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 22 패형(霸形)
기러기가 사방을 마음대로 오가는 모습을 보고 환공이 패왕의 뜻을 품는 데서 시작하여, 관중이 패업의 근본은 백성에게 있다고 일러주는 편이다. 부세를 가볍게 하고 형벌을 늦추며 때맞춰 일을 일으켜 백성의 근심을 더는 것이 근본임을 밝히고, 송·정을 보존하고 초와 대치하여 명령이 천하에 행해지게 한 일을 서술한다.
핵심 구절 — 원문과 번역
齊國百姓,公之本也。
(제나라 백성이 공의 근본이다.)
言脫於口,而令行乎天下,游鍾磬之閒,而無四面兵革之憂。
(말이 입에서 나오면 명령이 천하에 행해지고, 종과 경 사이에 노닐어도 사방의 병란 근심이 없다.)
번역
환공이 자리에 있을 때 관중과 습붕이 뵈러 와 잠시 서 있었는데, 기러기 한 쌍이 날아 지나갔다. 환공이 탄식하여 말하였다. "중보(仲父)여, 이제 저 기러기는 때로 남으로 가고 때로 북으로 가며 때로 가고 때로 오니, 사방이 멀어도 이르고자 하는 데 이른다. 오직 날개가 있는 까닭만으로 이렇게 천하에 그 뜻을 통할 수 있는 것인가?" 관중과 습붕이 대답하지 않았다. 환공이 말하였다. "두 사람은 어찌하여 대답하지 않는가?" 관자가 대답하였다. "임금께 패왕의 마음이 있으나 이오는 패왕의 신하가 아니므로 감히 대답하지 못합니다." 환공이 말하였다. "중보는 어찌 그러한가? 어찌 마땅한 말을 하지 않는가? 과인에게 향할 곳이 있겠는가? 과인에게 중보가 있음은 나는 기러기에게 날개가 있음과 같고 큰 물을 건넘에 배와 노가 있음과 같다. 중보가 한 마디도 과인을 가르치지 않으면, 과인에게 귀가 있은들 장차 어디서 도를 듣고 법도를 얻겠는가?" 관자가 대답하였다. "임금께서 만약 패왕이 되어 큰일을 일으키고자 하신다면, 반드시 그 근본 되는 일을 좇아야 합니다." 환공이 몸을 굽혀 자리를 옮기고 손을 모아 물었다. "감히 묻건대 무엇을 그 근본이라 합니까?" 관자가 대답하였다. "제나라 백성이 공의 근본입니다. 사람들이 굶주림을 심히 근심하는데 부세가 무겁고, 사람들이 죽음을 심히 두려워하는데 형정(刑政)이 험하며, 사람들이 수고로움에 심히 상하는데 윗사람이 일을 일으킴이 때에 맞지 않습니다. 공께서 그 부세를 가볍게 하면 사람들이 굶주림을 근심하지 않고, 그 형정을 늦추면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일을 때맞춰 일으키면 사람들이 수고로움에 상하지 않습니다." 환공이 말하였다. "과인이 중보의 말을 들으니 이 세 가지를 명으로 받았소. 감히 멋대로 하지 않고 장차 선군께 아뢰겠소."
이에 백관 유사에게 명하여 서판을 깎고 붓을 먹에 적셔, 이튿날 모두 태묘(太廟)의 문에 조회하게 하였다. 조회가 정해지자 백 명의 관리에게 명령하여, 세를 거두는 자에게 백에 하나(百一鍾)를 거두게 하고, 고아와 어린이는 형벌하지 않으며, 못과 다리는 때맞춰 풀어주고, 관문은 살피되 세를 매기지 않으며, 저자는 장부에 적되 부세를 매기지 않게 하였다. 가까운 자에게는 충신(忠信)을 보이고 먼 자에게는 예의(禮義)를 보였다. 이를 몇 해 행하니 백성이 그에게 돌아옴이 흐르는 물 같았다.
이 뒤에 송(宋)이 기(杞)를 치고 적(狄)이 형(邢)·위(衛)를 쳤으나 환공이 구하지 않고, 알몸으로 가슴을 가린 채 병을 일컬었다. 관중을 불러 말하였다. "과인에게 천 년의 양식은 있으나 백 년의 수명은 없소. 이제 병이 들었으니 잠시 즐겨봄이 어떻소?" 관중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이에 종과 경(磬)을 거는 틀을 매달게 하고 노래와 춤과 우(竽)·슬(瑟)의 음악을 늘어놓으며, 날마다 수십 마리 소를 잡기를 수십 일 동안 하였다. 여러 신하가 나아가 간하였다. "송이 기를 치고 적이 형·위를 치니 임금께서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환공이 말하였다. "과인에게 천 년의 양식은 있으나 백 년의 수명은 없고, 이제 또 병이 들었으니 잠시 즐기겠노라! 또 저들이 과인의 나라를 친 것이 아니라 이웃 나라를 친 것이니 나는 상관할 바 없다." 송이 이미 기를 취하고 적이 이미 형·위를 함락하였다.
환공이 일어나 종틀 사이를 거니니 관자가 따랐다. 큰 종의 서쪽에 이르러 환공이 남쪽을 향해 서고 관중이 북쪽을 향해 마주하였다. 큰 종이 울리니 환공이 관자에게 친히 말하였다. "즐겁구나, 중보여!" 관자가 대답하였다. "이는 신이 이른바 슬픔이지 즐거움이 아닙니다. 신이 듣건대, 옛날 종과 경 사이에서 음악을 말하는 자는 이와 같지 않았습니다. 말이 입에서 나오면 명령이 천하에 행해지고, 종과 경 사이에 노닐어도 사방의 병란 근심이 없었습니다. 이제 임금의 일은 말이 입에서 나와도 명령이 천하에 행해지지 못하고, 종과 경 사이에 있어도 사방의 병란 근심이 있으니, 이것이 신이 이른바 슬픔이지 즐거움이 아닙니다." 환공이 말하였다. "좋다." 이에 종과 경의 틀을 부수고 노래와 춤의 음악을 거두니 궁중이 비어 사람이 없었다.
환공이 말하였다. "과인이 종과 경의 틀을 부수고 노래와 춤의 음악을 거두었으니, 묻건대 무엇으로 시작하여 나라에 장차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관자가 대답하였다. "송이 기를 치고 적이 형·위를 쳤는데 임금께서 구하지 않으셨으니, 신은 경하드립니다. 신이 듣건대, 제후가 강함을 다투면 더불어 강함을 나누지 말라 하였습니다. 이제 임금께서는 어찌하여 세 임금(기·형·위)의 거처를 정해주지 않으십니까?" 이에 환공이 말하였다. "좋다." 그리하여 수레 백 대와 군사 천 명으로 연릉(緣陵)에 기를 봉하고, 수레 백 대와 군사 천 명으로 이의(夷儀)에 형을 봉하며, 수레 오백 대와 군사 오천 명으로 초구(楚丘)에 위를 봉하라 명하였다. 환공이 말하였다. "과인이 세 임금의 거처를 정해주었으니, 이제 또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관자가 대답하였다. "신이 듣건대 제후가 이익을 탐하면 더불어 이익을 나누지 말라 하였습니다. 임금께서는 어찌하여 범·표범 가죽과 무늬 비단을 내어 제후에게 사신을 보내고, 제후로 하여금 무명과 사슴 가죽으로 보답하게 하지 않으십니까?" 환공이 말하였다. "좋다." 이에 범·표범 가죽과 무늬 비단으로 제후에게 사신을 보내니 제후가 무명과 사슴 가죽으로 보답하였고, 명령이 굳건히 천하에 행해지기 시작하였다.
이 뒤에 초(楚) 사람이 송·정을 쳐 정의 땅을 불사르고 태워, 성이 무너진 자가 다시 쌓지 못하게 하고 집이 불탄 자가 다시 잇지 못하게 하며, 그 사람들로 하여금 짝을 잃어 새와 쥐가 굴에 살듯 집에 살게 하였다. 송의 밭을 가로질러 두 내를 막아 물이 동으로 흐르지 못하게 하니, 동산의 서쪽이 물 깊이가 담장을 잠기게 하여 사백 리가 된 뒤에야 밭갈 수 있게 되었다. 초가 송·정을 삼키려 하나 제를 두려워하여, 날마다 사람이 많고 군대가 강하여 자기를 해할 수 있는 자는 반드시 제라 여겼다. 이에 초왕이 나라 안에 호령하여 말하였다. "과인이 임금으로서 밝다고 여기는 자로는 환공만 한 이가 없고, 신하로서 어질다고 여기는 자로는 관중만 한 이가 없다. 그 임금을 밝다 하고 그 신하를 어질다 하니 과인이 그를 섬기기를 원한다. 누가 나를 위해 제와 사귈 수 있으면, 과인은 후(侯)에 봉하는 것을 아끼지 않겠다." 이에 초나라의 어진 선비가 모두 그 귀한 보물과 폐백을 안고 제를 섬겼다. 환공의 좌우에 귀한 보물과 폐백을 받지 않은 자가 없었다.
이에 환공이 관중을 불러 말하였다. "과인이 듣건대 남에게 잘하는 자는 남도 그에게 잘한다 하였소. 이제 초왕이 과인에게 잘함이 심히 한결같은데 과인이 잘하지 않으면 장차 도리에 어긋날 것이오. 중보는 어찌하여 마침내 초와 사귀지 않소?" 관자가 대답하였다. "안 됩니다. 초 사람이 송·정을 쳐 정의 땅을 불사르고 태워, 성이 무너진 자가 다시 쌓지 못하게 하고 집이 불탄 자가 다시 잇지 못하게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짝을 잃어 새와 쥐가 굴에 살듯 집에 살게 하였습니다. 송의 밭을 가로질러 두 내를 막아 물이 동으로 흐르지 못하게 하니 사백 리가 된 뒤에야 밭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가 송·정을 삼키려 하면서 사람이 많고 군대가 강하여 자기를 해할 수 있는 자는 반드시 제라 여기니, 이는 문(文)으로 제를 이기고 무(武)로 송·정을 취하려는 것입니다. 초가 송·정을 취하는데 금하여 그치게 하지 않으면 이는 송·정을 잃는 것이요, 금하면 또 초에게 미덥지 못한 것입니다. 안으로 앎을 잃고 밖으로 군대가 곤하니 좋은 거사가 아닙니다." 환공이 말하였다. "좋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관자가 대답하였다. "청컨대 군대를 일으켜 남으로 송·정을 보존하고 명령하기를 '초를 치지 말라' 하십시오. 초왕과 만나기를 말하여 만나는 자리에 이르러 정의 성과 송의 물을 청하십시오. 초가 만약 허락하면 이는 우리가 문으로 명령하는 것이요, 초가 만약 허락하지 않으면 마침내 무로 명령하는 것입니다." 환공이 말하였다. "좋다." 이에 마침내 군대를 일으켜 남으로 송·정을 보존하고, 초왕과 소릉(召陵) 위에서 만나 만나는 자리에서 명령하였다. "곡식을 쌓아두지 말라, 제방을 굽히지 말라, 함부로 적자(適子)를 폐하지 말라, 첩을 두어 아내로 삼지 말라." 그리고 정의 성과 송의 물을 초에게 청하였다. 초 사람이 허락하지 않자 마침내 칠십 리를 물러나 머물렀다. 군인을 시켜 정의 남쪽 땅에 성을 쌓아 백대성(百代城)을 세우고 말하였다. "여기서 북으로 하수에 이르기까지 정이 스스로 성을 쌓는다." 그래도 초가 감히 헐지 못하였다. 동으로 송의 밭을 열어 두 내를 가로질러 물이 다시 동으로 흐르게 하니 초가 감히 막지 못하였다. 마침내 남으로 정벌하여 방성(方城)을 넘고 여수(汝水)를 건너 문산(汶山)을 바라보며, 남으로 초·월의 임금을 이르게 하고 서로 진(秦)을 치며 북으로 적(狄)을 치고, 동으로 남쪽에서 진공(晉公)을 보존하며 북으로 고죽(孤竹)을 치고 돌아와 연공(燕公)을 보존하였다. 병거의 회가 여섯이요 승거의 회가 셋이라, 아홉 번 제후를 모으고 자리를 돌이켜 이미 패자가 되니, 종과 경을 닦아 다시 음악을 행하였다. 관자가 말하였다. "이것이 신이 이른바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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