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내편 03 양생주(養生主)
생명을 기르는 핵심(養生主)을 논한 짧은 편이다. 유한한 삶으로 무한한 앎을 좇지 말고 중도(緣督)를 따르라는 총론에서 시작하여, 포정해우(庖丁解牛)의 우화로 천리를 따르는 양생의 도를 보이고, 외발이 우사(右師)·연못의 꿩·노담(老聃)의 죽음을 통해 안시처순(安時處順)을 말한다.
원문 · 번역
吾生也有涯,而知也无涯。以有涯隨无涯,殆已。已而爲知者,殆而已矣。爲善无近名,爲惡无近刑,緣督以爲經,可以保身,可以全生,可以養親,可以盡年。
내 삶에는 끝이 있으나 앎에는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으니 위태롭다. 그런데도 앎을 추구하는 자는 위태로울 따름이다. 선을 행하되 이름에 가까이하지 말고, 악을 행하되 형벌에 가까이하지 말며, 중도(督, 등 한가운데의 맥)를 따라 떳떳함으로 삼으면, 몸을 보전할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으며,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고, 천수를 다할 수 있다.
庖丁爲文惠君解牛,手之所觸,肩之所倚,足之所履,膝之所踦,砉然嚮然,奏刀騞然,莫不中音,合於《桑林》之舞,乃中《經首》之會。文惠君曰:「譆,善哉!技蓋至此乎?」庖丁釋刀對曰:「臣之所好者,道也,進乎技矣。始臣之解牛之時,所見无非牛者。三年之後,未嘗見全牛也。方今之時,臣以神遇而不以目視,官知止而神欲行,依乎天理,批大郤,導大窾,因其固然。技經肯綮之未嘗,而況大軱乎?良庖歲更刀,割也;族庖月更刀,折也。今臣之刀十九年矣,所解數千牛矣,而刀刃若新發於硎。彼節者有間,而刀刃者无厚,以无厚入有間,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是以十九年而刀刃若新發於硎。雖然,每至於族,吾見其難爲,怵然爲戒,視爲止,行爲遟,動刀甚微,謋然已解,如土委地。提刀而立,爲之四顧,爲之躊躇滿志,善刀而藏之。」文惠君曰:「善哉!吾聞庖丁之言,得養生焉。」
포정(庖丁)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는데, 손이 닿는 곳, 어깨가 기대는 곳, 발이 밟는 곳, 무릎이 누르는 곳마다 쫙쫙 울리고, 칼을 놀려 서걱서걱하는 소리가 음률에 맞지 않음이 없어, 《상림(桑林)》의 춤에 들어맞고 《경수(經首)》의 가락에 맞았다. 문혜군이 말하였다. "아, 훌륭하구나! 기술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포정이 칼을 내려놓고 대답하였다. "신이 좋아하는 것은 도(道)이니, 기술보다 나아간 것입니다. 신이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보이는 것이 소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삼 년 뒤에는 온전한 소를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신은 정신으로 만나지 눈으로 보지 않으니, 감각의 앎이 멈추고 정신이 가고자 하는 대로 합니다. 천리(天理)를 따라 큰 틈을 치고 큰 구멍을 따라 그 본래 그러함에 말미암으니, 힘줄과 뼈가 얽힌 곳도 일찍이 (걸린 적이) 없거늘, 하물며 큰 뼈겠습니까! 솜씨 좋은 백정은 해마다 칼을 바꾸니 살을 가르기 때문이요, 보통 백정은 달마다 칼을 바꾸니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신의 칼은 십구 년이 되어 잡은 소가 수천 마리이나, 칼날이 마치 새로 숫돌에 간 듯합니다. 저 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으니, 두께 없는 것을 틈 있는 데 넣으면 넓고 넓어 칼날을 놀리는 데 반드시 남는 자리가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십구 년이 되어도 칼날이 새로 숫돌에 간 듯합니다. 그러하나 매번 (힘줄과 뼈가) 얽힌 곳에 이르면 신은 그 하기 어려움을 보고 두려운 듯 조심하여, 시선을 멈추고 움직임을 더디게 하며 칼을 매우 미세하게 놀리면, 쩍 하고 이미 갈라져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듯 합니다. 칼을 들고 서서 그 때문에 사방을 둘러보며 그 때문에 머뭇거리다 흐뭇해하고는, 칼을 닦아 갈무리합니다." 문혜군이 말하였다. "훌륭하구나!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養生)을 얻었다."
公文軒見右師而驚,曰:「是何人也?惡乎介也?天與?其人與?」曰:「天也,非人也。天之生是使獨也,人之貌有與也,以是知其天也,非人也。」澤雉十步一啄,百步一飲,不蘄畜乎樊中。神雖王,不善也。
공문헌(公文軒)이 우사(右師)를 보고 놀라 말하였다. "이 어떤 사람인가? 어찌하여 외발인가? 하늘이 그리한 것인가, 사람이 그리한 것인가?" (스스로 답하기를) "하늘이지 사람이 아니다. 하늘이 이를 낳을 때 외발이게 한 것이다. 사람의 모습은 (둘을) 갖추어 주는 법이니, 이로써 그것이 하늘이지 사람이 아님을 안다." 못의 꿩은 열 걸음에 한 번 쪼고 백 걸음에 한 번 마시지만, 우리 안에 길러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정신이 비록 왕성해지더라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老聃死,秦失弔之,三號而出。弟子曰:「非夫子之友邪?」曰:「然。」「然則弔焉若此,可乎?」曰:「然。始也吾以爲其人也,而今非也。向吾入而弔焉,有老者哭之,如哭其子;少者哭之,如哭其母。彼其所以會之,必有不蘄言而言,不蘄哭而哭者,是遁天倍情,忘其所受,古者謂之遁天之刑。適來,夫子時也;適去,夫子順也。安時而處順,哀樂不能入也,古者謂是帝之縣解。」指窮於爲薪,火傳也,不知其盡也。
노담(老聃)이 죽자 진실(秦失)이 조문하러 가서 세 번 곡하고 나왔다. 제자가 말하였다. "선생의 벗이 아니십니까?" "그렇다." "그러면 조문하기를 이처럼 함이 괜찮습니까?" "그렇다. 처음에 나는 그가 (그만한) 사람인 줄 알았으나 지금은 아니다. 아까 내가 들어가 조문할 때, 늙은이가 그를 곡하기를 제 자식 곡하듯 하고, 젊은이가 그를 곡하기를 제 어미 곡하듯 하였다. 그들이 모인 까닭에는 반드시 말하기를 바라지 않았는데 말하고, 곡하기를 바라지 않았는데 곡한 것이 있을 것이다. 이는 하늘을 저버리고 실정을 배반하여 받은 바를 잊은 것이니, 옛사람은 이를 일러 하늘을 저버린 형벌(遁天之刑)이라 하였다. 마침 온 것은 선생이 때를 만난 것이요, 마침 간 것은 선생이 (자연에) 순응한 것이다. 때에 편안하고 순응함에 처하면 슬픔과 즐거움이 들어올 수 없으니, 옛사람은 이를 일러 하느님의 매닮을 풀어 줌(帝之縣解)이라 하였다." 손가락(기름)은 장작 (태우는 데) 다하지만 불은 전해지니, 그 다함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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