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록 12 경계(警戒)

근사록(近思錄) · 송 주희·여조겸 · 번역·감수 허유

《근사록》 권12 「경계(警戒)」는 경계하고 삼가는 도를 논한 편이다. 모두 33개 조목으로, 허물 고치기를 꺼리지 말 것, 향락(豫樂)·교만(驕)·인색(吝)·기심(機心)·욕심(慾)을 경계할 것, 정·위(鄭衛)의 음란한 음악을 멀리할 것 등을 다룬다. 자기를 닦고 남을 다스림에 항상 경계하고 살피는 뜻을 두지 않으면 사욕이 쉬이 싹터 선이 날로 사라지고 악이 날로 쌓인다는 것이 취지이다.

(주: 이 권은 경계하고 삼가는 도를 논한다. 자기를 닦고 남을 다스림에 항상 경계하고 살피는 뜻을 두어야 하니, 그렇지 않으면 사욕이 쉬이 싹터 선이 날로 사라지고 악이 날로 쌓인다.)

번역

1. 염계 선생이 말하였다. 중유(仲由, 자로)는 허물 듣기를 기뻐하여 아름다운 이름이 다함이 없다. 지금 사람은 허물이 있으면 남이 바로잡아 주기를 기뻐하지 않는다. 마치 병을 감추고 의원을 꺼려 차라리 그 몸을 망칠지언정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아아!

2.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덕과 선이 날로 쌓이면 복록이 날로 이른다. 덕이 녹(祿)을 넘으면 비록 성하더라도 가득 참이 아니다. 예부터 융성하고도 도를 잃어 패망하지 않은 자가 없다.

3. 사람이 향락(豫樂)에 대해 마음이 기뻐하므로 머뭇거린다. 마침내 탐닉하여 그칠 수 없음에 이른다. 예(豫)괘 육이(六二)는 중정(中正)으로 스스로 지켜 그 굳음이 돌과 같으니, 그 떠남이 빨라 종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르고 길하다. 향락에 처하여 편안히 오래 있어서는 안 되니, 오래되면 빠진다. 육이는 기미를 보고 일어난 자라 이를 만하다. 대개 중정하므로 그 지킴이 굳고, 능히 일찍 분별하여 빨리 떠난 것이다.

4. 임금이 위망(危亡)을 부르는 도가 하나가 아니나, 향락(豫)이 많다.

5. 성인이 경계함은 반드시 바야흐로 성할 때에 한다. 바야흐로 성한데 경계할 줄 모르므로, 편안하고 부유함에 익숙하면 교만과 사치가 생기고, 펴고 방자함을 즐기면 기강이 무너지며, 화란(禍亂)을 잊으면 재앙의 싹이 튼다. 이로써 점점 젖어 들어 어지러움이 이르는 줄 알지 못한다.

6. 복(復)괘 육삼(六三)은 음의 조급함으로 움직임의 극에 처하여, 돌아옴(復)이 잦으면서도 굳게 지키지 못하는 자이다. 돌아옴은 편안하고 굳음을 귀히 여긴다. 자주 돌아오고 자주 잃음은 돌아옴에 편안하지 못한 것이다. 선으로 돌아왔다가 자주 잃음은 위태로운 도이다. 성인이 선으로 옮기는 도를 열어, 그 돌아옴을 허여하되 그 자주 잃음을 위태롭게 여겼다. 그러므로 "위태롭게 여기면 허물이 없다"고 하였다. 자주 잃는다 하여 그 돌아옴을 경계할 수는 없다. 자주 잃으면 위태로움이 되나, 자주 돌아옴이 무슨 허물이겠는가? 허물은 잃음에 있고 돌아옴에 있지 않다.

7. 어긋남(睽)이 극에 달하면 괴려(咈戾)하여 합하기 어렵고, 굳셈이 극에 달하면 조포(躁暴)하여 자상하지 못하며, 밝음이 극에 달하면 지나치게 살펴 의심이 많다. 규(睽)괘 상구는 육삼의 바른 응이 있어 실로 외롭지 않으나, 그 재질과 성품이 이와 같아 스스로 어긋나 외로워진다. 마치 사람이 비록 친당(親黨)이 있어도 흔히 스스로 시기하고 의심하여 망령되이 어긋남을 내어, 비록 골육과 친당 사이에 처해도 늘 고독한 것과 같다.

8. 해(解)괘 육삼에 "짊어지고 또 타니 도적이 이름을 부른다. 바르더라도 부끄럽다"고 하였다. 전에 이르기를, 소인이 성한 자리를 훔쳐, 비록 힘써 바른 일을 하더라도 기질이 비루하여 본래 윗자리에 있을 사람이 아니니 끝내 부끄러울 만하다. 만약 크게 바를 수 있으면 어떠한가? 답하기를, 크게 바름은 음유(陰柔)가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만약 할 수 있으면 곧 교화되어 군자가 된 것이다.

9. 익(益)괘 상구에 "더해 주지 않으니 혹 친다"고 하였다. 전에 이르기를, 이치(理)는 천하의 지극히 공변된 것이요, 이익(利)은 뭇사람이 함께 바라는 것이다. 진실로 그 마음을 공변되게 하여 그 바른 이치를 잃지 않으면 뭇사람과 더불어 이익을 함께하여 남을 침해함이 없으니, 사람도 또한 그에게 주고자 한다. 만약 이익을 좋아함에 절실하고 사사로움에 가려 스스로 더하기를 구하여 남을 덜면, 사람도 또한 그와 더불어 힘써 다툰다. 그러므로 즐겨 더해 주는 자가 없고 쳐서 빼앗는 자가 있게 된다.

10. 간(艮)괘 구삼에 "그 허리에 그침이니, 그 등뼈를 벌려 위태로움이 마음을 태운다"고 하였다. 전에 이르기를, 무릇 그침의 도는 마땅함을 얻음을 귀히 여긴다. 행함과 그침을 때에 맞게 하지 못하고 하나에 고정되어, 그 굳셈이 이와 같으면 세상에 처함이 괴려하여 만물과 어긋나 끊어지니 그 위태로움이 심하다. 사람이 한 모퉁이에 굳게 그쳐 온 세상이 더불어 마땅하지 못하면 간난하고 분하고 두려워 그 속을 태운다. 어찌 편안하고 너그러운 이치가 있겠는가? "위태로움이 마음을 태운다"는 편안하지 못한 형세가 그 속을 사르고 지짐을 이른다.

11. 대저 기쁨으로 움직이면 어찌 바름을 잃지 않음이 있겠는가?

12. 남녀에는 존비의 차서가 있고 부부에는 창수(倡隨)의 이치가 있으니, 이것이 떳떳한 이치이다. 만약 정을 좇아 욕심을 멋대로 하여 오직 기쁨대로 움직이면, 남자가 욕심에 끌려 그 굳셈을 잃고 부인이 기쁨에 빠져 그 순함을 잊으니, 흉하여 이로운 바가 없다.

13. 비록 순(舜)임금의 성스러움으로도 또한 교언영색(巧言令色)을 두려워하였다. 기쁨이 사람을 미혹시켜 쉬이 들어가니 두려워할 만함이 이와 같다.

14. 물을 다스림은 천하의 큰 임무이다. 그 지극히 공변된 마음으로 능히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라 천하의 의론을 다하지 못하면 그 공을 이룰 수 없다. 어찌 명(命)을 거스르고 족속을 무너뜨리는 자(곤鯀)가 할 수 있는 바이겠는가? 곤이 비록 구 년에 공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그 다스린 바는 진실로 다른 사람이 미칠 바가 아니었다. 오직 그 공에 차서가 있었으므로, 그 자임함이 더욱 강해지고 괴려하여 족속을 무너뜨림이 더욱 심해졌다. 공의(公議)가 막히고 인심이 떠났다. 이는 그 악이 더욱 드러나 공을 끝내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15. 군자는 "공경으로 안을 곧게 한다." 미생고(微生高)의 굽힌 바는 비록 작으나 해는 크다.

16. 사람이 욕심이 있으면 굳셈이 없고, 굳세면 욕심에 굽히지 않는다.

17. "사람의 허물은 각기 그 유(類)대로 한다." 군자는 늘 두터움에서 잘못하고 소인은 늘 야박함에서 잘못한다. 군자는 사랑함에 지나치고 소인은 모짊에 상한다.

18. 명도 선생이 말하였다. 부귀로 남에게 교만함은 진실로 좋지 못하거니와, 학문으로 남에게 교만함은 해 또한 적지 않다.

19. 사람이 일을 헤아림을 밝음이라 여기면, 곧 사기를 미리 짐작하고 믿지 못함을 억측하는 데로 빠르게 들어간다.

20. 사람이 외물(外物)로 몸을 받드는 것에는 일마다 좋게 하려 한다. 다만 자기의 한 몸과 마음은 도리어 좋게 하려 하지 않는다. 진실로 바깥 물건을 좋게 할 때, 도리어 자기 몸과 마음이 이미 먼저 좋지 못해진 줄 알지 못한다.

21. 사람이 천리(天理)에 어두운 것은 다만 기욕(嗜欲)이 그를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장자(莊子)가 그 "기욕이 깊은 자는 그 천기(天機)가 얕다"고 한 것, 이 말이 도리어 가장 옳다.

22.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기교한 일(機事)을 다룬 지 오래되면 기심(機心)이 반드시 생긴다. 대개 그 다룰 때 마음이 반드시 기뻐하니, 이미 기뻐하면 마치 종자를 심은 것과 같다.

23. 의심하는 병이 있는 자는 일이 이르기 전에 먼저 의심하는 단서가 마음에 있고, 일을 두루 챙기는 자는 먼저 일을 두루 챙기려는 단서가 마음에 있다. 모두 병이다.

24. 일의 크고 작음을 따지면 그 폐단이 한 자를 굽혀 한 길을 펴는(枉尺直尋) 병통이 된다.

25. 소인(小人)과 소장부(小丈夫)는 그를 작게 여겨서는 안 된다. 본래 악한 것은 아니다.

26. 비록 천하의 공변된 일이라도 만약 사사로운 뜻으로 하면 곧 사사로움이다.

27. 벼슬함이 사람의 뜻을 빼앗는다.

28. 교만함은 기운이 가득 참이요, 인색함은 기운이 모자람이다. 사람이 인색할 때는 재물에 있어서도 부족하고 일에 있어서도 부족하여, 무릇 온갖 일이 모두 부족하니 반드시 모자란 기색이 있다.

29. 아직 도를 알지 못한 자는 술 취한 사람과 같다. 바야흐로 취했을 때는 이르지 않는 데가 없으나, 깨어남에 이르러서는 부끄러워하지 않음이 없다. 사람이 아직 배움을 알지 못할 때는 스스로 보아 결함이 없다 여기나, 이미 배움을 알고 나서 전날 한 바를 돌이켜 생각하면 놀라고 또 두려워한다.

30. 형서(刑恕)가 이르기를, "하루에 세 번 점검합니다." 명도 선생이 이르기를, 가련하도다! 그 나머지 때에는 무슨 일을 헤아리는가? 대개 삼성(三省)의 설을 본받았으나 그르친 것이다. 일찍이 공부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또 흔히 사람 면전에 따라 같은 말을 하였다. 명도가 그를 책망하니 형서가 "할 말이 없습니다"하였다. 명도가 이르기를, 할 말이 없으면 곧 말하지 않을 수 없다.

31.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배우는 자가 예의(禮義)를 버리면 배불리 먹고 종일토록 하는 바가 없어 아래 백성과 일치한다. 일삼는 바가 옷과 밥, 잔치와 놀이의 즐거움을 넘지 않을 뿐이다.

32. 정·위(鄭衛)의 음악은 슬프고 애처로워 사람의 뜻이 미련을 두게 하고, 또 게으른 뜻을 내게 하여, 따라서 교만하고 음란한 마음을 부른다. 비록 진귀한 노리개와 기이한 재화라도 그 처음 사람을 감동시킴이 또한 이만큼 절실하지 못하다. 따라서 무한한 기호를 낸다. 그러므로 공자가 "반드시 그것을 추방하라"고 하였다. 또한 성인이 경험해 본 것이다. 다만 성인은 능히 물(物)에 옮겨지지 않을 따름이다.

33. 맹자가 경(經)으로 돌아옴(反經)을 말함을 특히 향원(鄉原)의 뒤에 둔 것은, 향원이 큰 것을 먼저 세우지 못하여 마음속에 애초에 주재가 없고, 오직 좌우를 살펴 인정을 따라 어기지 않으려 하여 한평생 이와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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