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외편 14 전자방(田子方)

장자(莊子) · 전국 장주 · 번역·감수 허유

전자방과 위 문후의 문답으로 시작하여, 참됨(真)을 보존한 사람의 모습을 그린다. 공자와 노담의 만남, 안연이 공자를 따라잡지 못함, 손숙오의 무심한 처세, 활쏘기의 진수 등 일화를 통해 마음을 사물의 처음(物之初)에 노닐게 하고 변화에 매이지 않는 지인(至人)의 경지를 설한다.

핵심 구절 — 원문과 번역

至陰肅肅,至陽赫赫;肅肅出乎天,赫赫發乎地;兩者交通成和而物生焉。

지극한 음은 차갑고 지극한 양은 뜨겁다. 차가움은 하늘에서 나오고 뜨거움은 땅에서 나오니, 두 가지가 서로 통하여 조화를 이루어 사물이 생긴다.

哀莫大於心死,而人死亦次之。

슬픔은 마음이 죽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사람이 죽는 것은 그다음이다.

번역

전자방(田子方)이 위 문후(魏文侯)를 모시고 앉아 자주 계공(谿工)을 칭찬했다. 문후가 말했다. "계공이 그대의 스승인가?" 자방이 말했다. "아닙니다, 저(無擇)의 마을 사람입니다. 도를 말함이 자주 맞으므로 제가 칭찬합니다." 문후가 말했다. "그러면 그대는 스승이 없는가?" 자방이 말했다. "있습니다." "그대의 스승은 누구인가?" 자방이 말했다. "동곽순자(東郭順子)입니다." 문후가 말했다. "그러면 그대는 어찌 일찍이 칭찬하지 않았는가?" 자방이 말했다. "그 사람됨이 참되어, 사람의 모습이나 하늘처럼 비었으며, 사물을 따라 참됨을 보존하고, 맑되 사물을 용납합니다. 사물이 도가 없으면 용모를 바로 하여 깨우쳐 사람의 (그릇된) 뜻을 사라지게 합니다. 제가 어찌 칭찬하기에 족하겠습니까!" 자방이 나가자 문후가 멍하니 종일 말하지 않다가, 앞에 선 신하를 불러 말했다. "멀구나, 덕이 온전한 군자여! 처음에 나는 성스러운 지혜의 말과 인의의 행함을 지극하다 여겼다. 내 자방의 스승을 들으니, 내 형체가 풀려 움직이고 싶지 않고 입이 다물려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배운 것은 다만 흙인형일 따름이니, 무릇 위나라가 참으로 나의 매임이로구나!"

온백설자(溫伯雪子)가 제나라로 가다가 노나라에 묵었다. 노나라 사람 중에 뵙기를 청하는 자가 있으니 온백설자가 말했다. "안 되오. 내 듣건대 중국의 군자는 예의에 밝으나 사람의 마음을 아는 데는 누추하다 하니, 나는 보고 싶지 않소." 제나라에 이르렀다가 돌아오며 노나라에 묵으니, 이 사람이 또 뵙기를 청했다. 온백설자가 말했다. "지난번에도 나를 보기를 청하더니 지금 또 나를 보기를 청하니, 이는 반드시 나를 깨우칠 바가 있는 것이다." 나가 손님을 보고 들어와 탄식했다. 이튿날 손님을 보고 또 들어와 탄식했다. 그 종이 말했다. "손님을 볼 때마다 반드시 들어와 탄식하시니 어찌입니까?" 말했다. "내 본디 그대에게 일렀다, '중국의 백성은 예의에 밝으나 사람의 마음을 아는 데는 누추하다'고. 아까 나를 본 자는 나아가고 물러섬이 한결같이 그림쇠를 이루고 곱자를 이루며, 조용함이 한 번은 용 같고 한 번은 범 같았다. 그가 나를 간함은 자식 같고 나를 인도함은 아비 같으니, 이로써 탄식한다." 중니가 그를 보고 말하지 않으니 자로가 말했다. "선생님은 온백설자를 뵙고자 한 지 오래인데, 보고 말하지 않으심은 어찌입니까?" 중니가 말했다. "저런 사람은 눈으로 보면 도가 거기 있으니, 또한 소리를 낼 것이 없다!"

안연(顏淵)이 중니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걸으면 저도 걷고, 선생님이 빨리 가면 저도 빨리 가며, 선생님이 달리면 저도 달립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내달아 먼지를 끊으면 저는 멍하니 뒤처질 뿐입니다!" 부자께서 말씀하셨다. "회야, 무슨 말이냐?" 말했다. "선생님이 걸으면 저도 걷는다 함은 선생님이 말하면 저도 말함이요, 선생님이 빨리 가면 저도 빨리 간다 함은 선생님이 변론하면 저도 변론함이며, 선생님이 달리면 저도 달린다 함은 선생님이 도를 말하면 저도 도를 말함입니다. 내달아 먼지를 끊으면 제가 멍하니 뒤처진다 함은, 선생님이 말하지 않아도 미덥고 친하지 않아도 두루 미치며, 기물(벼슬)이 없어도 백성이 앞에 모여드니, 그 까닭을 알지 못할 따름입니다." 중니가 말했다. "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무릇 슬픔은 마음이 죽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사람이 죽는 것은 그다음이다. 해가 동방에서 떠 서쪽 끝으로 들어가매 만물이 이를 향하지 않음이 없으니, 눈과 발이 있는 자는 이를 기다린 뒤에 공을 이룬다. 이것이 뜨면 있고 이것이 들면 없다. 만물도 그러하여 무엇을 기다려 죽고 무엇을 기다려 산다. 내 한 번 이 이룬 형체를 받아 변하지 않고 다함을 기다리며, 사물을 본받아 움직여 밤낮으로 틈이 없되 그 마칠 바를 모른다. 따스이 그 형체를 이루어 명(命)을 아나 그 앞을 헤아릴 수 없으니, 나는 이로써 날마다 흘러간다. 내 종신토록 너와 팔을 맞대고도 잃으니, 슬프지 않겠는가! 너는 거의 내가 드러난 바에만 드러나는구나. 저것이 이미 다했는데 너는 그것을 있다 여겨 구하니, 이는 빈 장터에서 말을 구함이다. 내가 너를 생각함이 심히 잊히고, 네가 나를 생각함도 심히 잊힐 것이다. 비록 그러나 네 어찌 근심하겠느냐! 비록 옛 나를 잊어도 나에게 잊히지 않는 것이 보존되어 있다."

공자가 노담을 뵈니, 노담이 막 머리를 감고 풀어헤쳐 말리는데 우뚝하여 사람 같지 않았다. 공자가 물러나 기다리다가 조금 뒤 뵙고 말했다. "구(丘)가 어지러운 것입니까? 참으로 그러한 것입니까? 아까 선생의 형체가 우뚝하여 마른 나무 같고, 사물을 버리고 사람을 떠나 홀로 선 듯했습니다." 노담이 말했다. "나는 사물의 처음(物之初)에 마음을 노닐었소." 공자가 말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말했다. "마음이 곤하여 알 수 없고 입이 막혀 말할 수 없으나, 그대를 위해 그 대강을 의논하겠소. 지극한 음(至陰)은 차갑고, 지극한 양(至陽)은 뜨겁소. 차가움은 하늘에서 나오고 뜨거움은 땅에서 나오니, 두 가지가 서로 통하여 조화를 이루어 사물이 생기오. 혹 이를 벼리하는 것이 있으나 그 형체를 보지 못하오. 사라지고 자라며 차고 비어, 한 번 어둡고 한 번 밝으며, 날로 고치고 달로 화하여, 날마다 하는 바가 있으되 그 공을 보지 못하오. 삶은 싹트는 바가 있고 죽음은 돌아가는 바가 있어, 시작과 끝이 끝없이 서로 반대되되 그 다하는 바를 알지 못하오. 이것이 아니면 또 무엇이 그 종주가 되겠소!" 공자가 말했다. "묻건대 이에 노니는 것은?" 노담이 말했다. "무릇 이를 얻음은 지극한 아름다움이요 지극한 즐거움이오. 지극한 아름다움을 얻어 지극한 즐거움에 노니는 것을 지극한 사람(至人)이라 하오." 공자가 말했다. "그 방도를 듣기를 원합니다." 말했다. "풀 먹는 짐승은 늪 바꿈을 괴로워하지 않고, 물에 사는 벌레는 물 바꿈을 괴로워하지 않으니, 작은 변화를 행하여도 그 큰 항상됨을 잃지 않기 때문이오.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이 가슴속에 들어오지 않으니, 무릇 천하는 만물이 하나 되는 곳이오. 그 하나 되는 바를 얻어 같아지면, 사지와 온몸이 장차 티끌과 때가 되고 죽음과 삶, 끝과 시작이 장차 낮과 밤이 되어 어지럽힐 수 없거늘, 하물며 얻음과 잃음, 화와 복이 끼어드는 바이겠소! 종 부리던 것(隸)을 버리기를 진흙 버리듯 함은 몸이 종보다 귀함을 앎이니, 귀함이 나에게 있어 변화에 잃지 않소. 또 만 가지 변화가 일찍이 끝이 있지 않으니, 무엇이 족히 마음을 근심케 하겠소! 이미 도를 행한 자는 이것을 깨닫소." 공자가 말했다. "선생님의 덕이 천지에 짝하면서도 오히려 지극한 말을 빌려 마음을 닦으시니, 옛 군자가 누가 능히 벗어났겠습니까?" 노담이 말했다. "그렇지 않소. 무릇 물이 솟음은 무위하여 재주가 절로 그러하오. 지극한 사람이 덕에 있어 닦지 않아도 사물이 떠날 수 없음은, 마치 하늘이 절로 높고 땅이 절로 두터우며 해와 달이 절로 밝은 것과 같으니, 무엇을 닦겠소!" 공자가 나와 안회에게 고했다. "구가 도에 있어 마치 술단지 속 초파리 같았다! 부자께서 나의 덮개를 열어주지 않으셨다면, 나는 천지의 큰 온전함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장자가 노 애공(魯哀公)을 뵈니 애공이 말했다. "노나라에 유사(儒士)가 많고 선생의 방술을 하는 자는 적소." 장자가 말했다. "노나라에 유자가 적습니다." 애공이 말했다. "온 노나라가 유복(儒服)을 입었는데 어찌 적다 하오?" 장자가 말했다. "제가 듣건대 유자가 둥근 관을 쓰는 것은 천시(天時)를 앎이요, 네모진 신을 신는 것은 지형(地形)을 앎이요, 오색실로 결옥(玦)을 차는 것은 일이 이르면 결단함이라 합니다. 군자가 그 도를 가진 자는 반드시 그 옷을 입지 않으며, 그 옷을 입은 자는 반드시 그 도를 알지 못합니다. 공께서 굳이 그렇지 않다 여기시면, 어찌 나라 안에 명하여 '이 도가 없이 이 옷을 입는 자는 그 죄가 죽음이다'라고 하지 않으십니까?" 이에 애공이 닷새를 명하니 노나라에 감히 유복을 입는 자가 없고, 홀로 한 장부가 유복을 입고 공의 문에 섰다. 공이 곧 불러 나랏일을 물으니 천 번 만 번 변하여도 막힘이 없었다. 장자가 말했다. "노나라에 유자가 한 사람뿐이니 많다 하겠습니까?"

백리해(百里奚)는 벼슬과 녹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소를 먹여 소가 살찌니, 진 목공(秦穆公)으로 하여금 그 천함을 잊고 더불어 정사를 맡기게 했다. 유우씨(有虞氏, 순)는 죽음과 삶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사람을 움직이기에 족했다.

송 원군(宋元君)이 그림을 그리려 하니 뭇 화사가 모두 이르러, 읍을 받고 서서 붓을 핥고 먹을 갈았는데 밖에 있는 자가 절반이었다. 한 화사가 뒤늦게 이르러 느긋이 빨리 걷지 않고 읍을 받고도 서지 않은 채 집으로 들어갔다. 공이 사람을 시켜 보게 하니 옷을 벗고 두 다리를 뻗고 벌거벗고 있었다. 임금이 말했다. "되었다, 이가 참된 화사다."

문왕(文王)이 장(臧) 땅을 둘러보다가 한 장부가 낚시질하는데 그 낚시가 낚으려 하지 않음을 보았다. 그 낚시에 (고기를) 낚으려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늘 낚는 것이었다. 문왕이 그를 들어 정사를 맡기려 했으나 대신과 부형이 편치 않을까 두려웠고, 끝내 놓아두려 하니 백성이 하늘 없음을 차마 못 하겠기에, 이에 아침에 대부들에게 일러 말했다. "옛날 과인이 꿈에 어진 사람을 보니 검은 빛에 수염이 있고, 얼룩말을 타고 한쪽 발굽이 붉은데, 외쳐 말하기를 '그대 정사를 장(臧) 땅의 장인(丈人)에게 맡기면 거의 백성이 나음이 있으리라' 했소." 대부들이 움찔하여 말했다. "선군이신 왕이십니다." 문왕이 말했다. "그러면 점쳐보라." 대부들이 말했다. "선군의 명이니 왕은 달리 마십시오, 또 어찌 점치겠습니까!" 마침내 장 땅의 장인을 맞아 정사를 맡겼다. 법전을 고치지 않고 치우친 명령을 내지 않았다. 삼 년 만에 문왕이 나라를 둘러보니, 뭇 선비가 패거리를 허물어 흩고, 관장(官長)이 (사사로운) 덕을 이루지 않으며, 됫박이 감히 사방 경계에 들어오지 않았다. 뭇 선비가 패거리를 허물어 흩음은 윗사람과 같아짐(尚同)이요, 관장이 덕을 이루지 않음은 함께 힘씀(同務)이요, 됫박이 감히 사방 경계에 들어오지 않음은 제후가 두 마음이 없음이다. 문왕이 이에 그를 태사(大師)로 삼고 북면하여 물었다. "정사가 천하에 미칠 수 있겠습니까?" 장 땅의 장인이 어둑이 응하지 않고 무심히 사양하더니, 아침에 명을 받고 밤에 달아나 종신토록 들림이 없었다. 안연이 중니에게 물었다. "문왕은 오히려 부족합니까? 또 어찌 꿈을 빌렸습니까?" 중니가 말했다. "잠잠하라, 너는 말 말라! 무릇 문왕은 다했으니, 또 어찌 따져 비난하겠느냐! 그는 다만 잠깐을 따랐을 뿐이다."

열어구(列禦寇)가 백혼무인(伯昏无人)을 위해 활을 쏘는데, 활을 가득 당기고 팔꿈치 위에 물잔을 놓고 쏘니, 화살이 잇달아 나가고 또 활시위에 화살이 메겨졌다. 그때에 마치 인형 같았다. 백혼무인이 말했다. "이것은 활쏘기의 활쏘기지, 활쏘지 않음의 활쏘기가 아니다. 그대와 더불어 높은 산에 올라 위태로운 바위를 밟고 백 길 못에 임하면, 그대는 능히 쏠 수 있겠는가?" 이에 무인이 마침내 높은 산에 올라 위태로운 바위를 밟고 백 길 못에 임하여, 등지고 뒷걸음쳐 발의 이 분이 밖에 드리워지자 어구에게 읍하여 나오게 했다. 어구가 땅에 엎드려 땀이 발꿈치까지 흘렀다. 백혼무인이 말했다. "무릇 지극한 사람은 위로 푸른 하늘을 엿보고 아래로 황천에 잠기며 팔극을 휘둘러도 정신과 기운이 변치 않는다. 지금 그대는 두려워 눈이 어지러운 뜻이 있으니, 그대가 (과녁을) 맞히기에 위태롭구나!"

견오(肩吾)가 손숙오(孫叔敖)에게 물었다. "그대가 세 번 영윤(令尹)이 되어도 영화롭게 여기지 않고, 세 번 그만두어도 근심하는 빛이 없소. 내 처음에는 그대를 의심했으나 지금 그대의 콧등을 보니 화창하니, 그대의 마음 씀이 홀로 어떠하오?" 손숙오가 말했다. "내 어찌 남보다 나음이 있겠소! 나는 그 옴을 물리칠 수 없고 그 감을 멈출 수 없다 여겨, 얻음과 잃음이 나에게 있지 않다 여겨 근심하는 빛이 없을 따름이오. 내 어찌 남보다 나음이 있겠소! 또 그것이 저것에 있는지 나에게 있는지 모르겠소. 저것에 있다면 나에게 없고, 나에게 있다면 저것에 없소. 바야흐로 머뭇거리고 바야흐로 사방을 돌아보니, 어느 겨를에 사람의 귀하고 천함에 이르겠소!" 중니가 듣고 말했다. "옛 참사람은 아는 자도 설득하지 못하고, 미인도 음란케 하지 못하며, 도둑도 빼앗지 못하고, 복희·황제도 벗하지 못한다. 죽음과 삶이 또한 크나 자기를 변화시키지 못하거늘 하물며 벼슬과 녹이랴! 그러한 자는 그 정신이 큰 산을 지나도 거리낌이 없고, 깊은 샘에 들어도 젖지 않으며, 낮고 가는 데 처하여도 고달프지 않고, 천지에 가득 차서 이미 남에게 주고도 자기는 더욱 가진다."

초왕(楚王)이 범군(凡君)과 앉았는데 조금 뒤 초왕의 좌우가 범나라가 망했다고 세 번 말했다. 범군이 말했다. "범나라의 망함이 나의 보존을 잃기에 족하지 못하오. 무릇 '범나라의 망함이 나의 보존을 잃기에 족하지 못하다'면, 초나라의 보존도 보존을 보존하기에 족하지 못하오. 이로 보건대 범나라가 일찍이 망한 적이 없고 초나라가 일찍이 보존된 적이 없소."

원문 전문 보기 (한문)

田子方第二十一

田子方第二十一   田子方侍坐於魏文侯,數稱谿工。

  文侯曰:「谿工,子之師邪?」

  子方曰:「非也,無擇之里人也;稱道數當,故无擇稱之。」

  文侯曰:「然則子无師邪?」

  子方曰:「有。」

  曰:「子之師誰邪?」

  子方曰:「東郭順子。」

  文侯曰:「然則夫子何故未嘗稱之?」

  子方曰:「其為人也真,人貌而天虛,緣而葆真,清而容物。物无道,正容以悟之,使人之意也消。无擇何足以稱之!」

  子方出,文侯儻然終日不言,召前立臣而語之曰:「遠矣,全德之君子!始吾以聖知之言、仁義之行為至矣。吾聞子方之師,吾形解而不欲動,口鉗而不欲言。吾所學者直土梗耳,夫魏真為我累耳!」

  溫伯雪子適齊,舍於魯。魯人有請見之者,溫伯雪子曰:「不可。吾聞中國之君子,明乎禮義而陋於知人心,吾不欲見也。」

  至於齊,反舍於魯,是人也又請見。溫伯雪子曰:「往也蘄見我,今也又蘄見我,是必有以振我也。」

  出而見客,入而歎。明日見客,又入而歎。其僕曰:「每見之客也,必入而歎,何耶?」

  曰:「吾固告子矣:『中國之民,明乎禮義而陋乎知人心。』昔之見我者,進退一成規,一成矩,從容一若龍,一若虎。其諫我也似子,其道我也似父,是以歎也。」

  仲尼見之而不言。子路曰:「吾子欲見溫伯雪子久矣,見之而不言,何邪?」

  仲尼曰:「若夫人者,目擊而道存矣,亦不可以容聲矣!」

  顏淵問於仲尼曰:「夫子步亦步,夫子趨亦趨,夫子馳亦馳;夫子奔逸絕塵,而回瞠若乎後矣!」

  夫子曰:「回,何謂邪?」

  曰:「夫子步,亦步也;夫子言,亦言也;夫子趨,亦趨也;夫子辯,亦辯也;夫子馳,亦馳也;夫子言道,回亦言道也;及奔逸絕塵而回瞠若乎後者,夫子不言而信,不比而周,无器而民滔乎前,而不知所以然而已矣。」

  仲尼曰:「惡!可不察與!夫哀,莫大於心死,而人死亦次之。日出東方而入於西極,萬物莫不比方,有目有趾者,待是而後成功,是出則存,是入則亡。萬物亦然,有待也而死,有待也而生。吾一受其成形,而不化以待盡,效物而動,日夜无隙,而不知其所終;薰然其成形,知命不能規乎其前,丘以是日徂。

  吾終身與汝交一臂而失之,可不哀與!女殆著乎吾所以著也。彼已盡矣,而女求之以為有,是求馬於唐肆也。吾服女也甚忘,女服吾也甚忘。雖然,女奚患焉!雖忘乎故吾,吾有不忘者存。」

  孔子見老聃,老聃新沐,方將被髮而干,慹然似非人。孔子便而待之,少焉見,曰:「丘也眩與?其信然與?向者先生形體掘若槁木,似遺物離人而立於獨也。」

  老聃曰:「吾遊心於物之初。」

  孔子曰:「何謂邪?」

  曰:「心困焉而不能知,口辟焉而不能言,嘗為汝議乎其將。至陰肅肅,至陽赫赫;肅肅出乎天,赫赫發乎地;兩者交通成和而物生焉,或為之紀而莫見其形。消息滿虛,一晦一明,日改月化,日有所為,而莫見其功。生有所乎萌,死有所乎歸,始終相反乎无端,而莫知乎其所窮。非是也,且孰為之宗!」

  孔子曰:「請問遊是。」

  老聃曰:「夫得是,至美至樂也。得至美而遊乎至樂,謂之至人。」

  孔子曰:「願聞其方。」

  曰:「草食之獸不疾易藪,水生之蟲不疾易水,行小變而不失其大常也,喜怒哀樂不入於胸次。夫天下也者,萬物之所一也。得其所一而同焉,則四支百體將為塵垢,而死生終始將為晝夜而莫之能滑,而況得喪禍福之所介乎!棄隸者若棄泥塗,知身貴於隸也,貴在於我而不失於變。且萬化而未始有極也,夫孰足以患心!已為道者解乎此。」

  孔子曰:「夫子德配天地,而猶假至言以修心,古之君子,孰能脫焉?」

  老聃曰:「不然。夫水之於汋也,无為而才自然矣。至人之於德也,不修而物不能離焉,若天之自高,地之自厚,日月之自明,夫何脩焉!」

  孔子出,以告顏回曰:「丘之於道也,其猶醯雞與!微夫子之發吾覆也,吾不知天地之大全也。」

  莊子見魯哀公,哀公曰:「魯多儒士,少為先生方者。」

  莊子曰:「魯少儒。」

  哀公曰:「舉魯國而儒服,何謂少乎?」

  莊子曰:「周聞之,儒者冠圜冠者,知天時;履句屨者,知地形;緩佩玦者,事至而斷。君子有其道者,未必為其服也;為其服者,未必知其道也。公固以為不然,何不號於國中曰:『无此道而為此服者,其罪死!』」

  於是哀公號之五日,而魯國无敢儒服者,獨有一丈夫儒服而立乎公門。公即召而問以國事,千轉萬變而不窮。

  莊子曰:「以魯國而儒者一人耳,可謂多乎?」

  百里奚爵祿不入於心,故飯牛而牛肥,使秦穆公忘其賤,與之政也。有虞氏死生不入於心,故足以動人。

  宋元君將畫圖,衆史皆至,受揖而立;舐筆和墨,在外者半。有一史後至者,儃儃然不趨,受揖不立,因之舍。公使人視之,則解衣般礡臝。君曰:「可矣,是真畫者也。」

  文王觀於臧,見一丈夫釣,而其釣莫釣;非持其釣有釣者也,常釣也。

  文王欲舉而授之政,而恐大臣父兄之弗安也;欲終而釋之,而不忍百姓之无天也。於是旦而屬之大夫曰:「昔者寡人夢見良人,黑色而劔,乘駁馬而偏朱蹄,號曰:『寓而政於臧丈人,庶幾乎民有瘳乎!』」

  諸大夫蹴然曰:「先君王也。」

  文王曰:「然則卜之。」

  諸大夫曰:「先君之命,王其无它,又何卜焉!」

  遂迎臧丈人而授之政。典法无更,偏令无出。三年,文王觀於國,則列士壞植散羣,長官者不成德,斔斛不敢入於四竟。列士壞植散羣,則尚同也;長官者不成德,則同務也,斔斛不敢入於四竟,則諸侯无二心也。

  文王於是焉以為大師,北面而問曰:「政可以及天下乎?」臧丈人昧然而不應,泛然而辭,朝令而夜遁,終身无聞。

  顏淵問於仲尼曰:「文王其猶未邪?又何以夢為乎?」

  仲尼曰:「默,汝无言!夫文王盡之也,而又何論剌焉!彼直以循斯須也。」

  列禦寇為伯昏无人射,引之盈貫,措杯水其肘上,發之,適矢復沓,方矢復寓。當是時,猶象人也。

  伯昏无人曰:「是射之射,非不射之射也。嘗與汝登高山,履危石,臨百仞之淵,若能射乎?」

  於是无人遂登高山,履危石,臨百仞之淵,背逡巡,足二分垂在外,揖禦寇而進之。禦寇伏地,汗流至踵。

  伯昏无人曰:「夫至人者,上闚青天,下潛黃泉,揮斥八極,神氣不變。今汝怵然有恂目之志,爾於中也殆矣夫!」

  肩吾問於孫叔敖曰:「子三為令尹而不榮華,三去之而无憂色。吾始也疑子,今視子之鼻間栩栩然,子之用心獨柰何?」

  孫叔敖曰:「吾何以過人哉!吾以其來不可卻也,其去不可止也,吾以為得失之非我也,而无憂色而已矣。我何以過人哉!且不知其在彼乎?其在我乎?其在彼邪?亡乎我;在我邪?亡乎彼。方將躊躇,方將四顧,何暇至乎人貴人賤哉!」

  仲尼聞之曰:「古之真人,知者不得說,美人不得濫,盜人不得劫,伏戲黃帝不得友。死生亦大矣,而无變乎己,況爵祿乎!若然者,其神經乎大山而無介,入乎淵泉而不濡,處卑細而不憊,充滿天地,既以與人,己愈有。」

  楚王與凡君坐,少焉,楚王左右曰凡亡者三。凡君曰:「凡之亡也,不足以喪吾存。夫『凡之亡不足以喪吾存』,則楚之存不足以存存。由是觀之,則凡未始亡而楚未始存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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