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 18 대광(大匡)

관자(管子) · 제 관중 전 · 번역·감수 허유

관중(管仲)·포숙아(鮑叔牙)·소홀(召忽)과 제(齊) 환공(桓公)의 사적을 서사로 기록한 편이다. "대광(大匡)"은 크게 바로잡음의 뜻으로, 환공이 즉위하기까지의 내란, 관중의 귀국, 관중의 만류를 거듭 어기다 패업(霸業)을 이루는 과정, 제후를 모으고 정사를 베풀어 사십이 년을 누린 일을 다룬다. 관자의 정치 사상이 역사 서술로 구현된 편이다.

핵심 구절 — 원문과 번역

召忽之死也,賢其生也。管仲之生也,賢其死也。

(소홀의 죽음은 그 삶보다 어질고, 관중의 삶은 그 죽음보다 어질다.)

君霸王,社稷定。君不霸王,社稷不定。

(임금이 패왕이면 사직이 정해지고, 패왕이 아니면 정해지지 않는다.)

與其厚於兵,不如厚於人。

(병기에 두터움이 사람에 두터움만 못하다.)

번역

관중·포숙·소홀의 분담

제 희공(僖公)이 공자 제아(諸兒)·공자 규(糺)·공자 소백(小白)을 낳았다. 포숙(鮑叔)에게 소백을 가르치게 하니 포숙이 병을 칭하고 나오지 않았다. 관중(管仲)과 소홀(召忽)이 찾아가 까닭을 물으니, 포숙이 "임금이 신하의 불초함을 아시어 천한 신하에게 소백을 맡기셨으니 버려진 줄 안다" 하였다. 소홀은 "끝내 사양하고 나오지 말라" 하였으나, 관중이 말하였다. "안 된다. 사직과 종묘를 맡은 자는 일을 사양하지 않는다. 장차 나라를 가질 자는 알 수 없으니 그대는 나오라." 소홀이 "우리 세 사람은 제나라에 솥의 세 발과 같아 하나를 없애면 서지 못한다. 내가 보건대 소백은 반드시 후사가 되지 못한다" 하니, 관중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나라 사람이 규의 어미를 미워하여 규에게까지 미치고, 소백이 어미 없음을 가엾이 여긴다. 제아는 장성하나 천하다. 제나라를 안정시킬 자는 이 두 공자가 아니면 없을 것이다. 소백의 사람됨은 작은 지혜는 없으나 삼가며 큰 사려가 있다. 하늘이 제나라에 화를 내려 규가 서더라도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니, 그대가 사직을 정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마침내 관중의 말에 따라 포숙이 나와 명을 받들어 소백을 가르쳤다.

양공(襄公)의 난과 무지(無知)의 시해

희공이 죽고 제아가 장성하여 임금이 되니 양공(襄公)이다. 양공이 후(后)를 세우고 무지(無知)를 내치니 무지가 노하였다. 연칭(連稱)·관지보(管至父)를 규구(葵丘)에 수자리 보내며 "오이 철에 가서 오이 철에 오라" 하였으나, 기한이 차도 교대를 허락하지 않으니 두 사람이 공손무지를 끼고 난을 일으켰다.

노 환공(魯桓公)의 부인 문강(文姜)은 제나라 여자였다. 환공이 제나라에 가며 부인과 함께 가니 신유(申俞)가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문강이 제후(齊侯, 양공)와 사통하자 환공이 문강을 꾸짖었고, 문강이 제후에게 고하니 제후가 노하여 공자 팽생(彭生)을 시켜 노후를 죽였다. 노나라가 팽생을 죽여 사죄하기를 청하니 제나라가 팽생을 죽였다. 뒤에 양공이 패구(貝丘)에서 사냥하다 멧돼지를 보고 놀라 수레에서 떨어져 발을 다쳤고, 결국 무지의 무리에게 시해되어 공손무지가 즉위하였다.

환공의 즉위와 관중의 귀국

포숙아는 공자 소백을 받들어 거(莒)로 달아나고, 관이오(管夷吾)·소홀은 공자 규를 받들어 노(魯)로 달아났다. 구 년 뒤 공손무지가 옹름(雍廩)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환공(소백)이 거에서 먼저 들어오니, 노나라가 제나라를 쳐 공자 규를 들이려 건시(乾時)에서 싸웠으나 노나라 군대가 패하였다. 환공이 즉위하여 노나라를 위협해 공자 규를 죽이게 하였다.

환공이 포숙에게 "어떻게 사직을 정할까" 물으니, 포숙이 "관중과 소홀을 얻으면 사직이 정해진다" 하였다. 환공이 "이오와 소홀은 내 원수다(관중이 일찍이 환공에게 활을 쏘아 띠쇠를 맞혔다)" 하니, 포숙이 그 까닭과 도모를 알리며 "급히 부르면 얻을 수 있다" 하였다. 노나라 시백(施伯)이 이오의 지혜를 알아 노나라에 정사를 맡기려 하거나 죽이려 할 것이니, 환공이 먼저 돌이키면 원망을 살까 두려워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제나라 사신이 노나라에 이르러 "이오와 소홀은 과인의 원수이니 산 채로 얻고자 한다. 얻지 못하면 임금이 과인의 원수와 한편이 됨이다" 하였다. 시백은 "주는 것이 낫다. 제나라 임금이 비록 어진 이를 얻어도 반드시 쓰겠는가. 만약 죽이면 포숙의 벗이라 포숙이 이로 난을 일으키리니 주는 것만 못하다" 하였다. 노나라가 관중과 소홀을 묶어 보냈다. 관중이 소홀에게 "그대는 두려운가" 물으니, 소홀이 "내 일찍 죽지 않은 것은 일을 정하려 함이었는데 이미 정해졌다. 임금을 죽이고 내 몸을 쓰면 다시 욕됨이니, 그대는 산 신하가 되고 나는 죽은 신하가 되리라. 이름은 둘로 서지 못한다" 하고, 제나라 경계에 들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관중이 들어왔다. 군자가 듣고 "소홀의 죽음은 그 삶보다 어질고, 관중의 삶은 그 죽음보다 어질다" 하였다.

환공의 패업(霸業)

환공 이 년, 즉위하여 관중을 불렀다. 환공이 "사직을 정할 수 있는가" 물으니, 관중이 "임금이 패왕이면 사직이 정해지고, 패왕이 아니면 정해지지 않는다" 하였다. 환공이 "그 큰 데까지는 감히 못 가고 사직만 정하려 한다" 하니, 관중이 거듭 청해도 듣지 않다가 물러나려 하였다. 문에 이르자 환공이 다시 불러 땀을 흘리며 "그만두지 말라, 패업에 힘쓰자" 하였다. 관중이 두 번 절하고 일어나 "오늘 임금이 패업을 이루시니 신은 명을 받든다" 하고, 상위(相位)에 서서 오관(五官)에게 일을 행하게 하였다.

이후 환공이 거듭 군대를 일으키려 하자 관중이 거듭 만류하였다. "백성이 병들었으니 먼저 백성에게 베풀고 병기를 감추소서. 병기에 두터움이 사람에 두터움만 못합니다." 환공이 듣지 않고 송(宋)을 치니 제후가 송을 구원하여 제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또 노(魯)를 치려 하니 관중이 "안의 정사가 닦이지 않으면 밖의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였으나 듣지 않았고, 장작(長勺)에서 노 장공(莊公)에게 크게 패하였다.

사 년, 갑옷 십만과 수레 오천 승을 갖추고 노를 굴복시키려 하니 관중이 탄식하며 "임금이 덕을 다투지 않고 병력을 다투니 제나라가 위태롭다" 하였으나, 환공이 또 노를 쳤다. 노가 감히 싸우지 못하고 화친을 청하였다. 회맹의 단에서 노 장공과 조귀(曹劌)가 칼을 품고 환공을 위협하니, 관중이 "임금께서 땅을 주어 문수(汶水)를 경계로 하소서" 하였다. 환공이 허락하고 문수를 경계로 돌아온 뒤, 정사를 닦고 병기를 닦지 않았다.

제후를 봉하고 정사를 펴다

오 년, 송이 기(杞)를 치니 환공이 구원하고자 하였다. 관중이 "안의 정사가 닦이지 않으면 밖에 의를 들어도 미덥지 못합니다. 임금이 밖으로 의를 들되 행실로 먼저 하면 제후가 따릅니다" 하였다. 환공이 기를 위해 연릉(緣陵)에 성을 쌓아 봉하고 수레 백 승과 갑옷 천을 주었다. 이듬해 적인(狄人)이 형(邢)을 치니 이의(夷儀)에 성을 쌓아 봉하고, 또 적인이 위(衛)를 치니 초구(楚丘)에 성을 쌓아 봉하였다. 망한 세 나라를 잇달아 봉함에 신하들이 "나라가 다하면 어찌하겠는가" 간하였으나, 관중은 "임금이 행하는 이름만 있고 그 실(實)은 잃지 않으니 행하소서" 하였다.

위를 봉한 뒤, 환공이 관중에게 행할 바를 물으니 "안으로 정사를 닦아 백성을 권하면 제후에게 미더울 수 있다" 하였다. 이에 세금을 가벼이 하고 관문·시장의 징세를 늦추며 녹의 제도를 만들었다. 관중이 또 청하여 제후 사이의 예를 정하고, 나라 안에서 상을 행하며 임금이 제후에게 상을 베풀게 하였다. 또 습붕(隰朋)을 동국에, 빈서무(賓胥無)를 서토에 보내고, 공자 개방(開方)을 위에, 계우(季友)를 노에, 몽손(蒙孫)을 초에 유세하게 하여 작은 제후를 복종시키고 큰 제후를 따르게 한 뒤에야 정사를 베풀 수 있다 하였다.

오 년에 제후가 따랐다. 적인이 침범하자 환공이 제후에게 알려 함께 구원하고 적을 무찔렀다. 북주(北州)의 제후가 오지 않으니, 남주(南州)의 제후를 소릉(召陵)에서 만나 "천자의 명을 받들어 침벌을 구원했는데 북주 제후가 이르지 않았으니 그를 벌하겠다" 하였다. 환공이 마침내 북으로 영지(令支)를 치고 고죽(孤竹)을 베며 산융(山戎)을 만났다. 관중이 "임금이 제후를 가르쳐 백성을 위해 식량을 모으게 하소서" 하였다.

이후 환공이 제후의 군신·부자를 모아 회맹의 약속을 정하니, "제후는 첩을 멋대로 처로 세우지 말고, 대신을 멋대로 죽이지 말며, 멋대로 녹을 주지 말라. 사·서인은 멋대로 처를 버리지 말고, 둑을 함부로 막지 말며, 곡식을 쟁이지 말고, 재목을 금하지 말라" 하였다. 마침내 오인(吳人)이 곡(穀)을 치자 제후의 군대가 다 이르렀으나 오인이 달아났다. 환공이 무릇 병거(兵車)의 회맹 여섯 번, 승거(乘車)의 회맹 세 번을 하고, 나라를 누린 것이 사십이 년이었다.

인재 천거와 상벌의 제도

환공 즉위 십구 년, 관문·시장의 징세를 늦추어 오십에 하나를 취하고, 녹을 곡식으로 주며, 밭을 헤아려 세를 매기되 이태에 한 번 세를 거두었다. 상년(上年)에는 열에 셋, 중년(中年)에는 열에 둘, 하년(下年)에는 열에 하나를 취하고, 기근 든 해에는 세를 거두지 않았다.

환공이 포숙에게 군신 가운데 선한 자를, 안자(晏子)에게 벼슬하지 않은 자와 농부 가운데 선한 자를, 고자(高子)에게 공인·상인 가운데 선한 자를 알아내게 하였다. 또 현(縣)의 관리가 제후의 선비를 천거하되 그 능력의 크고 작음을 보아 상을 주고, 포숙에게 대부를 천거하게 하며, 안자에게 귀인의 자제를 천거하게 하고, 고자에게 공인·상인을 천거하게 하며, 국자(國子)에게 정(情)으로 옥사를 판결하게 하였다. 세 등급(상거·차·하)으로 가려, 부형에게 허물이 없고 주리(州里)가 칭찬하며 관리가 천거하면 임금이 쓰되, 선하면 상을 주고 선하지 못하면 관리가 벌을 받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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