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록 05 극치(克治)
권5 「극기(克己)」(극치)는 모두 41조로, 힘써 행함[力行]을 논한다. 궁리(窮理)가 이미 밝고 함양이 이미 두터우면, 자기 몸을 행하는 사이에 더욱 마땅히 극치(克治)의 힘을 다해야 한다. 사사로운 욕심을 이겨 다스려 천리를 회복함이 이 권의 요지이다.
번역
극기(克己) (주: 모두 41조이다.)
이 권은 힘써 행함을 논한다. 대개 궁리가 이미 밝고 함양이 이미 두터우면, 자기 몸을 행하는 사이에 더욱 마땅히 그 극치의 힘을 다해야 한다.
1. 염계 선생이 말하였다. 군자는 부지런히 힘써 성(誠)에 쉬지 않으나, 그러나 반드시 분(忿)을 징계하고 욕(欲)을 막으며 선으로 옮기고 잘못을 고친 뒤에 이른다. 건(乾)의 쓰임은 그 선함이 이것이요, 손(損)·익(益)의 큼이 이보다 더함이 없으니, 성인의 뜻이 깊도다! 길흉(吉凶)과 회린(悔吝)이 움직임에서 생긴다. 아! 길함은 하나일 뿐이다. 움직임을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2. 염계 선생이 말하였다. 맹자가 '마음을 기름은 욕심을 적게 함보다 선함이 없다'고 하였다. 나는 마음 기름이 적게 함에 그치지 않고 보존함에 있다고 이른다. 대개 적게 하여 없음[無]에 이르니, 없으면 성(誠)이 서고 밝음이 통한다. 성이 섬은 현인이요, 밝음이 통함은 성인이다.
3.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안연(顔淵)이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조목을 물으니, 부자(공자)가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고 하였다. 네 가지는 몸의 쓰임이다. 속에서 말미암아 밖에 응한다. 밖에서 제어함은 그 속을 기르는 까닭이다. 안연이 이 말을 일삼아 성인에 나아간 까닭이니, 후세에 성인을 배우는 자는 마땅히 가슴에 받들어 잃지 말아야 한다. 이로 인해 잠(箴)을 지어 스스로 경계한다. 「시잠(視箴)」에 말하였다. 마음은 본래 비어 사물에 응하되 자취가 없다. 잡음에 요체가 있으니 봄[視]이 그 법칙이 된다. 가림이 앞에서 사귀면 그 속이 곧 옮겨진다. 밖에서 제어하여 그 안을 편안히 한다. 극기복례를 오래 하면 성(誠)해진다. 「청잠(聽箴)」에 말하였다. 사람에게 떳떳한 법[秉彝]이 있으니 천성(天性)에 근본한다. 앎이 사물에 유혹되어 화하면 마침내 그 바름을 잃는다. 우뚝한 저 선각(先覺)은 그칠 줄 알아 정함이 있다. 삿됨을 막고 성을 보존하여 예가 아니면 듣지 않는다. 「언잠(言箴)」에 말하였다. 사람 마음의 움직임은 말로 인해 펴진다. 발함에 조급함과 망령됨을 금하면 속이 곧 고요하고 전일(專一)하다. 하물며 이는 추기(樞機)라 전쟁을 일으키고 우호를 내는도다. 길흉과 영욕(榮辱)이 오직 그 부르는 바이다. 너무 쉬우면 허탄(虛誕)하고 너무 번거로우면 지리(支離)하다. 자기가 멋대로 하면 사물이 거스르고 나가는 말이 어그러지면 오는 것도 어긋난다. 법이 아니면 말하지 말아 가르치는 말을 공경하라. 「동잠(動箴)」에 말하였다. 철인(哲人)은 기미를 알아 생각에서 성실히 하고, 지사(志士)는 행실을 힘써 함[爲]에서 지킨다. 이치를 따르면 넉넉하고 욕심을 좇으면 위태롭다. 급한 때에도 능히 생각하여 두려워하며 스스로 지닌다. 익힘이 성(性)과 더불어 이루어지면 성현과 함께 돌아간다.
4. 복괘(復卦)의 초구(初九)에 '멀지 않아 회복하여 뉘우침에 이름이 없으니 크게 길하다'고 하였다. 전(傳)에 말하였다. 양(陽)은 군자의 도이므로 복(復)은 선으로 돌아옴의 뜻이 된다. 초(初)는 회복함의 가장 먼저인 것이라 멀지 않아 회복함이다. 잃은 뒤에 회복함이 있으니, 잃지 않으면 무슨 회복이 있겠는가? 오직 잃음이 멀지 않아 회복하면 뉘우침에 이르지 않아 크게 선하고 길하다. 안자(顔子)는 드러난 잘못이 없으니, 부자가 그를 '거의 뉘우침에 이름이 없다'고 일렀다. 잘못이 이미 드러나지 않아 고치면 무슨 뉘우침이 있겠는가? 이미 힘쓰지 않고 맞으며 하고자 하는 바가 법도를 넘지 않을 수 없으면 잘못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밝고 굳세므로 한 번 불선(不善)이 있으면 일찍이 알지 못한 적이 없고, 이미 알면 일찍이 곧 고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러므로 뉘우침에 이르지 않으니 곧 멀지 않아 회복함이다. 학문의 도는 다른 것이 없으니, 오직 그 불선을 알면 빨리 덮어 선을 좇을 뿐이다.
5. 진괘(晉卦)의 상구(上九)에 '그 뿔까지 나아감이니, 오직 고을을 침에 쓴다. 위태로우나 길하여 허물이 없으나 바름에는 인색하다'고 하였다. 전에 말하였다. 사람이 스스로를 다스림에 굳셈이 극하면 도를 지킴이 더욱 굳고, 나아감이 극하면 선으로 옮김이 더욱 빠르다. 상구 같은 자는 그로써 스스로를 다스리면 비록 엄려(嚴厲)에 상하나 길하고 또한 허물이 없다. 엄려는 편안하고 화한 도가 아니나 스스로를 다스림에는 공(功)이 있다. 비록 스스로를 다스려 공을 쓰나 중화(中和)의 덕이 아니므로, 바르고 곧은 도에는 인색하다.
6. 손(損)이란 지나침을 덜어 중(中)에 나아감이요, 들뜬 말단을 덜어 본실(本實)에 나아감이다. 천하의 해(害)는 말단이 이김에서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 높은 집과 조각한 담은 궁실(宮室)에 근본하고, 술 못과 고기 숲은 음식에 근본하며, 음학(淫酷)과 잔인(殘忍)은 형벌에 근본하고, 군사를 다하고 무력을 더럽힘은 정토(征討)에 근본한다. 무릇 인욕(人欲)의 지나친 것은 모두 봉양(奉養)에 근본한다. 그 흐름이 멀어지면 곧 해가 된다. 선왕(先王)이 그 근본을 절제함은 천리(天理)요, 후인이 그 말단에 흐름은 인욕이다. 손의 뜻은 인욕을 덜어 천리를 회복함일 뿐이다.
7. 쾌괘(夬卦)의 구오(九五)에 '비름과 다지가 결단하고 결단하니, 중도(中道)로 행하면 허물이 없다'고 하였다. 상(象)에 '중도로 행하면 허물이 없으나 중(中)이 아직 빛나지 못한다'고 하였다. 전에 말하였다. 무릇 사람의 마음이 바르고 뜻이 성실해야 곧 중정(中正)의 도를 다하여 충실(充實)하고 광휘(光輝)할 수 있다. 만약 마음에 친비(親比)하는 바가 있어, 의로 옳지 않음으로 결단하면 비록 밖으로 행하여 그 중정의 의를 잃지 않아 허물이 없을 수 있으나, 중도에는 광대(光大)함이 되지 못한다. 대개 사람 마음이 한 번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곧 도에서 떠난다.
8. 바야흐로 기뻐하되 그침이 절(節)의 뜻이다.
9. 절괘(節卦)의 구이(九二)는 바르지 않은 절제이다. 강중(剛中)하고 정(正)함으로 절제함은 분을 징계하고 욕을 막으며 지나침을 덜고 남음을 누르는 따위이다. 바르지 않은 절제는 인색하게 쓰임에 절제하고 나약하게 행함에 절제하는 따위이다.
10. 사람이 극(克)·벌(伐)·원(怨)·욕(欲)이 없음은 오직 인자(仁者)라야 능하다. 이것이 있되 능히 그 정(情)을 제어하여 행하지 않게 함, 이 또한 능하기 어려우나 인(仁)이라 할 수는 없다. 이는 원헌(原憲)의 물음이니, 부자가 그것이 어려움은 알되 그것이 인 됨은 알지 못한다고 답하였다. 이것이 성인이 열어 보임의 깊음이다.
11. 명도 선생이 말하였다. 의리(義理)와 객기(客氣)는 늘 서로 이긴다. 다만 소장(消長)의 분수가 많고 적음을 보아 군자와 소인의 구별로 삼는다. 의리가 얻는 바가 점차 많으면 자연히 객기가 사라짐이 점차 적어짐을 안다. 사라져 다한 자가 큰 현인이다.
12. 어떤 이가 '사람이 화유(和柔)하고 관완(寬緩)함을 알지 못함이 없으나 일에 임하면 도리어 사납고 거칢에 이른다'고 하였다. 답하였다. 다만 뜻[志]이 기(氣)를 이기지 못하여 기가 도리어 그 마음을 움직임이다.
13. 사람이 사려를 떨치지 못함은 다만 인색함[吝]이다. 인색하므로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없다.
14. 노여움을 다스림이 어렵고 두려움을 다스림도 어렵다. 극기(克己)는 노여움을 다스릴 수 있고, 이치를 밝힘[明理]은 두려움을 다스릴 수 있다.
15. 요부(堯夫, 소옹)가 '다른 산의 돌로 옥(玉)을 갈 수 있다'를 풀이하였다. 옥은 온윤(溫潤)한 물건이다. 만약 두 덩이 옥을 가져다 서로 갈면 반드시 갈아지지 않는다. 모름지기 저 거친 숫돌 같은 물건을 얻어야 비로소 갈아 낼 수 있다. 비유하면 군자가 소인과 거함에 소인에게 침릉(侵陵)당하면 곧 수성(修省)하고 두려워 피하며 마음을 움직이고 성품을 참아 더욱 미리 막는다. 이같이 하면 곧 도리가 나온다.
16. 눈이 뾰족한 물건을 두려워하면 이 일을 놓아 버리지 말고 곧 더불어 이겨 내려야 한다. 방 안에 모두 뾰족한 물건을 두고 모름지기 이치로 그것을 이겨야 한다. 뾰족한 것이 반드시 사람을 찌르지 않을 것이니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가?
17. 명도 선생이 말하였다. 위를 꾸짖고 아래를 꾸짖으면서 가운데서 스스로 자기를 용서함, 어찌 직분(職分)을 맡길 수 있겠는가?
18. '자기를 버리고 남을 좇음[舍己從人]'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자기란 내가 가진 바라, 비록 아프게 버려도 오히려 자기를 지키는 자가 굳고 남을 좇는 자가 가벼울까 두렵다.
19. 구덕(九德)이 가장 좋다.
20. '주리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며 겨울엔 갖옷, 여름엔 갈옷' 같은 데에도 만약 조금이라도 사사로이 인색한 마음을 두면 곧 하늘의 직분을 폐함이다.
21. 사냥을 스스로 '지금은 이런 좋아함이 없다'고 하였다. 주무숙(주돈이)이 말하였다. 어찌 말을 그리 쉽게 하는가? 다만 이 마음이 잠겨 숨어 아직 발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느 날 싹터 움직이면 다시 전과 같을 것이다. 뒤에 십이 년 만에 봄으로 인해 과연 아직 아님을 알았다.
22.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대저 사람이 몸이 있으면 곧 사사로운 이치[自私之理]가 있다. 그래서 도와 더불기 어렵다.
23. 자기를 죄책하고 몸을 꾸짖음은 없을 수 없으나, 그러나 또한 오래 마음속에 두어 뉘우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24. 욕구하는 바는 반드시 침닉(沈溺)할 것이 아니라, 다만 향하는 바가 있으면 곧 욕(欲)이다.
25. 명도 선생이 말하였다. 자로(子路)도 백세(百世)의 스승이다.
26. 사람의 언어가 긴급함은 기(氣)가 정하지 못함입니까? 답하였다. 이 또한 마땅히 익혀야 한다. 익혀서 언어가 자연히 느려질 때면 곧 기질이 변함이다. 배움이 기질을 변함에 이르러야 비로소 공(功)이 있다.
27. 물었다.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하지 않음'은 무엇입니까? 어록에 갑(甲)에게 노한 것을 을(乙)에게 옮기지 않음의 설이 있는데 옳습니까?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옳다. 물었다. 만약 이같으면 매우 쉬운데 어찌 안자를 기다린 뒤에 능합니까? 답하였다. 다만 거칠게 말했을 뿐이다. 여러분은 곧 쉽다 하나 이것이 가장 어렵다. 모름지기 어찌하여 노여움을 옮기지 않는가를 이회해야 한다. 순임금이 사흉을 벰 같으니, 노여움이 사흉에 있고 순임금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대개 그 사람에게 노할 만한 일이 있어 노하였을 뿐이니, 성인의 마음에 본래 노여움이 없다. 비유하면 밝은 거울이 좋은 물건이 오면 곧 좋음을 비추고 미운 물건이 오면 곧 미움을 비추니, 거울이 어찌 일찍이 좋아하고 미워함이 있겠는가? 세상 사람은 본래 방에서 노하여 저잣거리에서 낯빛이 드러나는 자가 있다. 또 한 사람에게 노함에 그 사람을 대하여 말할 때 노한 빛이 없을 수 있겠는가? 능히 한 사람에게 노하되 다른 사람에게 노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능히 이같이 참는 것이니, 이미 자못 의리를 안 것이다. 만약 성인이 사물로 인하되 일찍이 노여움이 없음, 이것이 가장 어렵다. 군자는 사물을 부리고 소인은 사물에 부려진다. 지금 기쁘고 노할 만한 일을 보고 스스로 한 푼 그를 따라 받든다면 이 또한 수고롭다. 성인의 마음은 멈춘 물[止水] 같다.
28. 사람의 봄[視]이 가장 먼저이다. 예가 아닌데 보면 이른바 눈을 뜨자마자 곧 그릇됨이다. 다음이 들음이요, 다음이 말이며, 다음이 움직임이니 선후의 차례가 있다. 사람이 능히 극기하면 마음이 넓고 몸이 펴진다.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굽어 부끄럽지 않으니 그 즐거움을 알 만하다. 쉼이 있으면 곧 굶주린다.
29. 성인은 자기를 꾸짖음이 — 감응[感]하는 곳이 많고 — 남을 꾸짖음이 — 응(應)하는 곳이 적다.
30. 사상(謝子, 사양좌)이 이천과 한 해 헤어졌다가 가서 뵈었다. 이천이 말하였다. 한 해 헤어졌는데 무슨 공부를 하였는가? 사상이 말하였다. 다만 하나의 '긍(矜, 자랑)' 자를 제거하였습니다. 말하였다. 무슨 까닭인가? 답하였다. 자세히 점검해 보니 병통이 모두 여기 있었습니다. 만약 이 죄과를 굴복시키면 비로소 다할 곳을 향함이 있겠습니다. 이천이 고개를 끄덕이고, 이로 인해 자리에 있는 동지(同志)들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의 학문은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는[切問近思]' 자이다.
31. 사숙(思叔, 장역)이 종을 꾸짖으니, 이천이 말하였다. 어찌 '마음을 움직이고 성품을 참지[動心忍性]' 않는가. 사숙이 부끄러워하며 사죄하였다.
32. 어진 이를 보면 곧 같아지기를 생각하고, 함이 있는 자는 또한 이같이 한다. 어질지 못함을 보면 안으로 스스로 살피니, 대개 자기에게 있지 않음이 없다.
33.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맑고 한결같음[湛一]은 기(氣)의 근본이요, 빼앗아 취함[攻取]은 기의 욕(欲)이다. 입과 배가 음식에, 코와 입이 냄새와 맛에 함은 모두 빼앗아 취하는 성(性)이다. 덕을 아는 자는 만족함에 그칠 뿐이다. 기욕(嗜欲)으로 그 마음을 얽매지 않고, 작은 것으로 큰 것을 해치지 않으며, 말단으로 근본을 잃지 않을 뿐이다.
34. 가는 악(惡)도 반드시 제거하면 선(善)이 곧 성(性)을 이루고, 악을 살핌이 다하지 못하면 비록 선해도 반드시 거칠다.
35. 불인(不仁)을 미워하므로 불선(不善)을 일찍이 알지 못함이 없다. 한갓 인을 좋아하되 불인을 미워하지 않으면 익혀도 살피지 못하고 행해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갓 선함은 반드시 의(義)를 다하지 못하고, 한갓 옳음은 반드시 인(仁)을 다하지 못한다. 인을 좋아하고 불인을 미워한 뒤에 인의(仁義)의 도를 다한다.
36. 자기를 꾸짖는 자는 마땅히 천하 국가가 모두 그르다 할 이치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배움이 남을 탓하지 않음에 이르면 배움이 지극함이다.
37. 도에 마음을 잠겼다가 총총히 다른 생각에 끌려가는 자가 있으니, 이는 기(氣)이다. 옛 습관이 얽혀 능히 벗지 못하면 마침내 무익하니, 다만 옛 습관을 즐길 뿐이다. 옛사람이 벗을 얻으려 함은 거문고·비파·서책과 더불어 늘 마음을 여기에 두게 하려 함이다. 오직 성인만이 벗의 유익함이 많음을 안다. 그러므로 벗이 옴을 즐긴다.
38. 가벼움을 바로잡고 게으름을 경계하라[矯輕警惰].
39. 인(仁)을 이루기 어려움이 오래되었다. 사람마다 그 좋아하는 바를 잃음은 대개 사람마다 이욕(利欲)의 마음이 있어 배움과 바로 서로 등져 달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는 욕심을 적게 해야 한다.
40. 군자는 반드시 남의 말을 피하여 너무 부드럽고 너무 약하다 함을 면하려 할 것이 없다. 보는 것[瞻視]에 이르기까지 또한 절도가 있다. 봄에 위아래가 있으니, 봄이 높으면 기가 높고 봄이 낮으면 마음이 부드럽다. 그러므로 임금을 보는 자는 띠[紳帶]의 가운데를 떠나지 않는다. 배우는 자는 먼저 모름지기 그 객기(客氣)를 제거해야 한다. 그 사람됨이 굳센 행실이면 끝내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당당(堂堂)하구나 자장(子張)이여, 더불어 함께 인(仁)을 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대개 눈은 사람이 늘 쓰는 바요 또 마음이 늘 의탁한다. 봄의 위아래를 우선 시험하면, 자기의 공경과 오만함이 반드시 봄에 드러난다. 그래서 그 봄을 낮추려 함은 그 마음을 부드럽게 하려 함이다. 그 마음을 부드럽게 하면 말 들음이 공경스럽고 또 미덥다. 사람이 벗이 있음은 편안함[燕安]을 위함이 아니다. 그래서 그 인(仁)을 돕는다. 지금의 벗은 그 잘 아첨하는 자를 가려 서로 더불어 어깨를 치고 소매를 잡아 의기(意氣)가 합한다 하나, 한마디 말이 맞지 않으면 노기(怒氣)가 서로 더한다. 벗 사이는 서로 낮추기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벗 사이에 그 공경을 주장하는 자가 날로 서로 친하여 효험을 얻음이 가장 빠르다. 중니가 일찍이 '나는 그가 자리에 거함을 보고 선생과 나란히 다님을 보니, 유익함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빨리 이루려는 자이다'라고 하였다. 곧 배우는 자는 먼저 모름지기 온유(溫柔)해야 한다. 온유하면 배움에 나아갈 수 있다. 《시경》에 '온화하고 공손한 사람이여, 오직 덕의 터전이라'고 하였다. 대개 그 유익함이 많다.
41. 세상에 학문이 강론되지 않아 남녀가 어려서부터 곧 교만하고 게을러져 버리고, 자라서 더욱 흉한(兇狠)해진다. 다만 일찍이 자제(子弟)의 일을 하지 않아 그 어버이에게 이미 물아(物我)가 있어 굽혀 낮추려 하지 않으니, 병의 뿌리가 늘 있다. 또 거하는 바를 따라 자라 죽도록 다만 옛날과 같다. 자제가 되어서는 물 뿌리고 쓸며 응대함에 편안하지 못하고, 벗 사이에서는 벗에게 낮추지 못하며, 관장(官長)이 있으면 관장에게 낮추지 못하고, 재상(宰相)이 되어서는 천하의 어진 이에게 낮추지 못한다. 심하면 사의(私意)를 좇아 의리를 모두 잃음에 이른다. 다만 병의 뿌리가 가시지 않아, 비록 거하는 바와 접하는 바를 따라 자라더라도 그렇다. 사람은 모름지기 일마다 병을 없애야 곧 의리가 늘 이긴다.
이 고전이 말한 사주, 직접 확인해 보세요
근사록(近思錄)의 명리 원리는 더큼만세력의 분석 알고리즘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내 사주의 용신·격국·오행을 10초 만에 확인하세요.
더큼만세력에서 내 사주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