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 39 수지(水地)
땅(地)을 만물의 근원으로, 물(水)을 땅의 혈기(血氣)로 보아 물이 만물의 바탕임을 논한 자연철학 편이다. 물에 갖추어진 다섯 덕(仁·精·正·義·卑), 옥의 아홉 덕, 사람이 물에서 생겨나 오장·구규를 갖추는 과정, 나라마다 물의 성질이 백성의 성품을 결정한다는 수성결정론(水性決定論)을 편다.
핵심 구절 — 원문과 번역
地者,萬物之本原,諸生之根菀也。水者,地之血氣,如筋脉之通流者也。
(땅이란 만물의 근원이요 여러 산 것의 뿌리이며, 물이란 땅의 혈기이니 힘줄과 핏줄이 통해 흐름과 같다.)
人,水也。男女精氣合而水流形。
(사람은 물이다. 남녀의 정기가 합하여 물이 흘러 형을 이룬다.)
水一則人心正,水清則民心易。
(물이 한결같으면 사람의 마음이 바르고, 물이 맑으면 백성의 마음이 평이하다.)
번역
땅이란 만물의 근원이요 여러 산 것의 뿌리이니, 아름다움과 추함, 어짊과 어질지 못함, 어리석음과 빼어남이 생겨나는 바이다. 물이란 땅의 혈기이니 힘줄과 핏줄이 통해 흐름과 같다. 그러므로 물은 재료를 갖추었다고 한다. 어떻게 그러함을 아는가? 무릇 물은 부드럽고 약하며 맑아, 사람의 더러움을 잘 씻어주니 어짊(仁)이요, 보면 검으나 [속은] 희니 정밀함(精)이요, 헤아려도 평미레로 깎을 수 없어 가득 차면 그치니 바름(正)이요, 흐르지 않음이 없되 평평함에 이르러 그치니 의로움(義)이요, 사람은 모두 높은 데로 나아가는데 홀로 낮은 데로 나아가니 낮춤(卑)이다. 낮춤이란 도의 집이요 왕자의 그릇이니, 물이 도읍 삼는 바이다. 평평함(準)이란 다섯 헤아림의 으뜸이요, 흼(素)이란 다섯 빛의 바탕이며, 담박함(淡)이란 다섯 맛의 가운데이다. 이 때문에 물이란 만물의 표준이요 여러 산 것의 담박함이며, 그르고 옳고 얻고 잃음의 바탕이다. 이 때문에 가득 차지 않음이 없고 거하지 않음이 없다. 천지에 모이고 만물에 간직되며, 금석에서 나고 여러 산 것에 모이므로 물의 신(水神)이라 한다. 초목에 모여 뿌리가 그 법도를 얻고 꽃이 그 수를 얻으며 열매가 그 양을 얻는다. 새와 짐승이 그것을 얻어 몸이 살찌고 크며 깃털이 풍성하고 무늬와 결이 밝게 드러난다. 만물이 그 기미를 다하고 그 떳떳함으로 돌아가지 않음이 없음은, 물의 안의 법도가 알맞기 때문이다.
무릇 옥(玉)이 귀한 까닭은 아홉 덕(九德)이 거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무릇 옥은 따뜻하고 윤택하니 어짊(仁)이요, 결을 이웃하니 지혜(知)요, 단단하되 오므라들지 않으니 의로움(義)이요, 모났으되 베지 않으니 행실(行)이요, 깨끗하되 더럽지 않으니 깨끗함(絜)이요, 부러지되 굽히지 않으니 용기(勇)요, 티가 다 보이니 정밀함(精)이요, 빛나고 광택이 나며 두루 통하되 서로 능멸하지 않으니 너그러움(容)이요, 두드리면 그 소리가 맑고 멀리 사무치되 순수하여 끊어지지 않으니 말(辭)이다. 이 때문에 임금이 귀히 여겨 간직해 보배로 삼고 쪼개어 부절과 상서로 삼으니, 아홉 덕이 거기서 나온다.
사람은 물이다. 남녀의 정기(精氣)가 합하여 물이 흘러 형(形)을 이룬다. 석 달이면 씹는다(咀). 씹음이란 무엇인가? 다섯 맛(五味)이다. 다섯 맛이란 무엇인가? 다섯 장기(五藏)이다. 신맛은 비장(脾)을 주관하고, 짠맛은 폐(肺)를 주관하며, 매운맛은 신장(腎)을 주관하고, 쓴맛은 간(肝)을 주관하며, 단맛은 심장(心)을 주관한다. 다섯 장기가 이미 갖추어진 뒤에 살이 생긴다. 비장은 격(隔)을 낳고, 폐는 뼈를 낳으며, 신장은 뇌를 낳고, 간은 가죽을 낳으며, 심장은 살을 낳는다. 다섯 살이 이미 갖추어진 뒤에 피어나 아홉 구멍(九竅)이 된다. 비장은 피어나 코가 되고, 간은 피어나 눈이 되며, 신장은 피어나 귀가 되고, 폐는 피어나 구멍이 된다. 다섯 달이면 이루어지고 열 달이면 태어나, 태어나서 눈이 보고 귀가 들으며 마음이 생각한다. 눈이 보는 까닭은 다만 산릉(山陵)의 봄만이 아니라 어렴풋함을 살피고, 귀가 듣는 까닭은 다만 우레와 북의 들음만이 아니라 맑고 깊음을 살피며, 마음이 생각하는 까닭은 다만 거친 것을 앎만이 아니라 미세함을 살피니, 그러므로 요체의 정밀함을 닦는다. 이 때문에 물이 옥에 모여 아홉 덕이 나오고, 엉겨 굳어 사람이 되어 아홉 구멍과 다섯 생각이 나오니, 이것이 곧 그 정(精)이다. 거칠고 흐리고 엉긴 것은 능히 존(存)하되 능히 망(亡)하지 못하는 것이다.
엎드려 숨어 능히 존하고 능히 망하는 것은 시초와 거북(蓍龜)과 용(龍)이다. 거북은 물에서 나 불에서 피어나니, 이에 만물의 으뜸이 되고 화복의 바름이 된다. 용은 물에서 나 다섯 빛을 입고 노니므로 신묘하다. 작아지고자 하면 누에처럼 변하고, 커지고자 하면 천하에 간직되며, 오르고자 하면 구름 기운을 능가하고, 내리고자 하면 깊은 샘에 들어간다. 변화에 날이 없고 오르내림에 때가 없으니 이를 신(神)이라 한다. 거북과 용은 엎드려 숨어 능히 존하고 능히 망하는 것이다.
혹 세상에 보이기도 하고 혹 세상에 보이지 않기도 하는 것은 와(蟡)와 경기(慶忌)이다. 그러므로 마른 못이 수백 년에 골짜기가 옮기지 않고 물이 끊어지지 않으면 경기가 난다. 경기란 그 모양이 사람 같고 그 길이가 네 치이다. 누런 옷을 입고 누런 갓을 쓰며 누런 일산을 이고 작은 말을 타며 빨리 달리기를 좋아한다. 그 이름으로 부르면 천 리 밖에 부려, 하루에 돌아와 보고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마른 못의 정(精)이다. 마른 내의 정은 와에서 난다. 와란 한 머리에 두 몸이며 그 형상이 뱀 같고 그 길이가 여덟 자이다. 그 이름으로 부르면 물고기와 자라를 취할 수 있다. 이것이 마른 냇물의 정이다.
이 때문에 물의 정으로 거칠고 흐리고 엉겨 능히 존하되 능히 망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과 옥을 낳고, 엎드려 숨어 능히 존하고 능히 망하는 것은 시초와 거북과 용이며, 혹 세상에 보이고 혹 보이지 않는 것은 와와 경기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모두 그것에 복종하나 관자는 그것을 본받고, 사람이 모두 그것을 가졌으나 관자는 그것을 쓴다.
그러므로 갖춘 것(具)이란 무엇인가? 물이 이것이다. 만물이 그것으로 나지 않음이 없으니, 오직 그 의탁하는 바를 아는 자만이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 갖춘 것이란 물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물이란 무엇인가? 만물의 근원이요 여러 산 것의 종실(宗室)이니, 아름다움과 추함, 어짊과 어질지 못함, 어리석음과 빼어남이 나는 바이다. 어떻게 그러함을 아는가? 무릇 제(齊)의 물은 빠르게 흐르고 돌아 흐르므로 그 백성이 탐욕스럽고 거칠며 용기를 좋아한다. 초(楚)의 물은 부드럽고 약하며 맑으므로 그 백성이 가볍고 과감하며 해친다. 월(越)의 물은 흐리고 무거우며 [스며들므로] 그 백성이 어리석고 병들며 더럽다. 진(秦)의 물은 더럽게 모이고 머물러 막히고 잡되므로 그 백성이 탐욕스럽고 사나우며 그물질하고 일 벌이기를 좋아한다. 진(晉)의 물은 메마르고 [도는데] 막히고 잡되므로 그 백성이 아첨하고 거짓을 감추며 교활하고 이익을 좋아한다. 연(燕)의 물은 모여 아래로 가고 약하며 가라앉아 막히고 잡되므로 그 백성이 어리석으나 곧음을 좋아하고 가벼우며 쉽게 죽는다. 송(宋)의 물은 가볍고 굳세며 맑으므로 그 백성이 한가롭고 평이하며 바름을 좋아한다. 이 때문에 성인이 세상을 교화함에 그 해법이 물에 있다. 그러므로 물이 한결같으면 사람의 마음이 바르고, 물이 맑으면 백성의 마음이 평이하다. 한결같으면 욕심이 더러워지지 않고, 백성의 마음이 평이하면 행함에 사악함이 없다. 이 때문에 성인이 세상을 다스림에 사람에게 일러주지 않고 집집이 설득하지 않으되, 그 요체가 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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