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형 16 서허(書虛)

논형(論衡) · 후한 왕충 · 번역·감수 허유

왕충(王充)의 《논형》 열여섯 번째 편으로, 세상이 죽백(竹帛)에 실린 글을 다 성현이 전한 진실로 믿는 폐단을 비판한다. 연릉계자(延陵季子)·안연(顏淵)·자서(子胥)·제환공(齊桓公)·기일족(夔一足) 등에 관한 전해 오는 글(傳書)의 허망함을 하나하나 따져, 실상이 아닌 윤색과 과장이 진실로 굳어짐을 논한다.

번역

세상이 헛되고 망령된 글을 믿어, 죽백(竹帛)에 실린 것은 다 성현이 전한 바라 그렇지 않은 일이 없다 하여 믿고 옳다 여겨 외고 읽는다. 참된 전(傳)과 헛된 글이 서로 어긋남을 보면 둘 다 짧은 글(短書)이라 믿어 쓸 수 없다 한다. 무릇 그윽한 실상도 알 수 있고 잠긴 정상도 정할 수 있거늘, 드러난 글의 시비는 보기 쉬운데 뭉뚱그려 함께 전하니 실한 일이 아니다. 정성을 오로지 하지 못하고 일에 생각이 없는 것이다.

무릇 세간에 전하는 제자(諸子)의 말이 흔히 기이함을 세우고 다름을 지어 눈 놀랄 논을 지어 세속 사람을 놀라게 하려 하니, 괴이한 글로 특이한 이름을 드러낸다. 전하는 글에 연릉계자(延陵季子)가 나가 놀다 길에 떨어진 금을 보았는데, 한여름 오월에 갖옷 입고 나무하던 자가 "저 땅의 금을 가져오라" 하니, 나무꾼이 낫을 던지고 손사래 치며 "어찌 그대는 처함이 높고 봄이 낮으며 모습이 장대하고 말이 비루한가! 내 한여름 오월에 갖옷 입고 나무하니 어찌 금 줍는 자이랴" 했고, 계자가 사과하고 이름을 물으니 떠나며 돌아보지 않았다 한다. 세상이 그렇다 여기나 거의 헛된 말이다. (계자가 오의 자리를 사양한 청렴한 사람이라 금을 탐할 까닭이 없고, 또 공자에 왔다는 안연이 천 리 밖 흰 말을 보고 머리 세고 이 빠져 죽었다는 일, 순·우가 순수(巡狩)하다 창오·회계에 묻혔다는 일, 자서(子胥)가 죽어 물을 몰아 파도를 일으켰다는 일, 공자 무덤에 사수(泗水)가 거꾸로 흘렀다는 일, 위공자가 비둘기를 위해 원수 갚았다는 일, 제환공이 고모·자매 일곱을 아내 삼았다는 일, 환공이 부인을 업고 제후를 조회했다는 일, 기(夔)가 외발이라는 일, 송 정공(丁公)이 우물 파 사람을 얻었다는 일 등을 차례로 들어 다 허망함을 논박한다.)

무릇 안연이 천 리 밖을 본다면 성인과 같으니 공자와 제자들이 어찌 꺼려 말하지 않았으랴? 무릇 사람 눈이 보는 것이 십 리를 넘지 못한다. 노(魯)에서 오(吳)가 천여 리라, 이루(離朱)에게 보게 해도 끝내 못 보거늘 하물며 안연이랴? (진 무왕이 솥을 들다 맥이 끊겨 죽음과 같이, 안연이 멀리 보아 죽었다 함은 이치에 맞지 않고, 안연은 정신을 학문에 써서 죽은 것이라 한다.)

(자서가 죽어 파도를 일으켰다는 데 대해) 무릇 자서가 죽어 부차(夫差)가 가죽 부대에 넣어 강에 던졌다 함은 실이나, 그 한이 물을 몰아 파도를 일으켰다 함은 헛되다. 굴원(屈原)이 한을 품고 상강(湘江)에 빠졌으되 상강이 파도치지 않았고, 신도적(申徒狄)이 강에 뛰어들었으되 강물이 파도치지 않았다. (물은 몰기 어렵고 사람은 따르기 쉬움, 강의 백 갈래 물이 사람의 혈맥 같아 조석으로 오감이 호흡 같음, 좁은 데서 파도가 일어남 등을 들어, 자서의 신이 알지 못함을 논한다.)

(공자 무덤에 사수가 거꾸로 흘렀다는 데 대해) 무릇 공자가 죽음이 오제·삼왕이 죽음과 같으니, 오제·삼왕에 도움이 없었거늘 공자의 죽음에만 홀로 하늘 보답이 있으랴? 사수가 앎이 없으니 공자를 위해 거꾸로 흘렀다 함은 하늘 신이 시킨 것이라 하나, 그렇다면 공자 생시에 하늘 신이 사람을 시켜 높이지 않았으랴? 대개 물이 우연히 절로 거꾸로 흐른 것이라 신괴(神怪)가 아니다.

(기 외발에 대해) 당우(唐虞) 때 기(夔)가 대부로 음악을 알아 소리를 슬프고 좋게 고르니, 당시 사람이 "음악 고르기는 기 하나면 족하다(夔一足)" 했는데, 세속이 전하여 "기는 외발이다" 했다. (송 정공이 우물 파 한 사람 품을 얻었다는 일이 "우물 속에서 사람을 얻었다"로 잘못 전함도 같은 부류라 한다.) 무릇 사람은 사람에게서 나지 흙에서 나지 않으니, 흙을 뚫고 우물을 팜에 사람을 얻을 리 없다. 이로 미루어 논하건대, 부인을 업었다는 말도 이 부류다. 부인을 업고 앉으면 부인이 등에 있다 하고, 부인이 등에 있음이 도가 아님을 알매 관중이 부인으로 등창을 다스렸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원문 전문 보기 (한문)

世信虛妄之書,以為載於竹帛上者,皆賢聖所傳,無不然之事,故信而是之,諷而讀之。睹真是之傳與虛妄之書相違,則并謂短書,不可信用。夫幽冥之實尚可知,沈隱之情尚可定,顯文露書,是非易見,籠總并傳非實事,用精不專,無思於事也。

夫世間傳書諸子之語,多欲立奇造異,作驚目之論,以駭世俗之人;為譎詭之書,以著殊異之名。傳書言:延陵季子出游,見路有遺金。當夏五月,有披裘而薪者曰:「取彼地金來!」薪者投鐮於地,目拂手而言曰:「何子居之高,視之下,儀貌之壯,語言之野也!吾當夏五月,披裘而薪,豈取金者哉?」季子謝之,請問姓字。薪者曰:「子皮相之士也,何足語姓名!」遂去不顧。世以為然,殆虛言也。夫季子恥吳之亂,吳欲共立以為主,終不肯受,去之延陵,終身不還,廉讓之行,終始若一。許由讓天下,不嫌貪封侯。伯夷委國飢死,不嫌貪刀鉤。廉讓之行,大可以況小,小難以況大。季子能讓吳位,何嫌貪地遺金?季子使於上國,道過徐。徐君好其寶劍,未之即予。還而徐君死,解劍帶冢樹而去。廉讓之心,恥負其前志也。季子不負死者,棄其寶劍,何嫌一叱生人取金於地?季子未去吳乎,公子也;已去吳乎,延陵君也。公子與君,出有前後,車有附從,不能空行於塗,明矣。既不恥取金,何難使左右,而煩披裘者?

世稱柳下惠之行,言其能以幽冥自修潔也。賢者同操,故千歲交志。置季子於冥昧之處,尚不取金,況以白日,前後備具,取金於路,非季子之操也。或時季子實見遺金,怜披裘薪者欲以益之;或時言取彼地金,欲以予薪者,不自取也。世俗傳言,則言季子取遺金也。

傳書或言顏淵與孔子俱上魯太山,孔子東南望吳(閶)〔昌〕門外有繫白馬,引顏淵指以示之曰:「若見吳昌門乎?」顏淵曰:「見之。」孔子曰:「門外何有?」曰「有如繫練之狀。」

孔子撫其目而正之,因與俱下。下而顏淵髪白齒落,遂以病死。蓋以精神不能若孔子,強力自極,精華竭盡,故早夭死。世俗聞之,皆以為然。如實論之,殆虛言也。案《論語》之文,不見此言。考《六經》之傳,亦無此語。夫顏淵能見千里之外,與聖人同,孔子諸子何諱不言?蓋人目之所見,不過十里。過此不見,非所明察,遠也。傳曰:「太山之高巍然,去之百里,不見𧌯螺,遠也。」案魯去吳,千有餘里,使離朱望之,終不能見,況使顏淵,何能審之?如才庶幾者,明目異於人,則世宜稱亞聖,不宜言離朱。人目之視也,物大者易察,小者難審。使顏淵處昌門之外,望太山之形,終不能見。況從太山之上,察白馬之色,色不能見,明矣。非顏淵不能見,孔子亦不能見也。何以驗之?耳目之用,均也。目不能見百里,則耳亦不能聞也。陸賈曰:「離婁之明,不能察帷薄之內;師曠之聰,不能聞百里之外。」昌門之與太山,非直帷薄之內、百里之外也。秦武王與孟說舉鼎不任,絕脈而死。舉鼎用力,力由筋脈,筋脈不堪,絕傷而死,道理宜也。今顏淵用目望遠,望遠目睛不任,宜盲眇,髪白齒落,非其致也。髪白齒落,用精於學,勤力不休,氣力竭盡,故至於死。

伯奇放流,首髪早白。《詩》云:「惟憂用老。」伯奇用憂,而顏淵用睛,暫望倉卒,安能致此?

儒書言:舜葬於蒼梧、禹葬於會稽者,巡狩年老,道死邊土。聖人以天下為家,不別遠近,不殊內外,故遂止葬。夫言舜、禹,實也;言其巡狩,虛也。舜之與堯,俱帝者也。共五千里之境,同四海之內。二帝之道,相因不殊。

《堯典》之篇,舜巡狩東至岱宗,南至霍山,西至太華,北至恆山。以為四岳者,四方之中,諸侯之來,并會岳下,幽深遠近,無不見者,聖人舉事求其宜適也。禹王如舜,事無所改,巡狩所至,以復如舜。舜至蒼梧,禹到會稽,非其實也。實舜、禹之時,鴻水未治,堯傳於舜,舜受為帝,與禹分部,行治鴻水。堯崩之後,舜老,亦以傳於禹。舜南治水,死於蒼梧;禹東治水,死於會嵇。賢聖家天下,故因葬焉。

吳君高說:「會稽本山名,夏禹巡守,會計於此山,因以名郡,故曰會稽。」夫言因山名郡可也,言禹巡狩會計於此山,虛也。巡狩本不至會稽,安得會計於此山?宜聽君高之說,誠會稽為會計,禹到南方,何所會計?如禹始東死於會稽,舜亦巡狩至於蒼梧,安所會計?百王治定則出巡,巡則輒會計,是則四方之山皆會計也。百王太平,升封太山。太山之上,封可見者七十有二,紛綸湮滅者,不可勝數。如審帝王巡狩輒會計,會計之地如太山封者,四方宜多。夫郡國成名,猶萬物之名,不可說也。獨為會稽立歟?周時舊名吳越也,為吳越立名,從何往哉?六國立名,狀當如何?天下郡國且百餘,縣邑出萬,鄉亭聚里皆有號名,賢聖之才莫能說。君高能說會稽,不能辨定方名。會計之說,未可從也。巡狩考正法度,禹時,吳為裸國,斷髪文身,考之無用,會計如何?

傳書言:舜葬於蒼梧,象為之耕;禹葬會稽,烏為之田。蓋以聖德所致,天使鳥獸報佑之也。

世莫不然。考實之,殆虛言也。夫舜、禹之德不能過堯,堯葬於冀州,或言葬於崇山,冀州鳥獸不耕,而鳥獸獨為舜、禹耕,何天恩之偏駁也?或曰:「舜、禹,治水,不得宁處,故舜死於蒼梧,禹死於會稽。勤苦有功,故天報之;遠離中國,故天痛之。」夫天報舜、禹,使鳥田象耕,何益舜、禹?天欲報舜、禹,宜使蒼梧、會稽常祭祀之。

使鳥獸田耕,不能使人祭。祭加舜、禹之墓,田施人民之家,天之報佑聖人,何其拙也,且無益哉!由此言之,鳥田象耕,報佑舜、禹,非其實也。實者,蒼梧多象之地,會稽眾鳥所居。《禹貢》曰:「彭蠡既瀦,陽鳥攸居。」天地之情,鳥獸之行也。象自蹈土,鳥自食蘋。土蹶草盡,若耕田狀,壤靡泥易,人隨種之,世俗則謂為舜、禹田。海陵麋田,若象耕狀,何嘗帝王葬海陵者邪?

傳書言:吳王夫差殺伍子胥,煮之於鑊,乃以鴟夷橐投之於江。子胥恚恨,驅水為濤,以溺殺人。今時會稽、丹徒大江、錢塘浙江,皆立子胥之廟。蓋欲慰其恨心,止其猛濤也。夫言吳王殺子胥投之於江,實也;言其恨恚驅水為濤者,虛也。

屈原懷恨,自投湘江,湘江不為濤;申徒狄蹈河而死,河水不為濤。世人必曰屈原、申徒狄不能勇猛,力怒不如子胥。夫衛菹子路而漢烹彭越,子胥勇猛不過子路、彭越。然二士不能發怒於鼎鑊之中,以烹湯菹汁?〔〕旁人。

子胥亦自先入鑊,〔後〕乃入江;在鑊中之時,其神安居?豈怯於鑊湯,勇於江水哉!何其怒氣前後不相副也?且投於江中,何江也?有丹徒大江,有錢唐浙江,有吳通陵江。或言投於丹徒大江,無濤,欲言投於錢唐浙江。浙江、山陰江、上虞江皆有濤,三江有濤,豈分橐中之體,散置三江中乎?人若恨恚也,仇讎未死,子孫遺在,可也。今吳國已滅,夫差無類,吳為會稽,立置太守,子胥之神,復何怨苦,為濤不止,欲何求索?吳、越在時,分會稽郡,越治山陰,吳都今吳,餘暨以南屬越,錢唐以北屬吳。錢唐之江,兩國界也。山陰、上虞在越界中,子胥入吳之江,為濤當自上吳界中,何為入越之地?怨恚吳王、發怒越江,違失道理,無神之驗也。且夫水難驅而人易從也。生任筋力,死用精魂。子胥之生,不能從生人營衛其身,自令身死,筋力消絕,精魂飛散,安能為濤?使子胥之類數百千人,乘船渡江,不能越水。一子胥之身,煮湯鑊之中,骨肉糜爛,成為羹菹,何能有害也?周宣王殺其臣杜伯,(趙簡子)〔燕簡公〕殺其臣庄子義。其後杜伯射宣王,庄子義害簡(子)〔公〕,事理似然,猶為虛言。今子胥不能完體,為杜伯、子義之事以報吳王,而驅水往來,豈報仇之義、有知之驗哉!俗語不實,成為丹青;丹青之文,賢聖惑焉。夫地之有百川也,猶人之有血脈也。血脈流行,泛揚動靜,自有節度。百川亦然,其朝夕往來,猶人之呼吸氣出入也。天地之性,上古有之,《經》曰:「江、漢朝宗於海。」

唐、虞之前也,其發海中之時,漾馳而已;入三江之中,殆小淺狹,水激沸起,故騰為濤。廣陵曲江有濤,文人賦之。大江浩洋,曲江有濤,竟以隘狹也。吳殺其身,為濤廣陵,子胥之神,竟無知也。溪谷之深,流者安洋,淺多沙石,激揚為瀨。夫濤瀨,一也。謂子胥為濤,誰居溪谷為瀨者乎?案濤入三江,岸沸踊,中央無聲。必以子胥為濤,子胥之身聚岸也。濤之起也,隨月盛衰,小大滿損不齊同。如子胥為濤,子胥之怒,以月為節也。三江時風,揚疾之波亦溺殺人,子胥之神,復為風也?秦始皇渡湘水,遭風,問湘山何祠?左右對曰:「堯之女,舜之妻也。」

始皇太怒,使刑徒三千人斬湘山之樹而履之。夫謂子胥之神為濤,猶謂二女之精為風也。

傳書言:孔子當泗水(之)〔而〕葬,泗水為之卻流。此言孔子之德,能使水卻,不湍其墓也。世人信之。是故儒者稱論,皆言孔子之後當封,以泗水卻流為証。如原省之,殆虛言也。夫孔子死,孰與其生?生能操行,慎道應天,死操行絕。天佑至德,故五帝、三王招致瑞應,皆以生存,不以死亡。孔子生時推排不容,故嘆曰:「鳳鳥不至,河不出圖,吾已矣夫!」生時無佑,死反有報乎?孔子之死,五帝、三王之死也。五帝、三王無佑,孔子之死獨有天報,是孔子之魂聖,五帝之精不能神也。泗水無知,為孔子卻流,天神使之。然則,孔子生時,天神不使人尊敬。如泗水卻流,天欲封孔子之後,孔子生時,功德應天,天不封其身,乃欲封其後乎?是蓋水偶自卻流。江河之流,有回復之處;百川之行,或易道更路,與卻流無以異。則泗水卻流,不為神怪也。

傳書稱:魏公子之德,仁惠下士,兼及鳥獸。方與客飲,有擊鳩。鳩走,巡於公子案下。追擊,殺於公子之前,公子恥之,即使人多設羅,得數十枚,責讓以擊鳩之罪。擊鳩之,低頭不敢仰視,公子乃殺之。世稱之曰:「魏公子為鳩報仇。」此虛言也。夫物也,情心不同,音語不通。聖人不能使鳥獸為義理之行,公子何人,能使低頭自責?鳥為者以千萬數,向擊鳩蜚去,安可復得?能低頭自責,是聖鳥也。曉公子之言,則知公子之行矣。知公子之行,則不擊鳩於其前。人猶不能改過,鳥與人異,謂之能悔,世俗之語,失物類之實也。或時公子實捕,得。人持其頭,變折其頸,疾痛低垂,不能仰視。緣公子惠義之人,則因褒稱,言?服過。蓋言語之次,空生虛妄之美;功名之下,常有非實之加。

傳書言齊桓公妻姑姊妹七人,此言虛也。夫亂骨肉,犯親戚,無上下之序者,禽獸之性,則亂不知倫理。案桓公九合諸侯,一(正)〔匡〕天下,道之以德,將之以威,以故諸侯服從,莫敢不率,非內亂懷鳥獸之性者所能為也。夫率諸侯朝事王室,恥上無勢而下無禮也。外恥禮之不存,內何犯禮而自坏?外內不相副,則功無成而威不立矣。世稱桀、紂之惡,不言淫於親戚。實論者謂夫桀、紂惡微於亡秦,亡秦過泊於王莽,無淫亂之言。桓公妻姑姊七人,惡浮於桀、紂,而過重於秦、莽也。《春秋》采毫毛之美,貶纖芥之惡。桓公惡大,不貶何哉?魯文姜,齊襄公之妹也,襄公通焉。《春秋》經曰:「庄二年冬,夫人姜氏會齊侯於郜。」《春秋》何尤於襄公,而書其奸;何宥於桓公,隱而不譏?如《經》失之,傳家左丘明、公羊、谷梁何諱不言?案桓公之過多內寵,內嬖如夫人者六,有五公子爭立,齊亂,公薨三月乃訃。世聞內嬖六人,嫡庶無別,則言亂於姑姊妹七人矣。

傳書言,齊桓公負婦人而朝諸侯,此言桓公之淫亂無禮甚也。夫桓公大朝之時,負婦人於背,其游宴之時,何以加此?方修士禮,崇歷肅敬,負婦人於背,何以能率諸侯朝事王室?葵丘之會,桓公驕矜,當時諸侯畔者九國。睚眥不得,九國畔去,況負婦人淫亂之行,何以肯留?或曰:「管仲告諸侯:吾君背有疽創,不得婦人,瘡不衰愈。諸侯信管仲,故無畔者。」夫十室之邑,必有忠信若孔子。當時諸侯千人以上,必知方朮,治疽不用婦人。管仲為君諱也,諸侯知仲為君諱而欺己,必恚怒而畔去,何以能久統會諸侯,成功於霸?或曰:「桓公實無道,任賢相管仲,故能霸天下。」夫無道之人,與狂無異,信讒遠賢,反害仁義,安能任管仲,能養人,令之成事?桀殺關龍逢,紂殺王子比干,無道之君莫能用賢,使管仲賢,桓公不能用;用管仲,故知桓公無亂行也。有賢明之君,故有貞良之臣。臣賢,君明之驗,奈何謂之有亂?

難曰:「衛靈公無道之君,時知賢臣。管仲為輔,何明桓公不為亂也?」夫靈公無道,任用三臣,僅以不喪,非有功行也。桓公尊九九之人,拔甯戚於車下,責苞茅不貢,運兵功楚,九合諸侯,一匡天下,千世一出之主也。而云負婦人於背,虛矣。說《尚書》者曰:「周公居攝,帶天子之綬,戴天子之冠,負南面而朝諸侯。」

戶牖之間曰,南面之坐位也。負南面鄉坐,在後也。桓公朝諸侯之時,或南面坐,婦人立於後也。世俗傳云,則曰負婦人於背矣。此則夔一足、宋丁公鑿井得一人之語也。唐虞時,夔為大夫,性知音樂,調聲悲善。當時人曰:「調樂如夔一足矣。」世俗傳言,夔一足。

案秩宗官缺,帝舜博求,眾稱伯夷,伯夷稽首讓於夔龍。秩宗卿官,漢之宗正也。斷足,(足)非其理也。

且一足之人,何用行也?夏後孔甲田於東山,天雨晦冥,入於民家,主人方乳,或曰:「後來之子必貴。」或曰:「不勝之子必賤。」孔甲曰:「為餘子,孰能賤之?」遂載以歸,析繚,斧斬其足,卒為守者。孔甲之欲貴之子,有餘力矣,斷足無宜,故為守者。今夔一足,無因趨步,坐調音樂,可也。秩宗之官,不宜一足,猶守者斷足,不可貴也。孔甲不得貴之子,伯夷不得讓於夔焉。宋丁公者,宋人也。未鑿井時,常有寄汲,計之,日去一人作。自鑿井後,不復寄汲,計之,日得一人之作。故曰:「宋丁公鑿井得一人。」俗傳言曰:「丁公鑿井得一人於井中。」夫人生於人,非生於土也。穿土鑿井,無為得人。推此以論,負婦人之語,猶此類也。負婦人而坐,則云婦人在背。知婦人在背非道,則生管仲以婦人治疽之言矣。使桓公用婦人徹胤服,婦人於背,女氣〔愈〕瘡,可(去)〔云〕以婦人治疽。方朝諸侯,桓公重衣,婦人襲裳,女氣分隔,負之何益?桓公思土,作庭燎而夜坐,以思致土,反以白日負婦人見諸侯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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