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상편 도경(道經)
《도덕경(道德經)》의 상편으로, 제1장부터 제37장까지를 묶어 '도경(道經)'이라 한다. 도(道)가 무엇이며 어떻게 작용하는가,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어떻게 살고 다스릴 것인가를 논한다. 첫머리 "道可道,非常道"에서 시작해 이름할 수 없는 도, 유무(有無)의 상생, 물(水)과 같은 부드러움, 비움(虛)과 고요함(靜)의 쓰임을 펼친다. 왕필본 통행본 경문을 저본으로 삼아 전 장을 완역한다.
원문 · 번역
道可道,非常道,名可名,非常名;無名,天地之始,有名,萬物之母。故常無欲,以觀其妙,常有欲,以觀其徼;此兩者,同出而異名,同謂之玄。玄之又玄,眾妙之門。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늘 그러한[常] 도가 아니며,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음[無名]은 천지의 시작이요, 이름 있음[有名]은 만물의 어머니다. 그러므로 늘 욕심이 없으면 그 오묘함[妙]을 보고, 늘 욕심이 있으면 그 가장자리[徼]를 본다. 이 둘은 같은 데서 나왔으되 이름을 달리하니, 같이 일러 그윽함[玄]이라 한다. 그윽하고 또 그윽하니, 온갖 오묘함이 나오는 문이다.
天下皆知美之為美,斯惡已。皆知善之為善,斯不善已。故有無相生,難易相成,長短相較,高下相傾,音聲相和,前後相隨。是以聖人處無為之事,行不言之教;萬物作焉而不辭,生而不有,為而不恃,功成而弗居。夫唯弗居,是以不去。
천하가 모두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알지만, 이는 곧 추함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 선한 것을 선하다고 알지만, 이는 곧 선하지 않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있음과 없음은 서로를 낳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이루며, 길고 짧음은 서로 견주고, 높고 낮음은 서로 기울며, 음(音)과 성(聲)은 서로 어울리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무위(無為)의 일에 처하고,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한다. 만물이 일어나도 마다하지 않고, 낳되 소유하지 않으며, 하되 자랑하지 않고, 공을 이루어도 거기 머물지 않는다. 무릇 머물지 않기에 떠나가지도 않는다.
不尚賢,使民不爭;不貴難得之貨,使民不為盜;不見可欲,使民心不亂。是以聖人之治,虛其心,實其腹,弱其志,強其骨。常使民無知無欲。使夫智者不敢為也。為無為,則無不治。
어진 이를 떠받들지 않으면 백성이 다투지 않게 되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히 여기지 않으면 백성이 도둑질하지 않게 되며, 욕심낼 만한 것을 보이지 않으면 백성의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그 마음을 비우고 그 배를 채우며, 그 뜻을 약하게 하고 그 뼈를 강하게 한다. 늘 백성으로 하여금 앎도 없고 욕심도 없게 하며, 저 지혜로운 자들로 하여금 감히 무엇을 하지 못하게 한다. 무위를 행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道沖而用之或不盈,淵兮似萬物之宗;挫其銳,解其紛,和其光,同其塵,湛兮似或存。吾不知誰之子,象帝之先。
도는 비어 있으나 그것을 써도 차지 않으며, 깊어서 만물의 으뜸인 듯하다. 그 날카로움을 꺾고, 그 얽힘을 풀며, 그 빛을 누그러뜨리고, 그 티끌과 함께한다. 맑고 깊어 있는 듯도 하다. 나는 그것이 누구의 자식인지 알지 못하나, 천제(天帝)보다 앞서 있는 듯하다.
天地不仁,以萬物為芻狗;聖人不仁,以百姓為芻狗。天地之間,其猶橐籥乎?虛而不屈,動而愈出。多言數窮,不如守中。
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풀강아지[芻狗]로 여기고, 성인은 어질지 않아 백성을 풀강아지로 여긴다. 천지 사이는 풀무[橐籥]와 같지 않은가. 비어 있으나 다하지 않고, 움직일수록 더욱 나온다. 말이 많으면 자주 막히니, 가운데[中]를 지키는 것만 못하다.
-{谷}-神不死,是謂玄牝。玄牝之門,是謂天地根。緜緜若存,用之不勤。
골짜기의 신[谷神]은 죽지 않으니, 이를 그윽한 암컷[玄牝]이라 한다. 그윽한 암컷의 문, 이를 천지의 뿌리라 한다. 면면히 이어져 있는 듯하며, 그것을 써도 다함이 없다.
天長地久。天地所以能長且久者,以其不自生,故能長生。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外其身而身存。非以其無私邪,故能成其私。
하늘은 길고 땅은 오래간다. 천지가 길고 또 오래갈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길이 살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그 몸을 뒤로 하되 몸이 앞서고, 그 몸을 도외시하되 몸이 보존된다. 이는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그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다.
上善若水。水善利萬物而不爭,處眾人之所惡,故幾於道。居善地,心善淵,與善仁,言善信,正善治,事善能,動善時。夫唯不爭,故無尤。
으뜸가는 선[上善]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뭇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니,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거처는 땅처럼 낮게 함이 좋고, 마음은 못처럼 깊게 함이 좋으며, 베풂은 어질게 함이 좋고, 말은 미덥게 함이 좋으며, 다스림은 바르게 함이 좋고, 일은 능하게 함이 좋으며, 움직임은 때에 맞게 함이 좋다. 무릇 다투지 않으니,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
持而盈之,不如其已;揣而梲之,不可長保。金玉滿堂,莫之能守;富貴而驕,自遺其咎。功遂身退,天之道。
쥐고서 가득 채우는 것은 그만두느니만 못하고, 갈아서 날카롭게 한 것은 오래 보전할 수 없다.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해도 능히 지킬 수 없고, 부귀하면서 교만하면 스스로 그 허물을 남긴다. 공이 이루어지면 몸은 물러나는 것, 이것이 하늘의 도다.
載營魄抱一,能無離乎?專氣致柔,能嬰兒乎?滌除玄覽,能無疵乎?愛國治民,能無知乎?天門開闔,能為雌乎?明白四達,能無為乎?生之,畜之。生而不有,為而不恃,長而不宰,是謂玄德。
혼백을 싣고 하나[一]를 안아 떠나지 않을 수 있는가. 기(氣)를 오로지하여 부드러움에 이르러 갓난아이처럼 될 수 있는가. 그윽한 거울[玄覽]을 씻어 내어 흠이 없게 할 수 있는가.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다스림에 앎으로 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늘 문이 열리고 닫힘에 암컷처럼 될 수 있는가. 밝게 사방에 통달하면서 무위로 할 수 있는가. 낳고 기르되, 낳으면서 소유하지 않고, 하되 자랑하지 않으며, 자라게 하되 주재하지 않으니, 이를 그윽한 덕[玄德]이라 한다.
三十輻共一轂,當其無,有車之用。埏埴以為器,當其無,有器之用。鑿戶牖以為室,當其無,有室之用。故有之以為利,無之以為用。
서른 개의 바큇살이 한 바퀴통을 함께 쓰나, 그 빈 곳[無]이 있어 수레의 쓰임이 있다. 진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나, 그 빈 곳이 있어 그릇의 쓰임이 있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나, 그 빈 곳이 있어 방의 쓰임이 있다. 그러므로 있음[有]은 이로움이 되고, 없음[無]은 쓰임이 된다.
五色令人目盲,五音令人耳聾,五味令人口爽,馳騁畋獵令人心發狂,難得之貨令人行妨。是以聖人為腹不為目,故去彼取此。
다섯 빛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다섯 소리는 사람의 귀를 먹게 하며, 다섯 맛은 사람의 입을 상하게 하고, 말달리며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하며, 얻기 어려운 재화는 사람의 행실을 그르치게 한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배를 위하고 눈을 위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寵辱若驚,貴大患若身。何謂寵辱若驚?寵為下,得之若驚,失之若驚,是謂寵辱若驚。何謂貴大患若身?吾所以有大患者,為吾有身,及吾無身,吾有何患?故貴以身為天下,若可寄天下;愛以身為天下,若可託天下。
총애와 굴욕에 놀란 듯하고, 큰 환란을 제 몸처럼 귀히 여긴다. 총애와 굴욕에 놀란 듯하다 함은 무엇인가. 총애는 낮은 것이니, 그것을 얻어도 놀란 듯하고 그것을 잃어도 놀란 듯하다. 이를 일러 총애와 굴욕에 놀란 듯하다고 한다. 큰 환란을 제 몸처럼 귀히 여긴다 함은 무엇인가. 내게 큰 환란이 있는 까닭은 내게 몸이 있기 때문이니, 내게 몸이 없다면 내게 무슨 환란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제 몸을 천하처럼 귀히 여기는 자에게는 천하를 맡길 만하고, 제 몸을 천하처럼 아끼는 자에게는 천하를 부탁할 만하다.
視之不見名曰夷,聽之不聞名曰希,搏之不得名曰微。此三者,不可致詰,故混而為一。其上不皦,其下不昧。繩繩不可名,復歸於無物。是謂無狀之狀,無物之象,是謂惚恍。迎之不見其首,隨之不見其後。執古之道,以御今之有。能知古始,是謂道紀。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夷)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희(希)라 하며, 잡아도 잡히지 않는 것을 미(微)라 한다. 이 셋은 따져 물을 수 없으니, 그러므로 뒤섞여 하나가 된다. 그 위는 밝지 않고 그 아래는 어둡지 않으며, 끊임없이 이어져 이름할 수 없으니, 다시 아무것도 없음[無物]으로 돌아간다. 이를 일러 모양 없는 모양, 사물 없는 형상이라 하고, 이를 일러 황홀(惚恍)이라 한다. 맞이해도 그 머리를 보지 못하고, 뒤따라도 그 꼬리를 보지 못한다. 옛 도를 잡아 오늘의 있음을 다스리니, 능히 옛 시작을 알 수 있다. 이를 일러 도의 벼리[道紀]라 한다.
古之善為士者,微妙玄通,深不可識。夫唯不可識,故強為之容。豫焉若冬涉川,猶兮若畏四鄰,儼兮其若容,渙兮若冰之將釋,敦兮其若樸,曠兮其若谷,混兮其若濁。孰能濁以靜之徐清?孰能安以久動之徐生?保此道者不欲盈,夫唯不盈,故能蔽不新成。
옛적에 도를 잘 닦은 선비는 미묘하고 그윽이 통하여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무릇 알 수 없으므로 억지로 그 모습을 그려 본다. 머뭇거림은 겨울에 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망설임은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는 듯하며, 의젓함은 손님과 같고, 풀어짐은 얼음이 막 녹으려는 듯하며, 도타움은 통나무[樸]와 같고, 텅 빔은 골짜기와 같으며, 뒤섞임은 흐린 물과 같다. 누가 능히 흐린 것을 고요히 하여 천천히 맑게 할 수 있겠는가. 누가 능히 가만히 있는 것을 오래 움직여 천천히 살아나게 할 수 있겠는가. 이 도를 지키는 자는 채우려 하지 않으니, 무릇 채우지 않으므로 능히 낡아도 새로 이루려 하지 않는다.
致虛極,守靜篤。萬物並作,吾以觀復。夫物芸芸,各復歸其根。歸根曰靜,是謂復命。復命曰常,知常曰明。不知常,妄作凶。知常容,容乃公,公乃全,全乃天,天乃道,道乃久,沒身不殆。
비움의 끝에 이르고 고요함을 도탑게 지킨다. 만물이 함께 일어나나, 나는 그 돌아감[復]을 본다. 무릇 만물은 무성하나 각기 그 뿌리로 돌아간다. 뿌리로 돌아감을 고요함[靜]이라 하고, 이를 명(命)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명으로 돌아감을 늘 그러함[常]이라 하고, 늘 그러함을 아는 것을 밝음[明]이라 한다. 늘 그러함을 알지 못하면 망령되이 흉한 일을 짓는다. 늘 그러함을 알면 너그러워지고, 너그러우면 공평해지며, 공평하면 두루 미치고, 두루 미치면 하늘과 같아지며, 하늘과 같으면 도와 같아지고, 도와 같으면 오래가니, 몸이 다하도록 위태롭지 않다.
太上,下知有之,其次,親而譽之,其次,畏之,其次,侮之。信不足焉,有不信焉。悠兮其貴言,功成事遂,百姓皆謂:我自然。
으뜸가는 임금은 아래에서 그가 있다는 것만 안다. 그다음은 친히 여기고 기리며, 그다음은 두려워하고, 그다음은 업신여긴다. 믿음이 부족하면 불신이 생긴다. 느긋하여 말을 아끼니,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마쳐져도 백성은 모두 "내가 절로 그리되었다[自然]"고 한다.
大道廢,有仁義;智慧出,有大偽;六親不和,有孝慈;國家昏亂,有忠臣。
큰 도가 무너지니 인의(仁義)가 생겨나고, 지혜가 나오니 큰 거짓이 생겨나며, 육친이 화목하지 못하니 효도와 자애가 생겨나고, 나라가 어지러우니 충신이 생겨난다.
絕聖棄智,民利百倍;絕仁棄義,民復孝慈;絕巧棄利,盜賊無有。此三者以為文不足,故令有所屬﹕見素抱樸,少私寡欲。
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를 버리면 백성의 이로움이 백배가 되고, 어짊을 끊고 의로움을 버리면 백성이 효도와 자애로 돌아가며, 교묘함을 끊고 이로움을 버리면 도적이 없어진다. 이 세 가지는 꾸밈[文]으로 삼기에는 부족하니, 그러므로 돌아갈 데가 있게 한다. 곧 바탕을 드러내고 통나무를 안으며[見素抱樸], 사사로움을 적게 하고 욕심을 줄이는 것이다.
絕學無憂,唯之與阿,相去幾何?善之與惡,相去若何?人之所畏,不可不畏。荒兮其未央哉﹗眾人熙熙,如享太牢,如春登臺。我獨泊兮其未兆,如嬰兒之未孩;儽儽兮若無所歸。眾人皆有餘,而我獨若遺。我愚人之心也哉﹗沌沌兮,俗人昭昭,我獨昏昏。俗人察察,我獨悶悶。澹兮其若海,飂兮若無止。眾人皆有以,而我獨頑似鄙。我獨異於人,而貴食母。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예"와 "응"이 서로 얼마나 다른가. 선함과 추함이 서로 얼마나 다른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황량하구나, 그 끝없음이여. 뭇사람은 희희낙락하여 큰 잔치를 누리는 듯, 봄날에 누대에 오르는 듯하다. 나만 홀로 담박하여 아무 조짐도 없으니, 아직 웃을 줄 모르는 갓난아이 같고, 지칠 대로 지쳐 돌아갈 데 없는 듯하다. 뭇사람은 모두 남음이 있으나 나만 홀로 잃은 듯하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인가, 흐리멍덩하구나. 세속 사람은 환히 밝으나 나만 홀로 어둡고, 세속 사람은 또렷또렷하나 나만 홀로 답답하다. 담담함은 바다와 같고, 휘몰아침은 그칠 줄 모르는 듯하다. 뭇사람은 모두 쓸모가 있으나 나만 홀로 완고하고 촌스럽다. 나만 홀로 남들과 달라, 어머니[母]에게서 길러짐을 귀히 여긴다.
孔德之容,惟道是從。道之為物,惟恍惟惚。惚兮恍兮,其中有象;恍兮惚兮,其中有物。窈兮冥兮,其中有精;其精甚真,其中有信。自今及古,其名不去,以閱眾甫。吾何以知眾甫之狀哉?以此。
큰 덕[孔德]의 모습은 오직 도를 따른다. 도라는 것은 오직 황홀할 뿐이다. 황홀하구나, 그 가운데 형상이 있다. 황홀하구나, 그 가운데 사물이 있다. 그윽하고 어둑하구나, 그 가운데 정기[精]가 있다. 그 정기는 심히 참되어, 그 가운데 미더움[信]이 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 이름이 사라지지 않으니, 이로써 만물의 처음[衆甫]을 살핀다. 내가 무엇으로 만물의 처음의 모습을 알겠는가. 이것으로써다.
曲則全,枉則直,窪則盈,敝則新,少則得,多則惑。是以聖人抱一為天下式。不自見故明,不自是故彰,不自伐故有功,不自矜故長。夫唯不爭,故天下莫能與之爭。古之所謂曲則全者,豈虛言哉!誠全而歸之。
굽으면 온전하고, 휘면 곧아지며, 패이면 차고, 낡으면 새로워지며, 적으면 얻고, 많으면 미혹된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하나를 안아 천하의 법도로 삼는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므로 밝고, 스스로 옳다 하지 않으므로 빛나며,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므로 공이 있고, 스스로 뽐내지 않으므로 오래간다. 무릇 다투지 않으니, 그러므로 천하가 능히 그와 다툴 수 없다. 옛사람이 이른바 "굽으면 온전하다" 한 것이 어찌 빈말이겠는가. 진실로 온전히 하여 도로 돌아가게 한다.
希言自然。故飄風不終朝,驟雨不終日。孰為此者?天地。天地尚不能久,而況於人乎?故從事於道者,道者同於道,德者同於德,失者同於失。同於道者,道亦樂得之;同於德者,德亦樂得之;同於失者,失亦樂得之。信不足焉,有不信焉。
말을 아끼는 것이 자연이다. 그러므로 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불지 못하고, 소나기는 하루 내내 내리지 못한다. 누가 이렇게 하는가. 천지다. 천지도 오히려 오래갈 수 없거늘, 하물며 사람이랴. 그러므로 도에 종사하는 자는 도를 따르는 자는 도와 같아지고, 덕을 따르는 자는 덕과 같아지며, 잃음을 따르는 자는 잃음과 같아진다. 도와 같아진 자는 도 또한 그를 얻음을 즐거워하고, 덕과 같아진 자는 덕 또한 그를 얻음을 즐거워하며, 잃음과 같아진 자는 잃음 또한 그를 얻음을 즐거워한다. 믿음이 부족하면 불신이 생긴다.
企者不立,跨者不行,自見者不明,自是者不彰,自伐者無功,自矜者不長。其在道也,曰餘食贅行。物或惡之,故有道者不處。
발끝으로 선 자는 오래 서지 못하고, 가랑이를 벌려 걷는 자는 멀리 가지 못한다. 스스로 드러내는 자는 밝지 못하고, 스스로 옳다 하는 자는 빛나지 못하며,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공이 없고, 스스로 뽐내는 자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것을 도에서 보면 먹다 남은 밥이요 군더더기 행실이라 한다. 만물도 이를 싫어하니, 그러므로 도를 지닌 자는 거기 처하지 않는다.
有物混成,先天地生。寂兮寥兮,獨立而不改,周行而不殆,可以為天下母。吾不知其名,字之曰道,強為之名曰大。大曰逝,逝曰遠,遠曰反。故道大,天大,地大,王亦大。域中有四大,而王居其一焉。人法地,地法天,天法道,道法自然。
뒤섞여 이루어진 것이 있어 천지보다 먼저 생겨났다. 고요하고 텅 비어 홀로 서서 변하지 않고, 두루 운행하여 그치지 않으니, 천하의 어머니가 될 만하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여 자(字)를 붙여 도라 하고, 억지로 이름 지어 크다[大]고 한다. 크면 가고[逝], 가면 멀어지며[遠], 멀어지면 되돌아온다[反]. 그러므로 도가 크고, 하늘이 크며, 땅이 크고, 임금[王] 또한 크다. 우주 안에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임금이 그 하나를 차지한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重為輕根,靜為躁君。是以聖人終日行不離輜重。雖有榮觀,燕處超然。奈何萬乘之主,而以身輕天下?輕則失本,躁則失君。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이고, 고요함은 조급함의 임금이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종일 다녀도 짐수레[輜重]를 떠나지 않는다. 비록 화려한 볼거리가 있어도 편안히 처하여 초연하다. 어찌 만승(萬乘)의 임금으로서 제 몸을 천하보다 가벼이 하겠는가. 가벼우면 뿌리를 잃고, 조급하면 임금의 자리를 잃는다.
善行無轍迹,善言無瑕讁;善數不用籌策;善閉無關楗而不可開,善結無繩約而不可解。是以聖人常善救人,故無棄人;常善救物,故無棄物,是謂襲明。故善人者,不善人之師;不善人者,善人之資。不貴其師,不愛其資,雖智大迷,是謂要妙。
잘 가는 자는 수레바퀴 자취가 없고, 잘 말하는 자는 흠이 없으며, 잘 셈하는 자는 산가지를 쓰지 않는다. 잘 닫는 자는 빗장이 없어도 열 수 없게 하고, 잘 묶는 자는 노끈이 없어도 풀 수 없게 한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늘 사람을 잘 구하니, 그러므로 버려지는 사람이 없고, 늘 사물을 잘 구하니, 그러므로 버려지는 사물이 없다. 이를 일러 밝음을 간직함[襲明]이라 한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은 선하지 못한 사람의 스승이요, 선하지 못한 사람은 선한 사람의 거울[資]이다. 그 스승을 귀히 여기지 않고 그 거울을 아끼지 않으면, 비록 지혜로워도 크게 미혹되니, 이를 일러 요긴한 오묘함[要妙]이라 한다.
知其雄,守其雌,為天下谿。為天下谿,常德不離,復歸於嬰兒。知其白,守其黑,為天下式。為天下式,常德不忒,復歸於無極。知其榮,守其辱,為天下谷,常德乃足,復歸於樸。樸散則為器,聖人用之,則為官長,故大制不割。
그 수컷을 알면서 그 암컷을 지키면 천하의 시내가 된다. 천하의 시내가 되면 늘 그러한 덕이 떠나지 않아 갓난아이로 돌아간다. 그 흰 것을 알면서 그 검은 것을 지키면 천하의 법도가 된다. 천하의 법도가 되면 늘 그러한 덕이 어긋나지 않아 끝없음[無極]으로 돌아간다. 그 영화로움을 알면서 그 욕됨을 지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늘 그러한 덕이 넉넉해져 통나무[樸]로 돌아간다. 통나무가 흩어지면 그릇이 되고, 성인이 그것을 쓰면 관리의 우두머리가 되니, 그러므로 큰 마름질은 가르지 않는다.
將欲取天下而為之,吾見其不得已。天下神器,不可為也,為者敗之,執者失之。故物或行或隨,或歔或吹。或強或羸,或挫或隳。是以聖人去甚,去奢,去泰。
천하를 취하여 어찌해 보려 한다면, 나는 그것이 될 수 없음을 본다. 천하는 신묘한 그릇[神器]이니 어찌할 수 없다. 어찌하려는 자는 그것을 망치고, 잡으려는 자는 그것을 잃는다. 그러므로 사물은 앞서가기도 하고 뒤따르기도 하며, 숨을 천천히 내쉬기도 하고 급히 내불기도 하며, 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하며, 꺾이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지나침을 버리고, 사치를 버리며, 교만함을 버린다.
以道佐人主者,不以兵強天下。其事好還。師之所處,荊棘生焉。大軍之後,必有凶年。善有果而已,不敢以取強。果而勿矜,果而勿伐,果而勿驕。果而不得已,果而勿強。物壯則老,是謂不道,不道早已。
도로써 임금을 돕는 자는 군사로 천하에 강함을 부리지 않는다. 그 일은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군사가 머문 곳에는 가시덤불이 자라나고, 큰 전쟁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든다. 잘하는 자는 이룰 뿐이지 감히 강함을 취하지 않는다. 이루되 자랑하지 말고, 이루되 뽐내지 말며, 이루되 교만하지 말고, 이루되 부득이하게 하며, 이루되 강하려 하지 말라. 만물은 강성하면 늙으니, 이를 도가 아니라 한다. 도가 아니면 일찍 끝난다.
夫佳兵者,不祥之器,物或惡之,故有道者不處。君子居則貴左,用兵則貴右。兵者不祥之器,非君子之器,不得已而用之,恬淡為上。勝而不美,而美之者,是樂殺人。夫樂殺人者,則不可以得志於天下矣。吉事尚左,凶事尚右。偏將軍居左,上將軍居右,言以喪禮處之。殺人之眾,以哀悲泣之,戰勝,以喪禮處之。
무릇 좋은 군사라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그릇이라 만물이 혹 싫어하니, 그러므로 도를 지닌 자는 거기 처하지 않는다. 군자는 평소에 왼쪽을 귀히 여기고 군사를 쓸 때는 오른쪽을 귀히 여긴다. 군사는 상서롭지 못한 그릇이라 군자의 그릇이 아니니, 부득이하여 쓸 때에는 담담함을 으뜸으로 삼는다. 이겨도 아름답게 여기지 않으니, 이를 아름답게 여기는 자는 사람 죽이기를 즐기는 자다. 무릇 사람 죽이기를 즐기는 자는 천하에서 뜻을 얻을 수 없다. 길한 일에는 왼쪽을 높이고 흉한 일에는 오른쪽을 높인다. 편장군은 왼쪽에 자리하고 상장군은 오른쪽에 자리하니, 이는 상례(喪禮)로써 처함을 말한다. 사람을 많이 죽였으니 슬픔으로 울고, 싸움에 이겨도 상례로써 처한다.
道常無名,樸雖小,天下莫能臣也。侯王若能守之,萬物將自賓。天地相合,以降甘露,民莫之令而自均。始制有名,名亦既有,夫亦將知止,知止所以不殆。譬道之在天下,猶川谷之於江海。
도는 늘 이름이 없다. 통나무는 비록 작으나 천하가 능히 신하로 삼지 못한다. 임금이 능히 이를 지키면 만물이 절로 복종해 온다. 천지가 서로 합하여 단 이슬을 내리니, 백성은 명령하지 않아도 절로 고르게 된다. 처음 마름질하니 이름이 생기고, 이름이 이미 있으니 또한 그칠 줄 알아야 하며,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비유컨대 도가 천하에 있음은 시내와 골짜기가 강과 바다로 흘러드는 것과 같다.
知人者智,自知者明。勝人者有力,自勝者強。知足者富。強行者有志。不失其所者久。死而不亡者壽。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롭고, 자기를 아는 자는 밝다. 남을 이기는 자는 힘이 있고, 자기를 이기는 자는 강하다. 만족할 줄 아는 자는 부유하고, 힘써 행하는 자는 뜻이 있다. 제자리를 잃지 않는 자는 오래가고, 죽어도 잊히지 않는 자는 오래 산다.
大道氾兮,其可左右。萬物恃之而生而不辭,功成不名有。衣養萬物而不為主,常無欲,可名於小;萬物歸焉而不為主,可名為大。以其終不自為大,故能成其大。
큰 도는 넘쳐흐르니,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갈 수 있다. 만물이 그것에 의지하여 살아도 마다하지 않고, 공을 이루어도 이름을 두지 않는다. 만물을 입히고 기르되 주인 노릇 하지 않으니, 늘 욕심이 없어 작다고 이름할 만하다. 만물이 그에게로 돌아가되 주인 노릇 하지 않으니, 크다고 이름할 만하다. 끝내 스스로 크다 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능히 그 큼을 이룬다.
執大象,天下往。往而不害,安平太。樂與餌,過客止。道之出口,淡乎其無味,視之不足見,聽之不足聞,用之不足既。
큰 형상[大象]을 잡으면 천하가 그에게로 간다. 가도 해롭지 않으니 편안하고 평화롭고 태평하다. 음악과 별미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멈추게 하지만, 도가 입에서 나오면 담박하여 아무 맛이 없으니, 보아도 보기에 부족하고, 들어도 듣기에 부족하나, 써도 다함이 없다.
將欲歙之,必固張之;將欲弱之,必固強之;將欲廢之,必固興之;將欲奪之,必固與之。是謂微明。柔弱勝剛強。魚不可脫於淵,國之利器不可以示人。
거두려 하면 반드시 먼저 펴 주고, 약하게 하려 하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 주며, 없애려 하면 반드시 먼저 일으켜 주고, 빼앗으려 하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 한다. 이를 일러 은미한 밝음[微明]이라 한다. 부드럽고 약함이 굳세고 강함을 이긴다. 물고기는 못을 벗어날 수 없고, 나라의 이로운 그릇[利器]은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道常無為而無不為。侯王若能守之,萬物將自化。化而欲作,吾將鎮之以無名之樸。無名之樸,夫亦將無欲。不欲以靜,天下將自定。
도는 늘 무위(無為)하나 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임금이 능히 이를 지키면 만물이 절로 교화된다. 교화되었는데도 욕심이 일어나면, 나는 이름 없는 통나무[無名之樸]로 그것을 진정시킨다. 이름 없는 통나무는 또한 욕심을 없게 한다. 욕심내지 않아 고요하면 천하가 절로 안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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