 닿는다. 또 나는 월지를 '주인공이 선 무대(환경)'로 보는데, 이는 적천수가 지지를 지원으로 보고 월령을 '집(宅)'에 비유한 것과 정확히 호응한다. 나의 '무대' 비유는 적천수의 '가택(家宅)' 비유의 서사적 변주인 셈이다. 더큼만세력에서 일간과 월지를 먼저 확인하고, 둘을 섞지 않고 따로 읽는 것 — 이것이 내가 가장 강조하는 이중 해석 틀이다.

둘째, 사주를 '기운이 발원해 흘러 머무는 강줄기'로 본다. 나는 운명을 "명(타고난 틀)과 운(시간의 흐름)이 만나 일으키는 작용의 이야기"로, 사주를 "주인공이 무대에서 펼치는 서사"로 본다. 적천수의 원류론("何處起根源, 流向可方住")과 지지론의 "始其所始, 終其所終"은 이 서사적 운명관에 형이상학적 깊이를 더한다 — 사주는 기운이 발원(源)하여 흘러(流) 머무는 하나의 흐름이고, 연월(시작)에서 일시(끝)로 이어지는 서사다. 내 비유가 문학적이라면, 적천수의 원류론은 그 서사를 기의 발원·유행·귀결이라는 형이상학으로 정초한다.

셋째, 치우침을 결함이 아니라 채워 갈 여지로 본다. 중화론의 균형 원리(편전을 덜고 중화로 돌아감)는 내가 운명을 결정론적 예언이 아니라 '운전대를 잡을 가능성'으로 보는 능동적 운명관과 통한다. 치우침(偏)은 고정된 결함이 아니라, 운(運)에서 채우거나 덜어 중화로 향할 수 있는 동적 상태이기 때문이다. 더큼만세력으로 대운을 펼쳐 놓고 보면, 사주 원국의 치우침이 어느 대운에서 채워지고 어느 대운에서 더 쏠리는지 — 곧 '중화로 향하는 시간표'를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월령에 대해 한 가지를 덧붙인다. 나는 월령용신을 '캐릭터의 클래스', 용신을 '타고난 천재성'으로 본다. 적천수 월령론("月令提綱, 譬之宅也")은 이 월령 중시에 고전적 정당성을 보태되, 적천수 자신은 월령을 형상·방국·기세와 병치한다는 점에서 시야가 더 넓다. 나는 두 시선을 함께 쥐는 쪽을 권한다 — 사주를 '월령이 정한 천재성(점)'과 '전체 기세의 균형(면)'으로 입체적으로 읽는 것이다. 더큼만세력이 뽑아 주는 여덟 글자를 앞에 두고, 한 번은 월령의 점으로, 한 번은 기세의 면으로 읽어 보라. 적천수가 도달한 '중화의 형이상학'이 비로소 손에 잡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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