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형 12 초품(初稟)
왕충(王充)의 《논형》 열두 번째 편으로, 사람이 부귀할 명은 처음 자연의 기운을 받음(初稟)에서 정해지며, 성품과 명을 함께 받아 먼저 성품을 받고 뒤에 명을 받는 것이 아님을 논한다. 문왕·무왕이 적작(赤雀)·백어(白魚)를 얻어 비로소 명을 받았다는 유자의 설을 비판하며, 명은 처음 날 때 받는 것이라고 본다.
번역
사람이 나서 성명(性命)이 마땅히 부귀할 자는 처음 자연의 기운을 받아 길러 자라매 부귀의 명이 효험으로 나타난다. 문왕(文王)이 붉은 참새(赤雀)를 얻고 무왕(武王)이 흰 물고기(白魚)·붉은 까마귀(赤烏)를 얻으매, 유자가 논하기를 참새는 문왕이 명을 받음이요 물고기·까마귀는 무왕이 명을 받음이라 하여, 문·무가 하늘에서 명을 받음에 하늘이 참새와 물고기·까마귀로 명을 주었다 하고, 하늘이 붉은 참새로 문왕에게 명했으나 문왕이 받지 않아 하늘이 다시 물고기·까마귀로 무왕에게 명했다 한다. 이같이 하면 본디 하늘에 명이 없는데 자기를 닦고 선을 행하여 선행이 하늘에 들려 하늘이 비로소 제왕의 명을 준 것이 된다. 그러므로 참새와 물고기·까마귀가 하늘이 왕 되게 한 명이라 한다. 실상으로 논하면 명이 아니다. 명은 처음 받아 나는 것을 이른다. 사람이 나서 성품을 받으면 명을 받으니, 성품과 명을 함께 받아 같은 때에 아울러 얻는 것이지, 먼저 성품을 받고 뒤에 명을 받는 것이 아니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직(稷)이 요를 섬겨 사마(司馬)가 되고 직관(稷官)에 있었으므로 후직(后稷)이 되었다. 증손 공류(公劉)가 빈(邠)에 살고 뒤에 옮겼다. 뒷 자손 고공단보(古公亶甫)에게 세 아들 태백(太伯)·중옹(仲雍)·계력(季歷)이 있고, 계력이 문왕 창(昌)을 낳았다. 창이 강보에 있을 때 성스러운 상서가 나타났다. 그러므로 고공이 "내 세대에 마땅히 흥할 자가 있으니 창에게 있구나" 했다. 이에 태백이 알고 오(吳)로 떠나 몸에 문신하고 머리를 깎아 왕계(王季)에게 양보했다. 문왕이 명을 받음은 이때를 이르니, 천명이 사람에게 근본함이라 태왕(太王) 고공이 일찍 본 것이다. 이도 오히려 늦으니, 문왕이 어미 몸 안에 있을 때 이미 명을 받았다. 왕자가 한번 명을 받으면 안으로 성품을 삼고 밖으로 몸을 삼는다. 몸이란 얼굴과 골법(骨法)이니 나면서 받는다.
(중략 — 백석(百石) 이상의 관리부터 왕후 이하 낭장·대부·원사, 자사·태수에 이르기까지, 녹질을 받는 관리는 부귀의 명을 받아 나면서 얼굴에 표징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허부(許負)·고포자경(姑布子卿)이 그 증험을 본다. 왕자의 존귀함, 높고 큼의 명도 나면서 몸에 존귀한 기이함이 있으니, 고공이 네 젖(四乳)의 괴이함을 본 것이다. 무릇 네 젖은 성인의 증거라 어미 몸 안에서 하늘의 성스러운 명을 받은 것이지, 어찌 자란 뒤 도덕을 닦아 네 젖이 비로소 나겠는가? 유온(劉媼)이 큰 못가에서 신과 만나는 꿈을 꾸고 고조를 낳음, 광무가 제양궁에서 밤에 방이 절로 밝음도 다 이때 이미 명을 받음이다. 부잣집 노인이 천금을 쌓음은 나면서 부유한 골이 있어 살림을 쌓은 것이요, 왕자는 천하의 노인이라 명이 몸 안에 정해짐이 새가 알 속에서 암수가 나뉨과 같다.)
혹 말한다. "왕자가 나면서 천명을 받고, 장차 왕 될 때 하늘이 다시 명함은, 마치 공경 이하가 조서로 봉배(封拜)되어야 비로소 즉위함과 같다. 붉은 참새와 물고기·까마귀는 상천(上天)이 봉배하는 명이다. 천도와 인사에 서로 명하여 부리는 뜻이 있다." (답: 자연무위가 하늘의 도다. 문왕을 붉은 참새로, 무왕을 흰 물고기로 명함은 작위가 있는 것이다. 관중과 포숙이 재물을 나눔에 관중이 많이 취해도 포숙이 주지 않고 관중이 구하지 않음은, 안으로 서로 아는 바 있어 저를 나처럼 보아 의심 없이 취함이라, 성인이 일어나 왕 됨이 관중이 재물 취함 같다 한다. 한 고조가 큰 뱀을 벨 때 누가 베게 했는가? 어찌 천도가 먼저 이르러야 감히 베겠는가! 용기가 떨쳐 일어남은 성품이 절로 그러한 것이다.) 큰 뱀을 베고 진(秦)을 베고 항우를 죽임이 한가지 실상이요, 주의 문·무가 은(殷)을 침도 한가지 뜻이다. 고조가 명을 받아 장수가 된 것이 아닌데, 홀로 문·무가 참새·물고기의 명을 받았다 함은 잘못이다.
따져 말한다. 《강왕지고(康王之誥)》에 "무릅써 상제께 들리니 상제가 기뻐하여 하늘이 이에 크게 문왕에게 명했다" 했으니, 만일 명이 없다면 사경(史經)이 어찌 하늘이 크게 문왕에게 명했다 하랴? 이른바 큰 명(大命)이란 하늘이 곧 문왕에게 명한 것이 아니라, 성인의 동작이 천명의 뜻이라 하늘과 합동하여 마치 하늘이 시킨 듯함이다. 《서(書)》가 바야흐로 강숙(康叔)을 격려하여 선을 행하게 하므로 문왕이 도를 행해 위로 하늘에 들리니 하늘이 크게 명했다 한 것이다. 《시(詩)》에 "이에 돌아보아 서쪽을 보니 이것이 내 헤아림이다" 함도 이와 같은 뜻이다. 하늘에 머리와 얼굴이 없으니 돌아봄이 어떠하랴? 사람에게 돌아봄이 있어 사람으로 하늘을 본떠 일을 쉽게 보이므로 돌아봄이라 한 것이다. 하늘이 크게 문왕에게 명함은 돌아봄의 뜻이지 실로 하늘의 명이 아니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무릇 대인(大人)은 천지와 그 덕을 합하고 일월과 그 밝음을 합하고 사시와 그 차례를 합하고 귀신과 그 길흉을 합하여, 하늘보다 먼저 해도 하늘이 어기지 않고 하늘보다 뒤에 해도 천시(天時)를 받든다. 만일 반드시 하늘에 명이 있어야 일을 좇는다면 어찌 하늘보다 먼저 하고 뒤에 하랴? 천명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마음으로 발하므로 하늘보다 먼저·뒤의 부지런함이 있는 것이다.
《논어》에 "크도다, 요의 임금 됨이여! 오직 하늘이 큰데 오직 요가 그것을 본받았다" 했다. 왕자가 하늘을 본받음은 하늘을 받드는 뜻을 어기지 않음이다. 자연의 성품을 미루어 하늘과 합동함, 이것이 이른바 크게 문왕에게 명함이니, 문왕의 뜻으로부터 문왕이 스스로 한 것이지, 하늘이 붉은 참새를 몰아 문왕에게 마땅히 왕 되라 알려야 비로소 감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문왕의 붉은 참새와 무왕의 흰 물고기는 하늘이 창성하게 도운 명이 아니다. 길한 사람이 일을 일으키면 이롭지 않음이 없다. 사람이 부르지 않아도 이르고 상서로운 물건이 부르지 않아도 오니, 어둑이 합하여 마치 시킨 듯하여, 문을 나서면 길함을 듣고 돌아보면 선함을 봄이 자연의 도다. 문왕이 마땅히 흥할 것에 붉은 참새가 마침 오고, 물고기가 뛰고 까마귀가 낢에 무왕이 우연히 봄이니, 하늘이 참새를 이르게 하고 흰 물고기를 오게 한 것이 아니라 길한 물건이 움직여 날매 성인이 만난 것이다. 흰 물고기가 왕의 배에 드니 왕양(王陽)이 "우연히 맞은 것이다" 했고, 광록대부 유곤(劉琨)이 앞서 홍농태수가 되매 범이 강을 건넜는데 광무황제가 "우연히 절로 그러함이지 누가 시킴이 아니다" 했다. 그러므로 왕양이 마침이라 하고 광무가 우연이라 함은 자연에 합한다 할 만하다.
원문 전문 보기 (한문)
人生性命當富貴者,初稟自然之氣,養育長大,富貴之命效矣。文王得赤雀,武王得白魚、赤烏。儒者論之,以為雀則文王受命;魚烏則武王受命;文、武受命於天,天用雀與魚烏命授之也;天用赤雀命文王,文王不受,天復用魚烏命武王也。若此者謂本無命於天,修己行善,善行聞天,天乃授以帝王之命也。故雀與魚烏,天使為王之命也。王所奉以行誅者也。如實論之,非命也。命,謂初所稟得而生也。人生受性,則受命矣。性命俱稟,同時并得,非先稟性,後乃受命也。何以明之?棄事堯為司馬,居稷官,故為后稷。曾孫公劉居邰,後徙居。後孫古公甫三子太伯、仲雍、季歷,季歷生文王昌。昌在襁褓之中,聖瑞見矣。故古公曰:「我世當有興者,其在昌乎!」於是太伯知之,乃辭之吳,文身斷髪,以讓王季。文王受命,謂此時也,天命在人本矣,太王古公見之早也。此猶為未,文王在母身之中已受命也。王者一受命,內以為性,外以為體。體者,面輔骨法,生而稟之。
吏秩百石以上,王侯以下,郎將大夫以至元士,外及刺史太守,居祿秩之吏,稟富貴之命,生而有表見於面。故許負、姑布子卿輒見其驗。仕者隨秩遷轉,遷轉之人或至公卿,命祿尊貴,位望高大。王者尊貴之率,高大之最也,生有高大之命,其時身有尊貴之奇,古公知之,見四乳之怪也。夫四乳,聖人証也。在母身中,稟天聖命,豈長大之後,修行道德,四乳乃生?以四乳論望羊,亦知為胎之時,已受之矣。劉媼息於大澤,夢與神遇,遂生高祖,此時已受命也。光武生於濟陽宮,夜半無火,內中光明。軍下卒蘇永謂公曹史充蘭曰:「此吉事也,毋多言。」此時已受命。獨謂文王、武王得赤雀、魚烏乃受命,非也。上天壹命,王者乃興,不復更命也。得富貴大命,自起王矣。何以驗之?富家之翁,資累千金。生有富骨,治生積貨,至於年老,成為富翁矣。夫王者,天下之翁也,稟命定於身中,猶鳥之別雄雌於卵殼之中也。卵殼孕而雌雄生,日月至而骨節強,強則雄自率將雌。雄非生長之後,或教使為雄,然後乃敢將雌,此氣性剛強自為之矣。夫王者,天下之雄也,其命當王。王命定於懷妊,猶富貴骨生,(有)鳥雄卵成也。非唯人鳥也,萬物皆然。草木生於實核,出土為栽蘗,稍生莖葉,成為長短巨細,皆有實核。王者,長巨之最也。朱草之莖如針,紫芝之栽如豆,成為瑞矣。王者稟氣而生,亦猶此也。
或曰:「王者生稟天命,及其將王,天復命之,猶公卿以下,詔書封拜,乃敢即位。赤雀魚烏,上天封拜之命也。天道人事,有相命使之義。自然無為,天之道也。命文以赤雀,武以白魚,是有為也。管仲與鮑叔分財取多,鮑叔不與,管仲不求。內有以相知,視彼猶我,取之不疑。
聖人起王,猶管之取財也。朋友彼我,無有授與之義;上天自然,有命使之驗。是則天道有為,朋友自然也。當漢祖斬大蛇之時,誰使斬者?豈有天道先至,而乃敢斬之哉!勇氣奮發,性自然也,夫斬大蛇,誅秦,殺項,同一實也。周之文、武命伐殷,亦一義也。高祖不受命使之將,獨謂文、武受雀魚之命,誤矣。」難曰:《康王之誥》曰:「冒,聞於上帝,帝休,天乃大命文王。」如無命,史經何為言天乃大命文王?
所謂大命者,非天乃命文王也,聖人動作,天命之意也,與天合同,若天使之矣。《書》方激勸康叔,勉使為善,故言文王行道,上聞於天,天乃大命之也。《詩》曰:「乃眷西顧,此惟予度。」與此同義。天無頭面,眷顧如何?人有顧睨,以人效天,事易見,故曰眷顧。天乃大命文王,眷顧之義,實天之命也。何以驗之?夫大人與天地合其德,與日月合其明,與四時合其序,與鬼神合其吉凶,先天而天之違,後天而奉天時。如必須天有命,乃以從事,安得先天而後天乎?以其不待天命,直以心發,故有先天後天之勤。言合天時,故有不違奉天之文。
《論語》曰:「大哉堯之為君,唯天為大,唯堯則之。」王者則天,不違奉天之義也。推自然之性,與天合同。是則所謂大命文王也,自文王意,文王自為,非天驅赤雀,使告文王,云當為王,乃敢起也。然則文王赤雀,及武王白魚,非天之命昌熾佑也。吉人舉事,無不利者。人徒不召而至,瑞物不招而來,黯然諧合,若或使之,出門聞(告)〔吉〕,顧睨見善,自然道也。文王當興,赤雀適來;魚躍烏飛,武王偶見:非天使雀至白魚來也,吉物動飛而聖遇也。白魚入於王舟,王陽曰:「偶適也。」光祿大夫劉琨前為弘農太守,虎渡何。光武皇帝曰:「偶適自然,非或使之也。」故夫王陽之言適,光武之曰偶,可謂合於自然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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