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자평 권1 01 제기와 인 (題記·引)
《연해자평》 첫머리의 제기(題記)와 인(引)이다. 《연해》와 《연원》 두 책을 합본하게 된 경위, 그리고 자평학이 당의 이허중에서 비롯되어 송의 서승(徐升)이 일주(日主) 중심의 체계로 완성하기까지의 연원을 밝힌 서문이다.
번역
제기 (題記)
자평의 글은 송나라 서공(徐公) 동재(東齋)가 이미 상세히 밝혔다. 전해지는 것으로 《연해(淵海)》와 《연원(淵源)》의 모음이 있는데, 그 이치는 하나이고 편과 구절이 모두 같다. 지금 쓰는 사람들은 오직 《연해》만을 종주로 삼는다. 그러나 《연원》에도 묘한 쓰임이 있는데 혹 모으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이제 두 책을 합쳐 참고하고, 빠진 것을 모두 하나의 책으로 귀결시켰다. 거기에 시결(詩訣)과 기례(起例)를 더하고 글자의 뜻풀이를 늘렸다. 후학이 이를 알면 두 책이 눈앞에 환히 펼쳐져 빠짐이 없을 것이다. 삼가 아뢴다.
인 (引)
자평 연해의 이치는 당나라 대부 이공 허중(李虛中)에게서 비롯되었으니, 사람의 생년·월·일·시로 생극(生剋)·왕상(旺相)·휴수(休囚)·제화(制化)를 따져 사람의 화복을 판단하였는데 그 영험함이 신묘하였다. 공이 세상을 떠나자 창려(昌黎) 한유(韓愈)가 그를 위해 묘지명을 지어 후세에 기록하였다. 여재(呂才) 대부가 다시 이를 재정(裁定)하였으나 따로 저술한 자는 없었다. 송나라에 이르러 서공 승(徐升)이 다시 사람의 생일 일주를 여섯 가지 일로 나누어 논의가 정밀하고 미묘하였으며, 《연해》라는 책을 지어 여러 유학자의 뜻을 모아 전파하니 지금까지 모두 이를 종주로 삼는다. 후대의 여러 사람들이 《연원》의 이치와 뜻을 문집으로 엮으니 편장이 서로 같은 지 이제 수백 년이 되었다. 판본에 해시(亥豕)·노어(魯魚)의 잘못(글자가 비슷하여 잘못 새긴 오류)이 있어 배우는 자가 그 뜻을 아는 이가 드물었다. 이제 당군 금지(唐君錦池)가 이 이치에 정통한 자를 예로써 청하여 두 책을 합하고 구결을 더하여 그릇되고 거짓된 것을 바로잡았다. 호리병을 차고 지팡이를 짚는(신선과 같은) 자가 아니면 누가 능히 고쳐 세상에 펴내어, 후학이 익혀 옛사람이 남긴 법도를 잃지 않게 하겠는가. 책이 이루어지자 당자(唐子)가 금서(金書)를 보이니, 이로써 인(引)을 삼는다. 숭정 7년 맹동 길일에 다시 펴내다(重梓).
원문 전문 보기 (한문)
題記
子平書,宋徐公東齋已詳明矣。 傳有《淵海》、《淵源》之集,其理則一,篇句俱同。 今之用者,惟宗《淵海》。而《淵源》亦有妙用,或未之集。 今將二書合併參考,遺失總歸一軼。 加之詩訣、起例,增解字義。後學識之,則二書了然在目,無遺矣。謹白。
引
子平淵海之理,始自唐大夫李公虛中, 以人生年月日時,生剋旺相,休囚制化,決人生之禍福,其驗神矣。 及公幕,昌黎韓爐爲之作墓誌,以記之後。 經呂大夫才又裁定之,並無述作之者。 至於有宋徐公升復以人生日主分作六事,議論精微, 作《淵海》之書,集話儒之義傳佈,至今悉皆宗之。 後之諸君,文集淵源理義,篇章雷同,迄今數百年矣。 板籍有亥豕魯魚之謬,學者少知其義。 今唐君錦池禮請精通此理者,以二書並之,增之口訣,正其訛僞矣。 非懸壺化杖者,孰能更易,樣行於世,神後學習之,不失古人之遺范矣。 書成,唐子示金書,以此爲引。 崇禎七年孟冬 吉日重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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