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록 06 가도(家道)

근사록(近思錄) · 송 주희·여조겸 · 번역·감수 허유

권6 「가도(家道)」는 모두 22조로, 집안을 가지런히 함[齊家]을 논한다. 극기(克己)의 공이 이미 지극하면 집안에 베풀어 집안을 가지런히 할 수 있다. 부자·형제·부부 사이의 윤리(倫理)와 은의(恩義), 효제(孝悌)와 제사·교육의 도가 주를 이룬다.

번역

가도(家道) (주: 모두 22조이다.)

이 권은 집안을 가지런히 함을 논한다. 대개 극기의 공이 이미 지극하면 집안에 베풀어 집안을 가지런히 할 수 있다.

1.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제자(弟子)의 직분은 힘에 여유가 있으면 글을 배움이다. 그 직분을 닦지 않고 배움은 자기를 위하는 배움이 아니다.

2. 맹자가 '어버이 섬김을 증자(曾子)같이 하면 된다'고 하였다. 일찍이 증자의 효(孝)를 남음이 있다 여기지 않았다. 대개 자식의 몸으로 능히 할 수 있는 바는 모두 마땅히 해야 할 바이다.

3. '어머니의 일을 주관함에 곧게 함이 옳지 않다.' 자식이 어머니에 대하여는 마땅히 부드럽고 공손함으로 보도(輔導)하여 의(義)에 맞게 해야 한다. 순종하지 않아 일을 그르치면 곧 자식의 죄이다. 종용(從容)히 따름이 어찌 도가 없겠는가? 만약 자기의 강양(剛陽)한 도를 펴 갑자기 거스르면 은혜를 상하여 해됨이 크다. 또한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자기를 굽혀 뜻을 낮추고 공손히 따라 받들어, 그 몸이 바르고 일이 다스려지게 함에 있을 뿐이다. 강양한 신하가 유약(柔弱)한 임금을 섬김도 의가 또한 서로 가깝다.

4. 고괘(蠱卦)의 구삼(九三)은 양(陽)으로 강(剛)에 처하고 중(中)이 아니니, 굳셈의 지나침이다. 그러므로 조금 뉘우침이 있다. 그러나 손체(巽體)에 있어 순함이 없지 않다. 순함은 어버이 섬김의 근본이다. 또 거함이 바름을 얻었으므로 큰 허물이 없다. 그러나 조금 뉘우침이 있으니, 이미 어버이를 잘 섬김이 아니다.

5. 윤리(倫理)를 바르게 하고 은의(恩義)를 돈독히 함이 가인(家人)의 도이다.

6. 사람이 집안에 처함은 골육(骨肉)·부자(父子) 사이라, 대저 정(情)으로 예(禮)를 이기고 은혜로 의(義)를 빼앗는다. 오직 굳세게 선 사람이라야 사사로운 사랑으로 그 바른 이치를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가인괘(家人卦)는 대요(大要)가 강(剛)으로 선함을 삼는다.

7. 가인괘 상구(上九)의 효사(爻辭)는 '집안을 다스림에 마땅히 위엄이 있어야 한다'고 이른다. 그리고 부자(공자)가 다시 경계하여 '마땅히 먼저 그 몸을 엄히 해야 한다'고 하였다. 위엄이 먼저 자기에게 행해지지 않으면 사람이 원망하여 복종하지 않는다.

8. 귀매괘(歸妹卦) 구이(九二)는 그 그윽하고 바름[幽貞]을 지켜 부부의 떳떳하고 바른 도를 잃지 않았다. 세상 사람은 친압(媟狎)을 떳떳함으로 여기므로 정정(貞靜)을 떳떳함을 변한 것으로 여긴다. 곧 항구한 도임을 알지 못한다.

9. 세상 사람은 흔히 사위 고르기를 삼가되 며느리 고르기를 소홀히 한다. 그 실은 사위는 보기 쉽고 며느리는 알기 어렵다. 매인 바가 매우 무거우니 어찌 소홀히 하겠는가?

10. 사람이 부모가 없으면 생일에 마땅히 갑절로 비통(悲痛)해야 한다. 다시 어찌 차마 술자리를 베풀고 음악을 벌여 즐거움으로 삼겠는가? 만약 부모가 다 계신 자라면 괜찮다.

11. 물었다. 행장(行狀)에 '성(性)을 다하고 명(命)에 이름은 반드시 효제(孝弟)에 근본한다'고 하였는데, 효제가 어떻게 성을 다하고 명에 이를 수 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답하였다. 후인이 곧 성명(性命)을 따로 한 가지 일로 말한다. 성명과 효제는 다만 한 줄기의 일이다. 효제 가운데서 곧 성을 다하고 명에 이를 수 있다. 물 뿌리고 쓸며 응대함과 성을 다하고 명에 이름도 한 줄기의 일이다. 본말(本末)이 없고 정조(精粗)가 없거늘, 도리어 후세 사람이 성명을 말하는 자가 따로 한 가지 고원(高遠)한 설을 짓는다. 그러므로 효제를 든 것은 사람에게 절근(切近)한 것으로 말함이다. 그러나 지금 효제하는 사람이 없지 않으되 능히 성을 다하고 명에 이르지 못함은, 말미암으면서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12. 물었다. 제오륜(第五倫)이 그 자식의 병과 형의 자식의 병을 봄이 같지 않아 스스로 사사롭다 하였는데 어떻습니까? 답하였다. 편히 잠자고 못 잠을 기다릴 것 없이, 다만 일어나지 않음과 열 번 일어남이 곧 사사로움이다. 부자(父子)의 사랑은 본래 공(公)이다. 막 조금 마음을 두면 곧 사사로움이다. 또 물었다. 자기 자식과 형의 자식을 봄에 차이가 있습니까? 답하였다. 성인이 법을 세워 '형제의 자식이 자식과 같다'고 하였으니, 이는 보기를 자식같이 하려 함이다. 또 물었다. 천성(天性)이 절로 경중(輕重)이 있으니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답하였다. 다만 지금 사람이 사심(私心)으로 보아서이다. 공자가 '부자의 도는 천성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다만 효(孝) 위에서 말함이라 부자가 천성이라 한 것이다. 만약 군신·형제·빈주(賓主)·붕우(朋友) 따위인들 어찌 천성이 아니겠는가? 다만 지금 사람이 작게 보아 그 근본 유래를 미루지 않을 뿐이다.

13. 물었다. 과부[孀婦]는 이치상 취해서는 안 될 듯한데 어떻습니까? 답하였다. 그렇다. 무릇 취함은 몸의 짝으로 삼음이다. 만약 절개를 잃은 자를 취하여 몸의 짝으로 삼으면 이는 이미 절개를 잃음이다. 또 물었다. 혹 외롭고 가난하여 의탁할 데 없는 과부가 있으면 다시 시집갈 수 있습니까? 답하였다. 다만 후세에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을까 두려워하므로 이런 설이 있다. 그러나 굶어 죽는 일은 지극히 작고 절개를 잃는 일은 지극히 크다.

14. 병이 들어 침상에 누웠는데 용렬한 의원에게 맡김은 자애롭지 못하고 효도하지 못함에 견준다. 어버이를 섬기는 자는 또한 의술(醫)을 알지 않을 수 없다.

15. 정자(程子)가 아버지를 장사 지낼 때 주공숙(周恭叔)에게 객(客)을 주관하게 하였다. 객이 술을 마시매 공숙이 선생에게 고하였다. 말하였다. 남을 악(惡)에 빠뜨리지 말라.

16. 젖 먹이는 종[乳婢]을 사는 것은 흔히 부득이함이다. 혹 스스로 젖 먹이지 못하면 반드시 남을 쓴다. 그러나 자기 자식을 먹이려 남의 자식을 죽임은 도가 아니다. 반드시 부득이하면 두 사람의 젖으로 세 아이를 먹이면 족히 다른 우려에 대비한다. 혹 유모가 병들어 죽으려 하면 곧 해가 되지 않고, 또 자기 자식을 위해 남의 자식을 죽이지 않으니, 다만 비용이 들 뿐이다. 만약 불행히 그 자식을 그르치게 하면 해됨이 무엇이 더 크겠는가?

17. 선공(先公) 태중(太中)은 휘(諱)가 향(珦)이요 자(字)가 백온(伯溫)이다. 전후로 다섯 번 자제를 음서(蔭敍)로 벼슬시킬 수 있었으나 여러 부형(父兄)의 자손에게 고루 나누었다. 외로운 딸을 시집보냄에 반드시 그 힘을 다하였다. 받은 봉록(俸祿)은 가난한 친척에게 나누어 도왔다. 백모(伯母) 유씨(劉氏)가 과부로 살매 공이 봉양함이 매우 지극하였다. 그 딸의 남편이 죽으매 공이 종형(從兄)의 딸을 맞아 데려와 그 자식을 자질(子姪)과 고르게 가르치고 길렀다. 이윽고 종형의 딸이 또 과부가 되매, 공이 종형의 슬픈 생각을 두려워하여 또 생질녀(甥姪女)를 데려와 시집보냈다. 그때 작은 벼슬에 봉록이 박하였으나, 자기를 이겨 의(義)를 행하니 사람들이 어렵게 여겼다. 공은 자애롭고 너그러우되 강단(剛斷)이 있었다. 평소에 어리고 천한 이와 처함에 오직 그 뜻을 상할까 두려워하였으나, 의리를 범함에 이르러서는 용서하지 않았다. 좌우에서 부리는 사람들의 굶주림과 배부름, 추움과 따뜻함을 살피지 않는 날이 없었다. 후씨(侯氏)에게 장가들었다. 후부인(侯夫人)은 시부모 섬김을 효(孝)와 삼감[謹]으로 일컬었고, 선공과 더불어 손님처럼 대하였다. 선공이 그 내조(內助)에 힘입어 예경(禮敬)이 더욱 지극하였으나, 부인은 겸손하고 순하여 스스로 다스려, 비록 작은 일이라도 일찍이 제멋대로 하지 않고 반드시 여쭌 뒤에 행하였다. 인자하고 너그러우며 관후(寬厚)하여 여러 서출(庶出)을 어루만져 사랑하기를 자기 소생과 다름없이 하였다. 종숙(從叔)이 어려서 고아가 되매 부인이 보살피기를 늘 자기 자식과 고르게 하였다. 집안을 다스림에 법도가 있어, 엄하지 않아도 정연하였고, 노비(奴婢)를 매질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 종[臧獲]을 자녀같이 보았다. 여러 자식이 혹 꾸짖으면 반드시 경계하여 말하기를 '귀천(貴賤)이 비록 다르나 사람은 곧 하나이다. 네가 이렇게 컸을 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선공이 무릇 노여워하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너그럽게 풀어 주었으나, 오직 여러 아이가 잘못이 있으면 가리지 않았다. 늘 말하기를 '자식이 불초(不肖)한 까닭은 어미가 그 잘못을 가려 아비가 알지 못함에 말미암는다'고 하였다. 부인은 아들 여섯을 두었으나 남은 이는 둘뿐이니, 그 사랑이 지극하다 할 만하다. 그러나 가르치는 도에는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다. 겨우 몇 살에 다니다가 혹 넘어지면 집안사람이 달려가 부축하여 안고 놀라 울까 두려워하였으나, 부인은 일찍이 꾸짖지 않은 적이 없이 '네가 만약 천천히 했으면 어찌 넘어지기에 이르렀겠느냐?'고 하였다. 음식을 늘 곁에 두었는데, 일찍이 국에 간 맞추기를 구하면 곧 꾸짖어 그치게 하며 '어려서 욕심에 맞추기를 구하면 자라서 마땅히 어떠하겠느냐?'고 하였다. 비록 부리는 무리라도 악한 말로 꾸짖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정이(頤) 형제가 평생에 음식과 의복에 가리는 바가 없고, 악한 말로 남을 꾸짖지 못함은 천성이 그러함이 아니라 가르침이 그렇게 한 것이다. 남과 다툼에 비록 옳아도 두둔하지 않으며 '그가 능히 굽히지 못함을 근심하지, 그가 능히 펴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조금 자라매 늘 좋은 사우(師友)를 따라 노닐게 하였다. 비록 가난히 살아도 혹 객을 맞으려 하면 기뻐하며 갖추어 주었다. 부인은 일고여덟 살 때 옛 시(詩)에 '여자는 밤에 나가지 않고, 밤에 나가면 밝은 촛불을 잡는다'를 외고는, 이로부터 날이 저물면 다시 방을 나가지 않았다. 자라서 글을 좋아하되 사장(辭章)을 짓지 않았다. 세상 부녀가 문장이나 필찰(筆札)을 남에게 전하는 것을 보면 깊이 그르게 여겼다.

18. 횡거 선생이 일찍이 말하였다. 어버이를 섬기고 제사를 받듦을 어찌 남을 시켜 하게 할 수 있겠는가.

19. 순임금이 어버이를 섬김에 기뻐하지 않는 일이 있었음은, 아버지가 완악(頑惡)하고 어머니가 어리석어 인정에 가깝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중인(中人)의 성품이라면 그 좋아하고 미워함이 이치를 해침이 없으면 우선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 어버이의 친구로 좋아하는 자는 마땅히 힘을 다해 불러 모아 그 어버이를 기쁘게 해야 한다. 무릇 부모와 빈객(賓客)의 봉양에 반드시 힘을 다해 마련하되 또한 집의 있고 없음을 따지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봉양함은 또 모름지기 그 힘쓰고 수고로움을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 진실로 그 하기 쉽지 않음을 보게 하면 또한 편안하지 못할 것이다.

20. 《사간(斯干)》 시에 '형과 아우여, 서로 좋아하고 서로 본받지[相猶] 말라'고 하였으니, 형제가 마땅히 서로 좋아하되 서로 배우려 하지 말라는 말이다. '유(猶)'는 닮음[似]이다. 인정(人情)이 대저 병통이 베풀고 갚음을 보지 못하면 그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은혜가 끝까지 가지 못한다. 서로 본받으려 하지 말고 자기가 베풀 뿐이다.

21. 사람이 '주남(周南)·소남(召南)을 배우지 않으면 담장을 마주하고 선 것 같다.' 늘 이 말을 깊이 생각하니 참으로 옳다. 이로부터 행하지 않으면 매우 일에 막혀, 앞으로 미루어 나아가지 못한다. 대개 지극히 친하고 지극히 가까움이 이보다 심함이 없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이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22. 비복(婢僕)이 처음 이를 때는 본래 부지런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품으니, 만약 일러 깨우치는 데 이르러 더 삼가면 곧 삼감을 더하고, 게을리하면 그 본심(本心)을 버려 곧 익혀 성(性)을 이룬다. 그러므로 벼슬하는 자가 다스려진 조정에 들면 덕이 날로 나아가고, 어지러운 조정에 들면 덕이 날로 물러난다. 다만 위에 있는 자에게 배울 만함이 있는가 없는가를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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