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외편 15 지북유(知北遊)

장자(莊子) · 전국 장주 · 번역·감수 허유

지(知)라는 인물이 북쪽으로 노닐며 도를 묻는 우화로 시작하여, "도를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는 명제를 펼친다. "천하를 통하는 것은 한 기운일 따름(通天下一氣)", "도는 어디에도 있다(无所不在)", 천지의 큰 아름다움(大美)에 관한 절들로 도의 두루함과 말로 다할 수 없음을 설한다.

핵심 구절 — 원문과 번역

知者不言,言者不知,故聖人行不言之教。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니, 그러므로 성인은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한다.

通天下一氣耳。聖人故貴一。

천하를 통하는 것은 한 기운일 따름이다. 성인은 그러므로 하나를 귀히 여긴다.

道惡乎在?……无所不在。

도는 어디에 있는가? …… 있지 않은 데가 없다.

번역

지(知)가 북쪽으로 현수(玄水) 가에 노닐며 은분(隱弅)의 언덕에 올라 마침 무위위(无爲謂)를 만났다. 지가 무위위에게 말했다. "내 그대에게 묻고자 하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헤아려야 도를 알며, 무엇에 처하고 무엇에 복종해야 도에 편안하며, 무엇을 좇고 무엇을 따라야 도를 얻소?" 세 번 물었으나 무위위가 답하지 않았다. 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답할 줄 몰랐다.

지가 묻지 못하고 백수(白水)의 남쪽으로 돌아와 호결(狐闋)의 위에 올라 광굴(狂屈)을 보았다. 지가 그 말로 광굴에게 물었다. 광굴이 말했다. "아! 내 그것을 아니 그대에게 말하리라." 막 말하려다가 그 말하려던 바를 잊었다.

지가 묻지 못하고 제궁(帝宮)으로 돌아와 황제(黃帝)를 뵙고 물었다. 황제가 말했다. "생각도 없고 헤아림도 없어야 비로소 도를 알고, 처함도 없고 복종함도 없어야 비로소 도에 편안하며, 좇음도 없고 따름도 없어야 비로소 도를 얻는다." 지가 황제에게 물었다. "나와 그대는 그것을 아는데 저들은 알지 못하니, 그 누가 옳습니까?" 황제가 말했다. "저 무위위가 참으로 옳고 광굴이 그에 가까우며, 나와 그대는 끝내 가깝지 못하다. 무릇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니(知者不言, 言者不知), 그러므로 성인은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한다. 도는 이를 수 없고 덕은 다다를 수 없다. 인(仁)은 할 수 있고, 의(義)는 이지러뜨릴 수 있으며, 예(禮)는 서로 속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를 잃은 뒤에 덕이요, 덕을 잃은 뒤에 인이요, 인을 잃은 뒤에 의요, 의를 잃은 뒤에 예다. 예란 도의 꽃이요 어지러움의 우두머리다'라고 하며, '도를 행하는 자는 날로 덜어내니, 덜고 또 덜어 무위에 이르고, 무위하면서도 하지 않음이 없다'고 한다. 지금 이미 사물이 되었으니 다시 뿌리로 돌아가려 한들 또한 어렵지 않은가! 그것이 쉬운 것은 오직 대인(大人)뿐이로다!

삶은 죽음의 동무요 죽음은 삶의 시작이니, 누가 그 벼리를 알겠는가! 사람의 삶은 기운의 모임이니, 모이면 삶이 되고 흩어지면 죽음이 된다. 만약 죽음과 삶이 동무라면 내 또 무엇을 근심하겠는가! 그러므로 만물은 하나다. 이는 그 아름답게 여기는 것을 신기(神奇)라 하고 그 미워하는 것을 썩어 냄새남(臭腐)이라 한다. 썩어 냄새남이 다시 화하여 신기가 되고, 신기가 다시 화하여 썩어 냄새남이 된다. 그러므로 '천하를 통하는 것은 한 기운일 따름(通天下一氣耳)'이라 한다. 성인은 그러므로 하나를 귀히 여긴다."

지가 황제에게 말했다. "내가 무위위에게 물으니 무위위가 나에게 응하지 않았는데, 나에게 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응할 줄 몰랐습니다. 내가 광굴에게 물으니 광굴이 나에게 고하려다가 고하지 않았는데, 나에게 고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고하려다가 잊었습니다. 지금 내가 그대에게 물으니 그대가 그것을 아는데 어찌 가깝지 못합니까?" 황제가 말했다. "저 무위위가 참으로 옳음은 그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광굴이 그에 가까움은 그가 잊었기 때문이며, 나와 그대가 끝내 가깝지 못함은 우리가 그것을 알기 때문이다." 광굴이 듣고 황제를 일러 말을 안다(知言) 하였다.

천지에 큰 아름다움(大美)이 있으되 말하지 않고, 사계절에 밝은 법이 있으되 의논하지 않으며, 만물에 이루어진 이치가 있으되 말하지 않는다. 성인이란 천지의 아름다움에 근원하고 만물의 이치에 통달한 자다. 그러므로 지극한 사람은 무위하고 큰 성인은 짓지 않으니, 천지를 본받음을 말함이다.

지금 저 신명이 지극히 정밀하여 저 온갖 변화와 함께하니, 사물이 이미 죽고 살며 모나고 둥글되 그 뿌리를 알지 못하나, 두루 만물이 예로부터 본디 보존되어 있다. 육합(六合)이 크되 그 안을 떠나지 않고, 가을털이 작되 그것을 기다려 몸을 이룬다. 천하가 뜨고 가라앉지 않음이 없어 종신토록 옛것 그대로가 아니며, 음양과 사계절이 운행하여 저마다 그 차례를 얻는다. 어둑이 없는 듯하면서 보존되고, 흐르는 듯이 형체 없으면서 신묘하여, 만물이 길러지되 알지 못한다. 이를 일러 근본(本根)이라 하니, 하늘을 볼 수 있다.

설결(齧缺)이 피의(被衣)에게 도를 물으니 피의가 말했다. "그대가 그대의 형체를 바로 하고 그대의 봄을 하나로 하면 하늘의 조화가 이를 것이요, 그대의 앎을 거두고 그대의 헤아림을 하나로 하면 정신이 와서 깃들일 것이다. 덕이 장차 그대를 아름답게 하고 도가 장차 그대의 거처가 될 것이니, 그대가 갓 난 송아지처럼 멍하니 그 까닭을 구하지 않으리라!" 말이 끝나기 전에 설결이 잠들었다. 피의가 크게 기뻐하여 노래하며 떠나가 말했다. "형체는 마른 해골 같고 마음은 식은 재 같으며, 참으로 그 실(實)을 알아 까닭으로 스스로 지니지 않는다. 어둑하고 캄캄하여 마음이 없어 더불어 꾀할 수 없으니, 저 무슨 사람인가!"

순(舜)이 승(丞)에게 물었다. "도를 얻어 가질 수 있습니까?" 말했다. "그대의 몸도 그대의 것이 아니거늘 그대가 어찌 도를 가지겠는가!" 순이 말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면 누가 그것을 가졌습니까?" 말했다. "이는 천지가 맡긴 형체다. 삶도 그대의 것이 아니니 천지가 맡긴 조화요, 성명(性命)도 그대의 것이 아니니 천지가 맡긴 순응이요, 자손도 그대의 것이 아니니 천지가 맡긴 허물벗음이다. 그러므로 다녀도 갈 바를 모르고, 처하여도 지킬 바를 모르며, 먹어도 맛을 모른다. 천지의 굳센 양(陽)의 기운이니, 또 어찌 얻어 가지겠는가!"

공자가 노담에게 물었다. "오늘 한가하니 감히 지극한 도를 묻습니다." 노담이 말했다. "그대는 재계하여 그대의 마음을 씻고 그대의 정신을 깨끗이 하며 그대의 앎을 쳐 없애라! 무릇 도는 그윽하여 말하기 어렵구나! 장차 그대를 위해 그 대강을 말하리라. 무릇 밝음은 어둠에서 나고, 모양 있는 것은 형체 없음에서 나며, 정신은 도에서 나고, 형체의 근본은 정기에서 나며, 만물이 형체로 서로 생긴다. 그러므로 아홉 구멍 있는 것은 태로 낳고 여덟 구멍 있는 것은 알로 낳는다. 그 옴에 자취가 없고 그 감에 끝이 없으며, 문도 없고 방도 없어 사방으로 통하여 훤하다. 이를 따르는 자는 사지가 굳세고 생각이 통달하며 이목이 밝다. 그 마음 씀이 수고롭지 않고 그 사물에 응함이 방향이 없다. 하늘이 높지 않을 수 없고 땅이 넓지 않을 수 없으며 해와 달이 운행하지 않을 수 없고 만물이 창성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것이 그 도일 것이다!

또 무릇 박식이 반드시 앎은 아니요, 변론이 반드시 슬기는 아니니, 성인은 이를 끊었다. 무릇 더해도 더해지지 않고 덜어도 덜어지지 않는 것은 성인이 지키는 바다. 깊고 깊어 바다 같고, 우뚝하여 끝나면 다시 시작하며, 만물을 헤아려 운행하되 모자라지 않는다. 그러니 군자의 도는 저 밖일 것이다! 만물이 모두 가서 의지하되 모자라지 않으니, 이것이 그 도일 것이다!

중국에 사람이 있으니 음(陰)도 아니고 양(陽)도 아니라, 천지 사이에 처하여 다만 잠시 사람이 되었다가 장차 종주로 돌아간다. 근본에서 보면 삶이란 기운이 엉긴 것이다. 비록 오래 살고 일찍 죽음이 있어도 서로 떨어짐이 얼마나 되겠는가? 잠깐의 이야기이니, 어찌 요와 걸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에 족하겠는가! 풀과 나무 열매에 이치가 있고 사람의 인륜이 비록 어려우나 서로 차례하는 바가 있다. 성인은 그것을 만나도 어기지 않고 지나도 지키지 않는다. 고르게 응함이 덕이요, 짝하여 응함이 도이니, 제왕이 일어나는 바요 왕이 일어나는 바다.

사람이 천지 사이에 사는 것은 흰 망아지가 틈을 지나가는 것 같아 홀연할 따름이다. 솟듯이 발연히 나오지 않음이 없고, 흐르듯이 적적히 들어가지 않음이 없다. 이미 화하여 살고 또 화하여 죽으니, 산 것이 슬퍼하고 사람 무리가 슬퍼한다. 그 하늘 활집을 풀고 그 하늘 칼집을 떨구어, 어지러이 굽이쳐 혼백이 장차 가매 몸이 그것을 좇으니, 이에 크게 돌아감이로다! 형체 없는 것이 형체가 되고 형체 있는 것이 형체 없음으로 됨은 사람이 다 같이 아는 바요, 장차 이르려는 자가 힘쓸 바가 아니니, 이는 뭇사람이 다 같이 논하는 바다. 저 (도에) 이른 자는 논하지 않으니, 논하면 이르지 못한다. 밝게 봄은 만남이 없고, 변론은 침묵만 못하다. 도는 들을 수 없으니 들음은 막음만 못하다. 이를 일러 큰 얻음(大得)이라 한다."

동곽자(東郭子)가 장자에게 물었다. "이른바 도는 어디에 있습니까?" 장자가 말했다. "있지 않은 데가 없소(无所不在)." 동곽자가 말했다. "기약한 뒤에야 옳겠습니다." 장자가 말했다. "땅강아지와 개미에 있소." "어찌 그리 낮습니까?" "돌피에 있소." "어찌 더 낮습니까?" "기와와 벽돌에 있소." "어찌 더 심합니까?" "똥과 오줌에 있소." 동곽자가 응하지 않았다. 장자가 말했다. "무릇 그대의 물음은 본디 바탕에 미치지 못하오. 정확(正獲)이 시장 감독에게 돼지 밟기를 물음에 아래로 갈수록 더욱 (살찜이) 드러난다 했소. 그대는 오직 기필하지 마오, 사물에서 벗어남이 없소. 지극한 도가 이와 같고 큰 말도 그러하오. 두루(周)·널리(徧)·다(咸) 세 가지는 이름이 다르나 실(實)은 같으니, 그 가리킴이 하나요. 시험 삼아 더불어 아무것도 없는 궁전(无何有之宮)에 노닐며 함께 합하여 논하면 끝남이 없으리라! 시험 삼아 더불어 무위하리라! 담담히 고요하리라! 막막히 맑으리라! 고르게 한가하리라! 적막하구나 내 뜻이여, 가도 그 이른 바를 모른다. 가고 와도 그 멈출 바를 모르며, 내 이미 오가도 그 마칠 바를 모른다. 넓고 빈 데 노닐어 큰 앎이 들어가도 그 다할 바를 모른다. 사물을 사물로 다루는 것(物物者)은 사물과 경계가 없으나, 사물에 경계가 있는 것은 이른바 사물의 경계요, 경계 없는 경계는 경계의 경계 없음이오. 차고 비며 쇠하고 줄어든다 함은, 저것이 참은 차고 빔이로되 차고 빔이 아니요, 저것이 쇠하고 줄어듦이로되 쇠하고 줄어듦이 아니며, 저것이 근본과 말단이로되 근본과 말단이 아니요, 저것이 쌓고 흩음이로되 쌓고 흩음이 아니오."

아하감(妸荷甘)과 신농(神農)이 함께 노룡길(老龍吉)에게 배웠다. 신농이 안석에 기대어 문을 닫고 낮잠을 자는데, 아하감이 한낮에 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 "노룡이 죽었소!" 신농이 안석에 기대어 지팡이를 안고 일어나 탁 지팡이를 놓고 웃으며 말했다. "하늘이 내가 좁고 누추하며 거만하고 방자함을 알았으므로, 나를 버리고 죽었구나. 끝이로다, 부자께서 나를 일깨울 미친 말도 없이 죽으셨구나!" 엄강조(弇堈弔)가 듣고 말했다. "무릇 도를 체득한 자는 천하의 군자가 매이는 바다. 지금 도에 있어 가을털 끝의 만분의 일도 얻어 처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그 미친 말을 감추고 죽을 줄 아는데, 하물며 도를 체득한 자이랴! 보아도 형체가 없고 들어도 소리가 없으니, 사람의 논의에서는 그윽하다(冥冥) 하는데, 도를 논하는 것이지 도는 아니다."

이에 태청(泰清)이 무궁(无窮)에게 물었다. "그대는 도를 아오?" 무궁이 말했다. "나는 모르오." 또 무위(无為)에게 물으니 무위가 말했다. "나는 도를 아오." "그대가 도를 앎에 또한 셈(數)이 있소?" "있소." "그 셈이 어떠하오?" 무위가 말했다. "내 도가 귀할 수도 천할 수도 있고 묶일 수도 흩어질 수도 있음을 아니, 이것이 내가 도의 셈을 아는 까닭이오." 태청이 그 말로 무시(无始)에게 물었다. "이와 같으면 무궁의 알지 못함과 무위의 앎 중에 누가 옳고 누가 그르오?" 무시가 말했다. "알지 못함이 깊고 앎이 얕으며, 알지 못함이 안이요 앎이 밖이오." 이에 태청이 중간에 탄식하여 말했다. "알지 못함이 곧 앎인가! 앎이 곧 알지 못함인가! 누가 알지 못함의 앎을 알겠는가?" 무시가 말했다. "도는 들을 수 없으니 들으면 (참된 도가) 아니요, 도는 볼 수 없으니 보면 아니요, 도는 말할 수 없으니 말하면 아니오. 형체를 형체 짓는 것이 형체 없음을 알겠는가! 도는 이름에 마땅하지 않소." 무시가 말했다. "도를 묻고 응하는 자는 도를 알지 못하는 것이오. 비록 도를 묻는 자라도 또한 도를 듣지 못한 것이오. 도는 물음이 없고 물음은 응함이 없소. 물음 없는 것을 묻는 것은 물음이 다한 것이요, 응함 없는 것을 응하는 것은 안이 없는 것이오. 안이 없음으로 다한 물음을 대하니, 이러한 자는 밖으로 우주를 보지 못하고 안으로 태초를 알지 못하니, 이로써 곤륜을 넘지 못하고 태허에 노닐지 못하오."

광요(光曜)가 무유(无有)에게 물었다. "그대는 있소? 아니면 없소?" 광요가 묻지 못하고 그 모습을 익히 보니, 그윽하고 텅 비어 종일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잡아도 잡히지 않았다. 광요가 말했다. "지극하구나, 그 누가 능히 이에 이르겠는가! 나는 능히 없음(无)이 있을 수 있으나 없음의 없음(无无)은 능히 못하며, 없음(无有)이 됨에 이르렀으나 어디서 이에 이르겠는가!"

대마(大馬, 초나라 대사마)의 갈고리 두드리는 자가 나이 여든인데 터럭만큼도 어긋남이 없었다. 대마가 말했다. "그대는 솜씨인가? 도가 있는가?" 말했다. "신은 지킴이 있습니다. 신이 나이 스물에 갈고리 두드리기를 좋아하여, 다른 사물은 보지 않고 갈고리가 아니면 살피지 않았습니다. 이는 씀(用)이란 쓰지 않음(不用)을 빌려 그 씀을 오래 얻는 것이니, 하물며 쓰지 않음이 없는 것(无不用)이겠습니까! 사물이 누가 그것에 의지하지 않겠습니까!"

염구(冉求)가 중니에게 물었다. "천지가 있기 전을 알 수 있습니까?" 중니가 말했다. "알 수 있다. 옛날도 지금과 같다." 염구가 물음을 잃고 물러났다. 이튿날 다시 뵙고 말했다. "어제 제가 '천지가 있기 전을 알 수 있습니까' 물으니, 선생님이 '알 수 있다, 옛날도 지금과 같다' 하셨습니다. 어제는 제가 환했는데 오늘은 제가 어둡습니다. 감히 묻건대 무슨 말씀입니까?" 중니가 말했다. "어제의 환함은 정신이 먼저 그것을 받았기 때문이요, 오늘의 어둠은 또 정신 아닌 것으로 구하기 때문이다.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으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자손이 있기 전에 자손이 있다 함이 옳겠느냐?" 염구가 대답하지 못했다. 중니가 말했다. "되었다, 응하지 말라! 삶으로 죽음을 살게 하지 않고, 죽음으로 삶을 죽게 하지 않는다. 죽음과 삶이 기다림이 있겠느냐? 모두 하나의 몸 됨이 있다. 천지보다 먼저 생긴 것이 사물이겠느냐? 사물을 사물로 다루는 것은 사물이 아니니, 사물이 나옴은 사물보다 앞설 수 없고, 오히려 그 사물이 있을 따름이다. 오히려 그 사물이 있어 그침이 없다. 성인이 사람을 사랑함이 끝내 그침이 없음도 또한 이에서 취한 것이다."

안연이 중니에게 물었다. "제가 일찍이 부자께 듣건대 '보내는 바가 없고 맞는 바가 없다(无有所將, 无有所迎)'고 하셨습니다. 감히 그 노닒을 묻습니다." 중니가 말했다. "옛사람은 밖으로 변하되 안으로 변하지 않았고, 지금 사람은 안으로 변하되 밖으로 변하지 않는다. 사물과 더불어 변하는 자는 하나로 변하지 않는 자다. 변함을 편안히 하고 변하지 않음을 편안히 하며, 그와 더불어 서로 따름을 편안히 하되, 반드시 그와 더불어 많지 않게 한다. 시위씨(狶韋氏)의 동산, 황제의 밭, 유우씨의 궁, 탕·무의 집이다. 군자라는 사람도 유가·묵가의 스승 같은 자는 옳고 그름으로 서로 헐뜯거늘, 하물며 지금 사람이랴! 성인은 사물에 처하되 사물을 다치지 않는다. 사물을 다치지 않는 자는 사물도 다치게 할 수 없다. 오직 다치는 바가 없는 자라야 능히 남과 더불어 서로 보내고 맞는다. 산림이여! 언덕이여! 나로 하여금 흔연히 즐겁게 하는구나! 즐거움이 끝나기 전에 슬픔이 또 잇는다. 슬픔과 즐거움의 옴을 내 막을 수 없고 그 감을 멈출 수 없다. 슬프다, 세상 사람은 다만 사물의 객사(逆旅)일 따름이로구나! 무릇 만남은 알되 만나지 못함은 알지 못하고, 능한 것은 능하되 능하지 못함은 능하지 못한다. 알지 못함과 능하지 못함은 본디 사람이 면치 못하는 바거늘, 사람이 면치 못하는 바를 면하려 힘쓰니, 어찌 또한 슬프지 않은가! 지극한 말은 말을 버리고, 지극한 함은 함을 버린다. 앎이 아는 바를 가지런히 하면 얕도다."

원문 전문 보기 (한문)

知北遊第二十二

知北遊第二十二   知北遊於玄水之上,登隱弅之丘,而適遭无為謂焉。知謂无為謂曰:「予欲有問乎若:何思何慮則知道?何處何服則安道?何從何道則得道?」三問而无為謂不答也。非不答,不知答也。

  知不得問,反於白水之南,登狐闋之上,而睹狂屈焉。知以之言也問乎狂屈。狂屈曰:「唉!予知之,將語若,中欲言而忘其所欲言。」

  知不得問,反於帝宮,見黃帝而問焉。黃帝曰:「无思无慮始知道,无處无服始安道,无從无道始得道。」

  知問黃帝曰:「我與若知之,彼與彼不知也,其孰是邪?」

  黃帝曰:「彼无為謂真是也,狂屈似之;我與汝終不近也。夫知者不言,言者不知,故聖人行不言之教。道不可致,德不可至。仁可為也,義可虧也,禮相偽也。故曰,『失道而後德,失德而後仁,失仁而後義,失義而後禮。禮者,道之華而亂之首也。』故曰,『為道者日損,損之又損之以至於无為,无為而无不為也。』今已為物也,欲復歸根,不亦難乎!其易也,其唯大人乎!

  生也死之徙,死也生之始,孰知其紀!人之生,氣之聚也;聚則為生,散則為死。若死生為徙,吾又何患!故萬物一也。是其所美者為神奇,其所惡者為臭腐。臭腐復化為神奇,神奇復化為臭腐。故曰:『通天下一氣耳。』聖人故貴一。」

  知謂黃帝曰:「吾問无為謂,无為謂不應我,非不我應,不知應我也。吾問狂屈,狂屈中欲告我而不我告,非不我告,中欲告而忘之也。今予問乎若,若知之,奚故不近?」

  黃帝曰:「彼其真是也,以其不知也;此其似之也,以其忘之也;予與若終不近也,以其知之也。」

  狂屈聞之,以黃帝為知言。

  天地有大美而不言,四時有明法而不議,萬物有成理而不說。聖人者,原天地之美而達萬物之理。是故至人无為,大聖不作,觀於天地之謂也。

  今彼神明至精,與彼百化。物已死生方圓,莫知其根也,扁然而萬物自古以固存。六合為巨,未離其內;秋豪為小,待之成體。天下莫不沉浮,終身不故;陰陽四時運行,各得其序。惛然若亡而存,油然不形而神,萬物畜而不知。此之謂本根,可以觀於天矣。

  齧缺問道乎被衣,被衣曰:「若正汝形,一汝視,天和將至;攝汝知,一汝度,神將來舍。德將為汝美,道將為汝居,汝瞳焉如新生之犢而无求其故!」

  言未卒,齧缺睡寐。被衣大說,行歌而去之,曰:「形若槁骸,心若死灰,真其實知,不以故自持。媒媒晦晦,无心而不可與謀。彼何人哉!」

  舜問乎丞曰:「道可得而有乎?」

  曰:「汝身非汝有也,汝何得有夫道!」

  舜曰:「吾身非吾有也,孰有之哉?」

  曰:「是天地之委形也;生非汝有,是天地之委和也;性命非汝有,是天地之委順也;孫子非汝有,是天地之委蛻也。故行不知所往,處不知所持,食不知所味。天地之強陽氣也,又胡可得而有邪!」

  孔子問於老聃曰:「今日晏閒,敢問至道。」

  老聃曰:「汝齊戒,疏𤅢而心,澡雪而精神,掊擊而知!夫道,窅然難言哉!將為汝言其崖略。

  夫昭昭生於冥冥,有倫生於无形,精神生於道,形本生於精,而萬物以形相生。故九竅者胎生,八竅者卵生。其來无迹,其往无崖,无門无房,四達之皇皇也。邀於此者,四肢彊,思慮恂達,耳目聰明。其用心不勞,其應物无方。天不得不高,地不得不廣,日月不得不行,萬物不得不昌,此其道與!

  且夫博之不必知,辯之不必慧,聖人以斷之矣!若夫益之而不加益,損之而不加損者,聖人之所保也。淵淵乎其若海,(巍巍)[魏魏]乎其終則復始也。運量萬物而不匱。則君子之道,彼其外與!萬物皆往資焉而不匱。此其道與!

  中國有人焉,非陰非陽,處於天地之間,直且為人,將反於宗。自本觀之,生者,喑醷物也。雖有壽夭,相去幾何?須臾之說也,奚足以為堯桀之是非!果蓏有理,人倫雖難,所以相齒。聖人遭之而不違,過之而不守。調而應之,德也;偶而應之,道也;帝之所興,王之所起也。

  人生天地之間,若白駒之過郤,忽然而已。注然勃然,莫不出焉;油然寥然,莫不入焉。已化而生,又化而死。生物哀之,人類悲之。解其天弢,墮其天袟,紛乎宛乎,魂魄將往,乃身從之,乃大歸乎!不形之形,形之不形,是人之所同知也,非將至之所務也,此衆人之所同論也。彼至則不論,論則不至。明見无值,辯不若默。道不可聞,聞不若塞。此之謂大得。」

  東郭子問於莊子曰:「所謂道,惡乎在?」

  莊子曰:「无所不在。」

  東郭子曰:「期而後可。」

  莊子曰:「在螻蟻。」

  曰:「何其下邪?」

  曰:「在稊稗。」

  曰:「何其愈下邪?」

  曰:「在瓦甓。」

  曰:「何其愈甚邪?」

  曰:「在屎溺。」

  東郭子不應。莊子曰:「夫子之問也,固不及質。正獲之問於監市履狶也,每下愈況。汝唯莫必,无乎逃物。至道若是,大言亦然。周徧咸三者,異名同實,其指一也。

  嘗相與游乎无何有之宮,同合而論,无所終窮乎!嘗相與无為乎!澹而靜乎!漠而清乎!調而閒乎!寥已吾志,无往焉而不知其所至。去而來而不知其所止,吾已往來焉而不知其所終;彷徨乎馮閎,大知入焉而不知其所窮。物物者與物无際,而物有際者,所謂物際者也;不際之際,際之不際者也。謂盈虛衰殺,彼為盈虛非盈虛,彼為衰殺非衰殺,彼為本末非本末,彼為積散非積散也。」

  妸荷甘與神農同學於老龍吉。神農隱几,闔戶晝瞑。妸荷甘日中奓戶而入,曰:「老龍死矣!」神農隱几擁杖而起,嚗然放杖而笑,曰:「天知予僻陋慢訑,故棄予而死。已矣夫子!无所發予之狂言而死矣夫!」

  弇堈弔聞之,曰:「夫體道者,天下之君子所繫焉。今於道,秋豪之端萬分未得處一焉,而猶知藏其狂言而死,又況夫體道者乎!視之无形,聽之无聲,於人之論者,謂之冥冥,所以論道,而非道也。」

  於是泰清問乎无窮曰:「子知道乎?」

  无窮曰:「吾不知。」

  又問乎无為,无為曰:「吾知道。」

  曰:「子之知道,亦有數乎?」

  曰:「有。」

  曰:「其數若何?」

  无為曰:「吾知道之可以貴,可以賤,可以約,可以散,此吾所以知道之數也。」

  泰清以之言也問乎无始,曰:「若是,則无窮之弗知與无為之知,孰是而孰非乎?」

  无始曰:「不知深矣,知之淺矣;弗知內矣,知之外矣。」

  於是泰清中而歎曰:「弗知乃知乎!知乃不知乎!孰知不知之知?」

  无始曰:「道不可聞,聞而非也;道不可見,見而非也;道不可言,言而非也。知形形之不形乎!道不當名。」

  无始曰:「有問道而應之者,不知道也。雖問道者,亦未聞道。道无問,問无應。无問問之,是問窮也;无應應之,是无內也。以无內待問窮,若是者,外不觀乎宇宙,內不知乎大初,是以不過乎崑崙,不遊乎太虛。」

  光曜問乎无有曰:「夫子有乎?其无有乎?」

  光曜不得問,而孰視其狀貌,窅然空然,終日視之而不見,聽之而不聞,搏之而不得也。

  光曜曰:「至矣,其孰能至此乎!予能有无矣,而未能无无也。及為无有矣,何從至此哉!」

  大馬之捶鉤者,年八十矣,而不失豪芒。大馬曰:「子巧與?有道與?」

  曰:「臣有守也。臣之年二十而好捶鉤,於物无視也,非鉤无察也。是用之者,假不用者也以長得其用,而況乎无不用者乎!物孰不資焉!」

  冉求問於仲尼曰:「未有天地可知邪?」

  仲尼曰:「可。古猶今也。」

  冉求失問而退。明日復見,曰:「昔者吾問『未有天地可知乎?』夫子曰:『可。古猶今也。』昔日吾昭然,今日吾昧然。敢問何謂也?」

  仲尼曰:「昔之昭然也,神者先受之;今之昧然也,且又為不神者求邪?无古无今,无始无終。未有子孫而有子孫,可乎?」

  冉求未對。仲尼曰:「已矣,末應矣!不以生生死,不以死死生。死生有待邪?皆有所一體。有先天地生者物邪?物物者非物,物出不得先物也,猶其有物也。猶其有物也,无已。聖人之愛人也終无已者,亦乃取於是者也。」

  顏淵問乎仲尼曰:「回嘗聞諸夫子曰:『无有所將,无有所迎。』回敢問其遊。」

  仲尼曰:「古之人,外化而內不化,今之人,內化而外不化。與物化者,一不化者也。安化安不化,安與之相靡,必與之莫多。狶韋氏之囿,黃帝之圃,有虞氏之宮,湯武之室。君子之人,若儒墨者師,故以是非相x韲x* 也,而況今之人乎!聖人處物不傷物。不傷物者,物亦不能傷也。唯无所傷者,為能與人相將迎。山林與!皋壤與!使我欣欣然而樂與!樂未畢也,哀又繼之。哀樂之來,吾不能禦,其去弗能止。悲夫,世人直為物逆旅耳!夫知遇而不知所不遇,知能能而不能所不能。无知无能者,固人之所不免也。夫務免乎人之所不免者,豈不亦悲哉!至言去言,至為去為。齊知之所知,則淺矣。」

  • True character resembles 敕 over 韭, but 束 should be replaced with 朿. UTF-8 無其正字,只好暫用相似字。應該是敕(朿+攴)在上,韭在下。見中文大辭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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