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번로 36 실성(實性)

춘추번로(春秋繁露) · 전한 동중서 · 번역·감수 허유

앞 편을 이어 본성(性)의 실상을 논한다. 본성은 선한 바탕(善質)일 뿐 아직 선 그 자체가 아니며, 왕의 가르침(王教)을 거쳐야 비로소 선이 된다고 본다. 벼·쌀, 누에고치·실, 알·새끼의 비유로 "본성에서 선이 나오나 본성을 곧 선이라 할 수 없음"을 거듭 밝힌다.

핵심 구절 — 원문과 번역

性者,天質之樸也,善者,王教之化也;無其質,則王教不能化,無其王教,則質樸不能善。

본성이란 하늘이 준 바탕의 질박함이요, 선이란 왕의 가르침의 교화이니, 그 바탕이 없으면 왕의 가르침이 교화할 수 없고, 그 왕의 가르침이 없으면 질박함이 선할 수 없다.

善出於性,而性不可謂善。

선은 본성에서 나오나 본성을 선이라 할 수 없다.

번역

공자가 「명(名)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하지 못하다」 하였다. 지금 본성이 이미 선하다 하면 가르침 없이 자연에 맡김에 가깝고, 또 정사를 행하는 도에 순하지 못하다. 또 명(名)은 본성의 실(實)이요 실은 본성의 바탕(質)이니, 바탕이 가르침 없을 때 어찌 갑자기 선할 수 있겠는가. 선은 쌀과 같고 본성은 벼와 같으니, 벼가 비록 쌀을 내나 벼를 쌀이라 할 수 없고, 본성이 비록 선을 내나 본성을 선이라 할 수 없다. 쌀과 선은 사람이 하늘을 이어 밖에서 이루는 것이요, 하늘이 행하는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행하는 바는 이르는 데가 있어 그치니, 그침의 안을 하늘(天)이라 하고 그침의 밖을 왕의 가르침(王教)이라 한다. 왕의 가르침은 본성 밖에 있으나 본성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본성에 선한 바탕은 있으나 아직 선을 행할 수 없다」 하니, 어찌 감히 말을 꾸미겠는가, 그 실상이 그러하다.

하늘이 행하는 바는 고치·삼(麻)과 벼에 그치니, 삼으로 베를 만들고 고치로 실을 만들며 쌀로 밥을 짓고 본성으로 선을 이룸은 모두 성인이 하늘을 이어 나아간 것이요, 정·성(情性)의 질박함이 능히 이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본성이라 할 수 없다. 아침저녁을 바로잡는 자는 북극성을 보고, 의심을 바로잡는 자는 성인을 보니, 성인이 명한 바를 천하가 바름으로 삼는다. 지금 성인의 말을 살펴보면 본래 본성이 선하다는 명칭이 없고, 「선인을 내 보지 못하였다」 함이 있다. 만민의 본성이 다 이미 선할 수 있다면 선인이 어찌 보이지 않겠는가. 공자가 이를 말한 뜻을 보건대 선이 매우 들어맞기 어렵다 여겼거늘, 맹자는 만민의 본성이 다 들어맞을 수 있다 하니 잘못이다.

성인의 본성은 본성이라 이름할 수 없고, 두소(斗筲, 그릇이 작은 소인)의 본성도 본성이라 이름할 수 없으니, 본성이라 이름하는 것은 가운데 백성(中民)의 본성이다. 중민의 본성은 고치·알과 같으니, 알은 스무 날을 품은 뒤에야 새끼가 되고, 고치는 끓는 물에 켜야 실이 되며, 본성은 가르침에 점차 젖은 뒤에야 선이 된다. 선은 가르침이 그렇게 한 바요 질박함이 능히 이를 바가 아니므로 본성이라 하지 않는다. 본성이란 마땅히 알기 쉬운 이름이니, 기다림 없이 절로 일어나 절로 지닌 것이다. 선이 절로 지닌 것이라면 가르침은 이미 본성이 아니다. 이러므로 쌀이 곡식에서 나오나 곡식을 쌀이라 할 수 없고, 옥이 박(璞, 옥돌)에서 나오나 박을 옥이라 할 수 없으며, 선이 본성에서 나오나 본성을 선이라 할 수 없다.

그 견줌이 사물에서는 그러하다 하면서 본성에서는 그렇지 않다 함은 어찌 유(類)에 통하지 못함인가. 알의 본성은 새끼가 될 수 없고, 고치의 본성은 실이 될 수 없으며, 삼의 본성은 실(縷)이 될 수 없고, 곡식의 본성은 쌀이 될 수 없다. 『춘추』가 사물의 이치를 분별하여 그 명을 바로잡되, 사물을 이름함에 반드시 각기 그 참됨을 따랐으니, 그 뜻을 참되게 하고 그 정을 참되게 하여 명으로 삼았다. 「운석(霣石)」이라 함에는 그 다섯을 뒤에 두고, 「퇴비(退飛, 물러나 나는)」라 함에는 그 여섯을 앞에 두었으니, 이 모두 그 참됨이다. 성인이 말에 구차함이 없을 뿐이다. 본성이란 하늘이 준 바탕의 질박함이요, 선이란 왕의 가르침의 교화이니, 그 바탕이 없으면 왕의 가르침이 교화할 수 없고 그 왕의 가르침이 없으면 질박함이 선할 수 없다. 바탕을 선한 본성이라 하지 않으니, 그 명이 바르지 못하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원문 전문 보기 (한문)

孔子曰:「名不正,則言不順。」今謂性已善,不幾於無教而如其自然,又不順於為政之道矣;且名者性之實,實者性之質,質無教之時,何遽能善。善如米,性如禾,禾雖出米,而禾未可謂米也;性雖出善,而性未可謂善也。米與善,人之繼天而成於外也,非在天所為之內也;天所為,有所至而止,止之內謂之天,止之外謂之王教,王教在性外,而性不得不遂,故曰:性有善質,而未能為善也,豈敢美辭,其實然也。天之所為,止於繭麻與禾,以麻為布,以繭為絲,以米為飯,以性為善,此皆聖人所繼天而進也,非情性質樸之能至也,故不可謂性。正朝夕者視北辰,正嫌疑者視聖人,聖人之所名,天下以為正。今按聖人言中本無性善名,而有善人吾不得見之矣,使萬民之性皆已能善,善人者何為不見也,觀孔子言此之意,以為善甚難當;而孟子以為萬民性皆能當之,過矣。聖人之性,不可以名性,斗筲之性,又不可以名性,名性者,中民之性。中民之性,如繭如卵,卵待覆二十日,而後能為雛;繭待繰以涫湯,而後能為絲;性待漸於教訓,而後能為善;善,教訓之所然也,非質樸之所能至也,故不謂性。性者,宜知名矣,無所待而起生,而所自有也;善所自有,則教訓已非性也。是以米出於粟,而粟不可謂米;玉出於璞,而璞不可謂玉;善出於性,而性不可謂善;其比多在物者為然,在性者以為不然,何不通於類也?卵之性未能作雛也,繭之性未能作絲也,麻之性未能為縷也,粟之性未能為米也。春秋別物之理,以正其名,名物必各因其真,真其義也,真其情也,乃以為名。名霣石,則後其五,退飛,則先其六,此皆其真也。聖人於言,無所苟而已矣。性者,天質之樸也,善者,王教之化也;無其質,則王教不能化,無其王教,則質樸不能善。質而不以善性,其名不正,故不受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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