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05 등문공상(滕文公上)

맹자(孟子) · 전국 맹가 · 번역·감수 허유

성선설(性善說)과 삼년상의 예, 정전법(井田法)을 비롯한 왕정의 구체적 제도를 다룬다. 또한 노심(勞心)과 노력(勞力)의 분업, 인륜(人倫)을 밝히는 교육, 그리고 농가(農家)의 허행(許行)과 묵가(墨家)의 이지(夷之)를 논박하여 유가의 도를 변호한다.

핵심 구절 — 원문과 번역

滕文公為世子,將之楚,過宋而見孟子。孟子道性善,言必稱堯舜。

(등문공이 세자였을 때 초나라로 가다가 송나라를 지나며 맹자를 만났는데, 맹자가 성선을 말하되 말마다 반드시 요·순을 일컬었다.)

有恒產者有恒心,無恒產者無恒心。

(일정한 생업이 있는 자는 변치 않는 마음이 있고, 일정한 생업이 없는 자는 변치 않는 마음이 없다.)

勞心者治人,勞力者治於人。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父子有親,君臣有義,夫婦有別,長幼有序,朋友有信。

(부자에게는 친함이, 군신에게는 의가, 부부에게는 분별이, 어른과 아이에게는 차례가, 벗에게는 신의가 있다.)

번역

1장

등문공(滕文公)이 세자였을 때 초(楚)나라로 가다가 송(宋)나라를 지나며 맹자를 만났다. 맹자가 성선(性善)을 말하되 말마다 반드시 요·순을 일컬었다.

세자가 초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맹자를 만났다. 맹자가 말하였다. "세자께서는 제 말을 의심하십니까? 무릇 도는 하나일 뿐입니다. 성간(成覸)이 제경공에게 '저도 장부요 나도 장부이니, 내 어찌 저를 두려워하랴' 하였고, 안연(顏淵)은 '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자는 또한 이와 같으리라' 하였으며, 공명의(公明儀)는 '문왕은 나의 스승이라 하셨으니, 주공이 어찌 나를 속이셨으랴' 하였습니다. 지금 등나라는 긴 데를 잘라 짧은 데를 보태면 장차 사방 오십 리이니, 오히려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약이 어지럽고 아찔하게 하지 않으면 그 병이 낫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2장

등정공(滕定公)이 죽자, 세자가 연우(然友)에게 말하였다. "지난날 맹자께서 일찍이 송나라에서 나와 더불어 말씀하셨는데, 마음에 끝내 잊지 못한다. 이제 불행히 큰일(상사)을 당하였으니, 내 그대로 하여금 맹자께 물은 뒤에 일을 행하고자 한다."

연우가 추(鄒)나라로 가서 맹자께 물었다.

맹자가 말하였다. "또한 좋지 않은가! 어버이의 상은 본디 스스로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증자께서 '살아 계실 때 예로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 장사 지내고 예로 제사 지내면 효라 할 만하다'고 하셨다. 제후의 예는 내 배우지 못하였으나, 그래도 내 일찍이 들으니 삼년상에 거친 베옷을 입고 미음을 먹음은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삼대(三代)가 함께하였다 한다."

연우가 돌아와 복명하니, 삼년상으로 정하였다. 부형과 백관이 모두 원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우리 종국(宗國)인 노(魯)나라 선군께서도 행하지 않으셨고 우리 선군께서도 행하지 않으셨는데, 그대의 대에 이르러 이를 뒤집으려 하니 안 됩니다. 또 《지(志)》에 이르기를 '상사와 제사는 선조를 따른다' 하였으니, (이는) 우리가 받은 바가 있는 것입니다."

세자가 연우에게 말하였다. "내 지난날 일찍이 학문을 하지 않고 말달리기와 칼 쓰기를 좋아하였다. 지금 부형과 백관이 나를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으니, 큰일에 정성을 다하지 못할까 두렵다. 그대가 나를 위하여 맹자께 물어보라."

연우가 다시 추나라로 가서 맹자께 물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러하다, 다른 데서 구할 것이 아니다. 공자께서 '임금이 돌아가시면 정사를 총재(冢宰)에게 듣고, 미음을 먹으며 낯빛이 매우 검고, 자리에 나아가 곡한다. 백관과 유사가 감히 슬퍼하지 않음이 없는 것은 (세자가) 먼저 했기 때문이다. 윗사람이 좋아하는 바가 있으면 아랫사람은 반드시 더 심한 자가 있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니, 풀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눕는다'고 하셨다. 이는 세자께 달린 것이다."

연우가 돌아와 복명하였다.

세자가 말하였다. "그러하다, 이는 진실로 나에게 달린 것이다."

다섯 달을 여막(廬幕)에 거하며 명령과 경계를 내리지 않았다. 백관과 친족이 잘 안다(예를 안다)고 할 만하였다. 장사에 미쳐 사방에서 와서 보았는데, 낯빛의 슬픔과 곡읍(哭泣)의 애통함에 조문하는 자들이 크게 흡족해하였다.

3장

등문공이 나라 다스리는 법을 물었다.

맹자가 말하였다. "백성의 일은 늦출 수 없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낮에는 띠풀을 베고 밤에는 새끼를 꼬아, 빨리 지붕을 이어야 비로소 온갖 곡식을 파종한다' 하였습니다. 백성의 도리는, 일정한 생업(恒産)이 있는 자는 변치 않는 마음(恒心)이 있고, 일정한 생업이 없는 자는 변치 않는 마음이 없습니다. 진실로 변치 않는 마음이 없으면 방탕하고 편벽되고 사악하고 사치하여 하지 않는 짓이 없게 됩니다. 죄에 빠진 뒤에 따라서 형벌을 가하면 이는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이니, 어찌 어진 사람이 지위에 있으면서 백성을 그물질하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어진 임금은 반드시 공손하고 검소하며 아랫사람을 예로 대하고, 백성에게서 취하는 데 제도가 있습니다. 양호(陽虎)가 '부유하려 하면 인하지 못하고 인하려 하면 부유하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하후씨(夏后氏)는 오십 묘에 공법(貢法)을 썼고, 은(殷)나라 사람은 칠십 묘에 조법(助法)을 썼으며, 주(周)나라 사람은 백 묘에 철법(徹法)을 썼으니, 그 실제는 모두 10분의 1입니다. 철(徹)이란 통한다는 뜻이요, 조(助)란 빌린다는 뜻입니다. 용자(龍子)가 '땅을 다스림에 조법보다 좋은 것이 없고 공법보다 나쁜 것이 없다. 공(貢)이란 여러 해의 중간을 비교하여 일정액으로 삼는 것이다. 풍년에는 곡식이 낭자하여 많이 거두어도 가혹하지 않은데 적게 거두고, 흉년에는 그 밭에 거름을 주기에도 부족한데 반드시 일정액을 채워 거둔다. 백성의 부모가 되어 백성으로 하여금 한스럽게 한 해 내내 부지런히 일하고도 그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게 하며, 또 빚을 내어 채우게 하여 늙은이와 어린이가 구렁텅이에 굴러떨어지게 한다면, 어디에 그 백성의 부모 됨이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무릇 대대로 녹을 줌은 등나라가 본디 행하고 있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우리 공전(公田)에 비를 내려 마침내 우리 사전(私田)에 미친다' 하였으니, 오직 조법에만 공전이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비록 주나라도 조법을 썼습니다.

상(庠)·서(序)·학(學)·교(校)를 설치하여 가르쳤으니, 상(庠)이란 봉양함이요, 교(校)란 가르침이요, 서(序)란 활쏘기입니다. 하나라는 교라 하고 은나라는 서라 하고 주나라는 상이라 하였으며, 학(學)은 삼대가 함께하였으니, 모두 인륜(人倫)을 밝히는 것입니다. 인륜이 위에서 밝아지면 백성이 아래에서 친애합니다. 왕자(王者)가 나오면 반드시 와서 본받을 것이니, 이것이 왕자의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주나라가 비록 오래된 나라이나 그 천명이 새롭다' 하였으니, 문왕을 이름입니다. 그대가 힘써 행하면 또한 그대의 나라를 새롭게 할 것입니다."

(등문공이) 필전(畢戰)으로 하여금 정전(井地)을 묻게 하였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대의 임금이 장차 어진 정치를 행하려 하여 가려서 그대를 보냈으니, 그대는 반드시 힘쓰라. 무릇 어진 정치는 반드시 경계(經界)를 바로잡음에서 시작한다. 경계가 바르지 못하면 정전(井田)이 고르지 못하고 녹봉이 공평하지 못하니, 그러므로 포악한 임금과 더러운 관리는 반드시 그 경계를 게을리한다. 경계가 이미 바르면 밭을 나누고 녹을 정함을 앉아서도 정할 수 있다.

무릇 등나라는 땅이 좁고 작으나, 장차 군자(다스리는 자)도 있을 것이요 야인(野人·농민)도 있을 것이다. 군자가 없으면 야인을 다스릴 수 없고, 야인이 없으면 군자를 기를 수 없다. 청컨대 들에서는 9분의 1로 조법을 쓰고, 국중(國中)에서는 10분의 1로 스스로 바치게 하라. 경(卿) 이하는 반드시 규전(圭田)이 있어야 하니, 규전은 오십 묘요, 장정으로 (정식 농토를 받지 못한) 남은 사내에게는 이십오 묘를 준다. 죽거나 이사하여도 마을을 벗어나지 않게 하고, 마을 밭이 같은 정(井)에 있어 드나들 때 서로 벗하고 지키고 망볼 때 서로 돕고 병들 때 서로 부축하면 백성이 친목한다. 사방 일 리가 정(井)이 되니, 정은 구백 묘로 그 가운데가 공전(公田)이다. 여덟 집이 모두 사전(私田) 백 묘씩 가지며 함께 공전을 가꾼다. 공사가 끝난 뒤에야 감히 사사로운 일을 다스리니, 이로써 야인을 구별한다. 이것이 그 대략이다. 무릇 윤택하게 함은 임금과 그대에게 달려 있다."

4장

신농(神農)의 말을 하는 자 허행(許行)이 초나라에서 등나라로 와서, 문에 이르러 문공에게 아뢰었다. "먼 데 사람이 임금께서 어진 정치를 행하신다는 말을 듣고, 한 집터를 얻어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문공이 그에게 거처를 주었다. 그 무리 수십 명이 모두 거친 베옷을 입고 짚신을 삼고 자리를 짜서 먹고살았다.

진량(陳良)의 무리 진상(陳相)이 그 아우 신(辛)과 함께 쟁기와 보습을 지고 송나라에서 등나라로 와서 말하였다. "임금께서 성인의 정치를 행하신다 하니, 이 또한 성인이십니다. 성인의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진상이 허행을 보고 크게 기뻐하여 그 배운 것을 모두 버리고 그에게 배웠다.

진상이 맹자를 보고 허행의 말을 전하여 말하였다. "등나라 임금은 참으로 어진 임금이나, 그래도 도를 듣지는 못하였습니다. 어진 이는 백성과 더불어 함께 밭 갈아 먹고, 손수 밥 지어 먹으며 다스립니다. 지금 등나라에 창고와 곳간이 있으니, 이는 백성을 괴롭혀 자기를 기르는 것이라 어찌 어질다 하겠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허자(許子)는 반드시 곡식을 심은 뒤에 먹는가?"

진상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허자는 반드시 베를 짠 뒤에 입는가?"

"아닙니다. 허자는 거친 베옷을 입습니다."

"허자는 갓을 쓰는가?"

"갓을 씁니다."

"무슨 갓을 쓰는가?"

"흰 갓을 씁니다."

"스스로 짜는가?"

"아닙니다. 곡식으로 바꿉니다."

"허자는 어찌 스스로 짜지 않는가?"

"밭 가는 데 방해되기 때문입니다."

"허자는 가마솥과 시루로 밥 짓고 쇠붙이로 밭 가는가?"

"그렇습니다."

"스스로 만드는가?"

"아닙니다. 곡식으로 바꿉니다."

"곡식으로 기계와 그릇을 바꾸는 것이 옹기장이와 대장장이를 괴롭히지 않는다면, 옹기장이와 대장장이도 그 기계와 그릇으로 곡식을 바꾸는 것이 어찌 농부를 괴롭히는 것이겠는가? 또 허자는 어찌 옹기 굽고 쇠 불리는 일을 하여 모두 그 집안에서 취하여 쓰지 않고, 어찌 어지러이 온갖 장인과 더불어 바꾸는가? 어찌 허자는 번거로움을 꺼리지 않는가?"

"온갖 장인의 일은 본디 밭 갈면서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만 유독 밭 갈면서 함께할 수 있는가? 대인(大人)의 일이 있고 소인(小人)의 일이 있다. 또 한 사람의 몸에 온갖 장인이 만든 것이 갖추어지니, 만일 반드시 스스로 만든 뒤에 쓴다면 이는 천하를 거느려 분주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는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어떤 이는 힘을 수고롭게 한다.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으니,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 자는 남을 먹이고 남을 다스리는 자는 남에게서 얻어먹는다'고 하니, 이는 천하에 통하는 의리이다.

요(堯)의 때를 당하여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못하여, 홍수가 멋대로 흘러 천하에 범람하고 초목이 무성하고 짐승이 번식하며 오곡이 익지 못하고 짐승이 사람을 핍박하여, 짐승의 발자국과 새의 자취가 나라 가운데 어지러웠다. 요가 홀로 이를 근심하여 순을 등용해 다스리게 하였다. 순이 익(益)을 시켜 불을 맡게 하니, 익이 산과 못을 불태우자 짐승이 도망쳐 숨었다. 우(禹)가 아홉 강을 트고 제수(濟)와 탑수(漯)를 터서 바다로 흘려보내며, 여수(汝)와 한수(漢)를 트고 회수(淮)와 사수(泗)를 밀어내어 강(江)으로 흘려보낸 뒤에야 나라 가운데가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때를 당하여 우가 팔 년을 밖에 있으면서 세 번 그 문을 지나도 들어가지 않았으니, 비록 밭 갈고자 한들 할 수 있었겠는가?

후직(后稷)이 백성에게 농사를 가르쳐 오곡을 심고 가꾸니, 오곡이 익어 백성이 길러졌다. 사람의 도리는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고 편안히 거하면서 가르침이 없으면 짐승에 가까워진다. 성인이 이를 근심하여 설(契)을 사도(司徒)로 삼아 인륜(人倫)으로 가르쳤으니, 부자에게는 친함이 있고(父子有親), 군신에게는 의가 있고(君臣有義), 부부에게는 분별이 있고(夫婦有別), 어른과 아이에게는 차례가 있고(長幼有序), 벗에게는 신의가 있게(朋友有信) 하였다. 방훈(放勛·요)이 '수고롭게 하고 오게 하며, 바로잡고 곧게 하며, 돕고 도와 스스로 얻게 하고, 또 따라서 떨쳐 일으켜 은덕을 베풀라' 하였다. 성인이 백성을 근심함이 이와 같으니, 밭 갈 겨를이 있었겠는가?

요는 순을 얻지 못함을 자기 근심으로 삼았고, 순은 우와 고요(皋陶)를 얻지 못함을 자기 근심으로 삼았다. 무릇 백 묘를 다스리지 못함을 자기 근심으로 삼는 자는 농부이다. 남에게 재물을 나누어 줌을 은혜(惠)라 하고, 남에게 선을 가르침을 충(忠)이라 하며, 천하를 위하여 인재를 얻음을 인(仁)이라 한다. 그러므로 천하를 남에게 주기는 쉬우나 천하를 위하여 인재를 얻기는 어렵다. 공자께서 '위대하도다, 요의 임금 됨이여! 오직 하늘이 크거늘 오직 요가 그를 본받으셨으니, 넓고 넓어 백성이 능히 이름하지 못하는도다. 임금답도다, 순이여! 높고 높아 천하를 가지고도 관여하지 않으셨도다' 하셨다. 요·순이 천하를 다스림에 어찌 마음 쓸 데가 없었으랴마는, 다만 밭 가는 데 쓰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중화(夏)로써 오랑캐(夷)를 변화시켰다는 말은 들었어도, 오랑캐에게 변화되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진량(陳良)은 초나라 태생인데 주공·공자의 도를 기뻐하여 북쪽으로 와서 중국에서 배웠는데, 북방의 학자가 능히 그를 앞서지 못하였으니, 그는 이른바 호걸의 선비였다. 그대의 형제가 그를 수십 년 섬기다가 스승이 죽자 마침내 배반하였다. 옛날 공자께서 돌아가시자 삼 년이 지난 뒤에 문인들이 짐을 꾸려 돌아가려 하면서 자공에게 들어가 읍하고 서로 향하여 곡하다가 모두 목이 쉰 뒤에 돌아갔다. 자공은 돌아와 마당에 집을 짓고 홀로 삼 년을 더 거한 뒤에 돌아갔다. 다른 날 자하·자장·자유가 유약(有若)이 성인을 닮았다 하여 공자 섬기던 예로 그를 섬기고자 증자에게 강권하니, 증자께서 '안 된다. 강수와 한수로 씻고 가을볕에 쪼인 듯이 희고 희어 더할 수 없다' 하셨다. 지금 남쪽 오랑캐의 왜가리 같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 선왕의 도가 아니거늘, 그대가 그대의 스승을 배반하고 그에게 배우니, 또한 증자와 다르다. 나는 깊은 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로 옮긴다는 말은 들었어도, 높은 나무에서 내려와 깊은 골짜기로 들어간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노송(魯頌)》에 '융적(戎狄)을 치고 형서(荊舒)를 징벌한다' 하였으니, 주공도 바야흐로 이를 쳤거늘, 그대가 이를 배우니 또한 잘 변화하지 못한 것이다.

(진상이 말하기를) '허자의 도를 따르면 시장 값이 두 가지가 아니어서 나라 가운데 거짓이 없고, 비록 다섯 자 어린아이를 시장에 보내더라도 그를 속이는 자가 없습니다. 베와 비단의 길이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고, 삼과 실과 솜의 무게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으며, 오곡의 양이 같으면 값이 서로 같고, 신의 크기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무릇 물건이 가지런하지 않음은 물건의 실정이다. 어떤 것은 서로 배나 다섯 배 차이가 나고, 어떤 것은 서로 열 배 백 배 차이가 나며, 어떤 것은 서로 천 배 만 배 차이가 난다. 그대가 나란히 늘어놓아 같게 하니, 이는 천하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큰 신과 작은 신이 값이 같으면 사람이 어찌 (큰 신을) 만들겠는가? 허자의 도를 따르면 서로 이끌어 거짓을 행하게 되니, 어찌 능히 국가를 다스리겠는가?"

5장

묵가(墨者) 이지(夷之)가 서벽(徐辟)을 통하여 맹자 뵙기를 구하였다. 맹자가 말하였다. "내 본디 만나고자 하나 지금 내가 아직 병중이니, 병이 나으면 내 장차 가서 보겠다. 이자(夷子)는 오지 말라."

다른 날 또 맹자 뵙기를 구하였다. 맹자가 말하였다. "내 이제는 만날 수 있다. 곧게 말하지 않으면 도가 드러나지 않으니, 내 곧게 말하겠다. 내 들으니 이자는 묵자(墨者)인데, 묵자가 상(喪)을 다스림은 박하게 함을 도로 삼는다. 이자는 이로써 천하를 바꾸려 하니, 어찌 (박함을) 그르다 여겨 귀히 여기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자가 그 어버이를 후하게 장사 지냈으니, 이는 천히 여기는 바로써 어버이를 섬긴 것이다."

서자(徐子)가 이를 이자에게 아뢰었다.

이자가 말하였다. "유자(儒者)의 도에 옛사람이 '갓난아이 보호하듯 한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무엇을 이름인가? 나는 사랑에 차등이 없되 베풂은 어버이로부터 시작한다고 여긴다."

서자가 이를 맹자께 아뢰었다.

맹자가 말하였다. "무릇 이자는 참으로 사람이 그 형의 아들을 친애함이 그 이웃의 갓난아이를 친애함과 같다고 여기는가? 저 말은 (다른) 취한 바가 있다. 갓난아이가 기어서 우물에 빠지려는 것은 갓난아이의 죄가 아니다. 또 하늘이 만물을 냄에 근본을 하나로 하였거늘, 이자는 근본을 둘로 하기 때문이다. 무릇 옛적에 그 어버이를 장사 지내지 않은 자가 있어, 그 어버이가 죽으면 들어다 구렁에 버렸다. 다른 날 그곳을 지나는데 여우와 살쾡이가 먹고 파리와 모기가 빨고 있었다. 그 이마에 진땀이 나서 곁눈질하며 차마 보지 못하였으니, 무릇 진땀이 남은 남을 위하여 난 것이 아니라 속마음이 얼굴에 드러난 것이다. 아마 돌아가 삼태기와 가래를 가지고 와서 흙으로 덮었을 것이니, 흙으로 덮는 것이 진실로 옳다면 효자와 인인(仁人)이 그 어버이를 흙으로 덮음에도 반드시 도리가 있을 것이다."

서자가 이를 이자에게 아뢰니, 이자가 멍하니 한참 있다가 말하였다. "나를 가르쳐 주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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