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 36 심술상(心術上)
마음이 몸에서 임금의 자리에 있음을 들어 도가(道家)적 무위(無爲)와 허정(虛靜)의 다스림을 논한 편이다. 앞부분은 경문(經)이요 뒷부분은 그 풀이(解)로, 도(道)·덕(德)·의(義)·예(禮)·법(法)의 차례와 인(因, 사물을 따름)·정인(靜因)의 술을 밝힌다.
핵심 구절 — 원문과 번역
心之在體,君之位也。九竅之有職,官之分也。
(마음이 몸에 있음은 임금의 자리요, 아홉 구멍에 직분이 있음은 관의 나뉨이다.)
虛無無形謂之道。化育萬物謂之德。
(비고 없고 형이 없음을 도라 하고, 만물을 화육함을 덕이라 한다.)
故禮出乎義,義出乎理,理因乎宜者也。
(그러므로 예는 의에서 나오고 의는 이치에서 나오며 이치는 마땅함을 인한다.)
번역
[경(經)] 마음이 몸에 있음은 임금의 자리요, 아홉 구멍(九竅)에 직분이 있음은 관(官)의 나뉨이다. 마음이 그 도에 처하면 아홉 구멍이 이치를 따른다. 욕심이 가득 차면 눈이 색을 보지 못하고 귀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위가 그 도를 떠나면 아래가 그 일을 잃는다. 말을 대신하여 달리지 말고 그 힘을 다하게 하며, 새를 대신하여 날지 말고 그 날개를 다하게 하라. 사물에 앞서 움직이지 말고 그 법칙을 보라. 움직이면 자리를 잃고 고요하면 스스로 얻는다. 도는 멀지 않으나 다하기 어렵고, 사람과 나란히 처하되 얻기 어렵다. 그 욕심을 비우면 신(神)이 장차 들어와 머문다. 청소가 깨끗하지 못하면 신이 곧 머물지 않는다. 사람이 모두 지혜를 바라되 그 지혜로워지는 까닭을 구하지 않는다. 지혜로움이여, 지혜로움이여, 그것을 바다 밖에 던져도 스스로 빼앗김이 없으니, 구하는 자는 얻지 못하고 처하는 자가 [얻는다]. 바른 사람은 구함이 없으므로 능히 비고 없다. 비고 없고 형(形)이 없음을 도라 하고, 만물을 화육함을 덕(德)이라 하며, 군신·부자와 사람 사이의 일을 의(義)라 하고, 오르내리고 읍하고 사양하며 귀천에 등급이 있고 친소(親疏)의 체가 있음을 예(禮)라 하며, 사물을 가려 작은 것이라도 한 도로 함과 죽이고 금하고 처단함을 법(法)이라 한다. 큰 도는 편안케 할 수 있으나 말할 수 없다. 곧은 사람의 말은 의롭지 않으면 돌아보지 않으니, 입에서 나오지 않고 빛에 나타나지 않으면 사해의 사람이 또 누가 그 법칙을 알겠는가?
하늘을 허(虛)라 하고 땅을 정(靜)이라 하니 곧 [덕을] 자랑하지 않는다. 그 집을 깨끗이 하고 그 문을 열며, 사사로움을 버리고 말이 없으면 신명이 머무는 듯하다. 어지러이 그 어지러운 듯하나 고요히 하면 스스로 다스려진다. 강함이 두루 설 수 없고 지혜가 다 꾀할 수 없다. 사물에는 진실로 형(形)이 있고 형에는 진실로 이름이 있으니, 이름이 마땅함을 성인이라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말하지 않고 함이 없는 일을 안 뒤에 도의 벼리를 안다. 형을 달리하고 잡음을 달리하되 만물과 더불어 이치를 달리하지 않으므로 천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사람이 죽을 수 있음은 그 죽음을 미워하기 때문이요, 이롭지 못할 수 있음은 그 이로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좋아함에 끌리지 않고 미워함에 핍박되지 않는다. 편안하고 즐겁게 함이 없어 지혜와 옛것을 버린다. 그 응함은 베푼 바가 아니요 그 움직임은 취한 바가 아니다. 허물은 스스로 씀에 있고 죄는 변하여 바뀜에 있다. 이런 까닭으로 도가 있는 임금은 그 처함이 아는 것이 없는 듯하고 그 사물에 응함이 짝하는 듯하니, 고요히 인(因)하는 도(靜因之道)이다.
[해(解)] 마음이 몸에 있음은 임금의 자리요, 아홉 구멍에 직분이 있음은 관의 나뉨이다. 귀와 눈은 보고 듣는 관이다. 마음이 보고 듣는 일에 관여하지 않으면 관이 그 나뉨을 지킬 수 있다. 무릇 마음에 욕심이 있는 자는 사물이 지나가도 눈이 보지 못하고 소리가 이르러도 귀가 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위가 그 도를 떠나면 아래가 그 일을 잃는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심술(心術)이란 함이 없이 구멍을 제어하는 것이므로 임금이라 한다. 말을 대신하여 달리지 말고 새를 대신하여 날지 말라 함은, 능한 자의 능함을 빼앗지 않고 아래와 더불어 정성을 다투지 않음을 말한다. 사물에 앞서 움직이지 말라 함은, 흔들리는 자는 정해지지 않고 조급한 자는 고요하지 못하니, 움직임으로 볼 수 없음을 말한다. 자리(位)란 그 서 있는 바를 이른다. 임금은 음(陰)에 서니 음이란 고요함이므로 움직이면 자리를 잃는다고 한다. 음이면 능히 양(陽)을 제어하고 고요하면 능히 움직임을 제어한다. 그러므로 고요하면 스스로 얻는다고 한다. 도는 천지 사이에 있어 그 큼은 밖이 없고 그 작음은 안이 없으므로, 멀지 않으나 다하기 어렵다고 한다. 빔(虛)이 사람에게 더불어 사이가 없으나 오직 성인이 빈 도를 얻으므로, 나란히 처하되 얻기 어렵다고 한다. 세상 사람이 직분으로 삼는 바는 정(精)이니, 욕심을 버리면 펴지고 펴지면 고요하며, 고요하면 정밀하고 정밀하면 홀로 선다. 홀로 서면 밝고 밝으면 신묘하다. 신(神)이란 지극히 귀한 것이므로 객사를 청소하지 않으면 귀인이 머물지 않는다. 그러므로 깨끗하지 않으면 신이 처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이 모두 알기를 바라되 그 알게 되는 까닭을 구하지 않으니, 저것(아는 대상)이요 이것(아는 주체)이다. 그 아는 까닭은 이것이니, 이것을 닦지 않으면 어찌 저것을 알겠는가? 이것을 닦음은 비움만 한 것이 없다. 빔이란 간직함이 없음이므로, 지혜를 버리면 어찌 거느려 구하며 간직함이 없으면 어찌 베풀겠는가, 구함도 없고 베풂도 없으면 생각이 없고, 생각이 없으면 거듭 빔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하늘의 도는 비어 형이 없다. 비면 굽히지 않고 형이 없으면 자리할 바가 없으며, 자리할 바가 없으므로 만물에 두루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덕(德)이란 도가 머무는 집이니, 사물이 얻어 살아가고 앎이 얻어 도의 정밀함을 맡는다. 그러므로 덕이란 얻음이다. 얻음이란 그 그러한 바를 얻음을 이른다. 함이 없음을 도라 하고 머묾을 덕이라 하니, 그러므로 도와 덕은 사이가 없어 말하는 자가 구별하지 않는다. 사이의 이치란 그 머무는 바를 이른다. 의(義)란 각기 그 마땅함에 처함을 이른다. 예(禮)란 사람의 정(情)을 인하고 의의 이치를 좇아 절도와 꾸밈을 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란 이치 있음을 이른다. 이치란 분수를 밝혀 의의 뜻을 깨우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는 의에서 나오고 의는 이치에서 나오며 이치는 마땅함을 인한다. 법(法)이란 함께 나와 그러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므로, 죽이고 금하고 처단하여 하나로 한다. 그러므로 일은 법에서 살피고 법은 권세에서 나오며 권세는 도에서 나온다. 도란 움직여도 그 형을 보지 못하고 베풀어도 그 덕을 보지 못하되 만물이 모두 얻으나 그 끝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편안케 할 수 있으나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이하 경문의 자구를 풀이하는 해설이 이어진다.] 그 집을 깨끗이 한다 함에서 집(宮)이란 마음을 이르니, 마음은 지혜가 머무는 집이므로 집이라 하고, 깨끗이 함이란 좋아하고 미워함을 버림이다. 그 문(門)이란 귀와 눈을 이르니, 귀와 눈은 듣고 보는 것이다. "사물에는 진실로 형이 있고 형에는 진실로 이름이 있다" 함은 실질을 지나칠 수 없고 실질이 이름을 늘일 수 없음을 말한다. 형으로써 형을 헤아리고 형으로 이름에 힘쓰며 말을 살펴 이름을 바로잡으므로 성인이라 한다. 인(因)이란 자기를 버리고 사물로 법을 삼음이다. 감응한 뒤에 응하니 베푼 바가 아니요, 이치를 좇아 움직이니 취한 바가 아니다. 허물은 스스로 씀에 있고 죄는 변하여 바뀜에 있으니, 스스로 쓰면 비지 못하고 비지 못하면 사물과 어긋난다. 그러므로 도는 인함을 귀히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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