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남자 19 수무훈(脩務訓)
「수무훈」은 무위(無爲)를 곡해하여 게으름과 방종으로 삼는 폐단을 바로잡고, 힘써 일하고 배움의 유익함을 밝히는 편이다. 성인도 백성을 위해 수고로이 일했으며, 이름은 힘써 세울 수 있고 공은 애써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핵심 구절 — 원문과 번역
名可務立,功可強成,故君子積志委正,以趣明師,勵節亢高,以絕世俗。
이름은 힘써 세울 수 있고 공은 애써 이룰 수 있으므로, 군자는 뜻을 쌓고 바름에 맡겨 밝은 스승에게 나아가고 절개를 힘쓰고 높이 들어 세속을 끊는다.
夫學,亦人之砥錫也,而謂學無益者,所以論之過。
무릇 배움은 또한 사람의 숫돌이니, 배움이 무익하다 함은 논함이 지나친 것이다.
知人無務,不若愚而好學。
사람이 힘쓰지 않으면 어리석으면서도 배우기 좋아하는 자만 못하다.
번역
어떤 이가 말하기를 "무위란 적연(寂然)히 소리 없고 막연(漠然)히 움직이지 않아, 당겨도 오지 않고 밀어도 가지 않는다. 이러한 것이 곧 도를 얻은 모습이다" 하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시험 삼아 묻건대, 신농(神農)·요·순·우·탕은 성인이라 할 만한가? 의론하는 자가 반드시 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다섯 성인으로 보건대 무위를 얻은 자가 없음이 분명하다. 옛날에 백성이 풀을 먹고 물을 마시며 나무 열매를 따고 소라·조개의 고기를 먹어, 때로 질병과 독상(毒傷)의 해가 많았다. 이에 신농이 비로소 백성에게 오곡 심기를 가르치고 토지의 마땅함과 마르고 젖음, 기름지고 메마름, 높고 낮음을 살피며 온갖 풀의 맛과 샘물의 달고 씀을 맛보아 백성으로 하여금 피하고 나아갈 바를 알게 하니, 이때 하루에 일흔 가지 독을 만났다. 요는 효성과 자애와 인애를 세워 백성을 자식과 아우같이 대했고, (사방을 가르치고 사흉을 내쳤으며,) 순은 집을 짓고 담을 쌓고 지붕을 이어 땅을 개간하고 곡식을 심어 백성으로 하여금 다 굴혈을 떠나 각기 집을 가지게 하고, 남으로 삼묘(三苗)를 정벌하다 창오(蒼梧)에서 길에 죽었으며, 우는 장맛비에 머리 감고 거센 바람에 빗질하며 강을 트고 황하를 소통하고 용문을 뚫고 이궐을 열어 수토를 평정하고 천팔백 나라를 정하였고, 탕은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 자며 총명을 다하고 부세를 가벼이 하여 백성을 너그럽게 하며 덕을 펴고 은혜를 베풀어 곤궁한 이를 구휼하였다. 이 다섯 성인은 천하의 성한 임금으로, 형체를 수고롭게 하고 사려를 다하여 백성을 위해 이로움을 일으키고 해를 없애기에 게으르지 않았다. 술 한 잔을 받들매 낯빛을 알지 못하고 한 섬 술동이를 들매 흰 땀이 흐르거늘, 또 하물며 천하의 근심을 짊어지고 해내의 일을 맡음에랴! 그 무거움이 술동이보다 또한 멀다. 또 무릇 성인이란 몸의 천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부끄러워하며, 명(命)의 짧음을 근심하지 않고 백성의 곤궁함을 근심한다. 그러므로 우가 물을 다스릴 때 몸소 양우(陽盱)의 강에 빌었고, 탕이 가물 때 몸소 상산(桑山)의 숲에서 기도하였다. 성인이 백성을 근심함이 이같이 밝거늘, 무위라 일컬으니 어찌 어그러지지 않으랴!
또 옛날에 제왕을 세운 것은 그 욕심을 받들어 기르기 위함이 아니요, 성인이 자리에 오른 것은 그 몸을 편안히 즐겁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천하에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가리고 무리가 적은 자를 사납게 하며 속이는 자가 어리석은 자를 속이고 용맹한 자가 겁 많은 자를 침범하며, 지혜를 품고도 서로 가르치지 않고 재물을 쌓고도 서로 나누지 않으므로, 천자를 세워 하나로 가지런히 하였다. 한 사람의 총명으로 해내를 두루 비추기에 족하지 못하므로 삼공구경(三公九卿)을 세워 도왔고, 먼 나라와 다른 풍속, 외지고 그윽한 곳이 능히 덕을 입지 못하므로 제후를 세워 가르치고 깨우쳤다. (이윤이 솥을 지고 탕에게 나아가고, 여망이 칼을 두드리다 주에 들어가고, 백리해가 떠돌며 팔리고, 관중이 묶이고, 공자가 검게 그을릴 새 없고, 묵자가 자리 데울 새 없었음을 들어, 성인이 치욕을 무릅쓰고 임금을 찾은 것은 녹과 자리를 탐해서가 아니라 천하의 이로움을 일으키고 만민의 해를 없애려 함임을 논한다.) 그러므로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사지(四肢)를 움직이지 않고 사려를 쓰지 않고서 일이 다스려지고 구함이 만족된 자는 들은 적이 없다.
무릇 땅의 형세는 물이 동으로 흐르나 사람이 반드시 거기 공력을 더한 뒤에야 물이 골짜기로 흐르고, 벼는 봄에 나나 사람이 반드시 공력을 더하므로 오곡이 자란다. 그 절로 흐름에 맡기고 그 절로 남을 기다린다면 곤(鯀)·우(禹)의 공이 서지 못하고 후직의 지혜가 쓰이지 못한다. 만약 내가 이른바 무위라는 것은, 사사로운 뜻이 공도(公道)에 들지 못하고 욕심이 바른 술(術)을 굽히지 못하며, 이치를 따라 일을 들고 자질을 따라 세우며 자연의 형세에 맡겨 굽은 까닭이 용납되지 못하는 것이니, 일이 이루어져도 몸이 자랑하지 않고 공이 서도 이름을 가지지 않는 것이지, 느껴도 응하지 않고 쳐도 움직이지 않음을 이름이 아니다. 만약 불로 우물을 말리고 회수(淮水)로 산을 적심은 자기를 써서 자연을 등짐이니 유위(有爲)라 한다. 무릇 물에 배를 쓰고 모래에 추(鳩)를 쓰며 진흙에 썰매(輴)를 쓰고 산에 멜대(蔂)를 쓰며, 여름이면 도랑으로 겨울이면 둑으로, 높은 데를 따라 밭을 삼고 낮은 데를 따라 못을 삼음은, 내가 이른바 (억지로) 함이 아니다.
성인이 일에 종사함은 몸은 다르되 이치에 합하니, 그 말미암는 바는 길이 다르되 돌아감은 같다. (묵자가 열흘 밤낮을 달려 초를 막아 송을 보존한 일과, 단간목(段干木)이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아 진·위를 편안케 한 일을 들어, 감과 멈춤이 형세는 반대이나 둘 다 나라를 보존하였음을 보인다.) 무릇 묵자가 발을 절며 천 리를 달려 초·송을 보존하고, 단간목이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아 진·위를 편안케 하니, 무릇 감과 멈춤이 그 형세는 서로 반대이나 다 나라를 보존할 수 있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길은 다르되 돌아감은 같음이다. 이제 불을 끄는 자가 물을 길어 달려가되 더러는 동이로 더러는 사발로 하여, 그 모나고 둥글고 뾰족하고 길쭉함이 같지 않고 담는 물이 각기 다르나 불을 끔에는 같다.
세속이 쇠퇴하여 배움을 그르다 하는 자가 많다. "사람의 본성은 각기 닦이고 짧음이 있어, 물고기가 뛰고 까치가 얼룩진 것 같은 자연이니 덜고 더할 수 없다" 하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무릇 물고기가 뛰고 까치가 얼룩짐은 사람과 말이 사람과 말 됨과 같아, 근골과 형체를 하늘에서 받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망아지가 길들여지지 않을 때는 사람이 제어할 수 없으나, 마부가 길들이고 좋은 마부가 가르쳐 멍에와 재갈을 매면 험함을 넘고 구덩이를 뛰어도 사양하지 않으니, 그 말 됨은 바꿀 수 없으나 부릴 수 있게 됨은 가르침이 한 바이다.) 말은 어리석은 벌레이나 기운과 뜻을 통하게 할 수 있어 오히려 가르침을 기다려 이루거늘, 또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요·순·문왕처럼 배우지 않고도 도에 합하는 자, 단주(丹朱)·상균(商均)처럼 가르쳐도 안 되는 자, 서시·양문(陽文)처럼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자, 모모(嫫母)·차유(仳倠)처럼 꾸며도 아름답지 못한 자를 들어, 그 가운데 보통 사람은 가르침과 닦음으로 이루어짐을 보인다.) 이제 배우는 자에게 허물이 있다 하여 배움을 그르다 함은, 한 번 체했다 하여 곡식을 끊고 먹지 않으며 한 번 엎어졌다 하여 발걸음을 멈추고 가지 않음이니, 미혹이다.
(좋은 칼 순구(純鉤)·어장(魚腸)도 처음 거푸집에서 나올 때는 끊지 못하나 숫돌에 갈면 용주(龍舟)를 끊고, 밝은 거울도 처음엔 흐리나 갈면 터럭도 비추듯, "배움은 사람의 숫돌"임을 논한다.) 무릇 배움은 또한 사람의 숫돌이니, 배움이 무익하다 함은 논함이 지나친 것이다. 지혜로운 자의 짧은 바가 어리석은 자의 닦은 바만 못하고, 어진 자의 부족한 바가 뭇사람의 남은 바만 못하다. (창힐(蒼頡)이 글을 짓고 용성(容成)이 책력을 만들며 호조(胡曹)가 옷을, 후직이 농사를, 의적(儀狄)이 술을, 해중(奚仲)이 수레를 지은 여섯 사람을 들어, 사람이 한 가지 일을 지어 후세에 남겼으되 한 사람이 홀로 다 겸할 수 없으며, 가르침이 이어져 지혜가 흘러 통함을 보인다.) 이로 보건대 배움은 그칠 수 없음이 분명하다.
(맹인이 거문고를 타되 한 줄도 잃지 않음은 익혀 쌓은 까닭이며, 활은 도지개를 기다려 고르고 칼은 숫돌을 기다려 날카로워지듯, 사람의 마음과 뜻도 갈고 닦을 수 있음을 논한다.) 무릇 메마른 땅의 백성에 마음 쓰는 자가 많음은 수고롭기 때문이요, 기름진 땅의 백성에 재주 없는 자가 많음은 넉넉하기 때문이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힘쓰지 않으면 어리석으면서도 배우기 좋아하는 자만 못하다. 임금·공경으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힘쓰지 않고 공을 이룬 자는 천하에 있은 적이 없다. 『시(詩)』에 이르기를 "날로 나아가고 달로 나아가 배움이 빛남에 이른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이름은 힘써 세울 수 있고 공은 애써 이룰 수 있으므로, 군자는 뜻을 쌓고 바름에 맡겨 밝은 스승에게 나아가고 절개를 힘쓰고 높이 들어 세속을 끊는다.
(남영주(南榮疇)가 노담(老聃)을 찾아 한마디 가르침을 받아 이름을 후세에 드리운 일, 신포서(申包胥)가 진(秦) 뜰에서 이레 밤낮을 울어 군사를 빌려 초나라를 보존한 일을 들어, "이름은 힘써 세울 수 있고 공은 애써 이룰 수 있음"을 보인다.) 무릇 일곱 자 형체가 마음으로 근심과 수고를 알고 살갗으로 아프고 춥고 더움을 앎은 사람의 정이 한가지이다. 성인은 때를 얻기 어려움을 알아 힘써 나아갈 만한 바에 힘쓰니, 몸을 괴롭히고 형체를 수고롭게 하며 마음을 태우고 간을 졸이되 번거롭고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위태로움을 거스르지 않는다. (자발(子發)의 싸움이 빠른 화살 같고 우레 같았던 일을 들어, "몸을 강하게 하여 공을 이룸"을 보인다.) 그러므로 농부가 힘쓰지 않으면 곳간이 차지 않고, 관리가 힘쓰지 않으면 마음이 정밀하지 않으며, 장상이 힘쓰지 않으면 공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후왕이 게으르면 후세에 이름이 없다. 『시』에 이르기를 "내 말은 검푸르고 여섯 고삐가 실 같도다. 달리고 몰아 두루 꾀하노라" 하였으니, 사람에게 힘쓸 바가 있음을 말함이다.
사물에 통한 자는 괴이함으로 놀라게 할 수 없고, 도에 밝은 자는 기이함으로 움직일 수 없으며, 말을 살피는 자는 이름으로 현혹할 수 없고, 형체를 살피는 자는 모양으로 달아날 수 없다. 세속의 사람은 흔히 옛것을 높이고 지금을 천히 여기므로, 도를 하는 자가 반드시 신농·황제에 의탁한 뒤에야 설(說)에 들 수 있다. 어지러운 세상의 어두운 임금은 그 유래를 높고 멀게 하여 인하여 귀히 여기고, 배우는 자는 논(論)에 가려 그 들은 바를 높여 서로 무릎 꿇고 일컬으며 옷깃을 바로 하고 외운다. 이는 옳고 그름의 분별이 밝지 못함이다. 무릇 그림쇠와 곱자가 없으면 비록 해중(奚仲)이라도 모나고 둥금을 정할 수 없고, 수준기와 먹줄이 없으면 비록 노반(魯般)이라도 굽고 곧음을 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종자기(鍾子期)가 죽으매 백아(伯牙)가 줄을 끊고 거문고를 깨뜨림은 세상이 알아줄 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요, 혜시(惠施)가 죽으매 장자(莊子)가 말함을 그침은 세상에 더불어 말할 이 없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진혜왕(秦惠王)이 사자(謝子)를 처음엔 기뻐했다 참소로 듣지 않은 일, 초나라가 원숭이 국을 개국으로 알고 달게 먹다 토한 일, 한단(邯鄲)의 새 곡조를 옛 이름에 의탁하자 다투어 배운 일, 옥 박돌을 보배로 여겨 갈무리한 일을 들어, "마음에 부합함이 있으면 옳음을 귀히 여겨 고금이 같으나, 들음에 주재가 없으면 유래가 멀다 하여 귀히 여길 뿐"임을 논한다.) 그러므로 미인이란 반드시 서시의 종류가 아니요, 통달한 선비란 반드시 공자·묵자의 부류가 아니다. (진평공(晉平公)이 종을 만들매 사광(師曠)이 음이 고르지 않다 한 일을 들어, "참으로 청명한 선비가 마음에 거울을 잡아 사물을 밝게 비추면 고금에 뜻을 바꾸지 않음"을 논한다.) 이제 모장·서시는 천하의 미인이나, 만약 그들에게 썩은 쥐를 물리고 고슴도치 가죽을 쓰우며 표범 갖옷을 입히고 죽은 뱀을 띠게 하면, 베옷 입은 자가 지나가도 다 좌우로 흘겨보고 코를 가리지 않음이 없을 것이요, 시험 삼아 그들에게 향유를 바르고 눈썹을 바로 하며 비녀와 귀고리를 꽂고 고운 비단을 입히면, 비록 왕공대인으로 엄한 뜻과 굳센 행실이 있는 자라도 마음이 들떠 그 색을 기뻐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이제 보통 사람의 재주로 어리석고 미혹된 지혜를 쓰고 더럽고 욕된 행실을 입어, 닦은 본업과 힘쓴 방술이 없으면, 어찌 흘겨보고 코 가리는 모습이 없으랴!
(춤추는 자와 나무 타는 자가 부드럽고 굳센 것이 본성이 아니라 점차 젖어 익힌 까닭임을 들어, "산 나무가 자람은 그 더함이 보이지 않으나 때가 되면 길어지고, 숫돌이 단단한 것을 갊은 그 덞이 보이지 않으나 때가 되면 얇아짐"을 논한다.) 무릇 일에는 이루기 쉬운 것은 이름이 작고 이루기 어려운 것은 공이 크다. 군자가 아름다움을 닦으면 비록 당장 이로움이 없어도 복이 장차 뒤에 이른다. 그러므로 『시』에 이르기를 "날로 나아가고 달로 나아가 배움이 빛남에 이른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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