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번로 01 초장왕(楚莊王)

춘추번로(春秋繁露) · 전한 동중서 · 번역·감수 허유

『춘추』가 초 장왕과 영왕의 토벌·살육에 대해 글을 달리한 까닭을 문답으로 풀어, 제후가 멋대로 봉하고 토벌하고 죽이는 일을 허락하지 않는 『춘추』의 법을 밝힌 편이다. 아울러 십이세(十二世)를 견(見)·문(聞)·전문(傳聞) 삼등으로 나누는 필법과, 천명을 받은 새 왕이 반드시 제도를 고치되 도(道)는 바꾸지 않는다는 개제(改制)의 뜻을 논한다.

번역

"초 장왕이 진(陳)의 하징서를 죽였을 때 『춘추』는 그 글을 폄하하여 멋대로 토벌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영왕이 제의 경봉을 죽였을 때는 곧바로 '초자(楚子)'라 칭한 것은 어째서인가?" 답한다. "장왕의 행실은 어질었고 징서의 죄는 무거웠다. 어진 임금이 무거운 죄를 토벌하니 사람들의 마음에는 선하게 보였다. 만약 폄하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정경(正經)이 아님을 어찌 알겠는가. 『춘추』는 늘 그 혐의를 얻은 곳에서 얻지 못함을 보인다. 그러므로 제 환공에게 멋대로 땅을 봉함을 허락하지 않았고, 진 문공에게 천자를 이르게 하여 조회받음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초 장왕에게 멋대로 죽여 토벌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셋이 허락되지 않으니 곧 제후가 얻은 것이 거의 여기에 있다. 이것이 초 영왕을 '자(子)'라 칭하면서 토벌한 까닭이다. 『춘추』의 말은 견주는 바가 많으니, 이는 글이 간략하되 법이 밝은 것이다."

묻는 이가 말했다. "제후가 멋대로 봉함을 허락하지 않음은 진·채의 멸망에서 거듭 드러나는데, 제후가 멋대로 토벌함을 허락하지 않음은 유독 경봉을 죽인 일에서 거듭 드러나지 않으니 어째서인가?" 답한다. "『춘추』가 말을 쓰는 법은 이미 밝혀진 것은 빼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은 드러낸다. 이제 제후가 멋대로 토벌할 수 없음은 이미 분명하나, 경봉의 죄는 아직 드러난 바가 없으므로 '초자'라 칭하여 패자의 자격으로 토벌하게 하여 그 죄가 마땅히 죽어야 함을 드러냈다. 이로써 천하의 큰 금령으로 삼아 말하기를, 신하 된 자의 행실이 임금의 자리를 폄하하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는 비록 찬탈·시해하지 않더라도 그 죄가 모두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이에 견주어 그렇게 말한 것이다."

"『춘추』에 '진(晉)이 선우(鮮虞)를 쳤다'고 했다. 어찌 진을 미워하여 이적(夷狄)과 같이 보았는가?" 답한다. "『춘추』는 예를 높이고 신의를 중히 여긴다. 신의는 땅보다 중하고, 예는 몸보다 높다. 어떻게 그러함을 아는가? 송의 백희(伯姬)는 예를 의심하여 불에 타 죽었고, 제 환공은 신의를 의심하여 그 땅을 덜어냈다. 『춘추』는 이를 어질게 여겨 들어 천하의 법으로 삼았다. 예를 갖추고 신의를 지키면 예에 응답하지 않음이 없고 베풂에 보답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는 하늘의 이치다. 이제 우리 임금과 신하가 같은 성(姓)으로 딸을 시집보냈는데, 그 딸에게 양심이 없어 예에 응답하지 않고 우리를 두려워하게 하니, 어찌 이적이 아니겠는가! 공자 경보의 난에 노나라가 위태로워 망할 지경이었는데 제 환공이 이를 안정시켰다. 저쪽은 친함이 없어도 오히려 우리를 근심해 주었거늘, 어찌 같은 성이면서 잔악하게 우리를 해치는가. 『시』에 이르기를 '저 우는 산비둘기, 날아 하늘에 이르렀네. 내 마음 근심하여 저 선인을 생각하네. 날이 밝도록 잠 못 이루고, 두 사람을 그리네'라 했다. 사람은 다 이런 마음이 있다. 이제 진(晉)이 같은 성으로서 우리를 근심하지 않고 강대함으로 우리를 누르니, 내 마음이 원망스러워 말하기를 좋게 하지 않고 '진(晉)'이라고만 일렀으니 완곡한 말이다."

묻는 이가 말했다. "진이 미워서 친할 수 없고, 공(公)이 가서도 감히 이르지 못함은 인지상정일 뿐인데, 군자가 무엇을 부끄럽게 여겨 '공이 병이 있다'고 칭했는가?" 답한다. "미움이 까닭 없이 절로 오는 것은 군자가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안으로 살펴 거리낌이 없으면 뜻에 무엇을 근심하겠는가. 이제 『춘추』가 이를 부끄러워한 것은 소공(昭公)이 그것을 취할 까닭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하가 그 임금을 능멸함이 문공에서 시작되어 소공에 이르러 심해졌다. 공은 어지러움을 받아 점점 쇠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어 시끄럽게 가벼이 계책을 세우고 함부로 토벌하여, 큰 예를 범하고 같은 성을 취하며, 의롭지 못함을 받아들이고 거듭 스스로를 가벼이 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라가 다스려지면 사방 이웃이 축하하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사방 이웃이 흩어진다'고 했다. 그러므로 계손이 그 자리를 멋대로 차지해도 큰 나라가 바로잡지 못했고, 도망 나간 지 여덟 해 만에 죽어서야 돌아올 수 있었으니, 몸은 망하고 자식은 위태로워 곤궁함이 지극했다. 군자는 그 곤궁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곤궁하게 된 까닭을 부끄러워한다. 소공이 비록 이때를 만났더라도 만일 같은 성을 취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비록 같은 성을 취했더라도 공자(孔子)를 써서 스스로 도왔다면 또한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때가 어려운데 다스림이 소략하고, 행실이 굽었는데 구함이 없었으니, 이것이 그가 곤궁하게 된 까닭이다."

『춘추』는 십이세를 셋으로 나누었다. 직접 본 것[見], 들은 것[聞], 전해 들은 것[傳聞]이 있다. 직접 본 것이 삼세(三世), 들은 것이 사세(四世), 전해 들은 것이 오세(五世)다. 그러므로 애공·정공·소공은 군자가 직접 본 바요, 양공·성공·문공·선공은 군자가 들은 바요, 희공·민공·장공·환공·은공은 군자가 전해 들은 바다. 직접 본 바가 예순한 해, 들은 바가 여든다섯 해, 전해 들은 바가 아흔여섯 해다. 직접 본 것에는 그 말을 은미하게 하고, 들은 것에는 그 화를 아파하며, 전해 들은 것에는 그 은혜를 덜어내니, 정(情)과 함께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씨를 쫓아낸 일에 '또 기우제를 지냈다[又雩]'고 말한 것은 그 말을 은미하게 한 것이요, 자적(子赤)이 살해되매 차마 날짜를 적지 못한 것은 그 화를 아파한 것이요, 자반(子般)이 살해되매 '을미일'이라 적은 것은 그 은혜를 덜어낸 것이다. 펴고 굽히는 뜻과 자세하고 소략한 글이 모두 이에 응한다. 나는 그 가까운 것을 가까이하고 먼 것을 멀리하며, 친한 것을 친히 하고 소원한 것을 소원히 함으로써, 또한 귀한 것을 귀히 하고 천한 것을 천히 하며, 무거운 것을 무겁게 하고 가벼운 것을 가벼이 함을 안다. 또 그 두터운 것을 두텁게 하고 엷은 것을 엷게 하며, 선한 것을 선하다 하고 악한 것을 악하다 함을 안다. 또 그 양인 것을 양으로 하고 음인 것을 음으로 하며, 흰 것을 희다 하고 검은 것을 검다 함을 안다. 온갖 사물에는 모두 짝이 있으니, 짝지어 합하고 맞추어 어울리게 함이 좋다. 『시』에 이르기를 '위의가 깊고 신중하며, 덕음이 질서 정연하여, 원망도 미움도 없이 짝을 따른다'고 했으니 이를 이름이다. 그렇다면 『춘추』의 뜻은 큰 것이다. 한 끝을 얻어 널리 통달하여 그 옳고 그름을 보면 그 바른 법을 얻을 수 있고, 그 온화한 말을 보면 그 막힌 원망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밖에서는 도로 하여 드러내지 않고, 안에서는 휘(諱)하여 숨기지 않으며, 높은 이에게도 그러하고 어진 이에게도 그러하니, 이것이 안과 밖을 구별하고 어짊과 못남을 차등하며 높고 낮음을 같게 하는 까닭이다. 의로움은 윗사람을 헐뜯지 않고, 지혜는 제 몸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먼 것은 의로움으로 휘하고, 가까운 것은 지혜로 두려워한다. 두려움과 의로움을 겸하면 세상이 가까울수록 말이 삼가게 되니, 이것이 정공·애공에 대해 그 말을 은미하게 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쓰이면 천하가 평안하고, 쓰이지 않으면 그 몸을 편안히 함이 『춘추』의 도다.

『춘추』의 도는 하늘을 받들고 옛것을 본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솜씨 좋은 손이 있어도 규구(規矩)를 닦지 않으면 네모와 원을 바로잡지 못하고, 비록 밝은 귀가 있어도 육률(六律)을 불지 않으면 오음을 정하지 못하며, 비록 아는 마음이 있어도 선왕을 살피지 않으면 천하를 평안케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선왕이 남긴 도는 또한 천하의 규구이며 육률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늘을 본받고, 현인은 성인을 본받으니, 이것이 그 큰 이치다. 큰 이치를 얻으면 다스려지고, 큰 이치를 잃으면 어지러우니, 이것이 다스림과 어지러움의 갈림이다. 들은 바로는 천하에 두 도가 없으므로, 성인은 다스림을 달리해도 이치는 같으며, 고금이 통달하므로 선현이 그 법을 후세에 전한다. 『춘추』가 세상일에 대해 옛것을 회복함을 좋게 여기고 떳떳함을 바꿈을 나무란 것은 선왕을 본받고자 함이다. 그러나 한마디로 끼워 말하기를 "왕 된 자는 반드시 제도를 고친다"고 했다. 치우친 자가 이를 얻어 구실로 삼아 말하기를 "옛것을 진실로 따를 수 있다면 선왕의 도를 어찌 서로 이어받지 않겠는가" 한다. 세상이 이 말에 미혹되어 바른 도를 의심하고 사악한 말을 믿으니 매우 근심스럽다. 이에 답한다. "어떤 이가 제후의 임금이 이수(貍首)의 음악을 쏘았다는 것을 듣고는, 이에 스스로 살쾡이 머리를 베어 매달아 쏘면서 '음악이 어디 있는가'라 했다 하니, 이는 그 이름만 듣고 그 실상을 모른 자다. 이제 이른바 새 왕이 반드시 제도를 고친다는 것은 그 도를 고침이 아니요 그 이치를 바꿈이 아니다. 천명을 받아 성(姓)을 바꾸어 왕이 되니, 앞 왕을 이어 왕이 됨이 아니다. 만약 한결같이 앞 제도를 따라 옛 사업을 닦으며 고치는 바가 없다면, 이는 앞 왕을 이어 왕이 된 자와 구별할 것이 없다. 천명을 받은 임금은 하늘이 크게 드러낸 바다. 아버지를 섬기는 자는 뜻을 받들고, 임금을 섬기는 자는 뜻을 본받으니, 하늘을 섬김도 그러하다. 이제 하늘이 자기를 크게 드러냈는데, 사물이 대신한 바를 그대로 답습하여 한결같이 같이한다면 드러나지도 밝지도 않으니 하늘의 뜻이 아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거처를 옮기고, 칭호를 바꾸며, 정삭(正朔)을 고치고, 복색을 바꾸는 것은 다른 까닭이 없다. 감히 하늘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없어 스스로 드러냄을 밝히는 것이다. 무릇 큰 강령, 곧 인륜과 도리, 정치와 교화, 풍속과 문의(文義)는 모두 옛날과 같으니 또한 무엇을 고치겠는가. 그러므로 왕 된 자는 제도를 고치는 이름은 있어도 도를 바꾸는 실상은 없다. 공자가 '무위로 다스린 이는 순임금이로다'라 한 것은 그가 요임금의 도를 따랐을 뿐임을 말한 것이니, 이것이 바꾸지 않은 증험이 아니겠는가."

묻는 이가 말했다. "사물이 바뀌고 하늘이 줌이 드러났는데, 그것이 반드시 다시 음악을 짓는 것은 어째서인가?" 답한다. "음악은 이와 다르다. 제도는 하늘에 응하여 고치고, 음악은 사람에 응하여 짓는다. 저 천명을 받은 자는 반드시 백성이 함께 즐거워하는 바다. 그러므로 처음에 제도를 크게 고침은 천명을 밝히는 까닭이요, 마지막에 다시 음악을 지음은 하늘의 공을 드러내는 까닭이다. 천하가 새로 즐거워하는 바를 좇아 그것을 꾸미고, 또 이로써 정치를 조화롭게 하며 덕을 일으킨다. 천하가 두루 화합하지 않으면 왕 된 자는 헛되이 음악을 짓지 않는다. 음악이란 안에 가득 차서 밖으로 발동하는 것이다. 그 다스리는 때에 응하여 예를 제정하고 음악을 지어 이루니, 이룬 것은 본말과 질문(質文)이 모두 갖추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음악을 짓는 자는 반드시 천하가 처음 즐거워한 바를 자기에게 돌이켜 근본으로 삼는다. 순임금 때 백성은 그가 요임금의 사업을 밝힌 것을 즐거워했으므로 소(韶)라 했으니, 소란 밝힘[昭]이다. 우임금 때 백성은 세 성인이 서로 이은 것을 즐거워했으므로 하(夏)라 했으니, 하란 큼[大]이다. 탕임금 때 백성은 그가 환란에서 구해준 것을 즐거워했으므로 호(頀)라 했으니, 호란 구함[救]이다. 문왕 때 백성은 그가 군사를 일으켜 정벌한 것을 즐거워했으므로 무(武)라 했으니, 무란 침[伐]이다. 이 넷은 천하가 함께 즐거워한 것은 하나이나, 함께 즐거워한 까닭은 하나일 수 없다. 음악을 짓는 법은 반드시 근본 즐거워한 바로 돌이키니, 즐거워한 일이 같지 않으면 음악이 어찌 대마다 다르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순임금은 소를 짓고 우임금은 하를 지었으며, 탕임금은 호를 짓고 문왕은 무를 지었다. 네 음악이 이름을 달리한 것은 각각 그 백성이 처음 자기에게 즐거워한 바를 따른 것이니, 나는 그 증험을 본다. 『시』에 이르기를 '문왕이 명을 받아 이 무공이 있어, 이미 숭(崇)을 치고 풍(豐)에 도읍을 세웠네'라 했으니 음악의 풍격이다. 또 이르기를 '왕이 불끈 노하여 이에 그 군사를 정돈했네'라 했다. 그때 주(紂)가 무도하여 제후가 크게 어지러웠으므로 백성이 문왕의 노함을 즐거워하여 노래한 것이다. 주(周) 사람이 덕이 이미 천하에 흡족하매 근본으로 돌이켜 음악을 짓고 대무(大武)라 했으니, 백성이 처음 즐거워한 바가 무(武)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무릇 음악이란 끝에 짓되 처음으로 이름하니 근본을 중히 여기는 뜻이다. 이로 보건대 정삭과 복색을 고침은 천명을 받아 하늘에 응함이요, 예를 제정하고 음악을 지음의 다름은 사람 마음의 움직임이니, 둘이 갈라졌다가 다시 합하여 행하는 바가 하나다."

원문 전문 보기 (한문)

「楚莊王殺陳夏徵舒,春秋貶其文,不予專討也;靈王殺齊慶封,而直稱楚子,何也?」曰:「莊王之行賢,而徵舒之罪重,以賢君討重罪,其於人心善,若不貶,庸知其非正經,春秋常於其嫌得者,見其不得也。是故齊桓不予專地而封,晉文不予致王而朝,楚莊弗予專殺而討,三者不得,則諸侯之得,殆此矣,此楚靈之所以稱子而討也。春秋之辭多所況,是文約而法明也。」問者曰:「不予諸侯之專封,復見於陳蔡之滅;不予諸侯之專討,獨不復見慶封之殺,何也?」曰:「春秋之用辭,已明者去之,未明者著之。今諸侯之不得專討,固已明矣,而慶封之罪,未有所見也,故稱楚子,以伯討之,著其罪之宜死,以為天下大禁,曰:人臣之行,貶主之位,亂國之臣,雖不篡殺,其罪皆宜死。比於此,其云爾也。」「春秋曰:『晉伐鮮虞。』奚惡乎晉,而同夷狄也?」曰:「春秋尊禮而重信,信重於地,禮尊於身。何以知其然也?宋伯姬疑禮而死於火,齊桓公疑信而虧其地,春秋賢而舉之,以為天下法。曰禮而信,禮無不答,施無不報,天之數也。今我君臣同姓適女,女無良心,禮以不答,有恐畏我,何其不夷狄也!公子慶父之亂,魯危殆亡,而齊桓安之,於彼無親,尚來憂我,如何與同姓而殘賊遇我。詩云:『宛彼鳴鳩,翰飛戾天。我心憂傷,念彼先人。明發不昧,有懷二人。』人皆有此心也。今晉不以同姓憂我,而強大厭我,我心望焉,故言之不好,謂之晉而已,婉辭也。」問者曰:「晉惡而不可親,公往而不敢至,乃人情耳,君子何恥,而稱公有疾也?」曰:「惡無故自來,君子不恥,內省不疚,何憂於志是已矣。今春秋恥之者,昭公有以取之也。臣陵其君,始於文而甚於昭,公受亂陵夷,而無懼惕之心,囂囂然輕計妄討,犯大禮而取同姓,接不義而重自輕也。人之言曰:『國家治則四鄰賀,國家亂則四鄰散。』是故季孫專其位,而大國莫之正,出走八年,死乃得歸,身亡子危,困之至也。君子不恥其困,而恥其所以窮。昭公雖逢此時,苟不取同姓,詎至於是;雖取同姓,能用孔子自輔,亦不至如是。時難而治簡,行枉而無救,是其所以窮也。」

  春秋分十二世以為三等:有見、有聞、有傳聞。有見三世,有聞四世,有傳聞五世。故哀、定、昭,君子之所見也,襄、成、文、宣,君子之所聞也,僖、閔、莊、桓、隱,君子之所傳聞也。所見六十一年,所聞八十五年,所傳聞九十六年。於所見,微其辭,於所聞,痛其禍,於傳聞,殺其恩,與情俱也。是故逐季氏,而言又雩,微其辭也;子赤殺,弗忍書日,痛其禍也;子般殺,而書乙未,殺其恩也。屈伸之志,詳略之文,皆應之,吾以其近近而遠遠、親親而疏疏也,亦知其貴貴而賤賤、重重而輕輕也,有知其厚厚而薄薄、善善而惡惡也,有知其陽陽而陰陰、白白而黑黑也。百物皆有合偶,偶之合之,仇之匹之,善矣。詩云:『威儀抑抑,德音秩秩,無怨無惡,率由仇匹。』此之謂也。然則春秋義之大者也,得一端而博達之,觀其是非,可以得其正法,視其溫辭,可以知其塞怨,是故於外道而不顯,於內諱而不隱,於尊亦然,於賢亦然,此其別內外、差賢不肖、而等尊卑也。義不訕上,智不危身,故遠者以義諱,近者以智畏,畏與義兼,則世逾近,而言逾謹矣,此定、哀之所以微其辭。以故用則天下平,不用則安其身,春秋之道也。

  春秋之道,奉天而法古。是故雖有巧手,弗修規矩,不能正方圓;雖有察耳,不吹六律,不能定五音;雖有知心,不覽先王,不能平天下;然則先王之遺道,亦天下之規矩六律已!故聖者法天,賢者法聖,此其大數也;得大數而治,失大數而亂,此治亂之分也;所聞天下無二道,故聖人異治同理也,古今通達,故先賢傳其法於後世也。春秋之於世事也,善復古,譏易常,欲其法先王也。然而介以一言曰:「王者必改制。」自僻者得此以為辭,曰:「古苟可循,先王之道,何莫相因。」世迷是聞,以疑正道而信邪言,甚可患也。答之曰:「人有聞諸侯之君射貍首之樂者,於是自斷貍首,縣而射之,曰:『安在於樂也?』此聞其名,而不知其實者也。今所謂新王必改制者,非改其道,非變其理,受命於天,易姓更王,非繼前王而王也,若一因前制,修故業,而無有所改,是與繼前王而王者無以別。受命之君,天之所大顯也;事父者承意,事君者儀志,事天亦然;今天大顯已,物襲所代,而率與同,則不顯不明,非天志,故必徒居處,更稱號,改正朔,易服色者,無他焉,不敢不順天志,而明自顯也。若夫大綱,人倫道理,政治教化,習俗文義盡如故,亦何改哉!故王者有改制之名,無易道之實。孔子曰:『無為而治者,其舜乎!』言其王堯之道而已,此非不易之效與!」問者曰:「物改而天授,顯矣,其必更作樂,何也?」曰:「樂異乎是,制為應天改之,樂為應人作之,彼之所受命者,必民之所同樂也。是故大改制於初,所以明天命也;更作樂於終,所以見天功也;緣天下之所新樂,而為之文,且以和政,且以興德,天下未遍合和,王者不虛作樂,樂者,盈於內而動發於外者也,應其治時,制禮作樂以成之,成者本末質文,皆以具矣。是故作樂者,必反天下之所始樂於己以為本。舜時,民樂其昭堯之業也,故韶,韶者,昭也;禹之時,民樂其三聖相繼,故夏,夏者,大也;湯之時,民樂其救之於患害也,故頀,頀者,救也;文王之時,民樂其興師征伐也,故武,武者,伐也。四者天下同樂之,一也,其所同樂之端,不可一也。作樂之法,必反本之所樂,所樂不同事,樂安得不世異!是故舜作韶而禹作夏,湯作頀而文王作武,四樂殊名,則各順其民始樂於己也,吾見其效矣。詩云:『文王受命,有此武功;既伐于崇,作邑于豐。』樂之風也。又曰:『王赫斯怒,爰整其旅。』當是時,紂為無道,諸侯大亂,民樂文王之怒,而歌詠之也。周人德已洽天下,反本以為樂,謂之大武,言民所始樂者,武也云爾。故凡樂者,作之於終,而名之以始,重本之義也。由此觀之,正朔服色之改,受命應天,制禮作樂之異,人心之動也,二者離而復合,所為一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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