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형 20 복허(福虛)
왕충(王充)의 《논형》 스무 번째 편으로, 선을 행하면 복이 이르고 악을 행하면 화가 온다는 통념을 비판한다. 초혜왕(楚惠王)이 거머리를 삼키고 병이 나음, 송인의 흰 송아지, 손숙오(孫叔敖)가 양두사를 묻음 등의 이야기를 들어, 복이 선행의 보답이 아니라 우연이거나 물리(物理)의 이치임을 논한다.
번역
세상이 선을 행한 자는 복이 이르고 악을 행한 자는 화가 온다 논한다. 화복의 응함이 다 하늘이라, 사람이 하면 하늘이 응한다 하니, 양(陽)의 은혜는 임금이 그 행실에 상 주고 음(陰)의 은혜는 천지가 그 덕에 보답한다 하여, 귀천현우 할 것 없이 그렇지 않다 하는 이가 없다. 한갓 행한 일에 그 방서(方傳)가 있음을 보고, 또 선한 사람이 때로 복을 만남을 보아 마침내 믿어 실로 그렇다 한다. 이 말은 혹 성현이 사람에게 선을 권하려 반드시 그러한 말을 지어 덕의 보답을 밝힌 것이거나, 복이 마침 때를 만난 것을 그렇다 한 것이다. 실상으로 논하면 어찌 복우(福佑)를 얻으랴?
초혜왕(楚惠王)이 찬밥을 먹다 거머리를 얻어 마침내 삼키니 배에 병이 나 먹지 못했다. 영윤(令尹)이 "왕께서 어찌 이 병을 얻으셨습니까" 물으니, 왕이 "내가 찬밥을 먹다 거머리를 얻어, 꾸짖고 그 죄를 행하지 않으면 법을 폐해 위엄이 서지 못하니 나라 사람에게 들리게 할 바가 아니요, 꾸짖어 벌을 행하면 푸주와 음식 맡은 자가 다 죽어야 하니 마음에 차마 못하여, 좌우가 볼까 두려워 마침내 삼켰다" 했다. 영윤이 자리를 피해 두 번 절하고 하례하여 "신이 듣건대 천도는 친함이 없고 오직 덕을 도우니, 왕께 어진 덕이 있어 하늘이 받드는 바라 병이 상하게 못합니다" 했다. 이날 저녁 혜왕의 뒤로 거머리가 나오고 오래 앓던 심복의 적(積)이 다 나았다. 그러므로 하늘이 덕을 친애함이 살피지 않을 수 없다 한다. 답한다. 이 말은 헛되다.
살피건대 혜왕이 거머리를 삼킴은 불초한 임금이라, 불초한 행실이 있으니 하늘이 돕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혜왕이 차마 거머리를 꾸짖지 못함은 푸주와 음식 맡은 이가 다 죽을까 두려워서다. 한 나라 임금이 상벌을 마음대로 하니 사면함은 임금이 하는 바다. (왕충은 혜왕이 거머리가 든 까닭을 살펴 음식 맡은 신하를 다스리지 못한 세 가지 불초를 따진 뒤, 혜왕이 거머리를 삼킴에 거머리가 우연히 절로 나온 것이라 한다.) 무릇 산 것을 먹으면 죽지 않음이 없으니 뱃속이 덥기 때문이다. 처음 삼킬 때 거머리가 죽지 않고 뱃속이 더워 거머리가 움직이므로 배가 아팠고, 잠깐 사이 거머리가 죽으매 배 아픔도 그쳤다. 거머리의 성품은 피를 먹으니, 혜왕 심복의 적은 아마 적혈(積血)이라, 피 먹는 벌레가 죽으매 적혈의 병이 나은 것이다. 마치 살쾡이의 성품이 쥐를 먹으니 사람이 쥐병이 있으면 살쾡이를 삼켜 절로 나음과 같다. 물류(物類)가 서로 이기고 방약(方葯)이 서로 부리는 것이니, 거머리를 먹어 병이 나음이 어찌 괴이하랴? 산 것을 먹으면 죽지 않음이 없고 죽으면 나오지 않음이 없으니, 거머리가 나옴이 어찌 도움이랴?
송(宋) 사람에 선행을 좋아하는 자가 삼 대에 게으르지 않더니 까닭 없이 검은 소가 흰 송아지를 낳았다. 공자에게 물으니 "이는 길조니 귀신에게 바치라" 하여 송아지로 제사했다. 한 해에 그 아비가 까닭 없이 눈멀고 소가 또 흰 송아지를 낳았다. 또 공자에게 물으니 "길조다" 하여 다시 제사했다. 한 해에 그 아들이 까닭 없이 눈멀었다. 그 뒤 초(楚)가 송을 쳐 성을 에우니, 이때 자식을 바꿔 먹고 뼈를 쪼개 불 땔 지경이었으나, 이 부자만 눈멈으로 성에 오르지 않아도 되었다. 군사가 물러가 에움이 풀리자 부자가 다 보게 되었다. 이는 선을 닦고 행실을 쌓아 신이 보답한 효험이라 한다. 답한다. 이 말은 헛되다. (왕충은 신이 보답한다면 굳이 눈멀게 했다 보게 할 까닭이 없음, 송·초가 화원·자반의 약속으로 물러나 죽음이 없었으니 눈멀지 않아도 죽지 않았을 것, 부자가 우연히 풍한으로 눈멀었다 우연히 나은 것임을 논한다.)
초의 재상 손숙오(孫叔敖)가 아이 때 머리 둘 달린 뱀(兩頭蛇)을 보고 죽여 묻고 돌아와 어미에게 울었다. 어미가 까닭을 물으니 "머리 둘 달린 뱀을 본 자는 죽는다 들었는데, 아까 나가 보았으니 어미를 두고 죽을까 두려워 웁니다" 했다. 어미가 "지금 뱀이 어디 있느냐" 물으니 "뒷사람이 또 볼까 두려워 죽여 묻었습니다" 했다. 어미가 "내 듣건대 음덕(陰德)이 있는 자는 하늘이 반드시 보답하니, 너는 반드시 죽지 않고 하늘이 반드시 너에게 보답하리라" 했다. 숙오가 끝내 죽지 않고 마침내 초의 재상이 되었다. 뱀 하나를 묻고 두 가지 도움을 얻었으니 하늘이 선에 보답함이 분명하다 한다. 답한다. 이 말은 헛되다. (머리 둘 달린 뱀을 본 자가 죽는다는 것은 속언이요, 음덕에 하늘이 보답한다는 것은 속의(俗議)다. 맹상군이 오월 오일에 났으되 그 아비가 죽지 않은 일로, 양두사를 본 자가 절로 죽지 않음을 든다. 숙오의 어짊은 뱀 묻은 한 가지 일에 그치지 않으니, 나면서 선한 성품을 받아 행함이 절로 그러한 것이지 묻은 까닭이 아니라 한다.)
(이어 동무심(董無心)과 전자(纏子)의 문답에서, 묵가가 귀신이 진목공에게 십구 년을 더 주었다 함을, 요·순이 더 받지 못하고 걸·주가 일찍 죽지 않음으로 논박한다.) 천하에 선한 사람은 적고 악한 사람은 많다. 선한 사람은 도를 따르고 악한 사람은 하늘을 어긴다. 그러나 악한 사람의 명이 짧지 않고 선한 사람의 나이가 길지 않다. 하늘이 선한 사람에게 늘 백 년의 수명을 누리게 하지 않고 악한 사람이 일찍 죽지 않으니, 어째서인가?
원문 전문 보기 (한문)
世論行善者福至,為惡者禍來。福禍之應,皆天也,人為之,天應之。陽恩,人君賞其行;陰惠,天地報其德。無貴賤賢愚,莫謂不然。徒見行事有其方傳,又見善人時遇福,故遂信之,謂之實然。斯言或時賢聖欲勸人為善,著必然之語,以明德報;或福時適遇者以為然。如實論之,安得福佑乎?
禁惠王食寒而得蛭,因遂吞之,腹有疾而不能食。令尹問:「王安得此疾也?」王曰:「我食寒而得蛭,念譴之而不行其罪乎?是廢法而威不立也,非所以使國人聞之也;譴而行誅乎?則庖廚監食者法皆當死,心又不忍也。吾恐左右見之也,因遂吞之。」令尹避席再拜而賀曰:「臣聞天道無親,唯德是輔。王有仁德,天之所奉也,病不為傷。」是夕也,惠王之後而蛭出,及久患心腹之積皆愈。故天之親德也,可謂不察乎!曰:此虛言也。案惠王之吞蛭,不肖之主也。有不肖之行,天不佑也。何則?惠王不忍譴蛭,恐庖廚監食法皆誅也。一國之君,專擅賞罰;而赦,人君所為也。惠王通譴 中何故有蛭,庖廚監食皆當伏法。然能終不以飲食行誅於人,赦而不罪,惠莫大焉。庖廚罪覺而不誅,自新而改後。惠王赦細而活微,身安不病。今則不然,強食害己之物,使監食之臣不聞其過,失御下之威,無御非之心,不肖一也。使庖廚監食失甘苦之和,若塵土落於中,大如虮虱,非意所能覽,非目所能見,原心定罪,不明其過,可謂惠矣。今蛭廣有分數,長有寸度,在寒中,眇目之人猶將見之,臣不畏敬,擇濯不謹,罪過至重。惠王不譴,不肖二也。 中不當有蛭,不食投地;如恐左右之見,懷屏隱匿之處,足以使蛭不見,何必食之?如不可食之物,誤在 中,可復隱匿而強食之,不肖三也。有不肖之行,而天佑之,是天報佑不肖人也。不忍譴蛭,世謂之賢。賢者操行,多若吞蛭之類。吞蛭天除其病,是則賢者常無病也。賢者德薄,未足以言。聖人純道,操行少非,為推不忍之行,以容人之過。必眾多矣。然而武王不豫,孔子疾病,天之佑人,何不實也?或時惠王吞蛭,蛭偶自出。食生物者無有不死,腹中熱也。初吞(蛭)時〔蛭〕未死,而腹中熱,蛭動作,故腹中痛。須臾蛭死,腹中痛亦止。蛭之性食血,惠王心腹之積,殆積血也。故食血之蟲死,而積血之病愈。猶狸之性食鼠,人有鼠病,吞狸自愈。物類相勝,方葯相使也。食蛭蟲而病愈,安得怪乎?食生物無不死,死無不出,之後蛭出,安得佑乎?令尹見惠王有不忍之德,知蛭入腹中必當死出,(臣)因再拜賀病不為傷。
著已知來之德,以喜惠王這心,是與子韋之言星徙、大卜之言地動無以異也。
宋人有好善行者,三世不解家無故黑牛生白犢。以問孔子,孔子曰:「此吉祥也,以享鬼神。」即以犢祭。一年,其父無故而盲。牛又生白犢。其父又使其子問孔子,孔子曰:「吉祥也,以享鬼神。」復以犢祭。一年,其子無故而盲。其後楚攻宋,圍其城。當此之時,易子而食之, 骸而炊之。此獨以父子俱盲之故,得毋乘城。軍罷圍解,父子俱視。此修善積行神報之效也。曰:此虛言也。夫宋人父子修善如此,神報之,何必使之先盲後視哉?不盲常視,不能護乎?此神不能護不盲之人,則亦不能以盲護人矣。使宋、楚之君,合戰頓兵,流血僵尸,戰夫禽獲,死亡不還。以盲之故,得脫不行,可謂神報之矣。今宋、楚相攻,兩軍未合,華元、子反結言而退,二軍之眾,并全而歸,兵矢之刃無頓用者。雖有乘城之役,無死亡之患。為善人報者為乘城之間乎?使時不盲,亦猶不死。盲與不盲,俱得脫免,神使之盲,何益於善!當宋國乏糧之時也,盲人之家,豈獨富哉?俱與乘城之家易子 骸,反以窮厄獨盲無見,則神報佑人,失善惡之實也。宋人父子前偶自以風寒發盲,圍解之後,盲偶自愈。世見父子修善,又用二白犢祭,宋、楚相攻獨不乘城,圍解之後父子皆視,則謂修善之報、獲鬼神之佑矣。
楚相孫叔敖為兒之時,見兩頭蛇,殺而埋之,歸對其母泣。母問其故,對曰:「我聞見兩頭蛇死。向者出,見兩頭蛇,恐去母死,是以泣也。」其母日:「今蛇何在?"對日:"我恐後人見之,即殺而埋之。」
其母日:「吾聞有陰德者,天必報之。汝必不死,天必報汝。」叔敖竟不死,遂為楚相。埋一蛇,獲二佑,天報善明矣。曰:此虛言矣。夫見兩頭蛇輒死者,俗言也;有陰德天報之福者,俗議也。叔敖信俗言而埋蛇,其母信俗議而必報,是謂死生無命,在一蛇之死。齊孟嘗君田文以五月五日生,其父田嬰讓其母曰:「何故舉之?」曰:「君所以不舉五月子,何也?」嬰曰:「五月子長與戶同,殺其父母。」曰:「人命在天乎?在戶乎?如在天,君何憂也;如在戶,則宜高其戶耳,誰而及之者!」後文長與一戶同,而嬰不死。是則五月舉子之忌,無效驗也。夫惡見兩頭蛇,猶五月舉子也。五月舉子,其父不死,則知見兩頭蛇者,無殃禍也。由此言之,見兩頭蛇自不死,非埋之故也。埋一蛇,獲二福,如埋十蛇,得几佑乎?埋蛇惡人復見,叔敖賢也。賢者之行,豈徒埋蛇一事哉?前埋蛇之時,多所行矣。稟天善性,動有賢行。賢行之人,宜見吉物,無為乃見殺人之蛇。豈叔敖未見蛇之時有惡,天欲殺之,見其埋蛇,除其過,天活之哉?石生而堅,蘭生而香。如謂叔敖之賢在埋蛇之時,非生而稟之也。
儒家之徒董無心,墨家之役纏子,相見講道。纏子稱墨家佑鬼神,是引秦穆公有明德,上帝賜之(九十)〔十九〕年,(纏)〔董〕子難以堯、舜不賜年,桀、紂不夭死。
堯、舜、桀、紂猶為尚遠,且近難以秦穆公、晉文公。夫謚者行之跡也,跡生時行以為死謚。穆者誤亂之名,文者德惠之表。有誤亂之行,天賜之年;有德惠之操,天奪其命乎?案穆公之霸不過晉文,晉文之謚美於穆公。天不加晉文以命,獨賜穆公以年,是天報誤亂,與「穆公」同也。
天下善人寡,惡人眾。善人順道,惡人違天。然夫惡人之命不短,善人之年不長。天不命善人常享一百載之壽,惡人為殤子惡死,何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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