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06 등문공하(滕文公下)
자기를 굽혀 남을 펴는 것의 그름, 부귀·빈천·위무에 흔들리지 않는 대장부(大丈夫)의 정의, 벼슬의 도리, 탕(湯)의 정벌이 보여주는 왕정의 정당성을 다룬다. 후반부에서는 일치일란(一治一亂)의 역사관을 펴며 양주(楊朱)·묵적(墨翟)을 배척하는 맹자의 호변(好辯)의 뜻을 밝힌다.
핵심 구절 — 원문과 번역
富貴不能淫,貧賤不能移,威武不能屈──此之謂大丈夫。
(부귀가 능히 음란케 하지 못하고, 빈천이 능히 옮기지 못하며, 위무가 능히 굽히지 못하니, 이를 대장부라 한다.)
枉己者,未有能直人者也。
(자기를 굽힌 자가 능히 남을 곧게 한 적은 없다.)
天下之生久矣,一治一亂。
(천하가 생긴 지 오래이니, 한 번 다스려지고 한 번 어지러워졌다.)
予豈好辯哉?予不得已也。
(내 어찌 변론을 좋아하겠는가? 내 부득이함이다.)
번역
1장
진대(陳代)가 말하였다. "제후를 만나지 않으심은 작은 일에 구애되는 듯합니다. 지금 한번 만나시면 크게는 왕업을, 작게는 패업을 이루실 것입니다. 또 《지(志)》에 '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편다(枉尺而直尋)'고 하였으니, 해볼 만한 듯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옛날 제경공이 사냥할 때 우인(虞人·사냥터지기)을 깃발로 불렀는데 오지 않자 죽이려 하였다. (공자께서 칭찬하시기를) '뜻 있는 선비는 (의를 지키다) 구렁에 버려질 것을 잊지 않고, 용맹한 선비는 그 머리를 잃을 것을 잊지 않는다' 하셨으니, 공자께서 무엇을 취하셨는가? 그 부름이 (예에 맞지 않으면) 가지 않음을 취하신 것이다. 만일 그 부름을 기다리지 않고 간다면 어떻겠는가? 또 무릇 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편다는 것은 이익으로 말한 것이다. 만일 이익으로 한다면 여덟 자를 굽혀 한 자를 펴도 이익이라면 또한 해도 되겠는가? 옛날 조간자(趙簡子)가 왕량(王良)에게 폐해(嬖奚)와 함께 수레를 몰게 하였는데, 종일토록 짐승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폐해가 복명하여 '천하의 솜씨 없는 마부입니다' 하였다. 어떤 이가 이를 왕량에게 일러주니, 왕량이 '다시 하기를 청합니다' 하였다. 강권한 뒤에야 (폐해가) 응하니, 하루아침에 열 마리를 잡았다. 폐해가 복명하여 '천하의 솜씨 좋은 마부입니다' 하였다. 간자가 '내 그로 하여금 그대와 함께 수레를 몰게 하리라' 하고 왕량에게 일렀다. 왕량이 안 된다 하며 '내 그를 위하여 법대로 달렸더니 종일토록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고, 그를 위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만났더니 하루아침에 열 마리를 잡았습니다. 《시경》에 「그 법도를 잃지 않으니 화살을 쏘면 깨뜨리듯 한다」 하였습니다. 나는 소인과 함께 수레 모는 데 익숙하지 않으니, 청컨대 사양합니다' 하였다. 마부도 활 쏘는 자에게 영합함을 부끄러워하여, 영합하여 짐승을 언덕만큼 잡더라도 하지 않았다. 만일 도를 굽혀 저들을 좇는다면 어떻겠는가? 또 그대가 틀렸다. 자기를 굽힌 자가 능히 남을 곧게 한 적은 없다."
2장
경춘(景春)이 말하였다. "공손연(公孫衍)과 장의(張儀)는 어찌 참으로 대장부가 아니겠습니까? 한번 노하면 제후가 두려워하고, 가만히 거하면 천하가 잠잠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이것이 어찌 대장부가 되겠는가? 그대는 예(禮)를 배우지 못하였는가? 장부가 관례할 때 아버지가 명하고, 여자가 시집갈 때 어머니가 명하며 문에서 보내면서 경계하기를 '네 시집에 가거든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삼가서 남편을 거스르지 말라' 하니, 순종을 바름으로 삼는 것은 부녀자(妾婦)의 도리이다. 천하의 넓은 집(廣居·仁)에 거하고 천하의 바른 자리(正位·禮)에 서며 천하의 큰 길(大道·義)을 행하여, 뜻을 얻으면 백성과 더불어 함께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하며, 부귀가 능히 음란케 하지 못하고 빈천이 능히 옮기지 못하며 위무(威武)가 능히 굽히지 못하는 것, 이를 대장부라 한다."
3장
주소(周霄)가 물었다. "옛 군자는 벼슬하였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벼슬하였다. 전하는 기록에 '공자께서는 석 달 동안 섬길 임금이 없으면 안절부절못하셨고, 국경을 나설 때 반드시 폐백(質)을 싣고 가셨다' 하였고, 공명의는 '옛사람은 석 달 동안 섬길 임금이 없으면 위로하였다' 하였다."
"석 달 동안 섬길 임금이 없다고 위로함은 너무 급하지 않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선비가 지위를 잃음은 제후가 나라를 잃음과 같다. 《예(禮)》에 '제후는 (직접) 밭 갈아 (백성의) 도움으로 제수를 마련하고, 부인은 누에 치고 실 뽑아 제복을 만든다. 희생이 자라지 못하고 제수가 깨끗하지 못하며 의복이 갖추어지지 못하면 감히 제사 지내지 못한다. 오직 선비가 (제사 지을) 밭이 없으면 또한 제사 지내지 못한다' 하였으니, 희생과 그릇과 의복이 갖추어지지 못하여 감히 제사 지내지 못하면 감히 잔치도 하지 못하니, 또한 위로할 만하지 않은가?"
"국경을 나설 때 반드시 폐백을 싣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선비가 벼슬함은 농부가 밭 가는 것과 같으니, 농부가 어찌 국경을 나선다고 그 쟁기와 보습을 버리겠는가?"
"진(晉)나라도 벼슬하는 나라이나, 일찍이 벼슬을 이처럼 급하게 한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벼슬을 이처럼 급하게 여기면서도 군자가 벼슬하기를 어려워함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장부가 태어나면 그를 위하여 아내를 두기를 바라고, 여자가 태어나면 그를 위하여 남편을 두기를 바라니, 부모의 마음은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부모의 명과 중매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구멍을 뚫어 서로 엿보고 담을 넘어 서로 따른다면, 부모와 나라 사람이 모두 천히 여긴다. 옛사람이 일찍이 벼슬하고자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또한 그 도(道)로 말미암지 않음을 미워하였다. 그 도로 말미암지 않고 가는 것은 구멍을 뚫는 것과 같은 종류이다."
4장
팽경(彭更)이 물었다. "뒤따르는 수레 수십 대와 따르는 사람 수백 명으로 제후에게 밥을 얻어먹으니,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그 도가 아니면 한 그릇 밥도 남에게서 받을 수 없으나, 그 도라면 순이 요의 천하를 받고도 지나치다 여기지 않았으니, 그대는 이를 지나치다 여기는가?"
"아닙니다. 선비가 하는 일 없이 먹는 것이 옳지 않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대가 공(功)을 통하고 일을 바꾸어 남는 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태지 않으면, 농부에게는 남는 곡식이 있고 여자에게는 남는 베가 있을 것이다. 그대가 만일 이를 통하게 하면 목수와 수레 만드는 자가 모두 그대에게서 얻어먹을 수 있다. 여기 어떤 사람이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경하며 선왕의 도를 지켜 뒤에 올 배우는 자를 기다리는데도 그대에게서 얻어먹지 못한다면, 그대는 어찌 목수와 수레 만드는 자는 높이고 인의(仁義)를 행하는 자는 가벼이 여기는가?"
"목수와 수레 만드는 자는 그 뜻이 장차 밥을 구하려는 것이거니와, 군자가 도를 행함은 그 뜻 또한 장차 밥을 구하려는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 그 뜻을 따지는가? 그가 그대에게 공이 있어 먹일 만하면 먹이는 것이다. 또 그대는 뜻을 먹이는가, 공을 먹이는가?"
"뜻을 먹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여기 어떤 사람이 기왓장을 깨뜨리고 담장에 함부로 그림을 그리되 그 뜻이 장차 밥을 구하려는 것이라면, 그대는 그를 먹이겠는가?"
"아닙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대는 뜻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공을 먹이는 것이다."
5장
만장(萬章)이 물었다. "송(宋)은 작은 나라인데 지금 장차 왕정을 행하려 하니, 제·초가 미워하여 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탕(湯)이 박(亳)에 거할 때 갈(葛)과 이웃하였다. 갈백(葛伯)이 방자하여 제사 지내지 않으니, 탕이 사람을 보내어 '어찌 제사 지내지 않는가?' 물으니, '희생으로 바칠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탕이 소와 양을 보내었으나 갈백이 이를 먹고 또 제사 지내지 않았다. 탕이 또 사람을 보내어 '어찌 제사 지내지 않는가?' 물으니, '제수로 바칠 곡식이 없습니다' 하였다. 탕이 박의 백성을 보내어 그를 위해 밭 갈게 하고 노약자가 밥을 날랐다. 갈백이 그 백성을 거느려 술과 밥과 기장과 벼를 가진 자를 막아 빼앗고 주지 않는 자는 죽였다. 어떤 동자가 기장과 고기를 날랐는데 그를 죽이고 빼앗았다. 《서경》에 '갈백이 밥 나르는 자를 원수로 여겼다'고 함이 이를 이름이다. 그 동자를 죽였으므로 정벌하니, 사해 안이 모두 '천하를 탐함이 아니라 필부필부(匹夫匹婦)를 위하여 원수를 갚음이다'라 하였다. 탕이 정벌을 시작하되 갈에서 비롯하여, 열한 번 정벌하되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었다. 동쪽을 향해 정벌하면 서쪽 오랑캐가 원망하고 남쪽을 향해 정벌하면 북쪽 오랑캐가 원망하며 '어찌 우리를 뒤로 하는가?' 하였다. 백성이 그를 바라기를 큰 가뭄에 비를 바라듯 하여, 시장에 가는 자가 멈추지 않고 김매는 자가 변치 않았다. 그 임금을 베고 그 백성을 위로함이 때맞춰 비가 내리는 것 같아 백성이 크게 기뻐하였다. 《서경》에 '우리 임금을 기다리니, 임금께서 오시면 벌이 없으리라' 하였다. '신하 노릇 하지 않는 자가 있거늘 동쪽을 정벌하여 그 사녀(士女)를 편안케 하니, 검은 비단과 누런 비단을 광주리에 담아 우리 주왕(周王)을 뵙고 아름다움을 잇고자 큰 나라 주에 신하로 붙는다' 하였다. 그 군자(귀족)는 검은 비단과 누런 비단을 광주리에 담아 그 군자를 맞이하고, 그 소인(백성)은 대그릇 밥과 병에 든 음료로 그 소인을 맞이하였으니, 백성을 물과 불 가운데서 건지고 그 잔악한 자를 취하였을 뿐이다. 《태서(太誓)》에 '우리 무위(武威)를 떨쳐 (적의) 강토에 쳐들어가 그 잔악한 자를 취하니, 죽이고 침이 크게 펼쳐져 탕보다 빛나도다' 하였다. (송나라가) 왕정을 행하지 않을 뿐이지, 진실로 왕정을 행하면 사해 안이 모두 머리를 들어 바라보며 임금으로 삼고자 할 것이니, 제·초가 비록 크다 한들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6장
맹자가 대불승(戴不勝)에게 일러 말하였다. "그대는 그대의 왕이 선해지기를 바라는가? 내 그대에게 분명히 말하겠다. 여기 초나라 대부가 있어 그 아들이 제나라 말을 하기를 바란다면, 제나라 사람으로 가르치게 하겠는가, 초나라 사람으로 가르치게 하겠는가?"
"제나라 사람으로 가르치게 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한 제나라 사람이 가르치는데 여러 초나라 사람이 떠들어대면, 비록 날마다 매질하며 제나라 말 하기를 구하여도 될 수 없다. 그를 데려다 장악(莊岳) 사이(제나라 번화가)에 몇 해를 두면, 비록 날마다 매질하며 초나라 말 하기를 구하여도 될 수 없다. 그대가 설거주(薛居州)를 선한 선비라 하여 왕의 처소에 거하게 하니, 왕의 처소에 있는 자가 나이 많고 적고 지위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두 설거주 같다면 왕이 누구와 더불어 선하지 않은 일을 하겠는가? 왕의 처소에 있는 자가 나이 많고 적고 지위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두 설거주 같지 않다면 왕이 누구와 더불어 선한 일을 하겠는가? 한 설거주가 홀로 송왕(宋王)을 어찌하겠는가?"
7장
공손추가 물었다. "제후를 만나지 않으심은 무슨 의리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옛날에는 신하가 되지 않으면 만나지 않았다. 단간목(段干木)은 담을 넘어 피하였고, 설류(泄柳)는 문을 닫고 들이지 않았으니, 이는 모두 너무 심하다. 절박하면 만날 수 있다. 양화(陽貨)가 공자를 만나고자 하되 무례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하였다. 대부가 선비에게 물건을 보냈을 때 (선비가) 자기 집에서 받지 못하면 그 문에 가서 절하는 (예가 있었다). 양화가 공자가 없는 틈을 엿보아 공자께 삶은 돼지를 보내니, 공자께서도 그가 없는 틈을 엿보아 가서 절하셨다. 이때에 양화가 먼저 (예를) 행하였으니, 어찌 만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증자께서 '어깨를 움츠리고 아첨하며 웃는 것은 여름날 밭일하는 것보다 괴롭다' 하셨고, 자로가 '뜻이 같지 않은데 말하면서 그 낯빛을 보면 부끄러워 붉어지니, 이는 내(由)가 알 바가 아니다' 하였다. 이로 보건대 군자가 기르는 바를 알 수 있다."
8장
대영지(戴盈之)가 말하였다. "10분의 1 세법과 관문·시장의 세금 폐지를 올해는 능히 할 수 없으니, 청컨대 가볍게 하여 내년을 기다린 뒤에 그만두려 하니 어떻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지금 날마다 그 이웃의 닭을 훔치는 자가 있어, 어떤 이가 '이는 군자의 도가 아니다' 하니, '청컨대 줄여서 달마다 한 마리씩 훔치다가 내년을 기다린 뒤에 그만두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만일 그 의롭지 못함을 안다면 속히 그만둘 것이지, 어찌 내년을 기다리는가?"
9장
공도자(公都子)가 말하였다. "바깥 사람들이 모두 선생님을 변론 좋아한다 하니, 감히 묻건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내 어찌 변론을 좋아하겠는가? 내 부득이함이다. 천하가 생긴 지 오래이니, 한 번 다스려지고 한 번 어지러워졌다. 요의 때를 당하여 물이 거꾸로 흘러 나라 가운데 범람하고 뱀과 용이 거하여 백성이 정착할 데가 없어, 낮은 데 사는 자는 둥지를 틀고 높은 데 사는 자는 굴을 팠다. 《서경》에 '강수(洚水)가 나를 경계한다' 하였으니, 강수란 홍수이다. 우(禹)를 시켜 다스리게 하니, 우가 땅을 파서 바다로 흘려보내고 뱀과 용을 몰아 늪으로 내쫓았다. 물이 땅 가운데로 흐르니 강·회·하·한이 그것이다. 험하고 막힌 것이 이미 멀어지고 새와 짐승이 사람을 해침이 사라진 뒤에야 사람이 평지를 얻어 거하였다.
요·순이 돌아가시자 성인의 도가 쇠하였다. 포악한 임금이 대대로 나와, 궁실을 헐어 못을 만드니 백성이 편안히 쉴 데가 없고, 밭을 버려 동산을 만드니 백성이 입고 먹을 것을 얻지 못하였다. 사악한 말과 포악한 행실이 또 일어나고, 동산과 못과 늪이 많아져 짐승이 이르렀다. 주(紂)의 대에 이르러 천하가 또 크게 어지러웠다. 주공이 무왕을 도와 주를 베고 엄(奄)을 치며 삼 년 동안 그 임금을 토벌하고, 비렴(飛廉)을 바닷가로 몰아 죽이며 나라 멸한 것이 쉰이요, 범과 표범과 무소와 코끼리를 몰아 멀리 내쫓으니 천하가 크게 기뻐하였다. 《서경》에 '크게 드러났도다 문왕의 계책이여, 크게 이으셨도다 무왕의 공렬이여, 우리 후인을 도와 열어주시되 모두 바르고 결함이 없게 하셨도다' 하였다.
세상이 쇠하고 도가 미약하여 사악한 말과 포악한 행실이 또 일어나, 신하가 그 임금을 시해하는 일이 있고 자식이 그 아비를 시해하는 일이 있었다. 공자께서 두려워하여 《춘추(春秋)》를 지으셨다. 《춘추》는 천자의 일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나를 알아주는 것도 오직 《춘추》요, 나를 죄주는 것도 오직 《춘추》로다' 하셨다.
성왕이 나오지 않아 제후가 방자하고 처사(處士)가 멋대로 논의하여, 양주(楊朱)·묵적(墨翟)의 말이 천하에 가득 찼다. 천하의 말이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에게 돌아갔다. 양씨는 자기만 위하니(爲我) 이는 임금이 없는 것이요, 묵씨는 똑같이 사랑하니(兼愛) 이는 아비가 없는 것이다. 아비가 없고 임금이 없으면 이는 짐승이다. 공명의가 '푸줏간에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 살진 말이 있는데 백성에게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는 짐승을 몰아다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이다' 하였다. 양·묵의 도가 그치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드러나지 못하니, 이는 사악한 말이 백성을 속여 인의(仁義)를 가로막는 것이다. 인의가 가로막히면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다가 사람이 장차 서로 잡아먹게 된다. 내 이를 두려워하여 선성(先聖)의 도를 지키고 양·묵을 막으며 음란한 말을 몰아내어, 사악한 말 하는 자가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사악함이) 그 마음에서 일어나면 그 일에 해를 끼치고, 그 일에서 일어나면 그 정치에 해를 끼친다. 성인이 다시 나오셔도 내 말을 바꾸지 않으실 것이다.
옛날 우가 홍수를 다스리니 천하가 평정되었고, 주공이 오랑캐를 아우르고 사나운 짐승을 몰아내니 백성이 편안하였으며, 공자가 《춘추》를 이루니 난신적자(亂臣賊子)가 두려워하였다. 《시경》에 '융적을 치고 형서를 징벌하니 나를 감히 당할 자 없도다' 하였다. 아비가 없고 임금이 없음은 주공도 치신 바이다. 나도 또한 인심을 바로잡고 사악한 말을 그치게 하며 편벽된 행실을 막고 음란한 말을 몰아내어 세 성인(우·주공·공자)을 잇고자 한다. 어찌 변론을 좋아하겠는가? 내 부득이함이다. 능히 말로써 양·묵을 막는 자는 성인의 무리이다."
10장
광장(匡章)이 말하였다. "진중자(陳仲子)는 어찌 참으로 청렴한 선비가 아니겠습니까? 오릉(於陵)에 거할 때 사흘을 먹지 못하여 귀에 들리는 것이 없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우물가에 자두가 있어 굼벵이가 절반 넘게 파먹은 것을, 기어가서 먹어 세 번 삼킨 뒤에야 귀에 들림이 있고 눈에 보임이 있었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제나라의 선비 가운데 나는 반드시 중자를 으뜸으로 친다. 그러나 중자가 어찌 청렴하다 하겠는가? 중자의 지조를 채우려면 지렁이가 된 뒤에야 가능하다. 무릇 지렁이는 위로는 마른 흙을 먹고 아래로는 누런 샘물을 마신다. 중자가 거하는 집은 백이(伯夷)가 지은 것인가, 아니면 도척(盜跖)이 지은 것인가? 먹는 곡식은 백이가 심은 것인가, 아니면 도척이 심은 것인가? 이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광장이 말하였다. "그것이 무슨 해가 됩니까? 그는 손수 신을 삼고 아내가 길쌈하여 (그것으로 양식을) 바꿉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중자는 제나라의 세가(世家)이다. 형 대(戴)가 합(蓋)에서 받는 녹이 만 종(鍾)인데, 형의 녹을 의롭지 못한 녹이라 하여 먹지 않고, 형의 집을 의롭지 못한 집이라 하여 거하지 않으며, 형을 피하고 어미를 떠나 오릉에 거하였다. 다른 날 (집에) 돌아오니 그 형에게 산 거위를 선물한 자가 있었는데, 이맛살을 찌푸리며 '이 꽥꽥거리는 것을 어디에 쓰랴' 하였다. 다른 날 그 어미가 이 거위를 잡아 함께 먹는데, 그 형이 밖에서 와서 '이것이 꽥꽥거리던 고기다' 하니, (중자가) 나가서 토하였다. 어미의 것이면 먹지 않고 아내의 것이면 먹으며, 형의 집이면 거하지 않고 오릉이면 거하니, 이러고도 능히 그 부류(지조)를 채울 수 있겠는가? 중자 같은 자는 지렁이가 된 뒤에야 그 지조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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