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학의 이기론과 궁리

명리 사상사 (허유) · 주인공의 계보 · 번역·감수 허유

명리학이 빌려 쓰는 오행과 음양에는 형이상학적 출처가 있다. 그 출처가 주자학의 이기론(理氣論) — 理(원리·소이연)와 氣(질료·도구)의 관계 — 이고, 그 理를 어떻게 알고 닦느냐를 따지는 것이 즉물궁리(卽物窮理, 격물치지)다. 나는 이 두 축을,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세 갈래의 비판적 전개 — 양명학의 사상마련, 율곡의 기발이승·이통기국, 주자 자신의 경학(춘추) 비판 — 를 짚어, 명리의 오행이 어디에 기대고 있으며 내가 강조하는 '삶 속에서 용신을 쓴다'는 실전·서사가 어디에 닿는지를 밝히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명리는 理에 종속된 질료론이 아니라 氣의 흐름과 '나의 서사'를 짜는 무대론에 가깝고, 내 실전 강조는 양명의 사상마련과 가장 강하게 공명한다.

나는 이 글을 주자학 자체의 요약으로 쓰지 않는다. 이기론·궁리는 명리 사상사의 배경이자 연원으로 참조하고, 명리 해석의 근거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원전에 둔다. 그러나 그 배경을 정확히 알아야 명리가 무엇을 물려받았고 무엇을 바꿔 썼는지가 보인다. 그래서 나는 율곡 이기론, 주자의 일물·이물 논쟁, 즉물궁리와 양명 사상마련, 그리고 주자의 춘추 경학 비판을 차례로 검토한 뒤, 그것이 내 오행론·용신론·직업론에 어떻게 형이상학적 좌표와 방법론적 공명을 더하는지 따진다.

사상사적 위상: 理(원리)와 氣(질료)의 관계

주자학의 우주·심성·통치론은 하나의 사다리다. 태극(=理)→음양→오행→만물의 우주생성론이 위에 있고, 인간에게서는 그 천리가 본성으로 내재해 성리(性理)가 되며, 그 본성을 닦는 공부가 거경(居敬)과 격물(格物)이다. 이 사다리의 가장 아래 두 칸 — 형이상의 理와 형이하의 氣 — 이 이기론이고, 그것을 어떻게 인식·실천하느냐가 궁리론이다. 나는 이 두 축의 핵심 마디를 하나씩 짚는다.

理(원리)와 氣(질료)의 정의. 주자는 세계를 형이상의 道(理)와 형이하의 器(氣)로 본다. 그 정초가 「답황도부(答黃道夫)」의 한 문장이다.

天地之間, 有理有氣. 理也者, 形而上之道也, 生物之本也. 氣也者, 形而下之器也, 生物之具也. — 천지 사이에 理와 氣가 있으니, 理는 형이상의 道요 만물을 낳는 근본이며, 氣는 형이하의 器요 만물을 낳는 도구다. (『朱子大全』 권58)

理는 만물이 그러한 까닭(所以然)·원리이자 주재이고, 氣는 그 원리가 구체화되는 질료·도구다. 더 중요한 단서가 하나 있다. 理는 무정의·무계탁·무조작(無情意, 無計度, 無造作)하여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氣만이 응결·조작(凝結造作)하여 움직인다(『朱子語類』 권1). 명리가 쓰는 오행·음양의 형이상학적 배경이 바로 여기다. 오행은 곧 氣의 다섯 국면이고, 그 운행에는 理(소이연)가 타고 있다.

격물치지 —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궁구한다. 그렇다면 그 理를 어떻게 아는가. 주자의 답이 즉물궁리다. "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궁구한다(卽物而窮其理)."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점은, 이때 '物의 理'가 사물 속에 박혀 있는 알맹이가 아니라 그 사물이 따라 운행·행위해야 하는 규율이라는 것이다. 배는 물 위로, 수레는 땅 위로 가는 것이 그 理다. 이치는 본래 마음에 갖추어져 있되(具衆理而應萬事), 그것을 구체적 사물·일과 관련해서만 닦을 수 있다 — 이 점이 뒤에 명리의 실전 강조와 곧장 이어진다.

율곡의 기발이승·이통기국. 조선의 율곡(李珥, 1536~1584)은 이 주자 이기론을 충실히 계승하되, 理의 발용을 부정하는 쪽으로 일관시켜 기발이승일도(氣發理乘一途) — "발하는 것은 氣요, 발하는 까닭은 理다" — 를 세우고, 理의 보편성과 氣의 국한성을 이통기국(理通氣局)으로 정식화한다. 理는 무형이라 통(通)하고, 氣는 유형이라 국(局, 국한)된다.

양명학의 심즉리·사상마련. 같은 궁리 전통에서 갈라진 양명학은 "理는 마음 밖에 없다(心外無理)"는 심즉리(心卽理)를 세우고, 공부는 책상이 아니라 일 속에서 닦아야(事上磨鍊) 한다고 강조한다. 일견 즉물궁리와 정반대 같지만, 뒤에서 보이듯 그 거리는 통설만큼 멀지 않다.

율곡 이기론은 주자를 어떻게 계승하고 넘어섰는가

율곡 이기론이 주자 성리학을 어떻게 본떠 이으면서(依樣) 동시에 진일보했는지를, 나는 비교철학 연구(이홍군)에 기대 ①이기 개념 ②이기 관계 ③이기 체용의 세 축으로 정리한다. 핵심은 분명하다. 율곡 이기론은 대체로 주자 설에 기반하되, 개념의 명료화·상보적 이해·이통기국에서 율곡이 스스로 터득한(自得) 면이 뚜렷하다.

① 이기 개념 — 理는 형이상자, 氣는 형이하자. 율곡은 理를 형이상자(만물의 근원·원리), 氣를 형이하자(만물을 생성하는 질료·도구)로 규정하는데, 이는 위에 든 주자 「답황도부」의 개념을 그대로 원용한 것이다. 율곡은 理를 氣의 근본·소이(所以)·추뉴(樞紐)·주재(主宰)라 하고, 氣를 "理가 타는 바(理之所乘)"·"理를 담는 그릇"이라 한다. 단 이때 理의 주재는 직접 부리는 사역이 아니라 논리적 의미다. 理는 형이상자이므로 무엇을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氣가 그 본래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까닭일 뿐이다.

② 理의 발용 문제 — 주자의 양가성, 율곡의 일관화. 여기가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주자는 한편으로 理를 무정의·무계탁·무조작이라 하면서, 다른 한편 "理에 동정(動靜)이 있으므로 氣에 동정이 있다"고 말해 마치 理가 발용하는 듯한 오해를 남겼다. 이 양가성이 조선조에 퇴계의 이발(理發)·호발(互發)과 율곡의 기발이승이라는 큰 논란을 낳는다. 율곡은 "주자의 본의는 理의 발용을 부정하는 것"으로 읽고, 인간·자연·사단·칠정 모두에 기발이승일도 하나의 길만 적용한다.

發之者氣也, 所以發者理也. 非氣不能發, 非理無所發. — 발하는 것은 氣요, 발하는 까닭은 理다. 氣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理가 아니면 발할 바가 없다. (『栗谷全書』)

③ 이기 관계 — 一而二 二而一, 떼어 보고 합쳐 본다. 율곡은 理·氣를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一而二, 二而一)"로 본다. 존재 자체로 보면 서로 떨어지지 않고(不相離) 선후도 이합도 없으니 합쳐 보고(合看), 그 안에서 理는 理, 氣는 氣로 서로 섞이지 않으니(不相雜) 떼어 본다(離看). 이는 주자의 합간/이간(當離合看) 논리의 계승이다. 본체상에서는 논리적으로 理先氣後를 말하되, 현상계에서는 理氣無先後다.

旣非二物, 又非一物. 非一物, 故一而二, 非二物, 故二而一也. … 理氣雖相離不得, 而妙合之中, 理自理氣自氣, 不相挾雜, 故非一物也. (『栗谷全書』 答成浩原)

④ 이기 체용 — 이일분수·기일분수·이통기국. 율곡은 理一分殊(理는 하나이되 나뉘어 다름)에 더해 氣一分殊理通氣局을 전개한다. 理一分殊는 주돈이·정자를 거쳐 주자가 체계화한 체용일원의 논리이지만, 氣一分殊·理通氣局은 주자가 직접 언표하지 않은 율곡 자신의 독창적 표현이다(주자 글에 "理同氣異" 같은 사고의 흔적은 있다). 理通은 理의 무형·무본말·무선후에서 비롯된 보편성·초월성이고, 氣局은 氣의 유형·유본말·유선후에서 비롯된 국한성이다.

理通氣局, 要自本體上說出, 亦不可離了本體別求流行也. … 方圓之器不同, 而器中之水一也; 大小之瓶不同, 而瓶中之空一也. — 모난 그릇 둥근 그릇이 달라도 그릇 속의 물은 하나요, 크고 작은 병이 달라도 병 속의 공기는 하나다. (『栗谷全書』 答成浩原)

일물(一物)인가 이물(二物)인가 — 수효가 아니라 접근방식이다

주자는 理·氣, 心·性, 仁·心을 두고 "하나의 물건인가 두 물건인가(一物·二物)"를 거듭 따졌다. 나는 이 발언들을 단순 지시어나 일반 술어로 읽지 말고 실천철학적으로 독해해야 한다고 본다(김백녕, 유학연구 57). 핵심은 이것이다. 一物/二物은 물건의 수효가 아니라 그 物에 대한 접근방식에 가까운 개념이다.

여기서 '物'에는 상호작용행동주체의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영문 초록은 一物을 "an empirical approach", 二物을 "an analysis approach"로 옮긴다). 그래서 一物/二物은 공통적으로 존재양상·경험상태와 사회적 상황·인지와 행동을 가리킨다. '일물(통합)'은 실천주체가 타자를 자기 일부로 받아들여 성숙을 기하는 사회 통합적 행동이고, '이물(분별)'은 실천주체를 확립하는 분별적 인식이다. 둘은 모순관계가 아니라 둘 다 실천주체가 자기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이 독해의 배경에는, 중화신설(中和新說) 정립기에 주자가 「지언의의(知言疑義)」에서 호오(好惡)를 '物'로 규정한 일이 있다.

이 논의가 결정적인 까닭은, 그것이 곧장 이기일물/이물 논쟁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에 율곡의 答成浩原 그 문장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즉 율곡의 이기 관계와 주자의 일물·이물이 한 구절에서 만난다.

理者氣之主宰也, 氣者理之所乘也. 非理則氣無所根柢, 非氣則理無所依著. 旣非二物, 又非一物. 非一物故一而二, 非二物故二而一也. (『栗谷全書』 答成浩原)

이 一物/二物은 조선 중기로 흘러 나흠순(羅欽順) 『곤지기』의 이기일물론, 일재 이항(李恒)의 '일물', 퇴계의 '비이물(非二物)', 그리고 율곡으로 이어진다. 퇴계는 心·性, 理·氣를 엄밀히 구분하되 '이물'이 아니라 하면서도 '일물'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理의 우위성·능동성(理動·理發·理到)을 확보하려 대대(對待)관계를 전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주자에서 율곡까지를 한자리에 놓고 비교할 때 비로소 이 흐름이 보인다 — 이 글이 바로 그 자리다.

즉물궁리와 사상마련 — 그 거리는 멀지 않다

양명학의 사상마련(事上磨鍊, 일 속에서 닦음)은 치양지(致良知)의 장식이 아니라 필수 요건이다. 나는 이 점을 받아들인다(김기현, 공자학 24). 그렇다면 즉물궁리(주자학)와 사상마련(양명학)의 거리는 통설만큼 멀지 않다. 주자의 직진을 기준으로 보면, 37세 용장오도(龍場悟道) 때 90°였던 양명의 방향이 50세 치양지설에서 60°로 좁혀지고, 사상마련이 필수 요건이라면 30° 이내로까지 가까워진다.

① 양명의 두 가지 오해. 왕수인은 주자학을 두 점에서 심각하게 오해했다. (가) "理가 物 안에 있다"는 오해다. 그래서 대나무를 7일간 바라보다 병든 격죽(格竹)의 좌절이 생겼다. 그러나 주자학의 '物의 理'는 대나무 속 알맹이가 아니라 그 物이 따라야 할 규율이다. (나) "주자학의 心은 텅 비어 理를 밖에서 하나씩 담는다(白紙說)"는 오해다. 그러나 주자도 "心은 모든 理를 갖추고서 만사에 응한다(具衆理而應萬事)"고 했으니, 衆理가 선천적으로 心에 갖춰져 있다는 데는 주자와 왕수인 사이에 차이가 없다.

朱子所謂格物云者, 在卽物而窮其理也. 卽物窮理, 是就事事物物上求其所謂定理者也. — 주자가 말한 격물이란 物에 나아가 그 理를 궁구함이니, 즉물궁리란 각각의 개별 사물에서 그 정해진 理를 구하는 것이다. (『傳習錄』 中 135조)

② 사상마련은 치양지의 필수 요건이다. 왕수인은 "사람은 반드시 일에서 연마해야만 진전이 있다(人須在事上磨鍊做功夫, 乃有益)"고 거듭 강조한다. 공문서·소송을 처리하는 관리에게 "그 소송을 판결하는 일에서부터 학문을 해야 비로소 진정한 격물(纔是眞格物)"이라 가르치고, 아이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괴로워하는 제자에게는 "바로 이런 때에 힘써 공부하라(此時正宜用功)"고 한다.

人須在事上磨, 方立得住, 方能靜亦定, 動亦定. — 사람은 반드시 일에서 연마해야만 확고히 정립하여, 고요해도 안정되고 움직여도 안정될 수 있다. (『傳習錄』 上 23조)

③ 卽物과 事上의 공통 기반 — 실학 정신과 도·불 비판. 주자의 '卽物'과 양명의 '事上'은 모두 "유학자가 추구하는 理는 반드시 현실세계의 사사물물과 관련된 理여야 한다"는 데서 만난다. 둘 다 사사물물을 외면한 채 마음만 닦는 도교·불교를 똑같이 비판한다(불교는 虛, 유교는 實). 곧 양명의 사상마련은 즉물궁리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 실학 정신을 체험과 현장으로 심화·보완한 것이며, "본래의 주자학으로 수렴해가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이 대목이 뒤에서 내 용신·직업론과 가장 강하게 맞물린다.

춘추 경학 비판 — 객관 근거 위에서만 의리를 구한다

주자가 춘추(春秋) 주해서 — 삼전(좌씨·공양·곡량전)과 정이천·호안국 — 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주자오경어류』에서 드러난다(김동민, 양명학 46). 핵심은 주자가 주해서의 역할을 사실 기록과 의리 해석 두 측면으로 규정하고, 그 기준으로 천착·견강부회를 솎아냈다는 점이다. 이 대목은 이기론·궁리와 직접 다루는 대상은 다르지만, 주자학의 인식론적 원칙 — 객관적 근거 위에서 의리를 구한다 — 이 경학에서 어떻게 관철되는지를 보여준다. 즉 즉물궁리와 같은 정신의 경학적 적용이다.

① 춘추는 역사 기록이다. 주자는 춘추를 별도 의미가 숨은 암호가 아니라 노나라 역사를 공자가 손질한 사실 기록으로 본다. "춘추는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다만 역사서 보듯 보라(只如看史樣看)." 그래서 한두 글자의 가감(加減)으로 포폄(褒貶)을 읽어내는 의례(義例) 해석을 배격한다.

聖人光明正大, 不應以一二字加褒貶於人. 若如此屑屑求之, 恐非聖人之本意. — 성인은 광명정대하니 한두 글자로 포폄했을 리 없다. 이처럼 자질구레하게 그 뜻을 찾으면 성인의 본의가 아닐 것이다. (『朱子五經語類』)

② 사실 기록과 의리 해석의 편중. 좌씨전은 사학(史學)이라 사실 기록은 정확하나(80~90% 옳다) 의리가 천박하다. 시비를 오로지 이해(利害)·공리(功利)로만 따져 절개를 위해 죽는 일조차 폄하한다. 주자는 좌씨를 "성패로 시비를 논하고 의리의 바름에 근본하지 않는(以成敗論是非, 而不本於義理之正)" 인물이라 단정한다. 반대로 공양·곡량전은 경학이라 의리는 정밀하되 사실 기록이 억측투성이다.

③ 정이천 수용과 호안국 비판. 정이천이 춘추를 "경세의 대법(經世之大法)"으로 규정한 데는 주자가 적극 동의하고 오해를 직접 해명해준다. 반면 호안국은 의리 해석의 폭은 인정하되, "원(元)=인(仁)=인심(人心)" 같은 근거 없는 등식, '정백(鄭伯)' 두 글자로 군주 자격을 읽어내는 천착, 남송 천도 후의 정치적 감정 투영을 들어 강하게 비판한다. 그 비판의 잣대는 일관된다. "성인과 천백 년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성인의 마음을 알겠는가(去聖人千百年後, 如何知得聖人之心)?" 객관적 근거 없는 주관적 확대 해석은 천착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인식론적 겸허와 객관 근거 우선의 태도가, 반드시 사물·사실과 관련해 理를 구하는 즉물궁리와 같은 정신의 경학적 표현이다.

이기론·궁리가 명리와 만나는 자리

주자학 이기론은 명리 해석의 배경이지 근거가 아니다. 명리 해석의 근거는 내 원전에 둔다. 그러나 이기론·궁리는 내 개념에 형이상학적 배경방법론적 공명을 더한다. 아래가 그 지점이다.

理氣와 명리 오행 — 理는 원리, 氣는 오행의 기운

나는 오행을 "주인공이 활약할 무대의 배경과 환경을 알려주는 무대 설명서"로 보고, 일간의 오행을 기(氣)-질(質)-형(形) 3단계(생각→연결→행동)로 입체화한다. 주자 이기론의 理/氣 구분은 이 틀에 형이상학적 좌표를 댄다.

  • 理(소이연·원리)와 나의 '기(氣=수화)=원리·의도·명분'. 주자에게 理는 "발하는 까닭(所以發)"이지 발하는 것 자체가 아니다. 내가 수·화 일간을 "행동 전에 근원적 이유·명분을 중시하는" 보이지 않는 생각(기)으로 본 것은, 주자의 理(소이연)가 형이하의 작용에 앞서는 까닭이라는 구조와 닮았다. 단 용어가 한 칸 어긋난다. 나의 '기(氣)'는 수·화로서 원리·의도를 가리켜 주자의 에 가깝고, 만물을 이루는 질료로서의 주자 氣는 내 체계의 형(목·금=행동·결과물)에 가깝다. 도가 형기신론과 한 칸 어긋나 대응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재배치다.
  • 氣의 응결조작과 오행의 기운. 주자에서 동정·조작은 오직 氣의 몫이고(凝結造作), 명리에서 실제로 운동·변화하는 것도 오행의 기운이다. 율곡의 "理通氣局"(理는 통하고 氣는 국한된다)은, 일간이라는 보편 원리가 월지·대운이라는 시공의 국면(局) 속에서 다르게 발현되는 명리의 구조와 공명한다. 다만 나는 理氣의 위계적·관념적 색채를 그대로 잇지 않는다. 한대 정치가 자연관찰적 오행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변질시켰듯, 형이상의 理에 종속된 질료로 오행을 묶어두면 명리의 핵심을 놓친다. 명리의 오행은 '나의 서사'를 짜는 무대와 심리다.

양명 사상마련과 나의 실전·서사 — 삶 속에서 용신을 쓴다

이 글에서 가장 강한 공명은 양명학의 사상마련과 내 실전·서사 강조 사이에 있다. 양명은 "마음속 양지(良知)만 깨치면 된다"는 관념적 공부를 거부하고 "반드시 구체적인 일에서 연마해야 한다(人須在事上磨鍊)"고 못박았다. 책상이 아니라 소송·공문서 같은 실무 한복판에서 닦아야 진정한 격물이라는 것이다. 나는 용신과 적성을 바로 이렇게 본다.

  • 용신은 '쓸 때' 완성된다. 나는 용신을 타고난 천재성으로 보되, 그것은 사주판 위의 글자로 머물지 않고 삶 속에서 발휘(用)될 때 의미를 얻는다. "재능 있는 주인공도 무대가 없으면 소용없다." 이 발상은 양지(良知)가 사사물물에 '致'해질 때만 실현된다는 치양지·사상마련의 구조와 같다. 양명이 "고요할 때만 잘되다가 일을 만나면 무너지는 것은 사상마련을 안 했기 때문(臨事便要傾倒)"이라 경계한 것은, 용신을 머리로만 아는 것과 삶에서 쓰는 것의 차이를 가리킨다. 더큼만세력으로 사주를 뽑아 용신을 확인하는 일이 끝이 아니다. 그 용신을 실제 삶의 일 속에서 쓰는 것이 시작이다.
  • 직업적성 — 일간·용신·격국이 '일(事)' 속에서 닦인다. 내 직업론의 축은 일간(재료)·용신(재능의 방향)·격국(사회라는 무대의 역할)이다. 이 축은 바로 양명의 '事上'과 만난다. 적성이란 추상적 자질이 아니라 구체적인 직업·일을 통해 닦이고 증명되는 것이며, 이는 "그대에게 주어진 소송을 판결하는 일에서부터 학문을 하라"는 사상마련과 정확히 같은 발상이다. 명리가 사주를 '운전대를 잡을 가능성'으로 보는 능동적 관점은, 즉물궁리와 사상마련이 공히 강조한 실학 정신 — 진리는 반드시 현실의 일과 관련되어야 한다 — 의 명리적 변주다.

일물/이물의 '체화된 인지'와 일간·월지의 상호작용

일물·이물을 "행동주체의 체화된 인지상황"으로 읽는 독해는, 내 오행론의 이중 해석 틀과 구조가 같다. 나는 일간(자아)과 월지(환경)를 둘(二物·離看)로 구분하되, 그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진정한 나가 만들어진다(一物·合看)고 본다. "일간(자아)과 월지(주변 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나가 만들어진다"는 내 말은, 율곡의 "一而二, 二而一"과 일물·이물의 '통합과 분별'을 명리의 자아·환경론으로 옮긴 것이다.

사상사 계보에서의 자리

이 네 갈래가 다루는 이기론·궁리와 그 비판적 전개는, 사상사 계보에서 송대 성리학의 집성과 그 명리적 흡수 사이에서, 주자학이 안으로 갈라지고 밖으로 검증되는 단계다.

  • 상류 — 송대 성리학 집성. 근사록 도체(태극→음양→오행→만물, 이기론)가 깐 이기·성리의 토대 위에서, 이 네 갈래는 그 이기론을 정밀화(율곡)·재해석(양명)·자기비판(춘추 경학)한다.
  • 내부 분기 — 양명학과 율곡. 주자학은 단일 교조가 아니라 안에서 갈라진다. 양명학(심즉리·사상마련)은 즉물궁리의 무게중심을 '物'에서 '心'과 '事'로 옮기고, 율곡(기발이승·이통기국)은 理의 발용을 부정하는 쪽으로 이기론을 일관화한다. 두 전개 모두 주자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주자 안의 긴장 — 理의 동정 양가성, 卽物과 心의 관계 — 을 각자의 방식으로 푼 것이다.
  • 수양론으로의 연속 — 미발설. 율곡의 이기·기질 논의와 양명·주자의 공부론은 송명 주자학의 미발설과 수양론(미발=중, 거경·격물, 기질변화)으로 이어진다. 격물치지는 거경과 더불어 주자 수양론의 두 수레바퀴다.
  • 명리적 흡수. 이 이기·궁리·수양의 묶음이 명대에 이르러 명리 세계관의 골격으로 내면화된다. 삼명통회의 만민영이 주자·정자의 글을 인용처 없이 녹여 넣은 것이 그 증거다.
  • 하류 — 청·조선후기 해체. 주자학 내부의 비판·전개(양명학·율곡)는, 청·조선후기에 이르러 理 자체를 끌어내리는 해체의 전 단계가 된다. 정약용은 형이상의 理를 천명·상제·자주지권으로, 최한기는 理를 부정하고 氣 일원으로 밀고 간다. 율곡이 理의 발용을 부정하고 氣의 국한성을 강조한 이통기국은, 이들이 형이상의 理를 더 밀어내는 흐름의 길목에 놓인다. 명리 형이상학의 또 다른 축인 적천수가 '理의 형식'보다 '氣의 흐름'을 중시한 것도, 같은 무게중심 이동(理→氣)의 명리 내부 판본으로 읽을 수 있다.

한 줄로 적으면 — 근사록(이기 집성) → [이기론·궁리와 그 비판적 전개: 양명학·율곡] → 삼명통회(명리 흡수)·미발설(수양) → 정약용·최한기(해체). 이 글은 그 한가운데, 주자학이 가장 정밀해지는 동시에 안에서 갈라지기 시작하는 마디를 짚는다. 그리고 그 마디에서 내가 가져온 것은 理의 위계가 아니라 氣의 흐름이고, 책상 위의 도식이 아니라 삶의 일 속에서 닦는 사상마련의 정신이다.

이 고전이 말한 사주, 직접 확인해 보세요

명리 사상사 (허유)의 명리 원리는 더큼만세력의 분석 알고리즘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내 사주의 용신·격국·오행을 10초 만에 확인하세요.

더큼만세력에서 내 사주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