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남자 14 전언훈(詮言訓)
「전언훈」은 인사(人事)의 갈피를 비유로 풀이하고 치란(治亂)의 본체를 깨우치는 편이다. 도(道)에 근본을 두어 이름을 좇지 않고, 무위(無爲)로써 화(禍)와 복(福)의 분별을 떠나 자기를 다스리는 도리를 논한다.
핵심 구절 — 원문과 번역
聖人不為名屍,不為謀府,不為事任,不為智主。
성인은 명예의 주인이 되지 않고, 꾀의 창고가 되지 않으며, 일의 책임이 되지 않고, 지혜의 주인이 되지 않는다.
故得道則愚者有餘,失道則智者不足。
그러므로 도를 얻으면 어리석은 자도 넉넉하고, 도를 잃으면 지혜로운 자도 부족하다.
利則為害始,福則為禍先。唯不求利者為無害,唯不求福者為無禍。
이익은 해의 시초가 되고 복은 화의 앞장이 된다. 오직 이익을 구하지 않는 자라야 해가 없고, 오직 복을 구하지 않는 자라야 화가 없다.
번역
천지와 한 몸으로 통하여 혼돈을 질박함으로 삼고, 아직 만들지 않았는데도 만물을 이루는 것을 일러 태일(太一)이라 한다. 다 같이 하나에서 나왔으되 하는 바가 각기 다르니, 새가 있고 물고기가 있고 짐승이 있음을 일러 만물의 나뉨이라 한다. 모난 것은 종류로써 갈라지고 사물은 무리로써 나뉘어 성명(性命)이 같지 않으나, 모두 형체 있음에서 드러난다. 막혀 통하지 않고 나뉘어 만물이 되니, 능히 그 근원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움직임을 일러 살아 있다 하고 죽음을 일러 다했다 한다. 모두가 사물이 되었으되, 사물이 아니면서 사물을 사물 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물을 사물 되게 하는 것은 만물 가운데에 없다. 태초를 상고하건대, 사람은 무(無)에서 나서 유(有)에서 형체를 이루고, 형체가 있으면 사물에 제약된다. 능히 그 태어난 바로 돌아갈 수 있으므로, 아직 형체가 있지 않은 것을 일러 진인(眞人)이라 한다. 진인이란 아직 태일에서 나뉘지 않은 자이다. 성인은 명예의 주인이 되지 않고, 꾀의 창고가 되지 않으며, 일의 책임이 되지 않고, 지혜의 주인이 되지 않는다. 형체 없음에 감추고 자취 없이 행하며 조짐 없이 노닐고, 복의 앞장이 되지 않고 화의 시초가 되지 않으며, 허무에 머물러 부득이한 데서 움직인다. 복을 바라는 자가 더러 화가 되고, 이익을 바라는 자가 더러 해(害)를 떠난다. 그러므로 무위하여 편안한 자는 그 편안한 까닭을 잃으면 위태롭고, 일 없이 다스려진 자는 그 다스려진 까닭을 잃으면 어지러워진다. 별이 하늘에 벌여 밝으므로 사람이 가리키고, 의(義)가 덕에 벌여 드러나므로 사람이 본다. 사람이 가리키는 바는 움직이면 표(章)가 있고, 사람이 보는 바는 행하면 자취가 있다. 움직임에 표가 있으면 말이 일고, 행함에 자취가 있으면 의론이 인다. 그러므로 성인은 밝음을 형체 없음에 가리고 자취를 무위에 감춘다. 왕자 경기(慶忌)는 칼에 죽고, 예(羿)는 복숭아나무 몽둥이에 죽고, 자로(子路)는 위(衛)에서 젓갈이 되고, 소진(蘇秦)은 입으로 죽었다. 사람은 그 가진 바를 귀하게 여기고 그 모자란 바를 천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으나, 모두 그 귀하게 여기는 바에 빠지고 그 천하게 여기는 바에서 다한다. 귀하게 여기는 바는 형체가 있고, 천하게 여기는 바는 조짐이 없다. 그러므로 범과 표범의 강함은 화살을 부르고, 원숭이의 날램은 잡힘을 부른다. 사람이 능히 천하게 여기던 바를 귀하게 여기고 귀하게 여기던 바를 천하게 여길 수 있으면, 더불어 지극한 도리를 말할 만하다.
스스로를 믿는 자는 헐뜯거나 기림으로써 옮길 수 없고, 족함을 아는 자는 권세와 이익으로써 꾈 수 없다. 그러므로 성정(性情)에 통한 자는 본성에 없는 바를 하려고 힘쓰지 않고, 명(命)의 실정에 통한 자는 명에 어쩔 수 없는 바를 근심하지 않으며, 도에 통한 자는 사물이 그 조화를 어지럽히기에 족함이 없다. 첨하(詹何)가 말하였다. "몸이 다스려졌는데 나라가 어지러운 경우를 일찍이 들은 적 없고, 몸이 어지러운데 나라가 다스려진 경우를 일찍이 들은 적 없다." 곱자(矩)가 바르지 않으면 모난 것을 만들 수 없고, 그림쇠(規)가 바르지 않으면 둥근 것을 만들 수 없으니, 몸이란 일의 곱자와 그림쇠이다. 자기를 굽히고서 능히 남을 바로잡은 경우는 들은 적이 없다. 천명을 캐고 마음의 술(術)을 다스리며 좋고 미워함을 정리하고 성정을 알맞게 하면, 다스리는 도가 통한다. 천명을 캐면 화복에 미혹되지 않고, 마음의 술을 다스리면 함부로 기뻐하고 노하지 않으며, 좋고 미워함을 정리하면 쓸데없는 것을 탐하지 않고, 성정을 알맞게 하면 욕심이 절도를 넘지 않는다. 화복에 미혹되지 않으면 동정(動靜)이 이치를 따르고, 함부로 기뻐하고 노하지 않으면 상벌이 치우치지 않으며, 쓸데없는 것을 탐하지 않으면 욕심으로써 본성을 해치지 않고, 욕심이 절도를 넘지 않으면 본성을 기르고 족함을 안다. 무릇 이 네 가지는 밖에서 구하지 않고 남에게 빌리지 않으며, 자기에게 돌이켜 얻는 것이다.
천하는 지혜로써 다스릴 수 없고, 슬기로써 알 수 없으며, 일로써 다스릴 수 없고, 인(仁)으로써 따르게 할 수 없으며, 강함으로써 이길 수 없다. 다섯 가지는 모두 사람의 재능이나, 덕이 성하지 않으면 그중 하나도 이룰 수 없다. 덕이 서면 다섯 가지에 위태로움이 없고, 다섯 가지가 드러나면 덕은 자리가 없어진다. 그러므로 도를 얻으면 어리석은 자도 넉넉하고, 도를 잃으면 지혜로운 자도 부족하다. 물을 건너되 헤엄치는 법수(數)가 없으면 비록 강해도 반드시 빠지고, 헤엄치는 법수가 있으면 비록 약해도 반드시 건넌다. 또 하물며 배에 의탁함에 있어서랴! 정사를 하는 근본은 백성을 편안하게 함에 힘쓰는 데 있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근본은 씀씀이를 족하게 함에 있으며, 씀씀이를 족하게 하는 근본은 농시(時)를 빼앗지 않음에 있고, 농시를 빼앗지 않는 근본은 일을 더는 데 있으며, 일을 더는 근본은 욕심을 절제함에 있고, 욕심을 절제하는 근본은 본성으로 돌아감에 있으며, 본성으로 돌아가는 근본은 실음(載)을 버림에 있다. 실음을 버리면 비고, 비면 평평하다. 평평함은 도의 바탕이요, 빔은 도의 집이다. 능히 천하를 가질 수 있는 자는 반드시 그 나라를 잃지 않고, 능히 그 나라를 가질 수 있는 자는 반드시 그 집을 잃지 않으며, 능히 그 집을 다스릴 수 있는 자는 반드시 그 몸을 버리지 않고, 능히 그 몸을 닦을 수 있는 자는 반드시 그 마음을 잊지 않으며, 능히 그 마음을 캘 수 있는 자는 반드시 그 본성을 이지러뜨리지 않고, 능히 그 본성을 온전히 할 수 있는 자는 반드시 도에 미혹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광성자(廣成子)가 말하였다. "삼가 안을 지키고 두루 밖을 닫으라. 많이 아는 것은 패함이 된다. 보지 말고 듣지 말며, 신(神)을 안고 고요히 하면 형체가 장차 스스로 바르게 되리라. 자기에게서 얻지 못하고서 능히 남을 아는 자는 있은 적이 없다." 그러므로 『역(易)』에 이르기를 "주머니를 묶으면 허물도 없고 기림도 없다" 하였다. 능히 패왕(霸王)을 이룰 수 있는 자는 반드시 이김을 얻는 자요, 능히 적을 이길 수 있는 자는 반드시 강한 자요, 능히 강할 수 있는 자는 반드시 사람의 힘을 쓰는 자요, 능히 사람의 힘을 쓸 수 있는 자는 반드시 사람의 마음을 얻은 자요, 능히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자는 반드시 스스로 얻은 자요, 능히 스스로 얻을 수 있는 자는 반드시 부드럽고 약한 자이다. 강함으로 자기만 못한 자를 이기더라도 같은 자에 이르면 막히고, 부드러움으로 자기보다 나은 자를 이기면 그 힘을 헤아릴 수 없다. 그러므로 능히 무리로써 이기지 못하면서 큰 이김을 이루는 것은 오직 성인만이 할 수 있다.
헤엄을 잘 치는 자는 노 젓기를 배우지 않고도 곧 쓰며, 굳센 자는 말 타기를 배우지 않고도 곧 거기 거한다. 천하를 가벼이 여기는 자는 몸이 사물에 매이지 않으므로 능히 거기 처한다. 태왕(泰王) 단보(亶父)가 빈(邠)에 거할 때 적인(狄人)이 공격하여, 가죽과 폐백과 주옥으로 섬겼으나 듣지 않으므로, 이에 노인들에게 사례하고 기주(岐周)로 옮겼다. 백성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노인을 부축하며 따라가 마침내 나라를 이루었다. 이 뜻을 미루어 보면 사세(四世) 만에 천하를 가졌으니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천하를 위함이 없는 자라야 반드시 천하를 살릴 수 있다. 서리와 눈, 비와 이슬이 만물을 살리고 죽이되 하늘은 함이 없으니, 그럼에도 하늘을 귀하게 여긴다. 글을 갖추고 법을 살펴 관(官)을 다스리고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유사(有司)요, 임금은 거기 일이 없으되 그럼에도 임금을 높인다. 땅을 개간하고 풀을 일군 것은 후직(后稷)이요, 황하를 트고 강을 깊게 한 것은 우(禹)요, 옥사를 듣고 알맞게 판결한 것은 고요(皋陶)요, 성인의 이름을 가진 것은 요(堯)이다. 그러므로 도를 얻어 부리는 자는 몸이 비록 능함이 없어도 반드시 능한 자를 자기에게 쓰게 한다. 그 도를 얻지 못하면 재주와 기예가 비록 많아도 유익함이 없다. 배를 나란히 하여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한쪽에서 와 부딪쳐 뒤집더라도 비록 사나운 마음이 있어도 반드시 원망하는 빛이 없다. 한 사람이 그 안에 있어 하나는 펴라 하고 하나는 거두라 하여, 두세 번 불러도 응하지 않으면 반드시 험한 소리가 그 뒤를 따른다. 앞서는 노하지 않다가 이제 노함은 앞서는 비었다가 이제 찼기 때문이다. 사람이 능히 자기를 비워 세상에 노닐면 누가 능히 그를 헐뜯겠는가!
도를 놓고 지혜에 맡기는 자는 반드시 위태롭고, 법수(數)를 버리고 재주를 쓰는 자는 반드시 곤궁하다. 욕심이 많아 망한 자는 있어도, 욕심이 없으면서 위태로워진 자는 있은 적이 없다. 다스리려다 어지러워진 자는 있어도, 떳떳함을 지키다 잃은 자는 있은 적이 없다. 그러므로 지혜로도 환난을 면하기에 족하지 못하고, 어리석음으로도 편안함을 잃기에 이르지 못한다. 그 분수를 지키고 그 이치를 따라, 잃어도 근심하지 않고 얻어도 기뻐하지 않으므로, 이룬 것은 한 바가 아니요 얻은 것은 구한 바가 아니다. 들어오는 것은 받음만 있고 취함이 없으며, 나가는 것은 줌만 있고 베풂이 없다. 봄을 따라 살리고 가을을 따라 죽이되, 살린 바를 덕으로 여기지 않고 죽인 바를 원망하지 않으면 도에 가깝다. 성인은 헐뜯길 만한 행실을 하지 않으니 남이 자기를 헐뜯음을 미워하지 않고, 기림 받을 만한 덕을 닦으니 남이 자기를 기림을 구하지 않는다. 화가 이르지 않게 할 수는 없으나 자기가 그것을 맞이하지 않음을 믿고, 복이 반드시 오게 할 수는 없으나 자기가 그것을 물리치지 않음을 믿는다. 화가 이름은 그 구함에서 생긴 것이 아니므로 궁해도 근심하지 않고, 복이 이름은 그 구함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므로 통해도 자랑하지 않는다. 화복의 제어가 자기에게 있지 않음을 아는 까닭에, 한가로이 거하여 즐겁고 무위하여 다스려진다. 성인은 그 가진 까닭을 지키고 그 얻지 못한 바를 구하지 않는다. 없는 바를 구하면 가진 것도 없어지고, 가진 바를 닦으면 바라는 것이 이른다. 그러므로 군사를 쓰는 자는 먼저 이길 수 없게 하여 적의 이길 만함을 기다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먼저 빼앗길 수 없게 하여 적의 빼앗길 만함을 기다린다. 순(舜)이 역산(曆山)에서 닦으매 해내(海內)가 좇아 교화되고, 문왕이 기주에서 닦으매 천하가 풍속을 옮겼다. 만약 순이 천하의 이익을 좇아 자기를 닦는 도를 잊었다면, 몸도 오히려 보전하지 못했을 터인데 어찌 한 자의 땅인들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다스림이 어지럽지 않음에 굳지 못한 채 일을 다스리려는 자는 반드시 위태롭고, 행실이 그릇됨 없음에 굳지 못한 채 급히 이름을 구하는 자는 반드시 꺾인다. 복은 화 없음보다 큰 것이 없고, 이익은 잃음 없음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다. 움직임이 사물에 됨은 덜지 않으면 더하고, 이루지 못하면 헐며, 이롭지 못하면 병들어, 모두 험하니 그것을 행하는 자는 위태롭다. 그러므로 진(秦)은 융(戎)에게 이기고도 효(殽)에서 패하고, 초(楚)는 제하(諸夏)에게 이기고도 백거(栢莒)에서 패하였다. 그러므로 도는 권하여 이익으로 나아가게 할 수는 없으나, 편안히 해를 피하게 할 수는 있다. 그러므로 늘 화가 없을지언정 늘 복이 있지는 않고, 늘 죄가 없을지언정 늘 공이 있지는 않다. 성인은 사려가 없고 쌓아둠을 마련하지 않으며, 오는 것을 맞이하지 않고 가는 것을 보내지 않는다. 사람이 비록 동서남북으로 가더라도 홀로 중앙에 서니, 그러므로 뭇 굽은 것 가운데 처하여 그 곧음을 잃지 않고, 천하가 다 흘러도 홀로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을 하지 않고 추함을 피하지 않으니 하늘의 도를 따름이요, 시초가 되지 않고 자기를 오로지하지 않으니 하늘의 이치를 따름이요, 미리 꾀하지 않고 때를 버리지 않으니 하늘과 더불어 기약함이요, 얻기를 구하지 않고 복을 사양하지 않으니 하늘의 법칙을 좇음이다. 없는 바를 구하지 않고 얻은 바를 잃지 않으면, 안으로 곁의 화가 없고 밖으로 곁의 복이 없다. 화복이 생기지 않으니 어찌 사람의 해침이 있겠는가!
선을 하면 보이고 불선을 하면 의론되니, 보이면 귀함이 생기고 의론되면 환난이 생긴다. 그러므로 도술(道術)은 나아가 이름을 구할 수는 없으나 물러나 몸을 닦을 수는 있고, 이익을 얻을 수는 없으나 해를 떠날 수는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행실로써 이름을 구하지 않고 지혜로써 기림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연을 본받아 닦으니 자기가 관여하는 바가 없다. 사려는 법수를 이기지 못하고, 행실은 덕을 이기지 못하며, 일은 도를 이기지 못한다. 하는 자는 이루지 못함이 있고, 구하는 자는 얻지 못함이 있다. 사람은 막힘이 있으나 도는 통하지 않음이 없으니, 도와 다투면 흉하다. 그러므로 『시(詩)』에 이르기를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나 상제의 법칙을 따른다" 하였다. 지혜가 있으나 무위하면 지혜 없는 자와 도를 함께하고, 능함이 있으나 일이 없으면 무능한 자와 덕을 함께한다. 그 지혜로움은 고하는 자가 이른 뒤에야 그 움직임을 깨닫고, 부리는 자가 이른 뒤에야 그 함을 깨닫는다. 지혜가 있으되 지혜 없는 듯하고 능함이 있으되 무능한 듯함이 도리의 바름이 된다. 그러므로 공이 천하를 덮어도 그 아름다움을 베풀지 않고, 은택이 후세에 미쳐도 그 이름을 가지지 않는다. 도리가 통하면 사람의 거짓이 사라진다.
이름과 도는 둘 다 밝지 못하니, 사람이 이름을 받으면 도가 쓰이지 않고, 도가 사람을 이기면 이름이 그친다. 도와 사람은 길이를 다툰다.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도를 그치게 하는 것이니, 사람이 드러나고 도가 그치면 위태로움이 멀지 않다. 그러므로 세상에 성한 이름이 있으면 쇠하는 날이 이른다. 이름을 주재하려는 자는 반드시 선을 하고, 선을 하려는 자는 반드시 일을 내며, 일이 생기면 공(公)을 놓고 사(私)로 나아가 자주 재물을 부리고 자기에게 맡긴다. 선을 함에서 기림을 받으려 하고 바탕을 위함에서 이름을 세우려 하면, 다스림이 옛 법을 닦지 못하고 일이 때를 기다리지 못한다. 다스림이 옛 법을 닦지 못하면 책망이 많고, 일이 때를 기다리지 못하면 공이 없다. 책망이 많고 공이 적어 막을 수 없으면, 함부로 발하여 맞기를 바라고 함부로 하여 적중하기를 구한다. 공이 이루어져도 책망을 갚기에 족하지 못하고, 일이 패하여도 몸을 해치기에 족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선을 함을 그릇됨을 함처럼 무겁게 여기면 도에 가깝다.
천하에 미더운 선비가 없는 것이 아니나, 재물에 임하여 나눌 때 반드시 산가지를 잡아 몫을 정함은, 마음 있는 자가 고름에 있어 마음 없는 자만 못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천하에 청렴한 선비가 없는 것이 아니나, 무거운 보배를 지키는 자가 반드시 문을 닫고 봉함을 온전히 함은, 욕심 있는 자가 청렴함에 있어 욕심 없는 자만 못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 허물을 들추면 사람을 원망하나, 거울이 그 추함을 비추면 거울을 좋게 여기니, 사람이 능히 사물을 접하되 자기를 관여시키지 않으면 매임에서 벗어난다. 공손룡(公孫龍)은 말에 밝았으나 이름을 팔았고, 등석(鄧析)은 변론에 교묘했으나 법을 어지럽혔고, 소진은 유세를 잘했으나 나라를 망쳤다. 그 도를 따르면 선이 드러남이 없고, 그 이치를 닦으면 교묘함이 이름이 없다. 그러므로 교묘함으로 힘을 다투는 자는 양(陽)에서 시작하여 늘 음(陰)에서 끝나고, 슬기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다스림에서 시작하여 늘 어지러움에서 끝난다. 물을 아래로 흐르게 함은 누군들 다스리지 못하랴마는, 부딪쳐 위로 올림은 교묘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문(文)이 이기면 바탕이 가려지고, 사악한 교묘함은 바름을 막는다. 덕은 스스로 닦을 수 있으나 남을 사납게 하게 할 수는 없고, 도는 스스로 다스릴 수 있으나 남을 어지럽게 하게 할 수는 없다. 비록 성현의 보배가 있어도 폭란한 세상을 만나지 못하면 몸은 온전히 할 수 있어도 패왕은 할 수 없다. 탕(湯)·무(武)가 왕 노릇 함은 걸(桀)·주(紂)의 폭란을 만난 것이니, 걸·주가 탕·무의 어짊으로 사나워진 것이 아니라, 탕·무가 걸·주의 폭란을 만나 왕 노릇 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어진 왕이라도 반드시 만남을 기다린다. 만남이란 때를 만나 얻는 것이지, 지혜와 능함으로 구하여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군자는 행실을 닦되 선을 이름 없게 하고, 베풀되 인을 드러남 없게 하므로, 선비가 선을 행해도 선이 말미암는 바를 알지 못하고, 백성이 이익을 누려도 이익이 나오는 바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위하여 절로 다스려진다. 선이 드러남이 있으면 선비가 이름을 다투고, 이익이 근본이 있으면 백성이 공을 다투니, 두 다툼이 생기면 비록 어진 자가 있어도 능히 다스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선을 함에 자취를 가리고 인을 함에 이름을 그친다. 밖으로 사귀어 도움을 삼고 큰 나라를 섬겨 편안함을 삼는 것은, 안을 다스려 때를 기다림만 못하다. 무릇 남을 섬기는 것은 보배와 폐백이 아니면 반드시 낮은 말로써 한다. 옥과 비단으로 섬기면 재물이 다해도 욕심은 만족하고, 낮은 예와 부드러운 말로 하면 의론은 되어도 사귐은 맺어지지 않으며, 약속하고 맹세하면 약속은 정해져도 어기는 데 날이 없다. 비록 나라의 작은 땅을 떼어 남을 섬기더라도 스스로 믿을 도가 없으면 온전하기에 족하지 못하다. 만약 진실로 밖으로 사귐의 계책을 놓고 삼가 그 경내의 일을 닦아, 그 땅의 힘을 다하여 그 쌓음을 많게 하고, 그 백성을 죽음에 힘쓰게 하여 그 성을 굳게 하며, 위아래가 한마음이 되고 임금과 신하가 뜻을 같이하여, 더불어 사직을 지켜 죽음을 본받고 백성이 떠나지 않으면, 이름을 위하는 자가 죄 없는 자를 치지 않고 이익을 위하는 자가 이기기 어려운 자를 공격하지 않으니, 이것이 반드시 온전한 도이다. 백성은 도가 있어 함께 따르는 바가 있고 법이 있어 함께 지키는 바가 있으나, 의(義)를 함에 능히 서로 굳게 하지 못하고 위엄을 함에 능히 서로 반드시 하게 하지 못하므로, 임금을 세워 백성을 하나로 한다. 임금이 하나를 잡으면 다스려지고 떳떳함이 없으면 어지러워진다. 임금의 도란 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위하는 것이다. 무엇을 무위라 하는가? 지혜로운 자가 자리로써 일을 삼지 않고, 용맹한 자가 자리로써 사납게 하지 않으며, 어진 자가 자리로써 근심을 삼지 않으면 무위라 할 만하다. 무릇 무위하면 하나에서 얻는다. 하나란 만물의 근본이요 대적할 데 없는 도이다.
무릇 사람의 본성은 어리면 미쳐 날뛰고 장성하면 사납게 강하며 늙으면 이익을 좋아하니, 한 사람의 몸도 이미 자주 변하거늘, 또 하물며 임금이 자주 법을 바꾸고 나라가 자주 임금을 바꿈에 있어서랴! 사람이 그 자리로써 그 좋고 미워함을 통하게 하면 아랫사람의 갈림길은 다 정리할 수 없으므로, 임금이 하나를 잃으면 어지러움이 임금 없는 때보다 심하다. 그러므로 『시』에 이르기를 "어그러지지 않고 잊지 않아 옛 법을 따른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임금이 지혜를 좋아하면 때를 등지고 자기에게 맡기며, 법수를 버리고 사려를 쓰니, 천하의 사물은 넓고 지혜는 얕아 얕음으로 넓음을 만족시킨 자는 능한 자가 없었다. 홀로 그 지혜에 맡기면 잃음이 반드시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를 좋아함은 다하는 술수요, 용맹을 좋아하면 적을 가벼이 여기고 대비를 소홀히 하여, 스스로를 믿고 도움을 사양한다. 한 사람의 힘으로 강한 적을 막되 무리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제 재주만 쓰면 반드시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용맹을 좋아함은 위태로운 술수이다. 줌을 좋아하면 정한 몫이 없다. 윗사람의 몫이 정해지지 않으면 아랫사람의 바람이 그칠 데가 없다. 만약 부세를 많이 거두어 곳간을 채우면 백성과 더불어 원수가 된다. 적게 거두고 많이 줌은 법수에 있은 적이 없다. 그러므로 줌을 좋아함은 원망을 부르는 도이다. 인(仁)·지(智)·용(勇)·역(力)은 사람의 아름다운 재능이나, 천하를 다스리기에 족한 것이 없다. 이로 보건대 어짊과 능함이 맡기기에 족하지 못하고 도술을 닦아 밝힐 만함이 분명하다.
성인은 마음을 이기고 뭇사람은 욕심을 이긴다. 군자는 바른 기운을 행하고 소인은 사악한 기운을 행한다. 안으로 본성에 편하고 밖으로 의에 합하며 이치를 따라 움직여 사물에 매이지 않는 것은 바른 기운이요, 맛에 무겁고 소리와 색에 빠지며 기쁨과 노여움에서 발하여 뒤의 환난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사악한 기운이다. 사악함과 바름은 서로 해치고 욕심과 본성은 서로 해쳐 둘이 함께 설 수 없으니, 하나가 놓이면 하나가 폐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욕심을 덜고 본성에 좇아 일한다. 눈은 색을 좋아하고 귀는 소리를 좋아하며 입은 맛을 좋아하여, 접하면 기뻐하고 이해를 모르는 것이 욕심이다. 먹어도 몸에 편안하지 않고 들어도 도에 합하지 않으며 보아도 본성에 편하지 않다. 세 기관(귀·눈·입)이 서로 다툼에 의로써 제어하는 것이 마음이다. 종기를 가르는 것이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요 독약을 마시는 것이 쓰지 않은 것이 아니나, 그럼에도 그것을 함은 몸에 편하기 때문이다. 목마를 때 물을 마심이 상쾌하지 않은 것이 아니요 주릴 때 크게 먹음이 만족하지 않은 것이 아니나, 그럼에도 하지 않음은 본성에 해롭기 때문이다. 이 네 가지를 귀·눈·코·입은 취하고 버릴 바를 알지 못하므로 반드시 제어함이 있어 각기 그 마땅함을 얻는다. 이로 보건대 욕심을 다 이길 수 없음이 분명하다.
무릇 몸을 다스리고 본성을 기름에 자고 거함을 절제하고 먹고 마심을 알맞게 하며 기쁨과 노여움을 화하게 하고 동정을 편하게 하여, 자기에게 있는 것이 얻어지게 하면 사악한 기운이 인하여 생기지 않으니, 어찌 종기 따위가 날까 근심하여 미리 대비하는 것과 같으랴! 무릇 소를 담는 솥이 끓으면 파리와 모기가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곤산(昆山)의 옥이 박혀 있으면 티끌과 때가 더럽힐 수 없다. 성인은 버리려는 마음이 없으므로 마음에 추함이 없고, 취하려는 아름다움이 없으므로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제사에 어버이를 생각하되 복을 구하지 않고, 손님 접대에 공경을 닦되 덕을 생각하지 않으니, 오직 구하지 않는 자라야 능히 그것을 가진다. 높은 자리에 처한 자는 공도(公道)가 있고 사사로운 기쁨이 없으므로 높다 일컫고 어질다 일컫지 않으며, 큰 땅을 가진 자는 떳떳한 술수가 있고 사사로운 꾀가 없으므로 평(平)하다 일컫고 지혜롭다 일컫지 않는다. 안으로 사나운 일이 없어 백성에게 원망을 떠나고, 밖으로 어진 행실을 드러냄이 없어 제후에게 시기를 받음에서 떠나, 위아래의 예가 이어져 떠나지 않으나 의론하는 자가 무연히 볼 바를 보지 못함, 이것이 이른바 형체 없음에 감춘 자이다. 형체 없음에 감추지 않고서야 누가 능히 형체 짓겠는가! 삼대(三代)가 따른 바는 인순(因)이다. 그러므로 우가 강하를 튼 것은 물을 따른 것이요, 후직이 씨 뿌리고 곡식을 심은 것은 땅을 따른 것이요, 탕·무가 폭란을 평정한 것은 때를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는 얻을 수는 있어도 취할 수는 없고, 패왕은 받을 수는 있어도 구할 수는 없다.
지혜에 있으면 사람이 더불어 송사하고, 힘에 있으면 사람이 더불어 다툰다. 사람으로 하여금 지혜가 없게 할 수는 없으나 사람으로 하여금 그 지혜를 자기에게 쓰지 못하게 할 수는 있고, 사람으로 하여금 힘이 없게 할 수는 없으나 사람으로 하여금 그 힘을 자기에게 베풀지 못하게 할 수는 있다. 이 두 가지는 늘 있고 오래 드러난다. 그러므로 임금이 어질되 드러나지 않으면 제후가 대비하지 않고, 어리석되 드러나지 않으면 백성이 원망하지 않으니, 백성이 원망하지 않으면 백성의 쓰임을 얻을 수 있고, 제후가 대비하지 않으면 천하의 때를 받을 수 있다. 일은 무리와 함께 같이하는 바요, 공은 때와 함께 이루는 바이니, 성인은 거기 관여함이 없다. 그러므로 노자(老子)가 말하기를 "범이 그 발톱을 둘 데가 없고 외뿔소가 그 뿔을 둘 데가 없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북은 소리에 묻히지 않으므로 능히 소리가 있고, 거울은 형체에 묻히지 않으므로 능히 형체가 있다. 쇠와 돌은 소리가 있으나 두드리지 않으면 울지 않고, 피리와 퉁소는 음이 있으나 불지 않으면 소리가 없다. 성인은 안으로 감추어 사물보다 먼저 부르지 않고, 일이 오면 제어하고 사물이 이르면 응한다. 그 밖을 꾸미는 자는 그 안을 해치고, 그 정(情)을 붙드는 자는 그 신(神)을 해치며, 그 문(文)을 드러내는 자는 그 바탕을 가린다. 잠시도 바탕 됨을 잊지 않는 자는 반드시 본성에 곤하고, 백 걸음 가운데 그 모습을 잊지 않는 자는 반드시 그 형체를 수고롭게 한다.
그러므로 깃털이 아름다운 것은 뼈대를 해치고, 가지와 잎이 아름다운 것은 뿌리와 줄기를 해치니, 능히 둘 다 아름다운 것은 천하에 없다. 하늘은 밝음이 있으나 백성의 어둠을 근심하지 않으니, 백성이 문을 뚫고 창을 내어 스스로 비춤을 취하며, 땅은 재물이 있으나 백성의 가난을 근심하지 않으니, 백성이 나무를 베고 풀을 깎아 스스로 부유함을 취한다. 덕과 도에 이른 자는 언덕과 산 같아 우뚝이 움직이지 않으니, 가는 자가 표적으로 삼는다. 자기를 곧게 하여 사물을 족하게 하되 남에게 베풀지 않으니, 쓰는 자도 그 덕을 받지 않으므로 편안하여 능히 오래간다. 천지는 줌이 없으므로 빼앗음이 없고, 일월은 덕이 없으므로 원망이 없다. 덕을 기뻐하는 자는 반드시 원망이 많고, 줌을 기뻐하는 자는 반드시 잘 빼앗는다. 오직 자취를 무위에 없애고 천지의 자연을 따르는 자라야 오직 능히 이치를 이기어 이름을 받게 된다. 이름이 일면 도가 행해지고, 도가 행해지면 사람이 자리가 없어진다. 그러므로 기림이 생기면 헐뜯음이 따르고, 선이 드러나면 원망이 좇는다. 이익은 해의 시초가 되고 복은 화의 앞장이 된다. 오직 이익을 구하지 않는 자라야 해가 없고, 오직 복을 구하지 않는 자라야 화가 없다. 제후로서 패자를 구하는 자는 반드시 그 제후 자리를 잃고, 패자로서 왕을 구하는 자는 반드시 그 패업을 잃는다. 그러므로 나라는 온전함을 떳떳함으로 삼고 패왕은 거기 부쳐 있을 뿐이며, 몸은 삶을 떳떳함으로 삼고 부귀는 거기 부쳐 있을 뿐이다. 능히 천하로써 그 나라를 상하지 않고 나라로써 그 몸을 해치지 않는 자라야 천하를 맡길 만하다.
도를 모르는 자는 그 이미 가진 바를 놓고 그 아직 얻지 못한 바를 구한다. 마음을 괴롭히고 사려를 근심하여 굽은 행실을 행하므로, 복이 이르면 기뻐하고 화가 이르면 두려워하며, 정신은 꾀함에 수고롭고 지혜는 일에 다급하여, 화복이 싹터 나매 종신토록 뉘우치지 않아, 자기가 낸 바가 도리어 사람을 근심케 한다. 기뻐하지 않으면 근심하여 마음이 일찍이 평안한 적이 없다. 살핌에 의지할 바가 없는 것을 일러 미친 삶이라 한다. 임금이 인을 좋아하면 공 없는 자가 상 받고 죄 있는 자가 풀려나며, 형벌을 좋아하면 공 있는 자가 폐해지고 죄 없는 자가 베임을 당한다. 좋아함이 없음에 미쳐서는 베어도 원망이 없고 베풀어도 덕으로 여기지 않으며, 먹줄과 노끈에 좇아 몸이 더불어 일함이 없으니, 하늘 같고 땅 같아 무엇인들 덮고 싣지 않으랴! 그러므로 모아서 놓아두는 것은 임금이요, 제재하여 베는 것은 법이다. 백성이 이미 베임을 받으면 원망이 사라질 데가 없으니, 이를 일러 도라 한다. 도가 이기면 사람이 일이 없어진다. 성인은 별난 옷이 없고 괴이한 행실이 없어, 옷은 볼 만하지 않고 행실은 구경할 만하지 않으며 말은 의론될 만하지 않으니, 통하되 화려하지 않고 궁하되 두려워하지 않으며 영화로우되 드러나지 않고 숨되 궁하지 않으며 다르되 괴이히 보이지 않고 받아들여 무리와 함께한다. 이름 붙일 데가 없으니 이를 일러 크게 통함이라 한다. 오르내리고 읍하고 사양하며 종종걸음으로 두루 노니는 것은 부득이하여 하는 것이지 본성에 몸에 있는 바가 아니니, 정에 부합하는 바 없이 부득이한 일을 행하되 거리끼지 않을 뿐이지, 어찌 짐짓 함을 더하랴!
그러므로 부득이하여 노래하는 자는 슬픔을 일삼지 않고, 부득이하여 춤추는 자는 고움을 자랑하지 않는다. 노래하고 춤추되 슬픔과 고움을 일삼지 않는 것은 모두 마음에 뿌리 둔 바가 없는 것이다. 도박을 잘하는 자는 이기기를 바라지 않고 못 이길까 두려워하지 않으며, 마음을 평탄히 하고 뜻을 정하여 그 가지런함을 잡고 그 이치를 따라 행하니, 비록 반드시 이기지는 못해도 산가지를 얻음이 반드시 많다. 어째서인가? 이김은 법수에 있지 욕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말 달리는 자는 가장 앞섬을 탐하지 않고 홀로 뒤짐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늦고 빠름을 손에 고르게 하고 마음을 말에 고르게 하니, 비록 반드시 먼저 싣지는 못해도 말의 힘이 반드시 다해진다. 어째서인가? 앞섬은 법수에 있지 욕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욕심을 없애면 법수가 이기고, 지혜를 버리면 도가 선다. 장사꾼은 갈래가 많으면 가난하고 장인은 재주가 많으면 궁하니, 마음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무가 크면 그 가지를 해치고 물이 크면 그 깊이를 해친다. 지혜가 있으나 술수가 없으면 비록 뚫어도 통하지 못하고, 백 가지 재주가 있으나 한 도가 없으면 비록 얻어도 지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시』에 이르기를 "선량한 군자여, 그 거동이 한결같도다. 그 거동이 한결같으니 마음이 맺은 듯하다" 하였다. 군자는 그 하나에 맺을진저! 순은 오현금(五弦琴)을 타며 『남풍(南風)』의 시를 노래하여 천하를 다스렸고, 주공(周公)은 안주와 삶은 고기를 앞에서 거두지 않고 종과 북을 시렁에서 풀지 않고도 성왕을 도와 해내가 평안하였다. 필부는 백 이랑 한 몫에 거할 곳을 겨를하지 못하니, 옮길 바가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으로 천하를 두루 들으면 날이 남아도 다스림이 부족하니, 사람을 시켜 하게 하기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 처한 자는 시동(尸童) 같고, 관을 지키는 자는 축관(祝)·재(宰) 같다. 시동이 비록 개를 잡고 돼지를 그을릴 수 있어도 하지 않으니 능히 이지러뜨림이 없다. 도마와 제기의 차례, 기장과 피의 선후를 비록 알아도 가르치지 않으니 능히 해침이 없다. 축관 노릇 못하는 자는 축관이 될 수 없으나 시동 됨에 해롭지 않고, 모는 일 못하는 자는 마부가 될 수 없으나 보좌 됨에 해롭지 않다. 그러므로 자리가 높을수록 몸은 편하고, 몸이 클수록 일은 적다. 비유하면 거문고를 죌 때 작은 줄은 비록 급해도 큰 줄은 반드시 느슨한 것과 같다.
무위는 도의 본체요, 뒤를 잡음은 도의 모습이다. 무위로써 유위를 제어함은 술(術)이요, 뒤를 잡아 앞을 제어함은 법수(數)이다. 술에 놓으면 강하고 법수에 살피면 편안하다. 이제 남에게 변씨(卞氏)의 옥을 줄 때 아직 받지 못한 것은 앞이요, 구하여 이르게 하여 비록 원망해도 거스르지 않음은 뒤이다. 세 사람이 한 집에 살아 두 사람이 서로 다투되 다투는 자가 각기 스스로 옳다 여겨 서로 듣지 못하면, 한 사람이 비록 어리석어도 반드시 곁에서 판가름하니, 지혜로써가 아니라 다투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서로 싸우고 한 약한 자가 곁에 있어, 한 사람을 도우면 이기고 한 사람을 구하면 면하니, 싸우는 자가 비록 강해도 반드시 한 약한 자에게 제어됨은 용맹으로써가 아니라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보건대 뒤가 앞을 제어하고 고요함이 조급함을 이김은 법수이다. 도를 등지고 법수를 버려 구차한 만남을 구하고, 떳떳함을 바꾸고 옛것을 바꾸어 요행을 막으려 알며, 지나치면 스스로 그릇되다 하고 맞으면 조짐으로 여기며, 어두이 행하고 그릇되이 고쳐 종신토록 깨닫지 못함, 이를 일러 미침이라 한다. 화가 있으면 굽히고 복이 있으면 차며, 허물이 있으면 뉘우치고 공이 있으면 자랑하여, 마침내 돌이킬 줄 모름, 이를 일러 미친 사람이라 한다. 둥근 것이 그림쇠에 맞고 모난 것이 곱자에 맞으며, 가면 짐승 무늬를 이루고 멈추면 무늬를 이룸은, 적은 무리를 거느릴 수는 있어도 많은 무리를 거느릴 수는 없다. 여뀌 나물을 줄지어 심고 병과 항아리에 둑을 두며, 곡식을 헤아려 찧고 쌀을 세어 짓는 것은 집을 다스릴 수는 있어도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다. 잔을 씻어 먹고 술잔을 씻어 마시며 빨고 나서 먹임은 집안 노인을 봉양할 수는 있어도 삼군(三軍)을 먹일 수는 없다.
쉽지 않으면 큰 것을 다스릴 수 없고 간략하지 않으면 무리를 합할 수 없다. 큰 음악은 반드시 쉽고 큰 예는 반드시 간략하다. 쉬우므로 능히 하늘 같고 간략하므로 능히 땅 같다. 큰 음악은 원망이 없고 큰 예는 책망이 없어, 사해 안이 매여 통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능히 제(帝)가 된다. 마음에 근심 있는 자는 평상과 자리도 편안할 수 없고, 줄밥과 소고기도 달 수 없으며, 거문고와 피리도 즐거울 수 없다. 환난이 풀리고 근심이 없어진 뒤에야 먹음이 달고 잠이 편안하며 거함이 편안하고 노님이 즐겁다. 이로 보건대 삶에는 즐거워할 것이 있고 죽음에는 슬퍼할 것이 있다. 이제 본성이 즐거워할 수 없는 바를 더하려 힘쓰고 본성이 즐거워하는 바를 해치므로, 비록 부유함이 천하를 가지고 귀함이 천자가 되어도 슬퍼하는 사람 됨을 면하지 못한다. 무릇 사람의 본성은 편안함을 즐거워하고 답답함을 미워하며, 한가함을 즐거워하고 수고를 미워한다. 마음에 늘 욕심이 없으면 편안하다 할 만하고, 형체에 늘 일이 없으면 한가하다 할 만하다. 마음을 편안함에 노닐고 형체를 한가함에 두어 천명을 기다리며, 안에서 스스로 즐거워하고 밖에서 다급함이 없으면, 비록 천하의 큼이라도 그 한 가지 뜻을 바꾸기에 족하지 못하다. 해와 달이 사라져도 뜻에 적심이 없으므로, 비록 천하나 귀한 듯하고 비록 가난하나 부유한 듯하다. 큰 도는 형체가 없고 큰 인은 친함이 없으며 큰 변론은 소리가 없고 큰 청렴은 겸양하지 않으며 큰 용맹은 자랑하지 않는다. 다섯 가지를 버리지 않으면 거의 바른 데로 향한다. 군대는 영(令)이 많으면 어지럽고 술자리는 약속이 많으면 다투니, 어지러우면 패배하고 다투면 서로 해친다. 그러므로 도읍에서 시작한 것은 늘 시골보다 크고, 즐거움에서 시작한 것은 늘 슬픔보다 크니, 그 시작이 간략한 것은 그 끝이 본래 반드시 고르다. 이제 아름다운 술과 좋은 안주로 서로 대접하고 몸을 낮추고 말을 부드럽게 하여 접하여 기쁨을 합하려 하다가, 가득 찬 술잔 사이를 다투어 도리어 싸움이 생기고, 싸워 서로 상하여 삼족(三族)이 원망을 맺어 그 미워하는 바로 돌아가니, 이것이 술의 패함이다.
『시』의 잘못은 치우침이요, 음악의 잘못은 찌름이요, 예의 잘못은 책망이다. 치음(徵音)에 우성(羽聲)이 없는 것이 아니요 우음(羽音)에 치성(徵聲)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음(五音)에 소리 없는 것이 없으되 치·우로써 이름을 정함은 이긴 것으로써이다. 그러므로 인·의·지·용은 성인이 갖추어 가진 바이나, 모두 한 이름을 세움은 그 큰 것을 말함이다. 양기(陽氣)는 동북에서 일어 서남에서 다하고, 음기(陰氣)는 서남에서 일어 동북에서 다한다. 음양의 시작은 모두 알맞게 서로 비슷하나, 날로 그 부류를 자라게 하여 침범하여 서로 멀어져, 더러는 모래를 뜨겁게 태우고 더러는 물을 차게 얼리므로, 성인은 그 쌓이는 바를 삼간다. 물은 산에서 나서 바다로 들고, 곡식은 들에서 나서 곳간에 갈무리된다. 시작하는 바를 보면 끝을 안다. 자리에는 골풀과 골풀자리를 먼저 하고, 술동이에는 현주(玄酒)를 위에 하며, 도마에는 날생선을 먼저 하고, 제기에는 큰국(泰羹)을 먼저 한다. 이는 모두 귀와 눈에 상쾌하지 않고 입과 배에 알맞지 않으나 선왕이 귀하게 여겼으니, 근본을 먼저 하고 끝을 뒤로 함이다. 성인이 사물을 접함은 천변만화하되 반드시 변하지 않으면서 변화에 응하는 것이 있다. 무릇 추위와 따뜻함은 서로 반대여서 큰 추위는 땅이 갈라지고 물이 얼되 불이 그 더위를 쇠하지 않으며, 큰 더위는 돌을 녹이고 쇠를 흐르게 하되 불이 그 맹렬함을 더하지 않는다. 추위와 더위의 변화가 자기에게 덜고 더함이 없으니 바탕이 그것을 가졌기 때문이다. 성인은 늘 뒤서고 앞서지 않으며 늘 응하고 부르지 않으며, 나아가 구하지 않고 물러나 사양하지 않는다. 때를 따르기 삼 년에 때가 나보다 먼저 가고, 때를 떠나기 삼 년에 때가 나보다 뒤에 있으니, 떠남도 없고 나아감도 없이 그 자리에 가운데 선다.
하늘의 도는 친함이 없어 오직 덕에만 더불며, 도가 있는 자는 때를 잃지 않고 사람과 더불고, 도가 없는 자는 때를 잃고 사람을 취한다. 자기를 곧게 하여 명을 기다리니 때가 이름은 맞이하여 돌이킬 수 없고, 요행을 막아 합함을 구하니 때가 감은 좇아 당길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할 것이 없다" 하여도 천하가 멀어지지 않고, "나는 바라지 않는다" 하여도 천하가 이르지 않음이 없다. 옛날 자기를 보존한 자는 덕을 즐거워하여 천함을 잊으므로 이름이 뜻을 움직이지 못했고, 도를 즐거워하여 가난을 잊으므로 이익이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명예와 이익이 천하에 가득해도 뜻을 가늠하기에 족하지 못하므로, 청렴하되 능히 즐겁고 고요하되 능히 담박하였다. 그러므로 그 몸이 다스려진 자와는 더불어 도를 말할 만하다. 내 몸 이상으로 거칠고 아득한 데까지 멀고, 내 죽음에서 천하의 무궁함까지 아득한데, 몇 가닥 섞인 수명으로 천하의 어지러움을 근심함은, 황하의 물이 적음을 근심하여 울며 보태는 것과 같다. 거북은 삼천 년을 살고 하루살이는 사흘을 넘기지 못하는데, 하루살이로서 거북을 위해 양생의 도구를 근심한다면 사람이 반드시 비웃을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어지러움을 근심하지 않고 제 몸의 다스려짐을 즐거워하는 자와는 더불어 도를 말할 만하다. 군자는 선을 하되 복이 반드시 오게 할 수 없고, 그릇됨을 하지 않되 화가 이르지 않게 할 수 없다. 복이 이름은 그 구한 바가 아니므로 그 공을 자랑하지 않고, 화가 옴은 그 낸 바가 아니므로 그 행실을 뉘우치지 않는다. 안으로 닦음을 다했는데 뜻밖의 화가 이름은 모두 하늘이지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음 가운데 늘 담담하여 덕을 쌓고, 개가 짖어도 놀라지 않으며 그 정을 스스로 믿는다. 그러므로 도를 아는 자는 미혹되지 않고 명을 아는 자는 근심하지 않는다. 만승(萬乘)의 임금이 죽으면 그 뼈를 넓은 들에 장사하고 그 귀신을 명당(明堂) 위에 제사하니, 신(神)이 형체보다 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이 제어하면 형체가 좇고 형체가 이기면 신이 궁하다. 총명을 비록 쓰더라도 반드시 신으로 돌이키니, 이를 일러 태충(太沖)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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