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록 14 관성현(觀聖賢)
《근사록》 권14 「관성현(觀聖賢)」은 성현이 서로 도통(道統)을 전한 계통을 논한 편이다. 모두 26개 조목으로, 요·순·우·탕·문·무·주공에서 공자, 그리고 안자·증자·자사·맹자로 이어진 도통을 밝히고, 순경·동중서·양웅·제갈량·왕통·한유 등 제자(諸子)의 인물됨을 평한 뒤, 송조(宋朝)의 주돈이·정호·정이·장재에 이르러 성학(聖學)이 다시 밝아지고 도통이 다시 이어졌음을 갖추어 기록한다. 마지막 권으로서, 학문의 모범이 될 성현의 기상(氣象)을 직접 관찰하는 의의를 담는다.
(주: 이 권은 성현이 서로 전한 도통을 논하며 제자(諸子)를 덧붙였다. 당우(唐虞)의 요·순·우·탕·문·무·주공으로부터 도통이 서로 전해져 공자에 이르렀다. 공자가 안자·증자에게 전하고, 증자가 자사에게 전하고, 자사가 맹자에게 전한 뒤로 전함이 없어졌다. 초(楚)에 순경(荀卿)이 있고, 한(漢)에 모장(毛萇)·동중서(董仲舒)·양웅(揚雄)·제갈량(諸葛亮)이 있고, 수(隋)에 왕통(王通)이 있고, 당(唐)에 한유(韓愈)가 있어, 비록 이 도의 통(統)을 전하지는 못했으나 그 말을 세우고 일을 세움이 세교(世教)에 보탬이 있으니 모두 마땅히 상고할 바이다. 송조(宋朝)에 이르러 인문(人文)이 다시 열리니, 주자(周子, 주돈이)가 창도하고 두 정자(程子)와 장자(張子)가 미루어 넓혀 성학이 다시 밝아지고 도통이 다시 이어졌으므로 갖추어 드러낸다.)
번역
1. 명도 선생이 말하였다. 요(堯)와 순(舜)은 다시 우열이 없다. 탕(湯)·무(武)에 이르러서는 곧 구별된다. 맹자가 본성대로 함(性之)과 돌이켜 함(反之)을 말한 것은 예부터 이렇게 말한 사람이 없었다. 다만 맹자가 분별해 내어, 곧 요·순은 나면서 안 자(生而知之)이고 탕·무는 배워서 능한 자(學而能之)임을 알 수 있다. 문왕(文王)의 덕은 요·순과 비슷하고 우(禹)의 덕은 탕·무와 비슷하다. 요컨대 모두 성인이다.
2. 중니(仲尼, 공자)는 원기(元氣)이다. 안자(顔子)는 봄의 생성이다. 맹자는 가을의 죽임이 아울러 다 드러난다. 중니는 포용하지 않음이 없고, 안자는 "어김이 없어 어리석은 듯함"이 후세에 배움이 되니 자연한 화기(和氣)가 있어 말하지 않고도 교화하는 자이며, 맹자는 그 재질을 드러내니 대개 또한 때가 그러했을 따름이다. 중니는 천지요, 안자는 화풍(和風)과 경운(慶雲)이며, 맹자는 태산암암(泰山巖巖)의 기상이다. 그 말을 보면 모두 알 수 있다. 중니는 자취가 없고, 안자는 자취가 조금 있으며, 맹자는 그 자취가 드러난다. 공자는 다 명쾌한 사람이요, 안자는 다 화락(豈弟)하며, 맹자는 다 웅변이다.
3. 증자(曾子)는 성인의 학문을 전하니 그 덕이 뒤에 헤아릴 수 없었다. 어찌 그가 성인에 이르지 못함을 알겠는가? "내가 바름을 얻고 죽는다"고 한 말과 같다. 우선 문자를 따지지 말고 다만 그 기상을 보면 지극히 좋다. 그가 본 곳이 컸기 때문이다. 후세 사람이 비록 좋은 말이 있어도, 다만 기상이 낮아 끝내 도에 비슷하지 못하다.
4. 경(經)을 전함은 어렵다. 성인의 뒤로 겨우 백 년에 전함이 이미 어긋났다. 성인의 학문이 만약 자사·맹자가 아니었으면 거의 끊겼을 것이다. 도가 어찌 일찍이 끊겼겠는가? 다만 사람이 말미암지 않았을 뿐이다. 도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유왕(幽王)·여왕(厲王)이 말미암지 않았을 뿐이다.
5. 순경(荀卿)은 재질이 높아 그 허물이 많고, 양웅(揚雄)은 재질이 짧아 그 허물이 적다.
6. 순자(荀子)는 지극히 치우치고 잡박하다. 다만 한 구절 성악(性惡)으로 큰 근본을 이미 잃었다. 양자(揚子)는 비록 허물이 적으나 이미 스스로 성(性)을 알지 못하니 다시 무슨 도를 말하겠는가?
7. 동중서(董仲舒)가 말하기를, "그 의(義)를 바르게 하되 그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그 도(道)를 밝히되 그 공(功)을 헤아리지 않는다." 이것이 동자(董子)가 제자(諸子)를 뛰어넘는 까닭이다.
8. 한(漢)나라 유자 중 모장(毛萇)·동중서 같은 이가 성현의 뜻을 가장 잘 얻었다. 그러나 도를 봄이 그다지 분명하지 못하였다. 이 아래로 양웅에 이르면 규모가 또 좁아진다.
9. 임희(林希)가 양웅을 일러 녹은(祿隱, 녹을 위해 숨음)이라 하였다. 양웅을 후세 사람이 다만 그가 책을 지은 것만 보고 곧 그를 옳다 하려 하니, 어찌 옳다 할 수 있겠는가?
10. 공명(孔明, 제갈량)은 왕자를 보좌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도는 다하지 못하였다. 왕자는 천지처럼 사사로운 마음이 없다. 한 가지 불의를 행하여 천하를 얻더라도 하지 않는다. 공명은 반드시 이룸이 있기를 구하여 유장(劉璋)을 취하였다. 성인은 차라리 이룸이 없을지언정 이런 일은 할 수 없다. 만약 유표(劉表)의 아들 종(琮)이 장차 조공(曹公)에게 병합되려 하니, 취하여 유씨(劉氏)를 일으킴은 가하다.
11. 제갈무후(諸葛武侯)는 유자(儒者)의 기상이 있다.
12. 공명은 예악(禮樂)에 거의 가깝다.
13. 문중자(文中子, 왕통)는 본래 은거한 군자이다. 세상 사람이 종종 그 의론을 얻어 견강부회하여 책을 이루었다. 그 사이에 지극한 격언(格言)이 있어, 순경·양웅의 도가 미치지 못한 곳이다.
14. 한유(韓愈) 또한 근세의 호걸스러운 선비이다. 〈원도(原道)〉 가운데 언어에 비록 병통이 있으나, 맹자 이후로 능히 그처럼 큰 견식으로 찾아 구한 자는 겨우 이 사람을 본다. "맹자는 순수하고 순수하다(醇乎醇)"고 단언하고, 또 "순자와 양자는 가렸으나 정밀하지 못하고 말하였으나 자상하지 못하다"고 한 데 이르러서는, 만약 그가 보아 안 것이 아니라면 어찌 천여 년 뒤에 곧 이처럼 분명히 단언할 수 있었겠는가?
15. 학문은 본래 덕을 닦는 것이다. 덕이 있은 뒤에 말이 있다. 퇴지(退之, 한유)는 도리어 거꾸로 배웠으니, 글을 배우다가 날로 아직 이르지 못한 바를 구하여 마침내 얻은 바가 있었다. "가(軻, 맹자)가 죽음에 그 전함을 얻지 못하였다"고 한 것 같은 이런 말은, 앞사람을 답습한 것도 아니요 또 헛되이 꾸며 낸 것도 아니다. 반드시 본 바가 있을 것이다. 만약 본 바가 없으면 전한다 한 것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16. 주무숙(周茂叔, 주돈이)은 가슴속이 시원하여 마치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았다. 그 정사를 함은 정밀하고 엄정하며 너그러워 도리를 다하기에 힘썼다.
17. 이천 선생이 명도 선생의 행장을 지어 말하였다. 선생은 자품(資稟)이 이미 특이하고 충양(充養)에 도가 있었다. 순수하기가 정금(精金) 같고 온윤하기가 좋은 옥(良玉) 같았다. 너그럽되 절제가 있고 화하되 흐르지 않았다. 충성과 정성은 금석을 꿰뚫고 효제는 신명에 통하였다. 그 빛을 보면, 사물을 대함이 봄볕의 따뜻함 같고, 그 말을 들으면, 사람에게 들어옴이 때맞춘 비의 적심 같았다. 가슴속이 환하게 트여 막힘없이 꿰뚫어 보였고, 그 쌓인 바를 헤아리면 넓기가 창해(滄溟)의 끝없음 같았다. 그 덕을 다하면 아름다운 말로도 형용하기에 부족하였다. 선생이 자기를 행함은 안으로 공경(敬)을 주로 하고 너그러움(恕)으로 행하였으며, 선을 보면 자기에게서 나온 듯하여 남에게 베풀지 않으려 하지 않았다. 넓은 거처에 거하고 큰 도를 행하며, 말에는 실질이 있고 행동에는 떳떳함이 있었다. 선생이 학문을 함은, 열대여섯 살 때 여남(汝南)의 주무숙이 도를 논함을 듣고 마침내 과거 공부를 싫어하여 개연히 도를 구하는 뜻이 있었다. 그 요체를 알지 못하여 제가(諸家)에 범람하고 노장과 불교에 드나든 것이 거의 십 년이었다. 육경(六經)에 돌이켜 구한 뒤에 얻었다. 만물에 밝고 인륜에 살펴, 성(性)을 다하고 명(命)에 이름이 반드시 효제에 근본함을 알았고, 신(神)을 궁구하고 화(化)를 앎이 예악에 통함으로 말미암음을 알았다. 이단의 그럴듯한 그릇됨을 분별하고 백대(百代)의 밝지 못한 미혹을 열었다. 진·한 이후로 이 이치에 이른 자가 없었다. 맹자가 죽음에 성학(聖學)이 전해지지 못했다 하여, 이 글(斯文)을 흥기시킴을 자기의 임무로 삼았다. 그 말에 이르기를, "도가 밝지 못함은 이단이 해치기 때문이다. 옛날의 해는 가깝고 알기 쉬웠으나, 지금의 해는 깊고 분별하기 어렵다. 옛날에 사람을 미혹시킴은 그 미혹과 어두움을 탔으나, 지금 사람에게 들어옴은 그 높고 밝음으로 인한다. 스스로 신을 궁구하고 화를 안다 이르나 물(物)을 열고 일을 이루기에 부족하고, 말은 두루 통하지 않음이 없다 하나 실은 윤리에서 벗어난다. 깊음을 궁구하고 미세함을 다하나 요순의 도에 들 수 없다. 천하의 학문이 얕고 비루하며 고체(固滯)하지 않으면 반드시 여기에 든다. 도가 밝지 못한 이래로 사탄(邪誕)하고 요이(妖異)한 설이 다투어 일어나, 백성의 이목을 막고 천하를 더러움에 빠뜨린다. 비록 높은 재질과 밝은 지혜라도 견문에 얽매여 취생몽사(醉生夢死)하면서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이것이 모두 바른길의 잡초요 성문(聖門)의 막힘이니, 이를 물리친 뒤에야 도에 들 수 있다." 선생이 나아가 장차 이 사람들을 깨우치고 물러나 장차 책으로 밝히려 하였으나, 불행히 일찍 세상을 떠나 모두 미치지 못하였다. 그 정미함을 분석함이 세상에 조금 드러난 것은 배우는 자가 전한 바이다. 선생의 문하에 배우는 자가 많았다. 선생의 말은 평이하여 알기 쉬웠다. 어진 자나 어리석은 자나 모두 그 유익을 얻었다. 마치 무리가 강물을 마시매 각기 그 양을 채우는 것과 같았다. 선생이 사람을 가르침은, 앎에 이름(致知)으로부터 그칠 곳을 앎(知止)에 이르고, 뜻을 정성스럽게 함(誠意)으로부터 천하를 평정함(平天下)에 이르며, 물 뿌리고 비질하며 응대함으로부터 이치를 궁구하고 성을 다함(窮理盡性)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순서가 있었다. 세상의 배우는 자가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으로 달리며 낮은 데 처하면서 높은 데를 엿봄을 병으로 여겼으니, 가벼이 스스로 크게 여기다가 끝내 얻음이 없는 까닭이다. 선생이 사물을 대함은 분별하되 따지지 않고 감응하되 능히 통하였다. 사람을 가르치매 사람이 쉬이 따르고, 사람에게 노하매 사람이 원망하지 않았다. 어질거나 어리석거나 선하거나 악하거나 모두 그 마음을 얻었다. 교활하고 거짓된 자가 그 정성을 바치고 사납고 거만한 자가 그 공손함을 다하였다. 풍문을 들은 자가 진실로 복종하고 덕을 본 자가 마음으로 취하였다. 비록 소인이 지향이 다름으로써 이해를 돌아보아 때로 배척함을 보였으나, 물러나 그 사사로움을 살피면 선생을 군자로 여기지 않는 자가 없었다. 선생이 정사를 함은 악을 다스리되 너그러움으로 하고 번거로움에 처하되 여유로 하였다. 법령이 번밀(繁密)한 때를 당하여도 일찍이 뭇사람을 따라 문서를 응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구애됨을 병으로 여겼으나 선생은 처하기를 여유롭게 하였다. 뭇사람이 매우 어렵다 근심하는 것을 선생은 함이 거침없었다. 비록 창졸간을 당해도 성색(聲色)을 움직이지 않았다. 바야흐로 감사(監司)가 다투어 엄하고 급하게 하던 때에도, 그가 선생을 대함은 대개 모두 너그럽고 두터웠으며 시설(施設)할 즈음에 의지하는 바가 있었다. 선생이 만든 강조(綱條)와 법도는 사람이 본받아 할 만하였으나, 그 인도하매 따르고 움직이매 화하며, 사물을 구하지 않아도 사물이 응하고 믿음을 베풀지 않아도 백성이 믿음에 이르러서는 사람이 미칠 수 없었다.
18. 명도 선생이 말하였다. 주무숙은 창 앞의 풀을 베어 없애지 않았다. 까닭을 물으니 이르기를, "내 뜻과 한가지이기 때문이다."
19. 장자후(張子厚, 장재)는 황자(皇子)가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고, 굶주려 죽은 자를 보면 음식이 곧 맛이 없었다.
20. 백순(伯淳, 정호)이 일찍이 자후와 흥국사(興國寺)에서 종일 강론하고 말하기를, 옛날에 일찍이 어떤 사람이 이곳에서 이 일을 강론한 적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겠다 하였다.
21. 사현도(謝顯道)가 이르기를, 명도 선생은 앉음이 진흙으로 빚은 사람(泥塑人) 같으나, 사람을 대하면 온통 한 덩이 화기(和氣)였다.
22. 후사성(侯師聖)이 이르기를, "주공섬(朱公掞)이 명도를 여(汝)에서 뵙고 돌아와 사람들에게 이르되, '광정(光庭, 주공섬)이 봄바람 속에 한 달을 앉아 있었다'고 하였다." 유(游)·양(楊) 두 사람이 처음 이천을 뵐 때, 이천이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모시고 섰다. 이윽고 깨어나 돌아보며 이르기를, "그대들 아직 여기 있는가?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우선 쉬라." 문을 나서니 문밖의 눈이 한 자나 깊었다.
23. 유안례(劉安禮)가 이르기를, 명도 선생은 덕성(德性)이 충만하고 완전하였다. 순수하고 화한 기운이 얼굴과 등에 넘쳤다. 즐겁고 너그러우며 너그러이 용서함이 많아 종일 화열(怡悅)하였다. 입지(立之, 유안례)가 선생을 따른 지 삼십 년에 일찍이 그 성내고 사나운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24. 여여숙(呂與叔)이 명도 선생의 애사(哀辭)를 지어 이르기를, 선생은 특립(特立)한 재질을 지니고 대학(大學)의 요체를 알았다. 널리 배우고 굳게 기억하며 몸소 행하고 힘써 궁구하여, 인륜을 살피고 만물을 밝혀 그 그칠 곳을 다하였다. 환하게 마음이 풀려 도의 본체를 환히 보았다. 그 요약함에 이르러서는, 비록 사변(事變)의 감응이 한결같지 않아도 이 마음으로 응하여 다함이 없음을 알았고, 비록 천하의 이치가 지극히 많아도 내 몸에 돌이켜 스스로 족함을 알았다. 그 하나에 이르러서는, 이단이 아울러 서도 옮길 수 없고 성인이 다시 일어나도 더불어 바꾸지 않았다. 그 길러 이룸은, 화한 기운이 충만히 젖어 성용(聲容)에 나타났으나 우러러보면 높고 깊어 가벼이 할 수 없었다. 일을 만나 여유로이 하여 조용하고 급박하지 않았으나, 정성스러운 마음이 간절하고 측은하여 버려두지 않았다. 그 자임(自任)의 무거움은, 차라리 성인을 배우다 이르지 못할지언정 한 가지 선으로 이름을 이루려 하지 않았고, 차라리 한 사물이 은택을 입지 못함을 자기 병으로 여길지언정 한때의 이익을 자기 공으로 여기려 하지 않았다. 그 자신(自信)의 독실함은, 내 뜻이 행할 만하면 그 거취를 구차히 깨끗이 하지 않고, 내 의가 편안한 바이면 비록 작은 벼슬이라도 달가워하지 않는 바가 있었다.
25. 여여숙이 횡거 선생의 행장을 지어 이르기를, 강정(康定) 연간 군사를 쓸 때 선생의 나이 열여덟이었는데, 개연히 공명(功名)으로 자부하여 글을 올려 범문정공(范文正公, 범중엄)을 뵈었다. 공이 그가 큰 그릇임을 알아 성취시키고자 하여 책망하기를, "유자(儒者)는 절로 명교(名教)가 있거늘 어찌 군사를 일삼는가?"하고, 이로 인해 《중용(中庸)》을 읽기를 권하였다. 선생이 그 책을 읽고 비록 사랑하였으나 오히려 부족하다 여겼다. 이에 또 불교·노장의 책을 찾아 여러 해에 그 설을 다 궁구하였다. 얻을 바가 없음을 알고 돌이켜 육경(六經)에 구하였다. 가우(嘉佑) 초에 정백순·정숙을 경사(京師)에서 보고 함께 도학(道學)의 요체를 이야기하였다. 선생이 환하게 스스로 믿어 이르기를, "내 도가 절로 족하니 어찌 곁으로 구하랴?"하였다. 이에 이학(異學)을 다 버리니 순수하였다. 늦게 숭문관(崇文)에서 병을 핑계로 서쪽으로 돌아왔다. 횡거(橫渠)에서 종일 한 방에 위좌(危坐)하여, 좌우에 책을 두고 굽혀 읽고 우러러 생각하였다. 얻음이 있으면 기록하였다. 혹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 촛불을 가져다 썼다. 그 도를 뜻하고 정밀히 생각함이 일찍이 잠시도 그치지 않았고 또한 일찍이 잠시도 잊지 않았다. 배우는 자가 물으면, 흔히 예(禮)를 알아 성(性)을 이루고 기질을 변화시키는 도로써 일러주었다. 배움은 반드시 성인같이 된 뒤에야 그친다 하였다. 듣는 자가 마음이 움직여 나아감이 있지 않은 이가 없었다. 일찍이 문인에게 이르기를, "내 학문이 이미 마음에서 얻어지면 그 말을 닦고, 말을 명함에 어긋남이 없은 뒤에 일을 단정하며, 일을 단정함에 잘못이 없어야 내가 곧 거침없다. 의(義)를 정밀히 하여 신(神)에 드는 것은 미리 함(豫)일 따름이다." 선생은 기질이 강의(剛毅)하고 덕이 이루어져 모습이 엄정하였다. 그러나 사람과 거함이 오래되면 날로 친해졌다. 그 집안을 다스리고 사물을 대함은, 대요(大要) 자기를 바르게 하여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었다. 사람이 아직 믿지 않으면 몸을 돌이켜 스스로 다스리고 남에게 말하지 않았다. 비록 깨닫지 못함이 있어도 편안히 행하여 후회함이 없었다. 그러므로 아는 자나 모르는 자나 풍문을 듣고 두려워하였다. 그 의가 아니면 감히 털끝만큼도 미치지 못하게 하였다.
26.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두 정자(程子, 정호·정이)는 열네댓 살 때부터 곧 환하게 성인을 배우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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