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록 04 존양(存養)

근사록(近思錄) · 송 주희·여조겸 · 번역·감수 허유

권4 「존양(存養)」은 모두 70조로,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름을 논한다. 궁격(窮格)이 비록 지극하여도 함양(涵養)이 부족하면 그 앎이 날로 어두워지니 어찌 힘써 행할 바탕이 되겠는가. 그러므로 존양의 공부가 실로 지(知)와 행(行)을 꿰뚫으니, 이 권이 치지(致知)와 극치(克治) 두 권 사이에 편차되어 있다.

번역

존양(存養) (주: 모두 70조이다.)

이 권은 존양을 논한다. 대개 궁격(窮格)이 비록 지극하여도 함양이 부족하면 그 앎이 장차 날로 어두워지니, 또한 무엇으로 힘써 행할 바탕을 삼겠는가? 그러므로 존양의 공이 실로 지와 행을 꿰뚫으니, 이 권의 편차가 그 둘 사이에 있다.

1. 어떤 이가 물었다. 성인을 배울 수 있습니까? 염계 선생이 말하였다. 그렇다. 요체가 있습니까? 답하였다. 있다. 청하여 묻습니다. 답하였다. 하나[一]가 요체이다. 하나란 욕심 없음[無欲]이다. 욕심이 없으면 고요하다. 비고 곧다. 고요하면 비고, 비면 밝으며, 밝으면 통한다. 움직임이 곧으면 공정하고, 공정하면 넓다. 밝고 통하며 공정하고 넓으면 거의 성인이로다!

2.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양(陽)이 처음 생길 때 심히 미약하니, 안정(安靜)한 뒤에야 자랄 수 있다. 그러므로 복괘(復卦)의 상에 '선왕은 동짓날 관문을 닫았다'고 하였다.

3. 움직임과 쉼을 절도 있게 함은 삶[生]을 기르는 것이요, 음식과 의복은 몸[形]을 기르는 것이며, 위의(威儀)와 행의(行義)는 덕(德)을 기르는 것이요, 자기를 미루어 사물에 미침은 남[人]을 기르는 것이다.

4. 말을 삼가 그 덕을 기르고, 음식을 절제하여 그 몸을 기른다. 일이 지극히 가까우면서 매인 바가 지극히 큰 것은 말과 음식보다 더한 것이 없다.

5. '우레가 백 리를 놀라게 하여도 숟가락과 울창주를 잃지 않는다.' 큰 진동과 두려움에 임하여 편안히 하여 스스로 잃지 않음은 오직 성경(誠敬)뿐이다. 이것이 진동에 처하는 도이다.

6. 사람이 그 그침에 편안하지 못하는 까닭은 욕심에 움직여서이다. 욕심이 앞에서 끌어 그치기를 구하나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간괘(艮卦)의 도는 마땅히 '그 등에 그침'이다. 보이는 것이 앞에 있고 등은 곧 등진 것이라 보이지 않는 바이다. 보이지 않는 바에 그치면 욕심이 그 마음을 어지럽힘이 없어 그침이 곧 편안하다. '그 몸을 얻지 못함'은 그 몸을 보지 못함이니, 나를 잊음을 이른다. 나가 없으면 그친다. 나가 없을 수 없으면 그칠 만한 도가 없다. '그 뜰을 다녀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함'에서, 뜰 사이는 지극히 가깝다. 등에 있으면 비록 지극히 가까워도 보지 못하니, 사물에 사귀지 않음을 이른다. 외물이 접하지 않고 안의 욕심이 싹트지 않아 이같이 그치면 곧 그침의 도를 얻는다. 그침에 허물이 없다.

7. 명도 선생이 말하였다. 만약 존양하지 못하면 다만 말일 뿐이다.

8. 성현의 천 마디 만 마디는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이미 놓은 마음을 단속하여 돌이켜 몸으로 들어오게 하려 함이니, 절로 위를 향해 찾아 올라갈 수 있어 아래로 배워 위로 통달함이다.

9. 이우(李籲)가 물었다. 매양 일을 만나면 곧 잡아 보존하는 뜻[操存之意]을 알 수 있으나, 일 없을 때 어떻게 존양을 익숙히 합니까? 답하였다. 옛사람은 귀를 음악에, 눈을 예에 두고, 좌우의 기거(起居)와 쟁반·잔·안석·지팡이에 명(銘)이 있고 경계가 있어, 움직임과 쉼에 모두 기르는 바가 있었다. 지금은 모두 이를 폐하고 오직 의리(義理)로 마음 기름만 있다. 다만 이 함양하는 뜻을 보존하여 오래 하면 절로 익는다. '경으로 안을 곧게 함[敬以直內]'이 함양하는 뜻이다.

10. 여여숙(呂與叔)이 일찍이 사려가 많아 몰아낼 수 없음을 근심한다고 하였다. 답하였다. 이는 바로 무너진 집에서 도적을 막는 것과 같으니, 동쪽 한 사람을 미처 쫓지 못했는데 서쪽에 또 한 사람이 이른다. 좌우전후로 쫓아낼 겨를이 없다. 대개 그 사면이 비어 도적이 본래 들어오기 쉽다. 주인을 정할 길이 없는 것이다. 또 빈 그릇이 물에 들어가면 물이 자연히 들어옴과 같다. 만약 한 그릇에 물을 채워 물 가운데 두면 물이 어찌 들어오겠는가? 대개 속에 주인이 있으면 차고, 차면 외환(外患)이 들어올 수 없어 자연히 일이 없다.

11. 형화숙(邢和叔)이 말하였다. 우리는 늘 모름지기 정력(精力)을 아껴 길러야 한다. 정력이 조금 부족하면 곧 게을러져 임하는 일이 모두 억지요 성의가 없다. 빈객(賓客)을 접하는 언어에도 오히려 볼 수 있거늘, 하물며 큰일에 임함에랴?

12. 명도 선생이 말하였다. 배우는 자가 이 마음을 온전히 체득하면, 배움이 비록 다하지 못하여도 사물이 옴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분수[分限]를 따라 응하면, 비록 맞지 않아도 멀지 않다.

13. '거처함에 공손하고, 일을 잡음에 경(敬)하며, 남과 더불음에 충(忠)하라.' 이는 위아래로 꿰뚫는 말이다. 성인은 본래 두 말이 없다.

14.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이 마음을 경(敬)으로 지켜야 하니, 급박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깊고 두텁게 배양(培養)하고 그 사이에 무젖은 뒤에 자득할 수 있다. 다만 급박하게 구하면 다만 사사로운 자기[私己]일 뿐이라 끝내 도에 통달하기 부족하다.

15. 명도 선생이 말하였다. '생각에 삿됨이 없음[思無邪]', '공경하지 않음이 없음[毋不敬]', 다만 이 두 구절을 따라 행하면 어찌 어긋남이 있겠는가? 어긋남이 있는 것은 모두 공경하지 않고 바르지 않음으로 말미암는다.

16. 지금 배우는 자가 경(敬)하면서도 보지 못하고 또 편안하지 못함은, 다만 마음이 생경(生)하기 때문이요, 또한 너무 경으로 일하기를 무겁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공손하되 예가 없으면 수고롭다'는 것이다. 공(恭)이란 사사로이 공함의 공이요, 예(禮)란 예 아닌 예니 곧 자연한 도리이다. 다만 공하기만 하고 자연한 도리를 하지 못하므로 자재(自在)하지 못한다. 모름지기 '공손하되 편안해야' 한다. 지금 용모를 반드시 단정히 하고 언어를 반드시 바르게 함은 홀로 그 몸을 선하게 하여 남이 어떻다 하게 하려 함이 아니다. 다만 천리(天理)가 마땅히 이러해서이다. 본래 사의(私意)가 없고 다만 이치를 따를 뿐이다.

17. 지금 의리에 뜻을 두고도 마음이 안락하지 못함은 어째서인가? 이는 바로 '조장(助長)' 하나를 더한 것이다. 비록 마음은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없어지나', 그러나 너무 심하게 잡으면 곧 '반드시 일삼되 미리 기대함'이다. 또한 모름지기 우선 맡겨 두어야 한다. 이같은 것은 다만 덕이 외로움이다. 덕은 외롭지 않아 반드시 이웃이 있다. 덕이 성한 뒤에 절로 막힘이 없어 좌우에서 그 근원을 만난다.

18. 경(敬)하여 잃음이 없음이 곧 '희로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음을 중(中)이라 함'이다. 경을 중이라 할 수는 없으나, 다만 경하여 잃음이 없음이 곧 중의 까닭이다.

19. 사마자미(司馬子微)가 일찍이 《좌망론(坐忘論)》을 지었으나, 이는 이른바 '앉아서 치달림[坐馳]'이다.

20. 백순(명도)이 옛날 장안(長安) 창고 안에 앉아 긴 행랑의 기둥을 보고 마음으로 세었는데 오히려 의심치 않았다. 다시 세니 맞지 않아, 부득이 사람에게 하나하나 소리 내어 세게 하니 곧 처음 센 것과 다름이 없었다. 곧 마음을 더 써서 붙잡을수록 더욱 정하지 못함을 알았다.

21. 사람 마음이 주인 노릇을 정하지 못함은 바로 하나의 물레방아[翻車]가 굴러 움직여 잠시도 멈춤이 없는 것과 같다. 감응하는 바가 만 갈래라, 만약 하나의 주인을 만들지 못하면 어찌하겠는가! 장천기(張天祺)가 옛날 일찍이 스스로 몇 해를 다짐하여, 침상에 오르면 곧 일을 생각하지 않으려 하였다. 일을 생각하지 않은 뒤에는 모름지기 억지로 그 마음을 제박(制縛)해야 했고, 또한 모름지기 하나의 형상에 의탁해야 했으니 모두 자연이 아니다. 군실(君實, 사마광)은 스스로 '내가 술(術)을 얻었다' 하며 다만 하나의 중(中) 자를 생각하였으나, 이 또한 중에 매여 묶임이다. 또 중이 무슨 형상이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가슴속에 늘 두 사람이 있는 듯하여, 선을 하려 하면 악이 그 사이에 끼는 듯하고, 불선을 하려 하면 또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는 듯하다. 본래 두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바로 교전(交戰)의 징험이다. 그 뜻을 지녀 기(氣)가 어지럽히지 못하게 함, 이것이 크게 징험할 만하다. 요컨대 성현은 반드시 심질(心疾)을 앓지 않는다.

22. 명도 선생이 말하였다. 나는 글씨 쓸 때 매우 경(敬)한다. 글씨를 좋게 하려 함이 아니라 다만 이것이 배움이다.

23.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성인은 일을 기억하려 하지 않으므로 늘 기억한다. 지금 사람은 일을 잊으니 일을 기억하려 하기 때문이다.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일 처리가 정밀하지 못함은 모두 기름이 완고(完固)하지 못함에서 나온다.

24. 명도 선생이 전주(澶州)에 있을 때 다리를 놓는데 긴 들보 하나가 모자라 일찍이 민간에 널리 구하였다. 뒤에 출입할 때 나무가 좋은 것을 보면 반드시 헤아리는 마음[計度之心]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배우는 자를 경계하여, 마음에 한 가지 일도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25.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도에 듦은 경(敬)만 한 것이 없다. 능히 치지(致知)하면서 경에 있지 않은 자는 없다. 지금 사람은 마음을 주장함이 정하지 못하여 마음 보기를 도적같이 하여 제어하지 못한다. 일이 마음을 얽매는 것이 아니라 곧 마음이 일을 얽매는 것이다. 마땅히 천하에 한 물건도 마땅히 적어야 할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하니, 미워해서는 안 된다.

26. 사람은 다만 하나의 천리(天理)가 있는데 도리어 보존하지 못한다. 다시 무슨 사람이 되겠는가?

27. 사람이 사려가 많아 스스로 편안하지 못함은 다만 그 마음의 주인이 정하지 못해서이다. 마음의 주인을 정하려면 오직 일에 그칠[止] 뿐이다. 임금이 되어 인(仁)에 그치는 따위이다. 순임금이 사흉(四凶)을 베듯, 사흉이 이미 악을 지었으매 순임금이 따라 베었으니 순임금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사람이 일에 그치지 못함은 다만 남의 일을 끌어와 사물로 하여금 각기 사물에 부치지 못함이다. 사물을 각기 사물에 부치면 곧 사물을 부림이요, 사물에게 부려지면 곧 사물에 부려짐이다. '다섯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다'고 하였으니, 모름지기 일에 그쳐야 한다.

28.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함은 다만 성(誠)이 지극하지 못함이다. 일에 싫증냄은 모두 성이 없는 곳이다.

29. 고요한 뒤에 만물이 자연히 모두 봄뜻[春意]이 있음을 본다.

30. 공자가 인(仁)을 말함에 다만 '문을 나서면 큰 손님을 뵙듯이 하고, 백성을 부리면 큰 제사를 받들듯이 하라'고만 하였다. 그 기상을 보면 모름지기 '마음이 넓고 몸이 펴지며' '행동거지가 예에 맞음'이 자연하다. 오직 신독(愼獨)이 곧 이를 지키는 법이다.

31. 성인이 '자기를 닦아 백성을 편안히 하고', '공손함을 돈독히 하여 천하가 평안함'은, 오직 위아래가 한결같이 공경에 하면 천지가 절로 자리하고 만물이 절로 길러져 기(氣)가 화하지 않음이 없다. 사령(四靈)이 어찌 이르지 않음이 있겠는가? 이것이 '믿음을 체득하고 순함에 통달하는[體信達順]' 도이다. 총명예지(聰明睿智)가 모두 이로부터 나온다. 이로써 하늘을 섬기고 상제(上帝)께 흠향케 한다.

32. 존양이 익은 뒤에 태연히 행해 나가면 곧 나아감이 있다.

33. 방구석에 부끄럽지 않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몸이 펴진다.

34. 마음은 가슴속[腔子]에 있어야 한다. 다만 바깥에 조금 틈이 있으면 곧 달아난다.

35. 사람 마음은 늘 살아 있어야 하니, 그러면 두루 흘러 무궁하여 한 모퉁이에 막히지 않는다.

36. 명도 선생이 말하였다. '천지가 자리를 베풀매 역(易)이 그 가운데 행한다.' 다만 경(敬)일 뿐이다. 경하면 끊어짐이 없다.

37. '공경하지 않음이 없으면' '상제를 마주 대할' 수 있다.

38. 경(敬)이 온갖 삿됨을 이긴다.

39. '경으로 안을 곧게 하고 의로 밖을 방정히 함'이 인(仁)이다. 만약 경으로 안을 곧게 하려 하면 곧 곧지 않다. '반드시 일삼되 미리 기대하지 않으면' 곧다.

40. 나의 하나[一]를 함양하라.

41. 공자가 냇가에서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다'고 하였다. 한(漢)나라 이래로 유자(儒者)가 모두 이 뜻을 알지 못하였다. 이는 성인의 마음이 '순수하고 또한 그치지 않음'을 봄이다. 순수하고 또한 그치지 않음이 천덕(天德)이다. 천덕이 있으면 왕도(王道)를 말할 수 있다. 그 요체는 다만 신독(愼獨)에 있다.

42. '몸을 두지 않으면 이로운 바가 없다.' 자기를 세우지 않으면 비록 좋은 일을 향해도 오히려 사물에 화(化)함이 되어 천하 만물로 자기를 흔들리지 않게 할 수 없다. 자기가 선 뒤에 절로 천하 만물을 처리할 수 있다.

43.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배우는 자가 마음의 사려가 어지러워 안정하지 못함을 근심함, 이는 천하의 공통된 병이다. 배우는 자는 다만 하나의 마음을 세워야 한다. 이 위에 자못 헤아릴 것이 있다.

44. 삿됨을 막으면[閑邪] 성(誠)이 절로 보존된다. 밖에서 하나의 성을 잡아다 보존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사람은 밖으로 불선(不善)에 골몰하면서 불선 가운데서 하나의 선을 찾아 보존하려 하니, 이같으면 어찌 선에 들 이치가 있겠는가? 다만 삿됨을 막으면 성이 절로 보존된다. 그러므로 맹자가 성선(性善)을 말함은 모두 안에서 나옴으로 말미암았다. 다만 성하면 곧 보존된다. 삿됨을 막음에 다시 무슨 공부를 더하겠는가? 다만 오직 용모를 움직이고 사려를 정돈하면 곧 자연히 경(敬)이 생긴다. 경은 다만 하나를 주장함[主一]이다. 하나를 주장하면 동으로도 가지 않고 서로도 가지 않으니, 이같으면 다만 중(中)이다. 이에도 가지 않고 저에도 가지 않으니, 이같으면 다만 안[內]이다. 이를 보존하면 자연히 천리(天理)가 밝다.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경으로 안을 곧게 함'으로 이 뜻을 함양해야 한다. 안을 곧게 함이 근본이다.

45. 삿됨을 막으면 본래 하나이다. 그러나 하나를 주장하면 삿됨 막음을 말할 것 없다. 어떤 이가 하나를 보기 어려워 공부할 수 없다 하니 어떠한가? 하나란 다른 것이 아니라 다만 정제(整齊)하고 엄숙(嚴肅)하면 마음이 곧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되면 절로 비벽(非僻)의 침범이 없다. 이 뜻을 다만 오래 함양하면 천리가 자연히 밝다.

46. 어떤 이가 '아직 감응하지 않을 때 앎이 어디에 깃드는가'를 말하였다. 답하였다.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없어지며 출입에 때가 없어 그 향방을 알지 못하거늘', 다시 어찌 깃드는 곳을 찾겠는가? 다만 잡음[操]이 있을 뿐이다. 잡는 도는 '경으로 안을 곧게 함'이다.

47. 경(敬)하면 절로 허정(虛靜)하다. 허정을 경이라 불러서는 안 된다.

48. 배우는 자의 먼저 할 일은 본래 마음과 뜻[心志]에 있다. 그러나 견문(見聞)과 사려를 물리쳐 버리려 한다 함은 곧 '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를 버림[絶聖棄智]'이다. 사려를 물리쳐 버려 그 어지러움을 근심하려 한다면 모름지기 좌선(坐禪)하여 입정(入定)해야 한다. 밝은 거울이 여기 있어 만물을 다 비추는 것은 거울의 떳떳함이라 비추지 못하게 하기 어렵듯이, 사람 마음이 만물에 사귀어 감응하지 않을 수 없으니 사려하지 못하게 하기 어렵다. 만약 이를 면하려면 오직 마음에 주인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주인으로 삼는가? 경(敬)일 뿐이다. 주인이 있으면 비고, 비면 삿됨이 들어올 수 없다. 주인이 없으면 차고, 차면 사물이 와서 빼앗는다. 무릇 사람 마음은 두 가지로 쓸 수 없다. 한 가지 일에 쓰면 다른 일이 다시 들어올 수 없는 것은 일이 그 주인이 됨이다. 일이 주인이 됨도 오히려 사려가 분요(紛擾)한 근심이 없거늘, 만약 경에 주인하면 또 어찌 이런 근심이 있겠는가? 이른바 경이란 하나를 주장함을 경이라 하고, 이른바 하나란 가는 데 없음을 하나라 한다. 우선 하나를 주장하는 뜻을 함영(涵泳)하라. 하나가 되지 않으면 둘이요 셋이다. 감히 속이지 않고 감히 게을리하지 않음, 오히려 '방구석에 부끄럽지 않음'에 이르기까지 모두 경의 일이다.

49. '엄위(嚴威)하고 엄각(儼恪)함'이 경(敬)의 도는 아니다. 다만 경을 이룸은 모름지기 이로부터 들어간다.

50. 순임금이 부지런히 선을 하였다. 만약 사물을 접하지 않으면 어떻게 선을 하겠는가? 다만 경에 주인하면 곧 선을 함이다. 이로써 보면 성인의 도는 다만 묵묵히 말 없음이 아니다.

51. 물었다. 사람이 한가히 거할 때 형체가 게으르되 마음은 게으르지 않으면 됩니까? 답하였다. 어찌 다리 뻗고 앉아 마음이 게으르지 않은 자가 있겠는가? 옛날 여여숙이 유월 중에 구지(緱氏)에 와서 한가히 거하기에, 내가 일찍이 엿보니 반드시 엄연(嚴然)히 단정히 앉아 있었으니 돈독(敦篤)하다 할 만하다. 마음과 뜻은 모름지기 공경해야 하나, 다만 구박(拘迫)하게 해서는 안 된다. 구박하면 오래 가기 어렵다.

52. 물었다. 사려가 비록 많아도 과연 바름에서 나오면 또한 해롭지 않습니까? 답하였다. 가령 종묘에서는 경(敬)을 주로 하고, 조정에서는 장중함[莊]을 주로 하며, 군려(軍旅)에서는 엄함[嚴]을 주로 함이 이것이다. 만약 발함이 때맞지 않아 어지러이 절도가 없으면 비록 바르더라도 삿됨이다.

53. 소계명(蘇季明)이 물었다. 희로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기 전에 중(中)을 구함이 됩니까? 답하였다. 안 된다. 이미 희로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기 전에 구하기를 생각하면, 또 도리어 생각이다. 이미 생각하면 곧 이발(已發)이다. 막 발하면 곧 화(和)라 하니 중이라 할 수 없다. 또 물었다. 여학사(呂學士)가 '마땅히 희로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기 전에 구해야 한다'고 하니 어떻습니까? 답하였다. 만약 희로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기 전에 존양한다 하면 되나, 만약 희로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기 전에 중을 구한다 하면 안 된다. 또 물었다. 배우는 자가 희로애락이 발할 때는 본래 마땅히 억지로 재억(裁抑)해야 하나, 아직 발하지 않기 전에는 어떻게 공부해야 합니까? 답하였다. 희로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기 전에 다시 어떻게 구하겠는가? 다만 평소에 함양함이 곧 그것이다. 함양이 오래면 곧 희로애락이 발함이 절로 절도에 맞는다. 물었다. 중(中)일 때 귀에 들림이 없고 눈에 보임이 없습니까? 답하였다. 비록 귀에 들림이 없고 눈에 보임이 없어도, 그러나 보고 듣는 이치가 있어야 비로소 옳다. 그대는 우선 고요할 때 어떠한가를 말하라. 답하였다. 사물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러나 절로 지각(知覺)하는 곳이 있습니다. 답하였다. 이미 지각이 있으면 도리어 동(動)이다. 어찌 고요하다 하겠는가? 사람들이 '복(復)에서 천지의 마음을 본다'를 모두 지극히 고요해야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다고 하나, 그르다. 복괘 아래 한 획이 곧 동이다. 어찌 고요하다 하겠는가? 어떤 이가 말하였다. 동(動) 위에서 정(靜)을 구함입니까? 답하였다. 본래 그러하다. 그러나 가장 어렵다. 석씨(釋氏)는 정(定)을 많이 말하나 성인은 곧 지(止)를 말한다. 가령 '임금이 되어 인에 그치고 신하가 되어 경에 그침' 따위가 이것이다. 《주역》의 간괘(艮卦)가 그침의 뜻을 말한다. '그 그침에 그침은 그 처소에 그침이다'라고 하였다. 사람이 흔히 그치지 못함은 대개 사람에게 만물이 다 갖추어져, 일을 만날 때 각기 그 마음의 중히 여기는 바를 따라 번갈아 나온다. 막 이 일을 중히 여김을 보면 곧 이 일이 나온다. 만약 능히 사물을 각기 사물에 부치면 절로 나오지 않는다. 어떤 이가 말하였다. 선생은 희로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기 전에 동(動) 자를 놓습니까, 정(靜) 자를 놓습니까? 답하였다. 정이라 하면 되나, 정 가운데 모름지기 사물이 있어야 비로소 옳다. 이 속이 곧 어려운 곳이다. 배우는 자는 우선 먼저 경(敬)을 이회함만 못하다. 능히 경하면 이를 안다. 어떤 이가 말하였다. 경은 어떻게 공부합니까? 답하였다. 하나를 주장함만 한 것이 없다. 계명이 말하였다. 제가 일찍이 사려가 정하지 못함을 근심하였습니다. 혹 한 일을 생각하여 끝내지 못했는데 다른 일이 삼[麻]처럼 또 생기니 어떻습니까? 답하였다. 안 된다. 이는 성실하지 못함의 근본이다. 모름지기 익혀야 한다. 익혀서 능히 전일(專一)할 때면 곧 좋다. 사려든 일을 응함이든 모두 하나를 구해야 한다.

54. 사람이 꿈꾸는 사이에도 자기가 배운 바의 깊고 얕음을 점칠 수 있다. 가령 꿈이 전도(顚倒)되면 곧 마음과 뜻이 정하지 못하고 잡아 보존함[操存]이 견고하지 못함이다.

55. 물었다. 사람 마음이 매인 일이 과연 선하여 밤꿈에 보아도 해롭지 않습니까? 답하였다. 비록 선한 일이어도 마음은 또한 움직임이다. 무릇 일이 조짐[朕兆]이 있어 꿈에 드는 것은 도리어 해롭지 않다. 이를 버리면 모두 망동(妄動)이다. 사람 마음은 모름지기 정해야 하니, 그로 하여금 생각할 때 비로소 생각하게 해야 옳다. 지금 사람은 모두 마음에 맡긴다. 물었다. 마음은 누가 부립니까? 답하였다. 마음으로 마음을 부리면 된다. 사람 마음이 자유로우면 곧 놓아 버린다.

56. 그 뜻을 지니고 그 기(氣)를 사납게 하지 말라. 안과 밖이 서로 기름이다.

57. 물었다. '말과 기운을 냄[出辭氣]'은 언어 위에서 공부함입니까? 답하였다. 모름지기 속을 길러 자연히 언어가 이치에 순하게 해야 한다. 만약 말을 삼가 망령되이 발하지 않음이라면 도리어 힘쓸 수 있다.

58. 선생(이천)이 장역에게 말하였다. 나는 받은 기(氣)가 매우 박(薄)하여 서른에 점차 성하고 마흔, 쉰 뒤에 완전해졌다. 지금 산 지 칠십이 년인데 그 근골(筋骨)을 비교하면 성년 때에 손상이 없다. 장역이 말하였다. 선생은 받은 기가 박함으로 인해 두텁게 양생(養生)하셨습니까? 부자(이천)가 묵묵히 있다가 말하였다. 나는 삶을 잊고 욕심을 좇음을 깊은 부끄러움으로 여긴다.

59. 대저 붙잡음[把捉]이 정하지 못함은 모두 불인(不仁)이다.

60.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치지(致知)는 기르는 데 있고, 앎을 기름은 욕심을 적게 함[寡欲] 두 자보다 더한 것이 없다.

61. 마음이 정한 자는 그 말이 무겁고 느리며, 정하지 못한 자는 그 말이 가볍고 빠르다.

62. 명도 선생이 말하였다. 사람에게 사백사 가지 병(病)이 있으나 모두 자기로 말미암지 않는다. 곧 마음은 모름지기 자기로 말미암게 해야 한다.

63. 사현도가 명도 선생을 부구(扶溝)에서 좇았다. 명도가 하루는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이 여기서 서로 좇음은 다만 나(顥)의 언어를 배움이다. 그러므로 그 배움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지 않는다. 어찌 행함만 하겠는가? 청하여 물었다. 답하였다. 우선 정좌(靜坐)하라. 이천은 매양 사람이 정좌함을 보면 곧 그 잘 배움을 감탄하였다.

64.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처음 배움의 요체는 마땅히 '석 달을 어기지 않음[三月不違]'과 '하루나 한 달에 한 번 이름[日月至焉]'의 안과 밖, 주인과 손님의 분별을 알아야 한다. 마음과 뜻으로 하여금 부지런히 순순히 하여 그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를 지나면 거의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65. 마음이 맑을 때는 적고 어지러울 때가 늘 많다. 그 맑을 때는 봄이 밝고 들음이 밝아 사체(四體)가 얽맴을 기다리지 않아도 자연히 공근(恭謹)하나, 그 어지러울 때는 이와 반대이다. 이같음은 어째서인가? 대개 마음 씀이 익숙하지 못하여 객려(客慮)가 많고 떳떳한 마음이 적어서이다. 습속(習俗)의 마음이 가시지 않고 실심(實心)이 완전하지 못함이다. 사람은 또 모름지기 굳세야[剛] 한다. 너무 부드러우면 서지 못함에 든다. 또 천성적으로 희로(喜怒)가 없는 사람이 있으면 또 모름지기 굳세야 한다. 굳세면 지킴을 정하여 돌이키지 않고 도에 나아감이 용감하다.

66. 농지거리는 일을 해칠 뿐 아니라 뜻도 기(氣)에 흘려진다. 농지거리하지 않음도 기를 지니는 한 단서이다.

67. 마음을 바르게 하는 처음에는 마땅히 자기 마음을 엄한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무릇 동작하는 바에 곧 두려워할 바를 안다. 이같이 한두 해 지켜 견고히 하면 자연히 마음이 바르게 된다.

68. 정(定)한 뒤에 비로소 광명(光明)이 있다. 만약 늘 옮겨 정하지 못하면 어찌 광명을 구하겠는가? 《주역》은 대저 간(艮)으로 그침[止]을 삼으니, 그쳐야 곧 광명이다. 그러므로 《대학》은 정(定)하여 능히 생각함[能慮]에 이른다. 사람 마음이 많으면 광명할 까닭이 없다.

69. '동정(動靜)이 그 때를 잃지 않으면 그 도가 광명하다.' 배우는 자는 반드시 그 동정에 때맞춰야 그 도가 곧 가려져 어둡지 않고 명백하다. 지금 사람이 배움을 좇은 지 오래도 나아가 자람을 보지 못함은 바로 동정을 알지 못해서이다.

70. 돈독(敦篤)하고 허정(虛靜)함이 인(仁)의 근본이다. 가벼이 망령되지 않으면 곧 돈후(敦厚)함이요, 매이고 막혀 어두움이 없으면 곧 허정함이다. 이는 단번에 깨닫기 어렵다. 진실로 알면 모름지기 도에 오래 하여 실제로 체득해야 비로소 그 맛을 안다. 무릇 인은 또한 익힘에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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