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09 만장상(萬章上)
《맹자》 〈만장상〉 편의 전문 완역이다. 제자 만장 등과의 문답으로, 주로 순임금의 효, 천하를 물려주는 일(천명과 선양), 이윤·백리해 등 옛 성현에 관한 잘못된 전승을 바로잡는 내용을 다룬다. 총 9장.
번역
1장
만장이 물었다. "순임금이 밭에 가서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하니, 어찌하여 울부짖은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원망하면서도 사모한 것이다."
만장이 말하였다. "'부모가 사랑하면 기뻐하며 잊지 않고, 부모가 미워하면 더욱 애쓰며 원망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순임금이 원망한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장식(長息)이 공명고(公明高)에게 물었다. '순임금이 밭에 간 일은 제가 이미 가르침을 들었거니와, 하늘과 부모를 향해 울부짖은 일은 제가 알지 못하겠습니다.' 공명고가 말하였다. '이는 네가 알 바가 아니다.' 무릇 공명고는 효자의 마음이 그처럼 무심할 수는 없다고 여긴 것이다. 순임금은 '내가 힘을 다해 밭을 갈아 자식 된 직분을 다할 따름이지,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음은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인가'라고 한 것이다. 요임금이 그 자식인 아홉 아들과 두 딸로 하여금 백관과 소·양·창고를 갖추어 밭 가운데서 순임금을 섬기게 하니, 천하의 선비가 많이 그에게 나아갔고, 요임금이 장차 천하를 그에게 옮겨 주려 하였다. 그러나 부모에게 순하지 못한 까닭에 마치 곤궁한 사람이 돌아갈 곳 없는 듯이 여겼다. 천하의 선비가 좋아함은 사람이 바라는 바이건만 근심을 풀기에 부족하였고, 아름다운 여인은 사람이 바라는 바이건만 요임금의 두 딸을 아내로 맞고도 근심을 풀기에 부족하였으며, 부귀는 사람이 바라는 바이건만 천하를 부유하게 소유하고도 근심을 풀기에 부족하였고, 귀함은 사람이 바라는 바이건만 천자가 되는 귀함으로도 근심을 풀기에 부족하였다. 사람들이 좋아함과 아름다운 여인과 부귀로도 근심을 풀 수 없었으니, 오직 부모에게 순한 것만이 근심을 풀 수 있었다. 사람은 어려서는 부모를 사모하고, 여색을 알면 젊고 예쁜 여인을 사모하며, 처자가 있으면 처자를 사모하고, 벼슬하면 임금을 사모하며, 임금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애가 탄다. 큰 효도는 평생토록 부모를 사모하는 것이니, 쉰 살이 되도록 사모한 자를 나는 위대한 순임금에게서 보았다."
2장
만장이 물었다. "《시》에 이르기를 '아내를 맞이하려면 어찌해야 하나? 반드시 부모에게 고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이 말대로라면 순임금처럼 한 이가 없어야 마땅한데, 순임금이 고하지 않고 장가든 것은 어찌해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고하면 장가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녀가 한방에 사는 것은 사람의 큰 윤리이다. 만일 고하였다면 사람의 큰 윤리를 폐하여 부모를 원망하게 되었을 것이므로 고하지 않은 것이다."
만장이 말하였다. "순임금이 고하지 않고 장가든 일은 제가 이미 가르침을 들었습니다만, 요임금이 순에게 딸을 시집보내면서 그 부모에게 고하지 않은 것은 어찌해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요임금도 고하면 시집보낼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만장이 말하였다. "부모가 순을 시켜 곳간을 손질하게 하고는 사다리를 치우고 고수(瞽瞍, 순의 아버지)가 곳간에 불을 질렀습니다. 우물을 파게 하고는 순이 빠져나온 줄도 모르고 그를 덮어 묻으려 하였습니다. 상(象, 순의 이복동생)이 말하기를 '도군(都君, 순)을 덮어 묻을 꾀를 낸 것은 모두 내 공이다. 소와 양은 부모께, 창고는 부모께, 방패와 창은 내가, 거문고는 내가, 활은 내가 차지하고, 두 형수는 나의 잠자리를 돌보게 하리라' 하고는, 상이 순의 집에 들어가니 순이 평상에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습니다. 상이 말하기를 '답답하게 그대를 그리워하였소' 하면서 머쓱해하였습니다. 순이 말하기를 '이 신하와 백성들을 네가 나를 위해 다스려다오' 하였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순은 상이 장차 자기를 죽이려 한 것을 몰랐던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어찌 몰랐겠는가. 상이 근심하면 순도 근심하고, 상이 기뻐하면 순도 기뻐한 것이다."
만장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순이 거짓으로 기뻐한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정나라 자산(子産)에게 산 물고기를 보내자, 자산이 연못지기에게 못에 기르게 하였다. 연못지기가 그것을 삶아 먹고 와서 보고하기를 '처음 놓아주었을 때는 비실비실하더니, 조금 지나자 활기차게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하였다. 자산이 말하기를 '제 살 곳을 얻었구나, 제 살 곳을 얻었구나' 하였다. 연못지기가 나와서 말하기를 '누가 자산을 지혜롭다 하는가. 내가 이미 삶아 먹었는데도 「제 살 곳을 얻었구나, 제 살 곳을 얻었구나」 하는구나' 하였다. 그러므로 군자는 도리에 맞는 방법으로는 속일 수 있어도, 도리가 아닌 방법으로는 속이기 어렵다. 상이 형을 사랑하는 도리로 왔기에 순이 진실로 믿고 기뻐한 것이지, 어찌 거짓이겠는가."
3장
만장이 물었다. "상이 날마다 순을 죽이는 것을 일삼았는데, 순이 천자가 되어서는 그를 추방하기만 한 것은 어찌해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그를 봉(封)해 준 것인데, 어떤 이는 추방했다고 한다."
만장이 말하였다. "순이 공공(共工)을 유주(幽州)로 유배하고, 환두(驩兜)를 숭산(崇山)으로 추방하고, 삼묘(三苗)를 삼위(三危)에서 죽이고, 곤(鯀)을 우산(羽山)에서 처형하니, 네 죄인을 처벌하자 천하가 모두 복종하였습니다. 어질지 못한 자를 처벌한 것입니다. 상은 지극히 어질지 못한데도 유비(有庳)에 봉하였으니, 유비의 백성이 무슨 죄입니까? 어진 사람이 진실로 이와 같습니까? 남에게는 처벌하면서 동생에게는 봉해 주다니요."
맹자가 말하였다. "어진 사람은 동생에 대하여 노여움을 감추지 않고 원망을 묵히지 않으며, 친애할 따름이다. 친히 하면 그가 귀해지기를 바라고, 사랑하면 그가 부유해지기를 바란다. 그를 유비에 봉한 것은 그를 부귀하게 한 것이다. 자신은 천자가 되었는데 동생이 필부라면 친애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감히 묻건대 '어떤 이는 추방했다'고 한 것은 무슨 말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상이 그 나라에서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천자가 관리를 보내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공물과 세금을 거두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추방했다고 하는 것이다. 어찌 상이 그 백성을 사납게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면서도 늘 그를 만나보고자 하였으므로 끊임없이 오게 한 것이다. '조공 때가 아니어도 정사로 유비를 접견했다'고 한 것이 이것을 이른다."
4장
함구몽(咸丘蒙)이 물었다. "옛말에 '덕이 성대한 선비는 임금도 신하로 삼을 수 없고 아비도 자식으로 삼을 수 없다'고 합니다. 순임금이 남면(南面)하여 서자 요임금이 제후를 거느리고 북면(北面)하여 조회하였고, 고수도 북면하여 조회하였는데, 순임금이 고수를 보고 그 얼굴빛에 위축됨이 있었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이때에 천하가 위태로웠도다, 아슬아슬하였도다' 하셨으니, 모르겠습니다만 이 말이 참으로 그러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이는 군자의 말이 아니라 제나라 동쪽 시골 사람의 말이다. 요임금이 늙어 순임금이 섭정한 것이다. 《요전(堯典)》에 이르기를 '이십팔 년 만에 방훈(放勛, 요임금)이 돌아가시니 백성이 부모를 잃은 듯하였고, 삼 년 동안 사해가 팔음(八音)을 그쳐 고요하였다'고 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백성에게는 두 왕이 없다'고 하셨다. 순임금이 이미 천자가 되었는데 또 천하의 제후를 거느리고 요임금을 위해 삼년상을 치렀다면, 이는 두 천자가 있는 것이 된다."
함구몽이 말하였다. "순임금이 요임금을 신하로 삼지 않은 일은 제가 이미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시》에 이르기를 '온 하늘 아래 왕의 땅 아닌 것이 없고, 온 땅의 물가까지 왕의 신하 아닌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순임금이 이미 천자가 되었으니, 감히 묻건대 고수가 신하가 아니라는 것은 어찌해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이 시는 그것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왕의 일에 수고로워 부모를 봉양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니, '이 일이 왕의 일 아닌 것이 없는데 나만 홀로 어질다 하여 수고롭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를 풀이하는 자는 글자로 말(辭)을 해치지 말고, 말로 본뜻(志)을 해치지 말아야 하니, 자기 생각으로 본뜻을 헤아려야 비로소 터득할 수 있다. 만일 말 그대로만 본다면, 《운한(雲漢)》의 시에 '주나라 남은 백성이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고 하였으니, 이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주나라에 남은 백성이 없는 것이 된다. 효자의 지극함은 어버이를 높이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어버이를 높이는 지극함은 천하로 봉양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천자의 아비가 됨은 높임의 지극함이요, 천하로 봉양함은 봉양의 지극함이다. 《시》에 '길이 효도를 생각하니, 효도하는 생각이 곧 법칙이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을 이른다. 《서》에 '공경히 일을 받들어 고수를 뵙되 조심하고 두려워하니, 고수도 진실로 따랐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아비도 자식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5장
만장이 말하였다. "요임금이 천하를 순에게 주었다 하니,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천자가 천하를 남에게 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순임금이 천하를 가진 것은 누가 준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하늘이 준 것이다."
"하늘이 주었다는 것은 자상히 일러 명한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하늘은 말하지 않으니, 행실과 일로써 보여 줄 따름이다."
"행실과 일로써 보여 준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천자는 사람을 하늘에 천거할 수는 있어도 하늘로 하여금 천하를 주게 할 수는 없고, 제후는 사람을 천자에게 천거할 수는 있어도 천자로 하여금 제후로 삼게 할 수는 없으며, 대부는 사람을 제후에게 천거할 수는 있어도 제후로 하여금 대부로 삼게 할 수는 없다. 옛날 요임금이 순을 하늘에 천거하니 하늘이 받아들였고, 백성에게 드러내니 백성이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하늘은 말하지 않고 행실과 일로써 보여 줄 따름이라고 한 것이다."
"감히 묻건대 하늘에 천거하니 하늘이 받아들이고, 백성에게 드러내니 백성이 받아들였다는 것은 어떠한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그로 하여금 제사를 주관하게 하니 모든 신이 흠향하였으니, 이것이 하늘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로 하여금 일을 주관하게 하니 일이 다스려져 백성이 편안해졌으니, 이것이 백성이 받아들인 것이다. 하늘이 주고 사람이 준 것이므로 천자가 천하를 남에게 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순임금이 요임금을 도운 지 이십팔 년이니, 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라 하늘이 한 것이다. 요임금이 돌아가시고 삼년상이 끝나자, 순임금이 요임금의 아들을 피하여 남하(南河)의 남쪽으로 갔다. 그러나 천하의 제후로서 조회하는 자들이 요임금의 아들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갔고, 송사하는 자들이 요임금의 아들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갔으며, 칭송하여 노래하는 자들이 요임금의 아들을 노래하지 않고 순을 노래하였다. 그러므로 하늘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 뒤에야 중원으로 가서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만일 요임금의 궁궐에 거하면서 요임금의 아들을 핍박하였다면 이는 찬탈이지 하늘이 준 것이 아니다. 《태서(泰誓)》에 '하늘이 보는 것은 우리 백성을 통해 보고, 하늘이 듣는 것은 우리 백성을 통해 듣는다'고 한 것이 이것을 이른다."
6장
만장이 물었다. "사람들이 '우왕에 이르러 덕이 쇠하여, 어진 이에게 전하지 않고 자식에게 전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하늘이 어진 이에게 주려 하면 어진 이에게 주고, 하늘이 자식에게 주려 하면 자식에게 준다. 옛날 순임금이 우를 하늘에 천거한 지 십칠 년 만에 순임금이 돌아가시니, 삼년상이 끝나자 우가 순임금의 아들을 피하여 양성(陽城)으로 갔는데, 천하의 백성이 그를 따른 것이 마치 요임금이 돌아가신 뒤 요임금의 아들을 따르지 않고 순을 따른 것과 같았다. 우왕이 익(益)을 하늘에 천거한 지 칠 년 만에 우왕이 돌아가시니, 삼년상이 끝나자 익이 우왕의 아들을 피하여 기산(箕山)의 북쪽으로 갔는데, 조회하고 송사하는 자들이 익에게 가지 않고 계(啟, 우왕의 아들)에게 가며 '우리 임금의 아들이다'라 하였고, 칭송하여 노래하는 자들이 익을 노래하지 않고 계를 노래하며 '우리 임금의 아들이다'라 하였다. 단주(丹朱, 요임금 아들)가 불초하였고 순임금의 아들도 불초하였으며, 순임금이 요임금을 돕고 우왕이 순임금을 도운 것은 햇수가 많아 백성에게 은택을 베푼 것이 오래되었다. 계는 어질어 우왕의 도를 공경히 이어받을 수 있었으나, 익이 우왕을 도운 것은 햇수가 적어 백성에게 은택을 베푼 것이 오래되지 않았다. 순·우·익이 임금을 도운 햇수의 길고 짧음과 그 자식의 어질고 불초함이 모두 하늘에 달린 것이지 사람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하려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하늘이요, 이르게 하지 않아도 이르는 것은 명(命)이다. 필부로서 천하를 가지는 자는 덕이 반드시 순임금·우왕과 같아야 하고 또 천자가 그를 천거함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중니(공자)는 천하를 갖지 못한 것이다. 대를 이어 천하를 가지는 경우, 하늘이 폐하는 자는 반드시 걸·주와 같은 자라야 한다. 그러므로 익·이윤·주공은 천하를 갖지 못한 것이다. 이윤이 탕왕을 도와 천하에 왕 노릇 하게 하였는데, 탕왕이 돌아가시고 태정(太丁)은 즉위하지 못하였으며, 외병(外丙)은 이 년, 중임(仲壬)은 사 년이었다. 태갑(太甲)이 탕왕의 법도를 뒤엎자 이윤이 그를 동(桐) 땅으로 삼 년간 추방하니, 태갑이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 원망하고 다스려 동 땅에서 인에 처하고 의로 옮겨가 삼 년간 이윤이 자기를 가르친 것을 따른 뒤에 다시 박(亳)으로 돌아왔다. 주공이 천하를 갖지 못한 것은 익이 하나라에서, 이윤이 은나라에서 천하를 갖지 못한 것과 같다. 공자가 말하기를 '당우(요·순)는 선양하였고 하후·은·주는 계승하였으나 그 의리는 하나이다'라고 하셨다."
7장
만장이 물었다. "사람들이 '이윤이 고기 베고 삶는 일(요리)로 탕왕에게 등용을 구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윤이 유신(有莘)의 들에서 밭 갈며 요순의 도를 즐겼다. 그 의가 아니고 그 도가 아니면 천하를 녹으로 주어도 돌아보지 않고, 말 사천 필을 매어 두어도 보지 않았다. 그 의가 아니고 그 도가 아니면 지푸라기 하나도 남에게 주지 않고 지푸라기 하나도 남에게서 취하지 않았다. 탕왕이 사람을 시켜 폐백으로 그를 초빙하자, 그는 태연히 말하기를 '내가 탕왕의 초빙 폐백을 무엇에 쓰겠는가. 내 어찌 밭 가운데 처하여 이로써 요순의 도를 즐기는 것만 하겠는가' 하였다. 탕왕이 세 번 사람을 보내 초빙하자, 이윽고 마음을 바꾸어 말하기를 '내가 밭 가운데 처하여 이로써 요순의 도를 즐기는 것이, 어찌 이 임금으로 하여금 요순 같은 임금이 되게 하는 것만 하겠는가. 내가 어찌 이 백성으로 하여금 요순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만 하겠는가. 내가 어찌 내 몸으로 직접 그것을 보는 것만 하겠는가. 하늘이 이 백성을 낼 때 먼저 안 자로 하여금 나중에 아는 자를 깨우치게 하고, 먼저 깨달은 자로 하여금 나중에 깨닫는 자를 깨우치게 하였다. 나는 하늘이 낸 백성 가운데 먼저 깨달은 자이니, 내 장차 이 도로써 이 백성을 깨우치리라. 내가 깨우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하였다. 천하의 백성 가운데 필부필부라도 요순의 은택을 입지 못한 자가 있으면 마치 자기가 그들을 밀어 도랑 가운데 빠뜨린 듯이 여겼다. 그가 천하의 무거운 책임을 자임함이 이와 같았으므로 탕왕에게 나아가 하나라를 정벌하고 백성을 구할 것을 설득한 것이다. 나는 자기를 굽혀 남을 바로잡았다는 자를 듣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자기를 욕되게 하면서 천하를 바로잡는 자이겠는가. 성인의 행실은 같지 않아, 혹은 멀리하고 혹은 가까이하며, 혹은 떠나고 혹은 떠나지 않으나, 그 몸을 깨끗이 하는 데로 돌아갈 따름이다. 나는 이윤이 요순의 도로 탕왕에게 등용을 구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요리로써 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이훈(伊訓)》에 '하늘의 벌이 목궁(牧宮)에서 공격을 시작하니, 나는 박(亳)에서 시작했다'고 하였다."
8장
만장이 물었다. "어떤 이가 '공자가 위(衛)나라에서는 옹저(癰疽)의 집에 묵고, 제나라에서는 시인(侍人, 환관) 척환(瘠環)의 집에 묵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일 만들기 좋아하는 자가 지어낸 것이다. 위나라에서는 안수유(顏讎由)의 집에 묵었다. 미자(彌子)의 아내와 자로(子路)의 아내가 자매간이었다. 미자가 자로에게 말하기를 '공자가 우리 집에 묵으면 위나라 경(卿) 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자로가 이를 고하자 공자가 말하기를 '명(命)이 있다'고 하셨다. 공자는 나아갈 때 예로써 하고 물러날 때 의로써 하여, 얻고 못 얻음을 '명이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옹저와 시인 척환의 집에 묵었다면 이는 의도 없고 명도 없는 것이다. 공자가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뜻을 펴지 못하고, 송나라 환사마(桓司馬)가 길목에서 죽이려 하는 일을 당하자 미복(微服) 차림으로 송나라를 지나갔다. 이때 공자가 곤경에 처하여 사성정자(司城貞子)의 집에 묵으며 진후(陳侯) 주(周)의 신하가 되었다. 나는 들으니 가까운 신하를 살피려면 그가 누구를 주인으로 묵게 하는가를 보고, 먼 신하를 살피려면 그가 누구의 집에 묵는가를 본다 하였다. 만일 공자가 옹저와 시인 척환의 집에 묵었다면 어떻게 공자라 하겠는가."
9장
만장이 물었다. "어떤 이가 '백리해(百里奚)가 진(秦)나라의 가축 기르는 자에게 다섯 마리 양의 가죽을 받고 스스로 몸을 팔아, 소를 먹이며 진 목공(繆公)에게 등용을 구했다'고 하는데, 정말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일 만들기 좋아하는 자가 지어낸 것이다. 백리해는 우(虞)나라 사람이다. 진(晉)나라 사람이 수극(垂棘)의 옥과 굴산(屈産)의 말로 우나라에 길을 빌려 괵(虢)나라를 치려 하였다. 궁지기(宮之奇)는 간하였으나 백리해는 간하지 않았으니, 우공(虞公)에게 간할 수 없음을 알고 떠난 것이다. 진(秦)나라로 가니 나이가 이미 칠십이었다. 일찍이 소를 먹여 진 목공에게 등용을 구하는 것이 더러운 일임을 몰랐다면 지혜롭다 할 수 있겠는가. 간할 수 없는 자라서 간하지 않았으니 지혜롭지 않다 할 수 있겠는가. 우공이 장차 망할 것을 알고 먼저 떠났으니 지혜롭지 않다 할 수 없다. 진나라에서 등용되었을 때 목공이 함께 일을 할 만한 자임을 알고 그를 도왔으니 지혜롭지 않다 할 수 있겠는가. 진나라를 도와 그 임금을 천하에 드러내어 후세에 전할 만하게 하였으니, 어질지 않고서야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몸을 팔아 임금을 이루어 주는 일은 시골에서 제 몸 아끼는 자도 하지 않거늘, 어진 자가 그것을 했다고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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